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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평화' 흔드는 '팍스 아메리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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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평화' 흔드는 '팍스 아메리카나'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20〉이라크 침공 3년에 붙여

어느덧 미국의 이라크 침공 3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이라크에서 벌어진 숱한 유혈사태들의 희생자들은 "지구촌 평화에 미국 부시정권이 얼마나 큰 위협인가"라는 점을 잘 말해준다. 미국은 말 그대로 슈퍼 파워다. 지구촌 평화 또는 불안의 큰 변수다. 1991년 옛 소련이 무너진 다음 미국은 이른바 일극체제 위에서 초강대국으로서 패권적 지위를 누려 왔다. 그런 강대국이 일방주의 외교정책을 밀어붙일 때 지구촌 평화는 늘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것이 오늘의 이라크와 지구촌 사람들이 부딪친 상황이다.

***"오늘은 유엔과 국제사회에 슬픈 날"**

미국이 유엔을 무시하고 이라크 공습을 감행했던 2003년 3월 20일,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은 이렇게 한탄했었다. "오늘은 유엔과 국제사회에 슬픈 날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를 거치지 않은 이라크 침공은 미국이 21세기의 '세계제국'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증거다. 부시 미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그리는 국제질서는 고대 로마의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 18세기 영국의 '팍스 브리타니카(영국의 평화)'처럼 힘에 바탕한 '팍스 아메리카나'의 질서다.

(사진설명)01 바그다드 시내의 훼손된 후세인 초상화 (ⓒ김재명)

로마의 평화 뒤에 정복자의 오만과 노예 노동의 고통이 있었고, 영국의 평화 뒤에 식민지 자원 착취와 수탈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패권국가로서의 미국이 그리는 질서 아래서는 대미 종속적 관계로 말미암아 고통을 겪어야 하는 후진국들이 있다. 미국을 거부하고 국제경제 파트너를 다른 데서 찾겠다고 나선다면, 석유자원민족주의를 내걸었던 사담 후세인 같은 고단한 처지가 되기 십상이다.

3년 전인 2003년 4월 바그다드가 함락될 무렵 부시행정부 강경파의 우두머리인 딕 체니 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가 우리를 평가할 것이다." 체니는 이라크 침공이 값싼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 중동 이슬람 지역에서의 패권 확장을 통해 미국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길 바라는 듯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이라크 침공이 지구촌 평화에 도움이 얼마나 됐는가? 또는 '해방'의 대상인 이라크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됐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부시나 체니 쪽의 답변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21세기의 미국은 정치ㆍ경제ㆍ문화ㆍ군사 모든 측면에서 세계를 지배해 오고 있다. 전세계 국방예산의 47%를 소비하는 미국은 '아메리카 요새(American fortress)'를 짓기 위해 지구상 어느 나라도 흉내를 못내는 미사일 방어망(MD)을 밀어붙이는 강대국이다. 경제적으론 세계경제를 달러 중심체제로 자리 잡도록 했고, 할리우드 영화는 지구촌 보통사람들에게 '꿈의 아메리카' 환상을 심어준다. 그런 가운데 미국은 인권이나 민주주의 명분을 앞세워, 투자이익이 걸린 분쟁지역들을 무력으로 다스려 왔다.

이라크에서의 혼란이 길어지면서 미국이 지난 1960년대 베트남 수렁처럼 이라크 수렁에 빠졌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런 상황을 흐뭇한 미소를 바라보는 집단이 있다. 바로 미 군수산업체들이다. 미국의 늘어나는 국방비 지출로 3년째 특수경기를 누리는 중이다. 1990년 냉전이 막을 내린 뒤로 무기들이 팔리지 않고 재고가 늘어나자 기업합병 등으로 살길을 모색했던 그들은 이라크전쟁으로 호황을 맞이했다. 노암 촘스키를 비롯한 미국의 반전 평화주의자들은 이라크 전쟁이 군수업체와 석유업체를 비롯한 미국 지배계급의 배를 불린다고 비판해 왔다.

〈사진02〉 아부 그라이브 감옥 앞에서 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이라크 민간인들 (ⓒ김재명)

미국의 평화주의자들과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강경파들은 이라크에 이어 이란으로 전선을 넓히려드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런 패권적 일방주의자들(네오콘 용어를 빌면 미국적 국제주의자들)의 위험스런 행위(또는 국가정책)을 통제할 제도나 실체가 국제사회에 없다는 점이다. 세계정부로서 기능해야 마땅한 유엔은 너무 약하다. 이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잘 드러났다.

***팍스 아메리카나 깰 제2의 9.11**

이라크 침공 뒤 미국의 일방주의 태도는 더욱 완고해지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과 그의 매파 참모들은 "힘에 바탕한 미국의 평화(팍스 아메리카나)"를 굳게 믿는다. 하지만, 힘에 바탕한 미 대외정책이 장기적으로 미국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될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서유럽의 전통적인 친미 국가들조차 미국에 등을 돌리는 모습이다.

미국의 아프간 침공과 이라크 침공에 얽힌 핵심용어는 패권(hegemony)이다. 로버트 길핀(프린스턴대, 국제정치학) 같은 미국의 일부 학자들은 일찍부터 미국의 패권이 세계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펴 왔다. 이른바 '패권안정이론'이다. 그러나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팍스 로마나 시절, 로마인들에겐 평화가 있었을지라도 로마제국에 정복된 약소민족들에게 평화는 없었다. 그래도 평화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노예의 평화였다. 마찬가지로, 패권주의적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와 평화는 강자의 평화, 미국의 평화일 뿐이다. 그런 상황 아래서는 언제라도 제2의 9.11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이 잠복해 있다. 어느 날 아침 미국에서 그런 대형테러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온다면, 그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필자 이메일: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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