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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것이 진짜 알타이야!"

서길수 교수의 '알타이 답사기' 〈11〉

***셰민스키이고개(1894m)를 넘어 알타이 산골을 달린다**

4시 35분, 우스트-쎼마(Ust-Syema, 498㎞)를 지난다. 지금까지 까뚠강을 오른쪽으로 끼고 계속 달려왔는데 여기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우선 까뚠강을 따라 계속 가면 우즈녜쟈(Uznyezya, 21㎞), 체말(Chemal, 16㎞), 엘란다(Elanda, 23㎞), 쿠유스(Kuyus, 30㎞)로 이어지고 여기서 10㎞쯤 가면 길이 없어진다. 이 루트는 2004년 답사를 하기 때문에 뒤에 가서 자세하게 쓰기로 한다. 다른 한 길은 까뚠강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추야도로를 계속 달리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면 주위 경관이 갑자기 바뀌며 산지로 접어들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5시 25분, 쉐발리노에서 쉬면서 차 한 잔 마시고 가기로 했다. 말이 차 한 잔이지 1시간 동안 충분한 휴식을 가졌다. 6시 25분 출발하여 셰마강을 거슬러 25㎞를 달리면 또푸차야(Topuchaya)라는 조그마한 마을이 나오고 여기서부터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바로 2000m급 산봉우리로 이어지는 셰민스키이(Syeminskii)산맥을 넘는 것이다.

7시 5분 셰민스키이 고개에 도착하였다. 9km를 올라가서 11km를 내려가야 하는 해발 1894m 높이의 이 고개는 추야국도가 시작되는 비스크에서 우리가 오늘 목표지점으로 했던 이냐(Inya)까지 여정 가운데 가장 높은 지점이다. 예전에는 알타이말로 디올-멘꾸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국의 설악산 대청봉만큼 높은 고개에 알타이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데, 가장 높은 사를르크산(2507m)과 삼나무 숲의 아름다운 경치가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이곳 가장 높은 곳에 예카쩨린 황제 2세가 청나라를 물리치고 알타이를 러시아 영토로 편입한지 200주년(1756~1956)을 기념하는 탑이 서있다. 차에서 내리니 모기가 파리처럼 새까맣게 달려들어 참기 힘들 정도이다. 그러나 2004년에 다시 갔을 때는 모기들이 다 어디 갔는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시기, 온도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세민스키이 고개에서 남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 올림픽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훈련장소가 있다. "세민스키 고개" 스포츠합숙 관광센터인데 스키선수와 사격선수 들을 위한 훈련장소이다. 높은 산꼭대기라고는 생각이 들이 않을 정도로 널찍한 곳에 핀란드 풍의 아름다운 집들이 자연과 알맞게 어울려 있고 입구에서부터 포장도로로 잘 이어져 있다. 이곳에 숙박시설이 있고 사우나도 있으며 식사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고 하는데 캠핑도구를 완벽하게 갖춘 우리는 그곳을 이용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시간이 나면 이런 곳에서 승마를 하면서 며칠 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셰민스키이 고개는 특히 식물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지역이다. 산악알타이(알타이공화국)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식물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삼나무 타이가에는 아고산대(亞高山帶) 초원과 여러 가지 풀이 섞여서 자란다. 국도에서 산 속으로 멀리 들어가면 진달래가 피는 초원을 만나게 된다. 고개에는 여러 가지 색의 고산 꽃들이 피는 초원이 있고, 그 뒤에는 관목, 어린 자작나무와 고산의 버들, 흰색 황새풀이 자라는 툰드라가 자리하고 있다. 길은 삼나무 숲을 따라 간다. 10월이 되면 '뚜시켄'이라는 타이가의 센 바람이 삼나무의 방울열매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지방 주민들은 영양분이 많은 알맹이를 주어서 팔기도 한다. 삼나무 열매는 화장품 제조와 삼나무 기름을 짜는데 사용된다.

저녁 7시 5분 고개를 넘어 오늘의 목표인 이냐까지 가기 위해 부지런히 달린다. 추이스키 국도를 따라 가노라면 띄엄띄엄 마을들이 나타나는데 가면 갈수록 알타이 전통건축물을 자주 만나게 되고 알타이사람이 러시아인보다 더 많아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셰민스키이 고개에서부터는 계속 내려가는데 고개에서 발원한 뚜엑따(Tuekta)강을 따라간다. 이 뚜엑따강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오는 우르술(Ursul)강으로 흘러들어가 동남쪽으로 흐르다 까툰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그런데 두 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우스크-칸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삼거리(611㎞)가 된다. 우리가 돌아갈 때는 다시 셰민스키이 고개를 넘지 않고 바로 이 삼거리에서 서쪽으로 가게 되어 있다.

삼거리를 지나 조금 가니 7시 50분 뚜엑타마을(616~617km 지점)을 지난다. 뚜엑다 마을 근처 바위에서 유목민시대의 바위그림이 발견되었다. 바위그림에는 사슴, 산양과 몇 명의 사람모습이 그려져 있다. 또한 길을 따라 자세히 보면 수많은 꾸르간(고대 무덤)이 보인다. 이러한 바위그림과 꾸르간은 앞으로 달릴 추야도로 가에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자연스런 풍경이 된다.

7시 55분 까라꼴을 지난다. 까라꼴은 '검은 물'을 뜻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이곳은 '까라골문화'라는 말이 탄생할 정도로 유명한 발굴이 이었던 곳이다. 오늘은 목적지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우선 지나가고 돌아올 때 자세하게 답사하기로 하였다.

8시 10분, 온구다이(Ongudai)에서 15분간 휴식했다. 고르노-알타이스키에서 출발한 이후 가장 큰 마을이다. 온구다이는 '10명의 신'이라는 뜻인데, 고르노-알타이스크에서 210km 떨어진 곳으로 까뚠강의 지류인 우르술강 가에 자리하고 있다. 해발 860m의 온구다이는 온구다이라이온의 수도로 인구 5100명의 큰 도시이다. 여기에 간단한 숙박시설이 있고 악타쉬에 갈 때까지 숙소가 없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개인여행을 하는 사람은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러시아 농민들은 1860년대 초 처음 이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1870년대 말에 온구다이 인구는 522명 정도였다. 그 가운데 268명이 러시아사람이었는데 상업을 하거나 제분소와 가죽공장에서 일했다. 알타이인들은 사냥을 하거나 호두를 모았다고 한다.

온구다이를 지나면 우르술강 계곡은 좁아지고 7㎞를 달려 울리따(Ulita)를 넘어서면 작은 골짜기가 된다. 여기서 아주 아름다운 우르술 강 협곡을 볼 수가 있다. 아름다운 경치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풀과 들꽃이 자라기 때문에 잠깐 세워서 볼 만한 곳이다. 오른쪽에서 말르이(작은) 일구멘(Mal. Ilgumen)강이 우르술강으로 흘러간다. 두 강의 합류 지역은 옛부터 물고기가 많이 모이는 지역으로 유명한데 우르술강은 여기서 큰 산맥에 막혀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까뚠강으로 흘러들어간다. 말르이 일구멘강 계곡에는 하바로프카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은 1874년 여기에 식료창고를 가진 하바로프라는 상인이 만든 마을이라고 한다. 하바로프 마을을 지나자 차는 다시 가파른 고개를 오르기 시작한다. 고개를 오르기 전 일구멘강 가에도 빠지리크 시대의 유적이 있으나 오늘은 그저 조금이라도 멀리 가는 것이 목적이라 모두 지나친다.

치케-따만고개(Per. Chike-Taman) 높이는 셰민스키이 고개보다 훨씬 낮은 1460m이지만 험준한 산맥 때문에 더 높아 보인다. 그러나 이름에 걸맞지 않게 '치케-따만'은 알타이말로 '평평한 발바닥'을 뜻한다고 한다. 1984년 새 도로가 완성되고 포장도로가 되면서 고개는 편하게 넘을 수 있지만 당시 파헤친 흙과 돌들이 파란 알타이에 흉터처럼 남아 있어 가슴이 아프다.

2004년 트럭을 모는 유리가 특별히 옛날 길로 나를 안내하겠다면서 자기 차로 바꾸어 타라고 한다. 옛날의 추야국도는 비포장의 꼬불꼬불한 산길이라 말을 타고 가기에도 무척이나 험난한 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차가 달릴 수 있는 길이고 아스팔트길보다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낭만적인 길이다. 길바닥이 바퀴 지나가는 두 길을 빼놓고는 모두 노란 꽃으로 되어 있어 마치 꽃길을 달리는 것 같다.

"This is real Altai." 유리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 지르면서 꼬부랑길에서 속도를 낸다. 봄에는 북쪽 경사 산진달래, 남쪽 경사에 황색 알타이 튜울립이 아주 아름답게 핀다고 한다. 꼭대기에 올라가니 우리 말고도 다른 차가 한 대 쉬면서 아래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새로 길이 났지만 옛길까지 길을 내 옛날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 고개 위에는 돌들을 쌓은 '오보'와 나무에 하얀 베 조각을 매다는 '까이라"가 있다. 까이라는 보통 샤먼나무라고 불리는데 고개, 개울이나 샘 근처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즉 주술적인 의미에서 복을 기원하기 위해 나무에 흰 천을 매는 것이다. 이 고개를 지나가는 나그네들은 안전을 기원하고 신에게 감사하기 위해서 댕기를 매달았던 것이다.

저녁 9시 고개를 내려오자마자 바로 만나는 계곡에서 오늘을 일정을 마치기로 했다. 예정했던 '이냐'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날이 어두워지고 운전하는 사람들도 너무 피곤하기 때문이다. 아침 8시45분에 출발하여 고르노알타이스크에서 2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거의 10시간을 달려온 것이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발쇼이(큰) 일구멘강 계곡이다. 야영지 이름은 '빼르치께따만(N 50°38'24.3", E 86°20'51.2")이라고 한다. 일구멘은 일구멘강의 최상류에 있는 일구멘산(2618m)에서 시작되는 데 고개를 넘기 전에 있던 강이 작은 (말르이)일구멘강, 고개를 넘어서 흐르는 강이 큰(발쇼이) 일구멘강이다. 일구멘산은 떼렉띤스키(Terektinskii)산맥의 높은 산 가운데 하나인데 지금까지 지나온 까라꼴, 온구다이 같은 마을이 모두 이 산맥에서 흐르는 강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들이다.

도착하자마자 우리팀은 바로 야영준비에 들어갔다. 꾸바레프 교수 일행은 이미 오랜 노하우 때문인지 능숙하게 맡은 일을 해낸다. 우리는 텐트를 2개 세웠다. 하나는 동생과 내가, 하나는 원철이과 화동의 잠자리다. 통역을 맡은 플루스닌 교수와 이리나는 1인용 텐트를 능숙하게 친다. 많이 다녀본 솜씨다. 저녁 10시 현재 대기온도 14.1℃, 개울물 11.7℃로 갑자기 온도가 내려가 싸늘하다. 저녁밥은 11시가 다 되어서야 먹게 되었다. 통조림 소고기와 감자를 끓인 국이 일품이다. 모두 캔 맥주 한 깡씩을 들고 브라보!

11시 반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든다. 꾸바레프 교수는 승합차에서, 트럭 운전하는 유리는 트럭 뒷자리에 설치한 특수 침대에서, 그리고 나머지 6명은 텐트 6개에서 알타이의 첫 밤을 보낸다. 이정표 만제록(Manzerok, 498) -14㎞- 우스트 무늬(Ust-Muny)-11- 우스트 쎼마(Ust-Syema, 498) -18- 체르가(Cherga) -32- 믜유따(Myyuta) -14- 쉐발리노(Shebalino) -25- 또부차야(Topuchaya) -39- 삼거리 -3- 뚜엑따(Tuekta) -5- 까라꼴(Karakol) -13- 온구다이(Ongudai) -17- 하바로브카(Khabarovka) -22- 꿉체겐(Kupchegen).

***5일만에 본격적인 탐사 시작**

7월 3일(목), 5일째 되는 날이다. 찾아온 손님 때문에 6시쯤 잠이 깼다. 알타이 암소 한 마리가 우리 텐트를 흔들어댄 것이다. 엊저녁 추워서 한두 번 깼지만 아주 곤하게 잤다. 텐트 밖 바로 머리맡에서 흐르는 계곡 물소리도 깊은 잠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6시에 이미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어제 하루종일 흐렸던 날씨가 다행히 맑게 개어 상큼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 기온이 13℃인데 해가 뜨자마자 22℃까지 올라간다. 이리나는 이미 아침밥을 하기 위해 개울에서 준비를 하고 꾸바레프 교수는 버너에 불을 피우고 있다. 우리도 텐트를 철수하고 짐을 싸서 완벽한 출발준비를 하고 아침밥을 먹었다.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통역을 해주고 있는 유리 교수는 자신의 다용도 그릇에 커피를 가득 채우고 경치 좋은 곳에 올라 무엇인가 열심히 적고 있었다. 유리 교수는 작은 키에 강인한 다리와 튼튼한 팔, 넓은 가슴과 굵은 목, 짧은 머리에 콧수염까지 언뜻 보기에는 영락없는 격투기 운동선수 같다. 하지만 인상은 너무도 선량해 보이고 맡은 일에는 진지하면서도 성실했다. 원래 생물학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지금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철학이라고 하였다. 재미있는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출발하기 전 한 가지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벌레에 물린 귀 밑에서 부은 곳이 터져 진물이 나고 있다. 꾸바레프가 보자마자 "모슈카"라고 한다. 사전을 찾아보니 모슈카는 소 등을 쏘는 '등에'라는 작은 벌레이다. 내몽골에서 등에가 많이 쏜 소의 가죽은 구멍이 나서 상품가치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만큼 독성이 있는 것이다. 모슈카의 독성만 문제가 아니고 일종의 알레르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더 문제였다. 우리가 갖고 있는 약이 없어 유리 교수가 약을 구하기 위해서 유리 교수가 다른 야영객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더니 알레르기에 잘 듣는 텔파스트(Telfast)라는 노란 약을 구해와 먹었다.

8시 50분 출발하여 발쇼이일구멘강 가를 따라 힘찬 하루를 시작하였다. 개울가에는 자작나무, 버드나무, 전나무들이 자라고 산에는 이깔나무(낙엽송)가 무성하게 덮여 있다. 큰 산자락을 돌아 얼마 가지 않아 알타이의 시골 쿱치겐(Kupchigen, 674㎞)에 다다른다. 발쇼이 일구멘강을 넘어가는 다리를 지나면 바로 일구멘과 까뚠강이 만나는 합수머리가 나오고 넓은 까뚠계곡이 나타난다.

이곳은 문화유적이 많이 널려 있는 곳이다. 합수머리 주변 바로 길가에(681㎞) 얼굴 모양의 선돌(최근에 만들어진 곳)이 있고 작은 꾸르간들이 20기 남짓 펼쳐져 있다. 쿠르간 옆에 돌로 된 석상과 기둥들이 두 줄로 늘어서 있다. 일렬로 나열되어 있는 이 기둥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서 있는 기둥의 숫자가 고대 용사가 죽인 적의 숫자를 상징한다고 보는 설, 기둥의 숫자만큼 사람들이 장례식에 왔었는지를 나타내고 있다는 설, 말을 매는 말뚝을 모방한 것이라는 설 등이 있다. 이곳에 석상(할머니 상이라고 함)이 있는데, 분명하게 끌로 얼굴에 상처를 낸 자국을 볼 수가 있다. 이곳의 주민들의 말로는 얼굴이 새겨진 석상의 외형은 그렇게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나 석상 자체는 뚜르끄시대 때의 것이라고 한다.

〈그림 19)〉 돌사람 큰 얼굴
〈그림 20)〉 까뚠강과 일구멘강의 합수머리 유적

쿱치겐을 지나 8㎞를 더 가면 추야도로는 까뚠강 가를 달리게 되는데 682㎞ 지점부터 꼬르-꼐추(Kor-Kechu)라는 절벽을 지난다. 꼬르-꼐추는 "재앙을 가져다주는 나룻터" 또는 "오래된 나룻터"라는 뜻인데 길과 강 위로 솟아있는 거대하고 가파른 절벽이다. 이러한 절벽의 행렬은 말르이(작은) 얄로만(Yaloman) 마을까지 계속된다. 이 옛날에는 이 꼬르-꼐추 절벽 주변에 규모가 큰 나루터가 존재했었다. 카툰강 양쪽 언덕에 두 개의 거대한 기둥이 보이는데 이 기둥에는 나룻배를 매는 시설과 다리를 만들었던 설비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추야도로는 여기서 절벽으로 뚫린 좁은 길을 지난다. 이 산을 뚫는 작업과 산악 작업들은 모두 시베리아 7번 수용소 수감자들이 맡아서 했다고 한다. 도로는 꼬르-꼐추를 지나면 우르코쉬(Urkosh), 끄이늬라르(Kynyrar), 아이릐-따쉬(Airy-Tash), 얄로만(Yaloman)이란 이름이 붙은 다른 절벽들을 지나야 한다. 따라 지난다.

아이릐-따쉬 절벽을 통과할 때는 돌로 된 좁은 골짜기를 지나게 되는데 길이 좁아서 자동차 한 대만 통과할 수 있다. 말르이 얄로만에 이르기까지 도로는 높은 낭떠러지 위로 지나가고, 그 아래로는 카툰 계곡이 넘실거려서 그 광경은 정말 가슴을 조이게 한다. 말르이 얄로만은 마치 사막의 신기루와 같은 좋은 기후이다. 여기에 사과나무와 벚나무가 자라 봄에는 예쁜 꽃을 피운다.

아이릐-따쉬 절벽을 지나면 절벽과 까뚠평야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점(684㎞)이 나온다. 우리는 내려서 사진촬영을 하였다. 까툰강과 주변의 바위산, 그 중간에 걸린 추야도로, 초원과 꾸르간들이 한데 어울려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까툰강의 물색은 초록색에 돌가루를 섞은 듯 좀 탁한 비취색을 띠고 있어 마치 초록색 캔버스에 굵은 비취색 선을 한 번에 그은 것처럼 힘 있고 아름답다. 넓게 펼쳐진 까뚠강 건너 초원에는 꾸르간들이 바로 내려다보이는데 상당히 대형이다. 초원 저 멀리 까맣게 보이는 산기슭 바위에는 바위그림들이 많은데 BC 5~3세기 조기 철기시대와 AD 8~10세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청동기시대부터 유목시대를 거쳐 뚜르끄시대까지 다양한 시대의 꾸르간도 지천으로 널려 있다고 한다. 문제는 그곳으로 건너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배로 강을 건너거나 3일 동안 걸어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그림 21) 까뚠강과 까뚠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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