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알타이의 동맥 '추야도로를 가다**
***'2003년 알타이 탐사단' 4명 노보시비르스크 도착**
2003년 6월 29일(일) 오후, '2003년 알타이 탐사단' 4명이 노보시비르스크 톨마체보 공항에 도착했다. 3주간 동안의 제법 긴 답사라서 우리들의 짐은 만만치 않았다. 1인당 2개씩의 크고 작은 가방과 한국인의 여행 필수품이 되어버린 '신라면' 2박스, 그리고 기타 여러 물건들이 든 박스까지 완전히 이삿짐 수준이었다. 그러나 작년에 비해서는 쉽게 공항을 빠져 나왔다. 1시간 반이 안 걸린 것이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꾸바레프 교수와 유리 플루스닌 교수가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이한다. 작년에 꾸바레프 교수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주고 통역을 해 주었던 유리 플루스닌 교수가 올해 탐사 전 일정 동안 통역을 해 주기로 해 함께 나온 것이다. 시내로 들어오는데 갑자기 우박과 함께 소나기가 내린다. 꾸바레프 교수는 6월 들어 처음 내리는 비라고 하며 이번 여행에 행운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비가 내리자마자 도로가 침수되는 걸로 봐서 배수 시설에 문제가 있는 도시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이름 모를 한 아파트다. 오늘 저녁 정원철 군과 내가 잘 까차 아르베꼬바의 집이라고 한다. 그리고 동생 서진수 교수와 김화동 군은 다시 차에 타고 다른 집으로 갔다. 플루스닌 교수가 우리 탐사단 전원을 현지 에스페란티스토 집에서 민박을 할 수 있도록 주선해 놓은 것이다. 집안에는 7명의 에스페란토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1명 빼놓고는 모두 젊은 여학생들이다. 한국에서 젊은 청년이 2명 온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 아닐까! 그 가운데는 이곳에서 살지 않고 쌍 뻬쩨르부르그에서 온 엘레라, 튜멘에서 온 안드레도 섞여 있는데 우리와 같은 손님이고 그들도 회원들 집에서 민박하는 같은 처지들이다. 대부분 언어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었는데 그 가운데 한 학생은 10개 언어를 구사한다고 했다.
저녁 6시가 넘어서자 모두 함께 축제를 보기 위해 시내로 나왔다. 올해가 노보시비르스크가 생긴 지 110년 째 되는 해라고 해서 온 도시가 요란하다. 젊은 사람들과 함께 3~4시간 축제의 마지막 날을 즐겼다. 초상화 그리는 거리 풍경, 큰 뱀을 가지고 함께 사진 찍어주고 돈 버는 아가씨 등 평소에 많이 볼 수 없는 풍경들이 많다. 군사박물관과 시내 중심 광장에 있는 오페라 극장, 성당 같은 주요 건물들을 구경하면서 함께 대화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밤 10시쯤 내일 아침거리(우유, 겔러그, 만두, 야구르트)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오늘 우리가 묵는 집은 여자 회원의 집인데,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을 둔 학부형이자 언어학을 배우는 학생의 집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오직 에스페란토를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시내를 안내해 주고, 또 잠까지 재워주는 회원들이 고맙다. 우리 형제는 이미 수 십 년간 세계를 다니면서 많이 겪은 분위기이지만 에스페란토를 배우지 않은 원철이와 화동이는 생소한 모양이다. 집에 돌아온 안주인 까차는 여기저기 전화를 거느라 바쁘다.
까차는 나에게 집안의 화장실과 부엌 같은 곳의 사용법을 하나하나 알려주고 열쇠를 꺼내준다. 내일은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마음대로 드나들라는 것이다. 내일은 졸업시험이고, 이 곳 학생들은 졸업시험이 끝나면 밤새워 함께 논다고 한다. 시험이 끝나면 졸업이나 마찬가지이고 대학새활을 끝내는 시험을 마친 기념으로 뒤풀이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집의 주인 아주머니도 학생 신분이라 내일 저녁은 부득이 외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정말 환상적이지 않은가? 처음 보는 외국 이방인에게 자신의 집안 열쇠를 쥐어주다니…. 가족도 믿지 못한다고 하는 판에 세상에 어디 이런 친절이 있을까 싶다. 에스페란토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는 하루였다. 정말 위대한 언어다."
원철이가 놀라움을 나타낸다. 캠핑 간 아이 방에 침대가 2개 있어 우리는 그곳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오늘 아침 서울을 떠났는데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 하늘 아래서 잠을 청한다.
***시베리아에서 여름철 물놀이**
6월 30일(화) 아침 6시 기상, 한국 같으면 아침 8시다. 시베리아의 아침은 밝지만 조용하다. 8시쯤 아침밥을 먹었다. 까차는 오늘 하루 시험 때문에 시내 안내를 못해 미안하다며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준다. 헨드폰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고, 전화카드를 주며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전화하라면서 마치 어린아이를 물가에 혼자 내보내듯 한다.
오늘은 모든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나의 영원한 시베리아 친구 시비리체프 교수도 시험관이라 우리를 안내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정헌준 씨 부인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시내 구경을 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박물관은 월요일이라 오늘 휴관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오는 비행기는 유일하게 일요일만 온다. 그렇기 때문에 박물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일요일 오후 바로 박물관으로 직행해야 한다.
우선 가까이에 있는 전승기념관으로 갔다. 러시아의 모든 도시에 있는 전승기념관에는 소위 '꺼지지 않는 불'이 있고, 2차대전 때 독일을 물리친 승전을 기념하며 동시에 러시아인의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깔따구(날아다니는 모기 같은 벌레)들이 앞을 가려 걸어가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여기서 깔다구에게 물려 이번 탐사는 너무 힘들었다. 마치 하루살이들이 계속 따라다니며 귀찮게 구는 것처럼 많이 몰려 다녀 그 위력을 몰랐는데 답사 내내 괴로움을 당했다. 시베리아 가면 하루살이라고 생각하여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지하철을 타고 시내에 와서 '포크와 숟가락'이라는 뷔페식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곳에 오면 어떤 음식을 먹을까 걱정을 했는데 어제 학생들이 적극 추천하여 가보니 그다지 비싸지도 않고 마음대로 골라먹을 수 있어 좋았다.
시내는 중요한 박물관이 모두 문을 닫았으니 아카뎀고로독으로 가기로 하고 시외버스가 떠나는 곳까지 버스를 타고 갔는데, 버스가 우리가 정차할 역에 서지 않고 오비강을 건너버렸다. 이 덕분에 우리는 엄청난 인파로 붐비는 오비강가의 해수욕이 아닌 강수욕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시베리아는 여름에도 추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시베리아를 모르는 소리다. 시베리아의 한 여름은 아주 더운 날이 많다. 그리고 많은 도시인들은 다차를 비롯하여 산 계곡이나 강가로 가서 피서를 한다. 오비강은 러시아에서 가장 큰 강이기 때문에 여름이면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 최고의 장소다. 더구나 시내에서 전철 몇 구간만 타거나 걸어서 올 수도 있다.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이 인산인해를 이룬 강가 모래사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소득에 관계없이 생활을 즐기는 러시아인들의 여유를 볼 수 있었고,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가에서 마음대로 수영하고 피서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정말 부러웠다.
걸어서 다리를 건너와 버스를 타고 아카뎀고로독에 도착하니 벌써 4시가 넘었다. 도착한 지 30분이 지나서야 플루스닌 교수가 나타났다. 우리는 먼저 4km 떨어진 야외 박물관으로 향했다. 야외박물관은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가서 아무리 소리를 쳐도 관리인이 나타나지 않는다. 플루스닌 교수가 문을 넘어가 관리인을 찾았으나 실패하여 우리 모두 용감하게 담을 넘었다. 그 때야 나타난 할머니 관리인은 어찌나 자세하게 설명을 하는지 시간이 없는 우리는 말리느라고 애를 먹었다.
야외 박물관 안에는 알타이 지역에서 가져와 복원한 꾸르간, 암각화, 석인상들을 야외에 전시해 놓고 있었는데 풀이 길게 자라, 보는 것은 물론 다니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냥 방치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관리가 허술했는데 이렇게 관리도 하지 않을 것이라면 왜 옮겨 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외에도 박물관 안에는 야쿠트 공화국에 있던 가장 오래 된 교회도 옮겨 놓았는데 1700년대 세워진 통나무 사원으로 '자씨비리스크(구원의 자)'라고 불리던 교회다. 처음 두 명의 노동자가 도끼와 손으로 만들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20명의 보조원만이 참여해 5년 만에 세운 교회라고 했다. 한참 둘러보고 있는데 시비르체프 교수가 거기까지 찾아왔다. 시험이 끝나고 바로 뛰어왔다는 것이다. 이곳에 사진에서 보았던 돌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고 띄엄띄엄 서 있는 돌사람만 보였는데 그다지 값진 것들은 아니었다.
서둘러 고고학박물관으로 갔다. 고고학박물관은 가건물 식으로 지어진 2층 건물인데 만들어진 지 그리 오래 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전시실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가운데 전시실에는 4000~6000년 전 아무르강, 서바이칼 지역에서 나온 신석기 유물과 4000~5000년 전 알타이 지역의 청동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4000~5000년 전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알타이 지역은 이미 청동기 시대에 들어와 있었다는 것이 상당히 놀라왔다.
구체적으로 신석기 시대의 각종 토기들과 청동기 시대의 거푸집, 청동칼, 청동창, 청동도끼, 뼈 장식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좌측 전시실에는 데니소바 동굴에서 나온 30만 년 전 중기 구석기 유물들과 그 이후의 후기 구석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오른쪽 전시실이 바로 얼음공주의 미이라가 전시되어 있는 곳인데 화려한 문신을 새긴 얼음 공주와 문신과 함께 금발의 댕기머리를 한 남자 미이라, 그리고 그 무덤들에서 나온 목재, 펠트 섬유, 장신구, 나무 조각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두 얼음 미이라는 아직도 피부의 탄력이 느껴질 정도였는데 그 위에 선명하고 화려하게 그려진 문신을 보고 있으니 연신 감탄사가 나왔다. 다만 세계적인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으로는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박물관을 관람하고 인근에 있는 '돔 우쵼늬(학자들의 집)'라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이곳은 아카뎀고로독의 학자들이 가장 즐겨 찾는 식당이라고 하는데 저녁 시간에 맞춰 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최고급의 식당은 아니었지만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저녁 식사 후에 정현준 씨 내외가 집까지 바래다주어 편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들어와 보니 이 집 주인의 남편이 돌아와서 우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앞으로 언제 다시 샤워를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기분 내 샤워를 하고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하 박스로 처리)
***2003년 한ㆍ러 알타이 집중 탐사**
* 때 : 2003년 7월 6일(일)~23일(수), 20박 21일
* 탐사대상 지역 : 러시아 알타이
* 공동탐사 기관 및 참가 대원 :
(사) 고구려연구회
서길수(서경대 교수, 고구려연구회 회장) - 슬라이드사진, 비디오
서진수(강남대 교수, 고구려연구회 이사) - 디지털 사진
정원철(길림대 고고학과 석사과정) - 조사, 기록, GPS작업
김화동(길림대 고고학과 2학년) - 조사 보조, 장비
러시아아카데미 시베리아지부 고고∙민족학연구소
블라지미르 꾸바레프(Vladimir D. Kubarev) 교수 - 해설, 운전
유리 플루스닌(Yuri Plusnin) 교수 - 통역
유리 바실예비츠(Yurii Basilyevich) - 트럭 운전
이리나 녜고다(Irina Nyegoda) - 요리
* 탐사단 일정
6월 29일(일) 인천 출발 - 노보시비리스크 도착
30일(월) 러시아아카데미 시베리아지부 고고연구소와 박물관 방문
7월 1일(화) 노보시비리스크에서 불라니하
2일(수) 불라니하 - 고르노 알타이스크 - 뚜엑타 - 까라꼴 - 온구다이 - 치케따만 캠핑
3일(목) 치케따만 - 인야 - 깔박따쉬
4일(금) 깔박따쉬, 추야 사슴돌
5일(토) 깔박따쉬 - 아크따쉬 - 오르톨크 - 이르부스트
6일(일) 오전 이루부스트 바위그림 조사, 오후 : 우코크로 출발 - 라듐온천에서 캠핑
7일(월) 라듐온천 - 툐플르이 클류치 고개 - 깔구따강 - 배르텍 - 우코크
8일(화) 우코크 - 라듐온천
9일(수) 라듐온천 - 코코죠크강 캠핑 - 바위그림 찾기 - 꾸르간
10일(목) 코코죠크강 - 따르하트강 - 차간·부르가즈이강 - 바얀·차간 석인상 - 코쉬 아가치 - 좔그즈이·또베 캠핑
11일(금) 오전 - 좔그즈이·또베 바위그림 조사, 꾸르만 따우, 메쉘두크, 바위그림 조사하고 식사. 꾸르간 바위그림 조사. 유스뜨이뜨강 꾸르간, 사슴돌, - 카자흐인 유르타 - 캠핑
12일(토) 유스뜨이드 - 카자흐인 유르카 - 대형 꾸르간 촬영 - 바르 브르가즈이강 - 알타이인 유르타 - 뚜루 알따(낮밥) - 코코리아 - 코쉬아가치 - 캠핑
13일(일) 캠프장 - 코올 발굴장 -악따쉬 - 여관
14일(월) 아크따쉬 - 울라간 - 빠지리크 - 깔박 다쉬
15일(화) 깔박 따쉬 - 까라꼴 이전에서 점심 - 까라꼴 - 비칙뚜 보옴 - 뚜엑따 - 쉬베 - 우스트 칸
16일(수) 우스트 칸 - 데니소바
17일(목) 데니소바 - 바르나울
18일(금) 바르나울 - 노보시비리스크
19일(토) 노보시비리스크(10:00) - s7 503 - 인천(18:15)
(박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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