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불리며 유럽의 명품들을 싹쓸이했던 아르헨티나가 천문학적인 인플레, 경제파탄국가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 건 '페론의 포퓰리즘'이 아니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채택한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아르헨티나 국민들 사이에 팽배한 반미정서 그 뒤에는 남미경제를 파탄시킨 신자유주의와 국제금융기관,그리고 미국의 신 대외정책과 이의 실행을 위해 군부쿠데타를 부추긴 것 등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최근 아르헨 지식인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이에 대한 현지언론 및 학계의 분석과 함께 당시 피해자가족단체 대표들과 각종 민간단체들의 주장, 지난 1970년대 아르헨 군정 당시 전후 주변상황 등을 3회에 걸쳐 종합해본다. 〈필자〉
***군부쿠데타 30주년 맞아 '과거청산' 본격화**
지난 24일은 아르헨티나 군부쿠데타가 발생한 지 만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아르헨 정부는 이날을 기억하는 각종 행사를 갖고 과거사청산 의지를 다시 한번 재확인했다.
현지 학계와 민간 인권단체들은 책임자 처벌을 통해 과거사를 정리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언론은 군부의 실정과 인권말살, 경제파탄 등의 모든 책임이 군인들에게 있다는 평가를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일명 '포퓰리즘'으로 대표되는 '페론주의'가 아르헨티나 경제를 망친 게 아니라 군인들이 정치는 물론 인권과 경제를 말아먹고 그 책임을 페론에게 뒤집어 씌웠다는 새로운 평가인 것이다.
아르헨 정부는 물론 학계와 민간단체들이 고통스러웠던 과거사 진실 밝히기에 적극적인 반면 언론계와 종교계는 지극히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대조를 이룬다. 아르헨 주류언론, 다시 말해서 재벌언론들 역시 군정의 과거사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시 아르헨티나를 대표했던 주류언론들은 군부의 언론통제, 보도검열 등에 발목이 잡혀 군사정권에 협조하면서 페론을 부정한 정치인으로 낙인 찍어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숨겨놓았다고 대대적으로 여론을 호도했었다. 심지어는 페론의 비밀금고를 열기 위해서는 페론의 지문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돌기도 해 철없는(?) 강도들이 페론의 묘지를 열고 손목을 잘라가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나가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페론의 숨겨진 천문학적인 재산이나 비자금은 그 어디에서도 발견된 것이 없으며 그 흔적조차도 찾을 수가 없다는 게 이곳 학계의 주장이다.
종교계 역시 혹독했던 군부의 철권통치시절 드러내놓고 군부에 협조를 해 민간 인권단체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으며 아르헨 종교계 지도자들은 몇 번에 걸쳐 과거사를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아르헨 학계는 군부가 권력이라는 큰칼을 쥐고 마구 휘두르던 지난 1970년대 말은 마치 어린아이가 칼을 들고 좌충우돌 식으로 설친 것과 같은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치계와 노동계, 학계 그리고 애꿎은 젊은 학생들, 민간 사회단체 지도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3만 명 이상 희생되었으며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가족들의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은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74년 페론 사망 이후 정권을 이어받은 이사벨 페론(아르헨 최초의 여성대통령, 그는 발레리나 출신으로 페론의 개인비서를 거처 3번째 부인이자 러닝메이트로 페론 3선을 도왔고 부통령 재직 중 페론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했다)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군부는 76년 3월 24일 이사벨 페론을 몰아내고 집권, 7년 동안 철권통치를 휘둘렀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퇴락한 군부통치'**
정치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예술인 출신 여성대통령을 몰아내고 집권한 군부는 허약한 정통성 확보를 위해 페론의 화려했던 여성편력과 각종 부정부패사례를 들춰내고 그를 대중선동가로 낙인을 찍는 한편 페론의 업적 말살을 주도했던 것이다.
훗날 이사벨 페론은 자서전을 통해 "내가 군부를 신뢰했던 게 내 일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당시 군 수뇌부는 대통령 앞에서 '페로니즘'의 승계를 약속하고 충성맹세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군부는 이사벨을 축출하고 무분별한 외자 유치와 자신들의 집권에 협력한 다국적기업들을 불러들임으로써 '아르헨티나는 거리의 개들도 달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군부집권 초창기 아르헨티노들은 "DAME DOS('두 개 주세요'라는 말. 해외자본이 한꺼번에 몰려들자 국가가 부자라고 생각한 아르헨 여행객들이 미국과 유럽의 명품시장을 휩쓸며 싹쓸이식 쇼핑을 했던 것을 빗댄 유행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군부의 업적을 칭송하는 가운데 페론을 비난했던 것이다. 주류언론들 역시 여기에 편승,군부의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해 무자비한 철권통치를 직ㆍ간접으로 도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아르헨 군부가 도입한 신자유주의는 어느 정도 실속을 챙긴 해외자본들과 기업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리자 천문학적인 외채와 살인적인 인플레로 인한 경제파탄이라는 비참한 결과만 남기고 군부의 퇴락을 자초했다고 현지 인권단체들과 학계는 주장하고 있다.
또한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사회지도자, 학생, 교수, 언론인,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벌인 '더러운 전쟁'으로 사회전체가 공포분위기로 꽁꽁 얼어붙어 각 분야의 우수한 인재들은 외국으로 망명의 길을 떠났고 노동자들 역시 산업현장에 멀어져 생산성이 위축되어 국가경제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와 더불어 군부가 벌인 '더러운 전쟁' 당시 실종되어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한 수만 명에 달하는 피해자들의 소재확인 문제도 사회 이슈화되고 있다. 군부는 민간정부에 정권을 이양하면서 군정관련 서류들을 파기했거나 감추어두고 공개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30년 전 혹독했던 철권통치의 비사와 실종자소재, 각종 실패한 정책을 책임질 인사들은 이제 대다수가 이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늙고 병들고, 가택연금 상태에 놓여 있다. 따라서 이들이 입을 열지 않는 한 정확한 실체는 파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곳 법조계는 "군부의 만행과 정책실정 등 뚜렷한 증거가 있어도 군부책임자들이 관련범죄 사실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하고 관련 증인들이 늙거나 병들어 과거 기억을 자세히 진술해주기 힘든 상황을 감안하면 군 수뇌부를 실질적으로 처벌하기가 힘들다"면서 "사법적인 실형 등의 처벌보다는 여론의 추이를 살펴가면서 상징적인 처벌로 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아르헨티나 군부통치 시절의 과거사를 청산하는 작업이 인권 유린과 독재정치, 경제파탄의 책임을 묻는 데에 그치지 않고 달러를 앞세운 신자유주의의 도입 문제까지 도마에 올리고 있어 그 끝이 어디일지는 아직 헤아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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