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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아야호수에서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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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아야호수에서 하룻밤

서길수 교수의 '알타이 답사기' 〈5〉

***김탄 - 알타이에서 만난 북한 출신 고려인**

한참 돌아다니는데 누가 와서 아는 척을 한다. "Kim", 여기서 동포를 만난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나는 통역관이 필요해 박사에게 데리고 갔다. 그 사람은 얼마나 반가운지 걸어가면서도 내내 내 손을 놓지 않는다. 도중에 무엇인가 계속 말을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러나 손에서 정말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통역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고르노 알타이스크에는 고려인들이 제법 있다."

내가 "알마아따에서 왔는가?" 하고 물었더니 "북한에서 왔다고 한다."

농업전문대에서 수의학 강의를 하는 김 교수는 이곳에 한국 사람들도 참석했다며, 알타이사람인 자기 부인도 한복 입고 참가하였다고 한다. 50년 전 북한에서 왔다는 김 교수는 아주 어렸을 때 와서 그런지 우리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아울러 이 축제에 김 알렉세이라는 고구려인 가수가 출연한다는 말도 전해 주었다.

그런데 내가 서울에서 왔다는 통역의 말을 듣고 갑자기 부담 가는 표정이 역력해졌다. 아직도 공산당을 찬양하고, 가슴에 김정일 뺏지는 아니지만 무슨 영웅 칭호 같은 메달을 달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사진 한 장 찍고 왔더니 어디론가 가버렸다. 알타이 사는 우리 동포에 대한 소식과 고려인 가수에 대한 것도 자세하게 듣고 싶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도데체 무엇이 이 먼 이국에서 이렇게 서로를 믿지 못하도록 만든 것인가! 정말 기분이 씁쓸했다.

그림 31) 북한 출신 고려인 김 교수

그림 32) 알타이 방송국 피디(가운데 통역)

박사 통역관을 모시고 아까 방송국 근무한다는 사람들이 있는 캠프에 가서 인터뷰를 하였다. 한 사람은 방송국 피디였고 한 사람은 대회 준비위원이었기 때문에 대회에 대한 스케치를 깊이 있게 할 수 있었다.

알타이 문화를 이야기하다 목젖으로 노래하는 '가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알타이 음악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가이를 하는 소리꾼을 '가이치'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7일간 계속 공연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태어나서부터 이 노래를 하는 사람은 몇 명 안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통 판소리와 같은 대접을 받는 음악으로 보인다. 가이치는 트랜스(황홀경) 상태에 들어가 노래하기 때문에 그 노래를 들을 때 충격을 받아 듣는 사람도 트랜스 상태로 들어간다고 한다. 방송국 피디는 자기 방송국에서 50년대부터 이 노래를 수집한 CD가 있다면서 내일 방송국으로 오면 복사해 주기로 약속하였다. 내가 "그렇다면 샤먼들이 이 노래를 하는가?"라고 물었다.

"샤먼은 그 예술이 안 된다. 모든 영웅적인 것을 노래해야 하는데 샤먼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다. 샤먼은 사람을 치료하고 종족을 지켜야 한다. 여러 사람을 위해 샤먼이 가이치처럼 공연을 하면 샤먼이 병이 든다."

'돕슈르'라는 악기를 사용하는 이 음악에 대한 로라 타지루노바 여사의 자랑은 끝이 없다. 내일 방송국으로 찾아가기로 하고 일단 엘-오인에 대한 기본 조사를 마쳤다. 이미 시간은 7시가 넘어간 지 한참 지난 뒤였다. 여기저기서 마시고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고 한 쪽에서는 가옥을 철거해서 차에 싣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음에 꼭 다시 와서 이 축제에 참석하리라 다짐하고 오늘은 이 정도에서 접기로 한다. 가뚠강 가에 솟아있는 소나무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그림 같은 아야호수에서 하룻밤**

7시 30분 출발, 돌아오는 길도 재미있었다. 아주 오래된 구 소련제 차를 200루블에 흥정하고 차에 타니 앞에 여자, 뒤에는 아이를 동반한 알타이 남자가 타고 있다. 좁은 차에 아이까지 6명이 타서 불편하지만 괴짜 운전사를 만나 재미있었다. 수영복만 입고 운전하는 알렉산드르라는 운전사는 정말 유쾌한 친구였다. 시키지 않아도 주변 안내를 하고 긴 설명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중간 중간 서 달라면 두말없이 서 준다. 이 운전수가 특별히 안내한 '키비 롯지', 이곳 대통령, 장관들이 잔다는 최고의 호텔, 아름다운 강가 경치와 최고급 시설이지만 가격은 이곳 공무원의 한 달 월급(1800~3000 루블. 60~100 달러)이 넘는다.

2주전 예약해야 가능하다고 하는데 호텔 앞이 바로 까툰강 계곡. 수십㎞ 계곡만 보면 마치 캐나디안 로키 같은 선진국 리조트에 와 있는 착각에 빠질 정도이지 경제난을 겪고 있는 러시아라는 생각을 완전히 잊게 하는 곳이다.

9시 출발 - 오제로 아야 유원지에서 하루 묶기로 했다. 정헌준 씨가 적극 추천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정헌준 씨의 추천대로 통나무집에서 하루 자려고 했으나 위엄 있는 박사가 원치 않고, 운전사도 안전하지 않다며 반대하였다. 우선 호텔에 가서 방이 없으면 자기가 고르노-알타이스크까지 데리고 가겠다고 한다. 역시 호텔에는 방이 없었다. 그러나 구관에는 방이 있다고 해서 그곳에서 하루 자기로 했다. 옛날 구 소련시절 지은 구식 낡은 건물인데 학생 단체가 숙박할 정도의 방이다. 방 하나에 침대가 4개나 들어가고 천정도 교실처럼 높고 가운데서 춤도 출 수 있을 정도로 큰 방이다. 화장실, 세면장이 공동이고 오래 돼서 그렇지 하룻밤 자는 데는 큰 불편이 없다.

거의 한 시간 동안을 돌아다니면서 호텔방을 찾는 동안 알렉산드르는 자기 일처럼 알아서 안내를 한다. 하나 재미있는 것은 같이 합승했던 손님들(고르노까지 간다.)이 아무런 불평도 없이 조용히 따라다니면서 구경하는 것이다. 결국 알렉산드르의 이런 성의는 내일도 그 차를 쓰기로 약속 받고 떠났다. 대단한 비즈니스다.

호텔 식당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었다. 한국식 밥인데 당근에다 밥을 볶은 것이다. 밥 먹으며 오랜만에 같은 경제학자들끼리 러시아 경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러시아 경제학 박사는 "91년부터 갑자기 돈 번 벼락부자들을 새러시아인이라 부른다. 요즈음 새러시아인이 많다."는 말부터 시작했다. 한국의 경제학 박사가 물었다. "새러시아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러시아 박사는 간단히 대답한다. "옛날 모두 흉악한 악당들이었지"

시비리체프 박사는 비교적 솔직하고 날카롭게 러시아 경제를 진단하고 있었다. 러시아 경제는 91년부터 공황상태였다. 전 세계가 20세기 동안(1차대전 이후) 10년마다 공황을 경험한 데 반해 소비에트는 공황이 없었다. 사실 사회주의는 공황이 없는 사회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였다. 전 세계가 공황을 이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개혁하여 약한 공장은 도태시키고 경쟁을 통해 더욱 더 발전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공황이 없었기 때문에 개혁 없이 세월만 보내 공장시설이 너무 낡아 40~50년 된 것이 많다. 자본주의의 공황이 소련의 막강한 경제를 물리쳤고 이제 옛날 미국이 겪었던 대공황을 러시아가 겪고 있다. 방위산업체는 90%가 생산을 중지하고, 전체적으로 50%의 산업이 문을 닫았다.

"그렇다고 모든 산업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시비리체프 교수는 마지막 부분에 러시아 경제에 대해 낙관론을 펴기 시작했다. 많은 러시아인들이 스스로 러시아 경제에 대해 부정적인 데 반해 신선한 반론이다.

"1996년부터 경제가 나아지기 시작했는데, 1997년 IMF사태로 세계적인 경제공황이 와 러시아도 외환가치가 4분의 1로 하락하는 위기로 몰렸다. 그러나 1999년부터 회복이 계속되고 있으며, 10~20년 뒤 활황이 올 것이다."

"석유 가격 상승 때문이지 산업구조가 좋아진 것은 아니지 않는가?"

"유감스럽게도 그 말은 사실이다."

"또 한 가지, 지하경제가 30~60%나 되어, 어떤 경제학자는 '러시아는 영원히 공황을 탈출할 수 없을 것이다'고 했는데…"

"석유가가 올라가면 러시아에 오일달러가 모일 것이고 자본이 형성되면 러시아도 공황을 극복하는 경쟁과 개혁을 배우게 될 것이다. 끝내는 성공할 것이다. 러시아는 저력이 있다."

확신에 찬 러시아 경제학자의 주장이 듣기 좋았다. 결국은 국민들의 정확한 원인 파악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 경제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러시아의 저력은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저녁밥 먹고 방으로 돌아오니 11시 30분, 시트 깔고 취침, 좋은 호텔 못 들어가고 오래된 옛 건물에서 삐걱거리는 침대에 누웠지만 대화가 통하는 친구와 하는 여행은 어떤 기름진 향연보다 났다. 아직도 박사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어른거린다.

"옛날 공산주의가 좋았다. 지금은 ⅓ 사회주의, ⅓ 자본주의, ⅓ 중간이다."

그림 33) 아야호수

그림 34) 호텔 구관

7월 15일(월), 5시 기상, 박사님은 기상하자마자 면도하고 넥타이까지 깨끗하게 맨 정장을 한다. 박사님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만났지만 단 한 번도 정장에서 벗어난 것을 보지 못했다. 집을 나서면 더운 여름이라도 반드시 정장을 하는 시베리아 신사다. 아침 식사가 8시라고 하여 그 때까지 기록하고 축제 프로그램을 함께 번역하고, 아침 공부를 마친 우리는 8시 반 호텔을 나섰다. 식당은 신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휴일이 아닌 평일에는 아침 식사를 제공하지 않고 오후 1시에야 문을 연다고 한다.

약간 배는 고프지만 천천히 두 건물 사이에 있는 아야호수를 감상하는 여유를 가졌다. 문자 그대로 그림 같다. 크지는 않지만 맑은 공기에 조용한 숲속, 시리도록 푸른 호수, 마치 잘 꾸며놓은 연극 세트 같다. 박사도 손을 물에 담그는 등 마치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방으로 돌아온 시비리체프 박사가 가지고 온 큰 가방을 꺼내 열더니 그 안에서 빵, 삶은 달걀, 햄을 내놓는다. 마치 "너 내가 큰 가방 가지고 간다고 흉봤지? 내가 이 나라에서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 줄테니 배워라" 하는 것 같다. 나는 가방에서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회원들이 준 홍차를 두 개 꺼냈다. 그리고 복무원에게 가서 뜨거운 물을 좀 달라고 했더니 전기기구와 깨진 유리컵을 빌려준다. 이렇게 해서 준비성 강한 박사님 덕분에 훌륭한 아침밥을 먹을 수 있었다. 호텔비는 한 사람에 825루블로 비싼 편이다.

약속한 9시 반이 되니 알렉스가 차를 가지고 왔다. 어제 탔던 22년 된 차다. 한쪽 유리창이 내려가지 않도록 드라이버로 받쳐 놓고 한쪽 유리창은 깨져 바람이 들어오지만 차는 신기하게 잘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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