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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최대의 축제 '엘-오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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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최대의 축제 '엘-오윈'

서길수 교수의 '알타이 답사기' 〈4〉

***알타이가 낳은 인물 '슉신'**

다시 역으로 와서 고르노-알타이스크로 가는 합승택시를 탔다. 원래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는데 어느 사이에 12시가 가까워 오기 때문에 시간 절약을 위해 투자하기로 하였다. 합승택시는 원래 택시가 아니고 자가용으로 영업하는 것인데, 일부러 찾을 필요도 없다. 버스표를 사러 가면 줄줄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시비리체프 교수가 능숙하게 흥정을 한다. 아침에 물어볼 때는 400루불이었는데 50%나 올려 600루블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몇 번 실랑이를 하더니 500루블로 하되 합승 손님을 한 사람 더 태우는 조건이었다. 처음 아이 있는 아주머니를 데리고 오자 점잖은 교수님이 손을 내젓는다. 장거리를 편하게 가야 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중년 남자 한 명이 동행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이 사람이 아주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돈 들이지 않고 안내인을 고용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비스크에서 35㎞ 쯤 가니 스로스트끼(Srostki)라는 마을이 있는데 갑자기 택시를 타고 가던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있는 박물관을 들렸다 가자고 한다. 운전수도 덩달아 좋다고 한다.

이곳은 1929년 7월 25일 유명한 러시아 작가이며, 영화감독 겸 배우인 슉신이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슉신은 이곳에서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냈다. 유명해진 다음에도 슉신은 자신의 고향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영화 가운데 하나인 〈지뵷 따꼬이 빠렌〉이란 영화는 이곳 알타이의 만제록이란 마을 주변에서 찍어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1989년 스로스트끼 마을에 슉신기념박물관을 열었는데, 오늘날 알타이에서 가장 유명한 박물관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이다. 이곳에서 슉신에 관한 진열품을 볼 수 있고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해 상세히 알려 준다. 수많은 저서와 그에 관한 책도 전시되어 있고 그의 어머니 바실리야 마카로비차가 살았던 집도 방문할 수 있다. 매년 7월 마지막 날 이 마을 근처에 있는 삐껫산에서 〈슉신스끼에 츠떼니야〉라는 슉신의 날이 열리는데 러시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든다고 한다.

사실 나는 이 시골 박물관이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았다. 아주 조그마한 시골집에 몇 가지 유품을 전시한 정도인데 함께 간 러시아인들의 감탄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지어 큰길로 나오는 도중 시골 학교를 들려 교실을 보는 등 야단을 떤다. 바로 슉신이 공부했던 학교라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슉신의 인기는 노보시비르스크에 돌아왔을 때 시비리체프 교수의 부인이 보여주는 반응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이 알타이를 다녀왔다는 부러움보다 슉신의 고향을 다녀온 것이 더 부럽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슉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종이를 꺼내 다음과 같이 소개하는 글을 써주었다.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이며, 배우이고 감독인 슉신 바실리 마코비오비치는 1929년 7월 25일 알타이주 비스크지역 스로츠키라는 마을에서 태어나 1974년 10월 2일 볼고그라드 클레츠카야란 마을에서 죽어 모스크바에 묻혔다. 그는 시나리오 '이런 젊은이가 살고 있다', '난로와 의자', '스테판 라진에 관한 영화', '너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왔노라' 를 썼고 영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조국을 위해 싸운 그들', '호수 가에서', '난로와 의자'에서 열연하였다.

한국에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1960년대 브레즈네프 시기 소비에트 영화가 전반적으로 정체기에 있었을 때 니키타 미할코프, 게르만, 슉신, 판필로프 같은 신인 감독들이 출현하여 예술의 획일성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언어와 독창적인 기법으로 자신들의 영화를 만들고자 노력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었다.

그림 21) 슉신의 저서

그림 22) 집필하던 통나무

그림 23) 슉신의 날 '삐껫산'

슉신박물관 얘기를 하면 한 가지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이 있다. 이 얘기는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너무 강렬하게 인상에 남아 떨쳐버리기 위해서라도 그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조그만 마을에 한국 사람이 왔다는 말이 어떻게 퍼졌는지 한 고려인 여인이 나를 만나러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말리고 멀리서 그 여인을 억지로 데리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시비리체프 교수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원래 중앙아시아에서 온 여인인데 알콜중독이 되어 사람들에게 술 마실 돈을 구걸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일부러 말렸다는 것이다. 여기가 어디인가? 도대체 어떻게 한민족의 딸이 어디를 떠돌아다니다가 여기까지 와서 이처럼 처절한 삶을 살고 있단 말인가! 그 여인은 틀림없이 스탈린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킬 때 낯선 땅으로 끌려갔다가, 소련연방이 무너지면서 현지 언어를 못한다며 심한 푸대접을 받고 정처 없이 떠나 이 산골까지 흘러들어왔을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했을 때 고려인협회 회장 오 다찌아나 여사는 "그런 사람은 극히 드물고 다들 잘 살고 있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먼 알타이 시골에서 만난 고려인 여인은 왜 그렇게 짠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나라 잃은 설움, 함께 겪어야 했던 원죄를 그녀 혼자서 받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알타이공화국**

오후 1시 20분 스로스트키를 떠나 35분을 달리니 알타이공화국으로 들어선다. 지금까지 평지 알타이인 알타이크라이를 달려왔는데 이제부터 산지 알타이로 들어선 것이다. 넓은 까툰강을 바라보며 달리는 택시 안에서 그동안 친숙해진 합승 손님이 "매년 열리는 알타이 축제가 지금 열리고 있는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고 알려 주며 여행객에게는 좋은 기회이니 꼭 가보라고 당부한다. 뜻밖의 희소식이다. 차가 고르노 알타이스크에 가까워지면서 이 차로 계속 달려 축제하는 곳으로 바로 갈 것인가 아니면 박물관을 먼저 보고 갈 것인가 저울질을 하였다. 결국은 박물관을 보고 가기로 하였다. 내일은 월요일이고 박물관은 월요일 휴관이므로 박물관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2시 30분 알타이공화국의 알타이 공화국의 수도 고르노 알타이스크에 도착하였다. 고르노-알타이스크. 인구 약 5만 명의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이다. 사람들은 카툰 강가에서 5km 지점, 마이마 계곡, 높지 않은 산 경사 사이(해발 272-305m)에 살고 있다. 이 도시는 해발 400~650m 의 낮은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에는 뚜가야(641m)산, 남쪽 도시 변두리에는 꼼스몰스끼산(427m)이 자리 잡고 있다. 19세기에 고르노-알타이스크 자리에 '우랄라'라는 이름을 가진 알타이 마을이 있었다. 1831년 이곳에 러시아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러시아 정교가 모든 산지 알타이에 퍼지게 되었다. 선교사와 함께 상인들도 같이 들어와서 마을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혼란스런 혁명 시기와 내전을 겪은 뒤 1928년 우랄라 마을은 시가 되었다. 1932년에는 '오이로트-뚜라'라고 개명했다가 1948년에야 '고르노-알타이스크'로 부르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알타이 공화국의 수도이고 동시에 알타이 공화국의 유일한 도시이다.

대학(사범대), 고르노-알따이스크 인문과학대, 연구ㆍ기술학교가 있고, 텔레비전 중앙방송국과 신문사가 있다. 고르노-알따이스크를 크게 매력적인 관광자원이 없지만 향토지박물관만은 반드시 들려볼 필요가 있다. 전체적인 도시는 건물들이 다양하지 못하고 거리가 밝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먼저 초로스-구르킨거리 42번지에 있는 박물관을 찾아갔다. 1920년 세워진 알타이공화국 향토지박물관은 아주 큰 건물이지만 다른 지역 박물관처럼 고풍스럽지 못하다. 일반적으로 러시아의 박물관들은 유명한 건물들을 쓰는 것이 보통인데 이곳 박물관은 마치 현대식 아파트처럼 볼품없이 지은 것이다. 2층에 고고학적 발굴 유물과 민속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석기시대부터 근대까지 제법 짜임새 있게 전시를 했고, 지도에 유적이 잘 표시되어 있어 알타이 전체에 대한 내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바위그림과 돌사람은 새로 진열관을 준비하는 중이라 아직 비스크 박물관만 못했다. 민속 전시관은 바르나울이나 비스크보다 훨씬 수집품이 다양하고 모형도 잘 만들어 이해하기 좋았다. 알타이인의 생활이나 샤먼들의 용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3층에는 그림 같은 미술품과 자연사박물관이다. 이 박물관도 월ㆍ화요일 2일간은 문을 닫는다.

그림 24) 고풍스럽지 않은 바깥 모습

그림 25) 알타이 돌사람

***알타이 최대의 축제 엘-오윈(El-Oiyn)**

축제가 6시에 끝난다고 하니 빨리 가야 하겠는데 우리는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다. 아침도 부실했는데 그냥 지나칠 수도 없고, 길가에서 적당히 때우고 싶은데 함께 간 거물 교수는 길가에서 불량식품을 사먹는 일이 없다. 결국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서둘렀다. 그런데 식사하기 전 택시가 축제 하는 곳까지 200루블에 가기로 약속하였는데 막상 떠나려 하니 800루블이라고 한다. 오늘이 바로 택시에게는 1년에 한 번 있는 황금의 날이니 부르는 게 값이라는 것이다. 경제학 박사 시비리체프 교수의 중제로 400루블로 결정하고 3시 52분 알타이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출발하였다.

까뚠강을 끼고 쭉쭉 뻗은 소나무 숲 사이를 달리는 추야대로(52번 국도)가 인상적이다. 강가는 어디를 가나 텐트가 쳐져 있고 길가가 모두 리조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4시 35분 아르잔 수(황금 샘물)

4시 50분 바란골(Barangol) 494㎞ 레프팅 레프팅, 말타기 같은 투어

4시 55분 우스트 셰마, 갈림길

시속 20㎞, 모두 휴양지, 강가 숲속은 모두 휴양지

아름다운 카툰강을 따라 달리다 황금샘물을 마시고 바란골을 거쳐 5시 10분 축제가 열리는 넓은 초원에 도착하였다. 이미 폐회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기동력이 떨어진 박사를 입구에서 기다리게 하고 폐회식이 열리고 있는 산 밑까지 뛰어갔다. 마침 시상식을 하면서 중요한 민속공연이 계속되고 있었다. 여기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악기는 바로 꼬뮈스(komys)였다. 각 라이온 별로 캠프를 마련하고 민족의상과 전통 집을 지어 놓았다. 몇 군데 들리면서 사진을 찍는데 사진 찍으려면 돈을 내라는 곳이 있다. 여러 날 걸려 깊은 산맥 속까지 찾아와 만난 현지인이 사진 한 장 찍는데 돈 달라고 손 내미는 인심이 야속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탓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50루블을 준 곳도 있다.

전통적인 알타이의 명절은 생산시즌과 관계가 있다. 가장 중요한 명절은 여름과 겨울이 시작하는 환절기 때 있는데, "초록색 잎들"이란 뜻을 가진 "찌아쥘리 브류"는 초여름 온달(滿月) 때인데, 마을에 새싹이 돋아나서 숲이 우거지면 목장에서 가축을 풀고, 그 해 첫 번째 우유를 짜낸다. 이 기간 동안 에는 알끄이트를 크게 소리 내어 읽는다. 알타이 사람들이 겨울을 잘 보낼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는 명절이다. 가을에는 "단풍"이란 뜻을 가진 "싸이르이 브류"라는 명절이 있다. 이 기간에는 독특하고 짧은 기도를 드리는데, 겨울을 별 탈 없이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비는 것이다. 알타이 사람들은 음력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2월 첫 번째 초생달이 뜨는 날 차간이라는 명절이 있는데 몽골의 라마교에서 전해졌다.(차간 : 몽골에서 유래했고 하얗고 밝고 빛난다는 뜻이다.). 1980년대 말부터 알타이공화국에서는 알타이 종족의 명절이 부활되었고, 이 명절에 부족장이 선발된다.

1988년부터는 2년에 한 번씩 알타이 공화국의 정부가 주최하여 이 명절을 기념한다. 올해(2002) 8회인 엘-오인은 2004, 2006, 2008 처럼 짝수 해에 열리는 각 지역(라이온)마다 돌아가며 초청하는데 지금까지는 중국 국경지역에서 있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내륙지방에서 한다고 한다. 참고로 알타이공화국의 행정단위인 10개의 라이온에 대한 면적과 인구를 보면 다음과 같다.

〈표 〉 알타이 각 라이온(Raion)의 면적과 인구
주 이름, 주도
수도에서 거리
면적(㎢)
인구(명)
인구밀도(명)

코쉬-아가치(Kosh-Agach)
506
19.9
16,200
0.8

마이마(Maima)
9
1.4
24,400
17.4

온구다이(Ogudai)
247
11.7
16,700
1.4

뚜로챠크(Turochak)
150
11.0
14,300
1.3

울라간(Ulagan)
460
18.4
12,500
0.7

우스트-칸(Ust-Kan)
213
6.2
16,800
2.7

우스트-콕사(Ust-Koksa)
332
13.0
18,300
1.4

체말(Chemal)
105
3.0
9,700
3.2

초야(Choya))
62
4.5
9,500
2.1

쉐발리노(Shebalino)
132
3.8
14,500
3.8 총 59.9㎢
총 152,900명
평균 3.48명

서민적 축제인 엘-오인에는 알타이 전역에서 온 1000명쯤 되는 참가자들이 함께 즐긴다. 몽골, 투바, 카자흐스탄, 하까스자치주에서도 사절단이 오는데, 모두 자신들의 전통 의상과 예술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엘-오인은 민속적인 명절인 뿐만 아니라 스포츠 명절이기도 하다. 이 날 운동선수들은 모두 9개 종목에 출전한다. 투기(꾸렘), 활쏘기, 승마, 돌끌어올리기, 채찍놀이(깜기), 납 조각 숨기기, 염소가죽 싸기, '샤뜨라'라는 알타이식 장기, 말의 눈가리개를 제작하기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역시 경마이다. 경마는 말은 물론 낙타경주도 함께 이루어진다. 이날에는 또 가장 행렬이 이어지고 배우들이 등장하며, 수공예품을 전시하고 파는 큰 시장이 열린다. 전통의상 전람회도 열리는데 각 민족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들의 민속의상을 선보이는 것이다.

마지막이라 프로그램을 얻을 수가 없었는데 마침 어느 천막 앞에 비에 젖은 프로그램이 붙어 있어 양해를 구하고 얻어온 뒤 시비리체프 교수와 번역해서 아래에 싣는다.

***알타이 민족 엘 오인(El-Oiyn)-2002 프로그램**

7월 12일

14:00~22:00 손님 받기, 배정

21:00~23:00 우정의 모닥불

22:00~24:00 청년프로그램 "알타이의 현대 리듬"

7월 13일

10:00~12:30 개회식, 참석자 퍼레이드, 알타이공화국 대통령 인사

12:30~20:00 스포츠 시합, 민속놀이(각종 대회장)

13:00~18:45 알타이 각 민족 단체의 공연

13:30 어린이 프로그램 개회식 - "쏠로늬(Solony)", 시합

14:00 민족공예품 시장 개점식

14:30 민족 가옥 심사 시작(알타이 아일, 카자크 유르따, 러시아 통나무집)

19:00~21:00 "따스까라까이" 대회

21:00~23:00 알타이공화국의 최고 예술가와 유명한 가수 공연

23:00~24:00 젊은이 프로그램

7월 14일

09:00~01:30 "샨끄이(Shanky)" 대회

09:00~13:00 "쏠론늬(Solony)" (어린이) 계속

09:00~14:00 민족 스포츠 계속

10:00~13:00 말타기 시합

10:30~13:00 민속의상 시합

13:00~14:00 시상식(어린이, 최고 예술가, 가옥)

13:00~15:00 씨름(Kuresh), 민속 축제

15:00~15:30 "엘 오인-2002" 퀴즈

16:00~18:00 폐막식, 시상식. 알타이공화국 모범

노동자 표창

18:00~21:00 러시아 콘서트
7월 15일
09:00 해산,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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