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뒷마당'으로 지난 100여 년간 미국으로부터 온갖 침탈과 수모를 받아 온 중남미 국가들이 최근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좌파정부의 잇단 출현과 함께 자주적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인간다운 사회'를 건설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근 쿠바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특집으로 소개한, 중남미국가들의 장래, 특히 미국과 대립의 각을 세운 이후의 중남미 국가들의 변화된 모습과 미래에 대한 세계적인 지성 노암 촘스키 MIT 교수의 강연내용을 요약한다. 이 강연은 지난 달 미 보스턴 매사추세츠기술학회(ITM)에서 이뤄진 촘스키 교수의 강연 내용과 질의응답 중 중남미 관련부분을 간추린 것이다.
***"중남미에 희망이 보인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정책에 의해 소수의 엘리트그룹 주도로 착취와 인권유린으로 고통 받던 다수의 민중들과 외세에 의해 지역별로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던 중남미의 역사가 새롭게 변화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남미는 소수인 엘리트 계층의 지배구도 아래서 이들이 축적한 부는 자신들의 고향인 유럽으로 보내지고 그들의 후손들도 교육을 위해 고국으로 보내지는 악순환이 지속됐다. 그러다 보니 이 지역의 물류시스템까지 자원착취를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그런 중남미가 이제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서로 동화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쿠바와 베네수엘라가 그 좋은 예이며 아직은 내놓을 만한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남미공동시장(MERCOSUR)도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베네수엘라가 최근 여기에 합류하여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정부로부터 대단한 환영을 받고 있는데 이는 이 지역이 발전을 위한 커다란 변화의 발걸음이라고 할 만하다.
또한 이 지역의 가장 큰 변화는 토착원주민들이 대거 정치 세력화되고 있으며 아주 활동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최근 볼리비아 대선에서 승리를 하기도 했다. 이는 아주 놀라운 변화다.
볼리비아뿐만 아니라 페루와 에콰도르에도 다수의 토착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부에서 이들 국가들을 향해 '원주민 국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이제 조상들의 유산인 천연자원을 스스로 지배하려고 하고 있다. 사실 이들 중 상당수는 자원개발을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문화가 훼손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서구 문명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최근 중남미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또 다른 변화는 국제통화기금(IMF)을 쫓아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은 중남미 국가들의 독립을 막고 무력을 앞세운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 쿠데타를 지원하고 파괴와 침략 등으로 이들 국가들이 반미감정을 표출하는 것을 막아 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방법이 더 이상 효과를 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미국의 마지막 이런 시도는 지난 2002년 베네수엘라 쿠데타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중남미 국가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쳐 실패하고 말았다. 이는 이 지역에서 일어난 전혀 새로운 변화다.
만일 미국이 이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경제적인 무기로 활용했던 IMF가 힘을 쓸 수 없다면 미국의 영향력은 급격히 저하될 것이다. 최근 아르헨티나가 베네수엘라의 재정적인 도움으로 IMF에 진 빚을 청산하면서 "IMF 통제 하의 경제구조가 전체적으로 아르헨티나 경제를 망쳤다"고 밝힌 것은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볼리비아도 마찬가지다. 볼리비아는 25년간이나 IMF의 혹독한 경제통제를 받은 결과 이들의 국민소득은 오히려 지난 25년 전보다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볼리비아는 이제 IMF의 경제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으며 주변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IMF는 근본적으로 미 재무부의 일부였으며 미국의 군사력과 함께 경제적인 무기 역할을 해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미국의 전략은 이제 이 지역에서 무용지물이 됐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정부는 최근 "더 이상의 IMF의 재정지원이나 차관은 필요치가 않다"며 오는 31일 만기가 되는 대기성 차관의 협상도 거부한 상태다. 볼리비아는 또 2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IMF 채무 역시 대폭 삭감을 요구하며 버티고 있다. 그러나 IMF는 이런 볼리비아를 향해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고민을 안고 있다는 게 남미현지 관련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견해다.: 필자)
미국은 중남미 지역에서 국가적인 테러, 군부쿠데타 같은 기형적인 지원에 뒤이어 콘도르 작전(칠레와 아르헨티나,우루과이, 브라질, 파라과이 등 군사정권이 합동으로 추진한 반정부인사 체포작전과 무기 및 군사교류작전) 등을 주도, 이 지역을 통제해 왔으나 이제 아주 강렬한 민중운동에 의해 그런 노력들이 허사가 된 것이다.
게다가 이 지역은 이제 남-남 협력을 추진 중이다. 일례로 브라질과 남아공, 인도 등의 국가들이 협력체제를 강화하면서 교역량을 늘여나가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그전에는 존재조차 없었던 국제민중단체들이 조직화되어 표면적인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 중 하나가 매년 회합을 갖는 세계사회포럼이다. 이제 세계 곳곳에서 세계사회포럼이 태동하고 있는데 바로 이곳 보스턴과 미국의 여러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이는 아주 강력한 대중운동이며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누구나가 국제적인 진보세력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한번도 국제적인 형태의 진보진영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막 그 첫걸음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이 지역에서 쓸 수 있는 아주 강력한 카드는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군사력이다. 미국의 군사비 지출은 세계 각국이 지불하는 전체 군비의 절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미군 병력 역시 냉전시대 때보다 더 많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미군이 라틴아메리카 출신 장교 양성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들을 중남미 지역 미 군사기지 정착에 활용할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미국의 세력에 항거하고 있는 쿠바의 카스트로와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는 이 지역의 영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아무도 이 지역에서 미국에 대항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제 중남미에는 희망이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960년대에도 라틴아메리카에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그 희망이 군부폭력에 의해 산산이 조각났다. 당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는 민주주의를 표방한 사회주의 체제로 방향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여러분도 잘 알 것이다.
그것은 엄청난 참사였으며 1973년에 일어난 최초의 '9.11사태'였다. (아옌데 정부를 전복한 칠레 군부 쿠데타는 1973년 9월 11일에 발생했다.) 공포정치를 편 칠레의 군사독재는 경제파탄으로 칠레 역사상 최악의 불황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 후 칠레는 민간정부를 수립했지만 아직 완전한 민주주의를 이룩했다고 볼 수 없는 상태다. 아직까지 군부독재시절의 잔재가 완전하게 청산되지 않았으며 부분적으로 군부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은 주변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중남미 군부세력이 집권을 하도록 거의 모두를 지원했는데 이제는 라틴권 국가들끼리 서로 협력하고 지원을 하고 있어 미국의 이런 의도가 먹혀 들지 않고 있다.
브라질을 예로 든다면 만일 1963년에 룰라가 집권을 했다고 가정을 해보자. 케네디 정부가 가만히 있었겠나. 당연히 쿠데타를 일으켜 룰라를 제거했을 것이다. 당시 미국은 남미의 모든 좌파정권들을 군부를 통해 제거했던 것이다.
이제 라틴아메리카가 예전보다 희망이 더 있어 보이는 건 미국의 이런 시도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중남미 국가들간의 상호 밀접한 협력체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또 다른 변화는 중남미 내부의 사회적인 변화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각종 사회정책과 경제, 정치 등이 독립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있으며 자원의 자체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 등이다.
전통적으로 중남미 특권층들은 책임을 지지 않고 늘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 왔다. 그러나 이제 내부적으로 그러한 문제들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토지 없는 농부들의 땅 찾기 운동이나 볼리비아 토착원주민들의 역사회복운동 등도 중남미 사회를 바꿀 긍정적인 변화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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