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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좌파의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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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좌파의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상〉

김영길의 '남미 리포트'〈129〉'멕시코의 녹두장군' 에밀리아노 사파타

최근 우연히 아르헨 역사학자들과 중남미 원주민의 역사에 관한 토론을 하다 흥미 있는 사실을 알게 됐다. 중남미의 혁명 전통에서는 토착원주민들의 봉기가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잉카제국 재건을 꿈꾸는 볼리비아의 원주민출신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가 페루 농민혁명의 영웅 뚜빡 아마루의 뒤를 이은 것이라면,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20세기초 멕시코 민중혁명의 영웅이었던 에밀리아노 사파타가 못 다 이룬 이상을 좇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쿠바의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등은 시몬 볼리바르를 계승한, 유럽이민자들에 뿌리를 둔 정통좌파형 혁명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남미의 역사학자들은 차베스와 룰라, 키르츠네르 등으로 대표되는 좌파와 모랄레스 등 원주민 출신의 좌파가 지금은 협력을 하는 모양새이지만 이들 원주민 세력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등으로 확대된다면 종국에 가서는 서민 표와 인기를 위한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지 않을까 하는 전망을 하고 있다.

더욱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원주민 부족대표들이 연계와 협력을 강화하면서 중남미 좌파는 원주민파와 현지에서 태어난 유럽이민계파로 나뉘어 이들의 대립이 중남미의 새로운 이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멕시코 농민혁명의 영웅 에밀리아노 사파타와 페루의 잉카혁명 전사 뚜빡 아마루 등 중남미 원주민들의 혁명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서 중남미 좌파혁명의 미래를 조망해 본다. 〈필자〉

***(1) '멕시코판 녹두장군' 에밀리아노 사파타**

역사는 항상 반복되는 것일까. 외세에 눌려 착취와 억압으로 신음하던 중남미 토착원주민 민중들이 새로운 형태의 혁명을 일으킬 태세다. 어쩌면 이들은 유럽 제국의 정복자들이 이 대륙에 발을 들여놓기 이전에 누렸던 태평성대를 다시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중남미 전역에서 강하게 불고 있는 좌파 바람의 근원은 지난 1700년대 말에서부터 1900년대 초까지 에콰도르, 볼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전역을 휩쓴 원주민 민중봉기의 기폭제가 된 멕시코와 페루 토착원주민들의 민중혁명이 그 뿌리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와 어르네스또 체 게바라,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가 볼리바르 혁명의 후계자라면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는 페루 농민혁명의 영웅 뚜빡 아마루의 뒤를 이어 잉카제국 재건과 민중혁명을 추진 중이다. 또한 멕시코 민중혁명의 영웅 에밀리아노 사파타가 못 다 이룬 혁명의 꿈을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jército Zapatista de Liberación Nacional)'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이어받아 토착원주민들을 중심으로 21세기판 농민혁명을 완성시키겠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역사는 서구사회 좌파 사상과는 관계없이 토착원주민들을 중심으로 유럽제국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자생적으로 탄생했지만 유럽출신 노동자들이 여기에 합류하면서 토착민 독립과 노동자 혁명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요소를 끌어 안고 함께 생존해 왔다.

'중남미 좌파의 교장 선생'으로 불리는 피델 카스트로가 유럽출신 노동자들에 그 뿌리를 둔 좌파였다면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와 페루의 올란타 우말라는 토착원주민들의 독립운동이 자신들의 정치적인 뿌리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토착원주민들의 독립혁명이 중남미 역사학자들로부터 새롭게 재조명 받으며 아르헨티나 원주민, 브라질의 아마존 원주민들까지 연대를 강화하며 자주독립을 외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중남미 전역의 토착민중들의 좌파 지도자들이자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페루의 뚜박 아마루와 멕시코의 에밀리아노 사파타가 못 다 이룬 민중혁명의 숙제는 과연 무엇일까.

지난 1월 오토바이를 타고 멕시코 전역을 순례하기 시작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jército Zapatista de Liberación Nacional)'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1900년대 초 멕시코 전역을 휩쓴 사파타의 농민무장봉기가 다시금 중남미 민중들과 토착원주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혹시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그들이 기다리는 제2의 사파타의 출현이 아닐까 하는 기대심리 때문이다.

에밀리아노 사파타는 1879년 멕시코의 전형적인 빈농지역인 모렐로스주 아네네쿠일코에서 태어났다. 멕시코 토착원주민 혈통의 사파타는 전형적인 토착농부였으며 유럽의 정복자들에게 빼앗긴 선조들의 땅과 자유 회복의 기치를 높이 들고 분연히 일어난 농민혁명가였다.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이끌고 있는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은 1983년에 탄생했지만 그 뿌리는 1909년에 조직된 사파타의 농민군(Zapatista)이 그 원조인 셈이다.

초등학교 교육을 겨우 마친 사파타는 16살 때 양친을 잃고 주변 사탕수수 농장을 전전하며 마차나 노새를 끄는 마부로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어려움보다 모든 원주민농민들의 노예보다 못한 비참한 생활을 목격하고 피 끓는 분노를 느끼면서 성장했다.

허리뼈가 휘도록 고된 노동에 시달려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과 유럽정복자들의 착취와 인권유린에 울분을 삼키던 사파타는 빼앗긴 선조들의 토지를 되찾아 농민들을 해방시키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방법은 오로지 무장 봉기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30세가 된 사파타는 1909년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자신들의 토지를 유럽이민자들에게 항의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강제로 빼앗겨 하루아침에 노예 같은 소작인 신세로 전락한 원주민 농부들을 규합해 "우리 땅과 자유를 되찾자"고 부르짖으며 무장단체를 조직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천성적으로 지니고 태어난 사파타는 이 농민무장단체(Zapatista)의 우두머리가 되면서부터 전국적인 원주민 농민들의 영웅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파타는 농민무장봉기 출정식에서 "우리(농부들)는 지금까지 착취와 인권유린으로 견디기 힘든 배고픔과 고통을 당하며 살아 왔다. (우리 조상들의 땅을 강점한) 가진 자들과 위정자들이 우리의 주린 배를 채워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먹고 살기 위해 무기를 잡았다. 우리의 무장봉기는 허울뿐인 정치적인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뼘의 땅이라도 주린 배를 채워줄 우리 소유의 농지와 진정한 자유, 안락한 가정, 토착원주민의 장래를 보장해주는 참된 독립을 얻기 위해서다"라고 외쳤다.

갖은 압박과 배고픔에 고통 받던 농민들의 열화 같은 지지로 순식간에 모렐로스 지역을 장악한 사파타는 이 지역의 토지와 관리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원주민들에게 돌려주는 토지개혁을 단행해 멕시코 전역의 민중영웅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빼앗겼던 조상들의 유산을 되찾았다는 자부심에 용기 백배한 농민군을 이끌고 멕시코 남부를 장악한 사파타는 중앙정부를 향해 세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이와 때를 같이하여 멕시코 북부와 미국 캘리포니아 국경지역에서 무장게릴라를 조직한 판쵸 빌라(Francisco Villa)가 남하하면서 멕시코 정부군은 남북에서 동시에 무장한 혁명군을 맞는'사면초가' 신세가 된다.

판쵸 빌라가 멕시코 국경에서 외세에 대항하며 빈민들을 위한 의적임을 자처하는 낭만적인 '민족주의자'였다면 사파타는 어린 시절부터 가슴에 맺힌 토착원주민들의 가난과 착취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농민혁명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파타와 판쵸 빌라의 혁명군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막강한 전력으로 정부군을 남북에서 공격하고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장기집권과 독재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민주화 투쟁을 하던 인권변호사 프란시코 마데로가 여기에 가세하면서 혁명군은 집권 능력을 가진 지적인 지도자와 무장한 군사를 가진 연합군 형태를 띠게 되었다.

또한 북부지역을 장악한 판쵸 빌라의 신출귀몰한 활약으로 디아스 정권이 미국 정부에 요청한 지원군을 효과적으로 차단해 멕시코 정부군을 완전 고립시키는 데 성공한다.

(미 기병대와 판쵸 빌라의 전투는 부분별로 여러 차례 영화화 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가 그렇듯이 당시의 시대상황과 전투를 중립적으로 정확하게 묘사했는지는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마치 남의 땅에 들어가 평화롭게 살고 있던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들짐승처럼 도륙한 무용담을 미화해 서부영화를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남미 역사학자들은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한 생존권의 저항도 서부 개척자들의 입장이 아닌 인디오 부족들의 입장에서 언젠가는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3인의 혁명가들은 혁명 성공 후 자신들의 역할이나 정책에 대한 어떠한 합의나 계획도 없이 이심전심으로 혁명을 밀어붙이는 데에만 열중해 추후 갈등의 소지를 남기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고 현지 역사가들은 평가한다. 마데로 정권 역시 시작부터 오래 지탱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신교육이나 군사전술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넘치는 카리스마와 전국의 농민군을 하나로 묶은 사파타의 탁월한 지도력과 판쵸 빌라의 게릴라전술이 하나가 된 혁명군은 1911년 멕시코 정부군의 항복을 받아 디아스 정권을 무너뜨리고 마데로 정권을 수립하는 데 성공했다.

혁명에 성공한 사파타는 농민들과 빈민들을 위한 토지개혁정책(아잘라 계획)을 밀어붙였다. 당시 사파타가 추진한 토지개혁 혁명은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보다 6년이나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때부터 멕시코에서 '사파티스타(Zapatista)'라는 말은 '농민혁명의 깃발'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사파타와 판쵸 빌라의 무장봉기로 정권을 잡은 야심가 프란시스코 마데로는 정권 유지에 대한 불안을 느끼며 사파타의 무장 해제를 요구하지만 사파타는 농민혁명이 완성될 때까지 자신은 농민혁명군 사령관직을 계속 유지할 것이며 농민군은 무장을 해제할 수 없다고 맞서, 서로가 갈등을 빚기도 했다.

농민무장봉기에 성공한 사파타는 막강한 농민군의 파워를 앞세워 정부기구 내에 농민위원회를 구성한 뒤 빈농들에 대한 농사자금 융자 방침을 밝히고 농민보호법령을 공포하기도 했다.

정부 역시 원주민사회의 전통과 역사, 권리를 인정하는가 하면, 국유화된 토착원주민들의 땅을 재조사해 부당한 착취가 없었는지를 확인하고, 혁명군에 대항 했던 위정자들의 모든 사유 재산을 국유화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을 마련, 상당 부분의 지역에서 토착농민들이 빼앗겼던 조상들의 토지를 반환받기도 했다.

사파타의 혁명 성공과 정부를 압박하는 그의 노력으로 그전까지는 소작인 혹은 농장의 노예에 불과했던 원주민농부들이 멕시코 의회 내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고 토착원주민들의 권리와 재산권을 보호받게 되는 획기적인 조치가 취해졌다.

그러나 사파타는 멕시코 전역에서 자신이 주장한 농촌개혁의 끝을 보지 못하고 1919년 4월10일 헤수스 수아하르도 대령 휘하 매복군의 기습을 받아 짧지만 농민들의 횃불 같았던 생을 마감했다.

후세에 멕시코 농민들은 혁명성공 후 마데로 정부에 협력해 혁명정부의 2인자 자리를 구축하며 장군이 된 판쵸 빌라보다는 오로지 농민들의 장래만을 위해 헌신한 사파타를 가리켜 '멕시코 농민혁명의 위대한 별', '돈 사파타 장군' 등의 칭호를 내리고 매년 그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혁명의 날을 기리고 있다.

주린 배를 채우고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최소한의 권리를 찾고자 했던 사파타의 평범했던 농민혁명의 꿈은 들불처럼 사방에서 일어났다 소리 없이 꺼져간 것이다. 평생 동안 그렇게도 갈망했던 농민들의 유토피아를 가슴 속에 묻은 채.

한평생 토착농민들의 권리와 인권수호를 위해 헌신했던 사파타의 꿈이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jército Zapatista de Liberación Nacional) 마르코스 부사령관을 통해 무장봉기가 아닌 선거라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이룩하는 제2의 멕시코 농민혁명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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