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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략적 유연성', 국민적 토론은 이제부터

[기고] 美, '철군 위협'에 허리꺾인 노 대통령

한미 양국의 외교장관이 지난 1월 '전략적 유연성' 등에 합의한 공동성명을 발표한 이후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온갖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가운데, '전략적 유연성 논란 그만두자'는 선동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사안은 서로 치열한 논란을 벌였던 청와대 국정상황실과 NSC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듯 "한반도 안보상황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차대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한미 양국의 철저한 밀실협상으로 인해 '전략적 유연성'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논란을 그만둘 때가 아니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관한 본격적인 국민적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글에서는 공동성명과 관련하여 아직도 확실히 공유되고 있지 않은 사실관계를 분명히 밝히고 그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국민적 토론의 단초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민족 운명 걸린 문제 놓고 '역사적' 거짓말**

우선 아직도 정부와 대다수 언론이 애매모호하게 넘어가고 있는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히기 위해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공동성명 문안을 살펴보자.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이하 강조 필자)

이를 두고 외교통상부와 NSC사무처가 낸 책자 〈전략적 유연성 성명 해설〉은 "양국의 입장을 균형있게 조화시켰"고, "양국이 쌍무적인 토대 위에서 서로의 이익을 존중해 주고 있음을 보여 준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합의문 어디에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제한을 가하는 문구는 전혀 없다. 다만 '한국이 동북아 분쟁에 개입되지 않는다'는 요지의 문구를 넣음으로써 한국의 동북아 분쟁 개입 문제에만 효력이 의심스러운 제한을 가하고 있을 뿐이다. 즉,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전면 허용된 것이다.

따라서 이 합의는 양국의 입장을 균형있게 조화시킨 것도, 서로의 이익을 존중한 것도 아니며 미국의 요구가 전면적으로 관철된 것이다.

***'결정적 후퇴' 놓고 '성과' 강변**

더욱이 이 합의는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개입은 안 된다'는 당초 정부의 입장에서 결정적으로 후퇴한 것이다.

1월 20일자 〈국정브리핑〉은 이 합의를 두고 작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의 공사졸업식 발언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그 발언을 보면 정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최근 일부에서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리 국민이 동북아시아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원칙으로 지켜나갈 것입니다."

문장에서 정확히 표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 발언의 맥락은 한국이 아니라 주한미군이 동북아 분쟁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이런 뜻이 아니었다면 한미양국 사이에 이를 두고 그토록 심각한 갈등이 빚어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어떤 언론도 이와 다른 내용으로 보도한 바 없다.

필자의 해석에 동의하기 어렵다면 노대통령의 공사 발언에 대한 청와대의 해설자료(2005. 3. 9)의 관련 내용을 살펴보자.

"우리 국가와 민족의 운명과 직결될 수 있는, 한반도 이외의 동북아시아 지역분쟁에 주한미군이 개입하는 일이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동북아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전제에서 해외주둔 미군재배치계획(GPR) 개념에 따른 주한미군의 신속화, 경량화, 기동화를 골자로 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조건부로 인정한다"

이 해설자료는 이론의 여지없이 주한미군이 동북아분쟁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노 대통령의 입장을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이에 앞서 있었던 노 대통령의 'LA발언'(2004년 11월)도 같은 맥락으로서 그 의미가 분명하다.

"전략적 필요에 의해 주둔군 수를 줄이고 늘리는 문제는 미국이 융통성 있게 운용할 수 있게 한국이 협력해야 하지만 내가 말한 융통성은 동아시아에 있어서 주한미군의 역할의 유연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처럼 노 대통령의 입장은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 개입을 분명히 반대한다는 것이었고,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노 대통령의 입장은 곧 정부의 입장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 개입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은 공동성명의 합의는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결정적으로 후퇴한 것으로서 이번 합의가 노 대통령의 뜻을 반영한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국민에 대한 철저한 기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철군' 위협에 허리 꺾인 노 대통령**

그렇다면 정부 안에서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 개입에 가장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노 대통령은 왜 이런 결정적 후퇴를 허용한 것일까?

노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전면 허용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이 "최근 10년간 가장 중요한 한미정상회담"이라고 표현했던 2005년 6월에 열린 한미정상회담을 전후한 정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 전에 전략적 유연성 문제, 개념계획 5029의 작전계획으로의 격상문제, 동북아균형자론 등을 두고 한미양국 사이에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었다.

〈프레시안〉의 2006년 2월 4일자 "노 대통령의 '답답증', 그 원인과 결과" 제하의 기사는 정상회담 전 한미갈등의 속살의 일단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2005년 4월 28일, 당시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워싱턴에서는 한미동맹의 현황에 대해 매우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미측은 "앞으로 2~4개월 내에 이런 국면을 전환시키지 않으면 양국 관계는 급격히 하강하게 될 것이라고, 심각성에 대해 경고했다"고 말한다. 또 당시 국정상황실 문건은 "외교부 업무 담당관은 우리 대통령의 (공사) 발언은 미측에게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당시 국내 신문에는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의 측근인 롤리스 부차관보가 정상회담 직전 방한해 "미측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상황의 심각성은 정상회담 직전 우리 외교안보팀 관계자들이 전례 없이 각각 4차례 이상 미국을 방문한 데서도 확인된다. 이 중에는 전략적 유연성 협상 책임자인 김숙 외교부 북미국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이 시기에는 미국이 한반도에 B-117 스텔스 전폭기를 전개하고, 미군 전함을 한반도 주변에 배치하는 등 '한반도 5월 위기설'이 퍼지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군사평론가 김성전 씨는 최근 〈프레시안〉 기고에서 미국의 이런 행동은 "북한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였는데, 한반도 정세 변화의 중요한 길목마다 위기를 조성하여 자신의 요구를 관철해 왔던 미국의 행태에 비추어 볼 때 가능한 추론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가운데 한미정상회담이 열렸고 럼스펠드 미국방장관이 유럽 여행 일정까지 단축하면서 정상회담의 배석자로 갑자기 끼어들었다. 양국 외교안보 관계자가 총동원되다시피 한 이날 정상회담에 대해 한 언론은 한국 정부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한 '집단심사장'의 인상을 풍겼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어찌됐든 정상회담이 끝난 뒤 한미갈등이나 한반도 위기설이 잦아들었다. 회담 직후, 결과를 설명하는 3부 요인 및 5당 대표 오찬에서 노 대통령은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그때그때 필요하면 협의하고 합의하는 방향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후 노 대통령은 더 이상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 개입 반대 발언을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한 토론회에서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지난 해 6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큰 양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발언했으며, 지난 1월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 공동성명 직후 〈중앙일보〉와 중국 〈인민일보〉는 한국정부가 미군철수를 우려하여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주한미군 철수 위협을 앞세운 미국의 파상공세에 노 대통령이 작년 6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최종적으로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원칙"이라던 주한미군의 동북아 분쟁 개입 불가 입장을 철회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참모 거짓말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

NSC 등 외교안보라인의 온갖 거짓말과 전횡, 대통령과 국민에 대한 기만행위가 용인될 수 있었던 근본적 요인도 바로 여기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국가운명과 국민생명을 미국에 저당 잡힌 마당에 외교안보라인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어찌 보면 부질없는 짓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명분을 중요시하는 노 대통령의 성향에 비춰보더라도 참모들에게 책임을 물을 정당성과 명분이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국정상황실의 눈물겨운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았겠나 싶다.

이제 미국은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의 날개를 달게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아가 이번 공동성명은 한미동맹이 "민주주의와 인권 및 법치주의"라는 공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지역 및 범세계적으로 당면한 도전을 극복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이에 기초하여 한미 양국은 반테러전쟁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초국가적 전염병 퇴치, 평화유지 활동과 위기대응 및 재해관리 등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이번 합의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뿐만 아니라 한미동맹의 '침략동맹화'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했고 한국도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이라크 파병을 감행하여 침략전쟁에 동참했던 전례를 공식화·제도화하겠다는 뜻이다.

이로써 "동북아시아 군사·안보 구도에 격렬한 변화가 예고"(인민일보)되고 있으며 민족의 운명이 미국의 손아귀에 내맡겨진 꼴이 되고 말았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존재한다는 주한미군이 오히려 한반도 안보를 위협하는 근본요인이 된 것이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대북 선제공격과 대중국 봉쇄를 핵심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한미동맹의 침략동맹화로 인한 테러 위험 등 안보 불안 요인이 증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군철수 카드, 이젠 우리가 쥐어야**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이제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주한미군의 주둔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절박한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하여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은 외부로부터의 무력 침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는 것을 주둔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시설과 구역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군사주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작전통제권을 내주고 있고 한 해 1조5000여억 원에 이르는 직간접비용을 미군에 제공하고 있다. 또 그 명분으로 평택에서 349만 평의 옥토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총 15조 원이 넘을 수도 있는 이전관련 비용을 우리 국민의 혈세로 지불해야 한다. 그밖에도 우리는 미군주둔으로 인한 온갖 범죄와 환경오염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주한미군이 대북 방어에서 아시아·태평양 침략군으로 그 성격을 근본적으로 전환한다면 이종석 통일부 장관 내정자가 2005년 12월 29일 NSC상임위 회의에서 인정했듯이 그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헌법상 평화주의 원칙에도 위배되는 일이다.

이럴 경우 우리는 미군에게 시설과 구역을 제공할 하등의 근거와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가 왜, 언제까지 이런 주권 상실과 생명의 위험, 그리고 온갖 재정적·사회적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가에 대한 국민적 토론을 대대적으로 벌일 때가 되었다고 본다.

이는 우리 민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시급한 요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은 이미 미군철수를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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