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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 선발방법이 아니라 공급규모가 문제다

〈기고〉 로스쿨, 국민부담만 늘리고 공정경쟁 해쳐

3일 〈프레시안〉에 실린 권태욱 변호사의 글 〈'황당한 로스쿨 도입 구상', 계속해야 하나?〉를 보고 대구의 한 현직 변호사가 글을 보내왔다. 로스쿨 제도가 변호사의 전문성을 높이기보다는 국민들의 부담만 늘리고, 현재의 '완전경쟁적' 사법시험 제도에서 로스쿨 교육비 부담능력이 있는 부유층 자제들에게만 법조 진입기회를 주는 왜곡된 경쟁구조로 퇴행할 것이라는 것이 요지다. 필자인 정재형 변호사는 1995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현재 대구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편집자>

왜 미국식 로스쿨인가? 사법개혁위원회가 대법원에 설치되어 법조의 묵은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간 매체를 통해 여러 현안이 논의 중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별다른 결실은 나오지 않은 가운데, 법조인의 양성방식을 현행 사법시험 제도에서 미국식 '로스쿨'로 바꾼다는 논의는 무르익은 것 같다. 법무부가 미국식 로스쿨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표명을 한 후부터 로스쿨은 기정사실처럼 보인다.

로스쿨은 필자가 다녀본 바도 없고 국내에는 없는 제도라서 생소하다. 필자는 로스쿨에 관한 기사나 논문은 비교적 자세히 들여다보았지만 왜 로스쿨을 도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아직까지 얻지 못했다. 다만 근래의 의학전문대학원처럼 학부 4년 과정을 마친 학생들이 로스쿨로 진학하고 로스쿨 졸업자에게만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는 정도의 지식만 가지고 있다.

먼저 로스쿨을 도입하자는 주장의 가장 큰 논거는 로스쿨의 입학자들이 다양한 전공을 이수한 상태로 로스쿨에 입학하므로 법률가들의 사실관계 인정에 관한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고 따라서 대한민국 법률가들에게 경쟁력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경쟁력이라고 할 때 국내의 경쟁력은 한 번도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으니 국제경쟁력을 말하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필자가 보기에 법조 직역에 대한 진입장벽은 '사법시험'이라는 형태로 분명히 존재한다. 직업을 구하는 수요자의 측면에서 볼 때 법조는 다른 직역보다 보다 적은 투자로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매력이 있기 때문에 항상 수요초과 상태라는 특색이 있다. 따라서 합격자 정원을 늘려도 그 이상으로 수요가 증가한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이면 문과생이면 의레 '법대'를 선호하고 대학에 진학하며 법대생이면 당연히, 비법대생이라도 한 번쯤은 '사법시험'을 생각하게 된다.

사회는 다원화되고 대학생들의 사회진출도 다양화되어가고 있는데 유독 사법시험이 모든 대학생(특히 명문대학일수록 심하다)의 화두가 되어야 할까? 그것은 우리 사회의 획일성도 하나의 이유이지만, 법률이나 법률가의 업무가 매력적이라기보다는 법률가가 우리 사회에서 누리고 있는 '경제적 렌트'에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법률가가 누리는 경제적 렌트가 존재하는 한, 법률가가 되기를 원하는 진입압력은 끊임없이 존재할 것이고 이것은 로스쿨제도가 시행된다고 하여 해소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도 있다. 법률가가 누리는 경제적 렌트만 없애버리면 아무도 법률가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렌트를 없애는 방법도 간단하다. 판사나 검사의 직급을 하향 조정하고, 변호사의 공급을 법률서비스 수요총량 이상으로 늘려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논하기 전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전문직'이라는 개념이다. 전문직에 대하여 Carr-Saunders와 Wilson은 전문직의 주된 기준이 특별한 훈련에 의하여 얻어지고 사회에 대한 봉사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며 일반인들을 이용할 수 없는 지적인 기술이라고 하였고, 전문직은 자신의 직무에 대하여 높은 자율성을 보장받고 전문적 독점을 실현함으로써 전문직으로서 지위를 안정적으로 누리게 되는 직업(Freidson)이라고 한다. 이상을 종합하면 전문직업인은 '특별한 훈련에 의해 얻어지고 사회에 대한 봉사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며 일반인들은 이용할 수 없는 지적인 기술'이라고 일컬어지고, 전문직의 특성으로 '전문화된 기술과 훈련, 전문직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임금이나 보상, 자발적 결사조직, 윤리강령, 그리고 숙련된 서비스나 자문을 제공하는 업무내용' 등이 제시되고 있다.

위에서 보듯이 전문직은 순수한 자본주의적인 개념인데도 전문적 '독점'이라는 것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이율배반적인 징표를 함께 지니고 있다. 즉 타인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사실상의 전문성과 함께 법제도적인 진입장벽을 허용하고 이것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고도의 공익성, 윤리성과 사회봉사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사법개혁의 한 부문으로써 법조인 양성방법 변경의 문제가 위와 같은 전문직업인의 성격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논의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즉 이제까지의 사법개혁의 논의는 그동안 법조인들이 누리던 특혜(경제적 렌트)를 없애는 데 논의가 집중된 것이 아니라 법조인들의 전문성과 전문적 독점을 없애버리는데 집중되었으며, 진입장벽의 형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만을 고민하였을 뿐 법률 전문직에 진입한 이후의 사후관리에는 전혀 소홀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 책임의 상당부분은 법조인들이 제공했다는 것을 필자는 부인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와 혼연일체가 되지 않고 물 위의 기름처럼 고고하게 존재했던 '법조귀족'의 폐습을 타파하는 데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하지만 법조인들이 가지는 전문성의 고양에 대해서도 그만큼의 노력은 해야 한다고 본다.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 로스쿨을 도입하면 로스쿨 합격자의 전공별 출신이 예상하던 것처럼 다양해질까? 또 사법시험 때문에 황폐화되었다는 법학교육도 정상화될까? 아니라고 본다. 대학의 법과대학을 존치한 가운데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다면 법과대학을 졸업한 학생은 대부분 로스쿨로 진학하기를 희망할 것이고, 법학전공자가 로스쿨 입학경쟁에 있어서 절대적 우위를 가질 것이라는 것은 인문계 고등학교 출신자와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 중 어느 쪽이 대학 합격율이 더 높은가를 따지는 것처럼 명확한 것이다.

또 로스쿨에서 교육이 제대로 될까? 어차피 로스쿨은 법조인이 되기 위한 직업훈련 과정이기 때문에 법조인 자격시험과 무관한 교과과정은 의미가 없다. 즉 로스쿨에서 아무리 다양한 교육을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자격시험과 무관한 강좌는 통과의례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면 로스쿨 입학자의 대부분이 자격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 정도로 졸업정원과 자격시험 합격자 비율을 조절하면 될 것이라고? 그렇다면 로스쿨에서 누가 열심히 공부를 할 것이며, 또 로스쿨 입학시험에 불합격한 수많은 젊은이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개인경험을 이야기하면, 필자는 사법연수원 27기인데, 당시 동기들(307명으로 기억된다)을 출신대학별로 분류해보니 서울대 법대가 압도적인 1위, 2위는 서울대 비법대, 3위는 고려대학교 등이었고, 지방대학 출신은 다 더해도 10%가 되지 않았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은 어떤지 궁금하다. 아마 정원을 3배 이상 늘렸으니 비법대 출신도 훨씬 많이 증가했을 것이다. 그런데 로스쿨을 실시하면 위와 다른 결과가 나올까? 여기서 로스쿨의 입학시험을 치르면서 법대와 비법대로 입학정원을 분리하고 예컨대 공과대학 출신자에 대해 일정한 '쿼터'를 부여하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물론 그래야 할 것이지만 그것이 현행 사법시험 제도 하에서도 실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로스쿨 제도를 실시해야 법조인의 국제경쟁력이 생긴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법조인의 국제경쟁력까지 생각해주니 정말 고맙지만, 이것도 상당부분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다. 필자가 있는 대구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중 상당수가 자비로 미국 유학을 다녀왔고 또 그들의 대부분은 유학기간 중 미국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귀국하였다. 그런데 그 분들이 귀국하여 다시 현업에 복귀했을 때 미국에서 습득한 지식과 경험을 실무에 연결하여 그 분야를 주로 취급한다는 분은 보지 못했다. 물론 그것은 그분들이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국제거래에 관한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즉 로스쿨을 시행해야 국제경쟁력이 생긴다거나 사법시험 제도 때문에 국제경쟁력이 없다는 주장은 한국 변호사들의 자생력을 전부 부정한 근거 없는 것이다. 오히려 구체적인 법률서비스의 수요가 있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분야에 매진해야 할 상황에 이미 처해버린 재야 법조현실을 무시한 주장이다. 즉 그것은 대학 입학시험 제도 때문에 대학생들이 취직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과 같은 이치이다.

한편 필자가 사법연수원을 졸업할 당시는 외환위기가 닥친 상황이라 변호사 개업이 쉽지 않았고 적지 않은 연수생들이 행정부 공무원으로 가기를 원했는데, 대한민국 정부는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인재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채용규모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사법시험 합격자를 300명으로 제한할 때도 그러했는데 사법시험 합격자가 매년 1000명씩 배출되는 상황에서 사법연수원 졸업자들의 진로에 대한 고민은 어떠할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기존 송무 위주의 법률시장이 임계점에 이른 이후에는 사법시험을 통과한 사람들도 외부로 눈을 돌려야할 상황이 닥쳤거나 곧 닥칠 것이고, 그러한 상황에서 법률서비스의 전문화와 국제화, 대중화라는 명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것임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반면 로스쿨 제도를 도입할 경우 나타날 부작용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통계를 내보지 않았고 그런 통계도 본 적이 없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직업군을 통털어 법조인만큼 부모의 직업이 다양한 직업군은 없을 것이다. 즉 부모가 농사를 짓든, 기업체 사장이든, 영세민이든, 재벌이든 법조인이 되는 데 어떠한 제도적인 가산점도 사법시험 제도에는 없다.

그것이 무슨 대수인가라는 반문도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사회통합적인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또 많은 젊은이들이 이 순간에도 머리를 싸매고 수도자처럼 공부할 수 있는 것도 사법시험의 '완전경쟁'적인 구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정점에 속하는 직업군 예컨대 대학교수나 정치인, 기업가가 되려면 적어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있으면 유리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고, 나아가 그러한 유산이 없으면 대개 포기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정도는 기성세대면 대충 알고 있는 진실이다.

그러나 사법시험은 그러한 부정출발은 없다. 로스쿨 제도가 시행되고 이것이 민간의 영역에 맡겨진다면 위와 같은 완전경쟁적인 구조는 완전히 붕괴되고 말 것이다. 적어도 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쿨 3년간의 학비를 부담할 수 있는 계층의 자녀만이 법조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시낭인'을 걱정하는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것이지만, 그것이 문제의 해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없는 집 자식이 공부만 잘해서 '영감'이 되는 것이 배 아팠는데 잘됐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법개혁을 조율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위와 같은 점에 대해서는 의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로스쿨의 운영을 민간에 맡겨두고 수익자부담원칙을 도입한다는 발상은 그래서 위험하다.

로스쿨을 시행할 경우 그 경비는 모두 수익자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다. 또 로스쿨의 커리큘럼에 있어 '파킨슨법칙'이 적용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무익한, 대부분의 법조인에게 무용한 강좌가 남설되고 그 부담은 모두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될 것이다. 또 제한적으로 로스쿨의 설립을 허가할 경우 로스쿨의 운영이 대학의 입장에서는 큰 이권이 될 것이고 그러한 이권을 둘러싼 대학 간, 지역 간, 교직원 간의 새로운 갈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로스쿨 사이의 서열이 매겨지고 그 서열을 둘러싼 줄서기와 관련한 사회갈등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또 다른 고민을 안겨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사법개혁위원회는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로스쿨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아야 한다. 법률학자를 양성하는 법과대학의 현 교수진이 변호사, 판사, 검사를 양성하는 실무교육을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실무가이기 때문에 법학이론의 정치한 연구에는 별 관심이 없다. 반대로 법과대학에서 교수로 몇 십년 간 연찬하더라도 변론, 재판, 수사를 할 만한 능력은 없을 것이다. 제대로 된 실무교육을 하려면 외부의 실무가를 교수진으로 영입하여야 할 것인데 영입되는 강사가 담당하는 부분이 기존 법과대학 교수가 담당하는 부분을 압도할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이 신설될 로스쿨이 사법연수원보다 나은 점이 무엇일까? 또 나아가 로스쿨이 법조인 자격시험을 무시하고 실무교육에만 치중할 수 있을까? 돈과 시간을 들여서 도입하는 로스쿨이 '옥상옥'이 되어버리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

우리나라의 중등교육과 대학입시 제도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근대적인 교육제도를 도입한 이래 대학입학시험 방식을 몇 년마다 바꾸어 왔다. 그런데 입시위주 교육의 폐해, 사교육의 비대, 대학 서열화 등의 문제는 한 번도 해결된 적이 없고 더 심화, 확대되었을 뿐이다. 그것은 왜 그런가? 대학, 특히 명문대학을 졸업해야 인간대접을 받는다는 학부모의 인생경험에서 우러나온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명문대학 졸업자만을 구매하는 기업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대학으로 가는 문을 어떤 식으로 꼬아놓아도 교육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 것이다.

사법개혁과 법조인의 양성도 같은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법조인의 총량을 파악하여(계량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지만 한 번도 위와 같은 연구결과를 본 바가 없다) 법조인이 불로소득을 누릴 수 없을 만큼 선발인원을 조절하면 되는 것이다. 즉 대학 입학정원이 몇 명이냐가 중요한 것이지, 그 방식을 학력고사로 할 것인지 또는 수능시험으로 할 것인지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법조인을 몇 명이나 사회에 공급하는가의 문제 외에 법조인을 어떤 방식으로 공급하느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현재의 사법시험 제도가 문제는 있지만 그것이 로스쿨의 부작용만큼 크지는 않다.

그런데도 법조인의 적정한 수에 관한 연구와 논의는 젖혀두고 미국식 로스쿨을 논하는 것은 본말이 바뀐 것이다. 법조인의 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로스쿨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로스쿨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논의가 로스쿨을 둘러싼 여러 계층의 이권다툼이 아니냐는 의심만 증폭되고 그 와중에 희생되는 것은 다음 세대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국민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이다.

미국식 로스쿨은 장점이 물론 있지만 기존 사법시험의 장점까지 희생하고 거대한 비용을 국민들에게 부담시키면서 도입해야 할 제도는 아니다. 계층의 이해타산을 떠나 진정한 사법개혁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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