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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착원주민과 여성정치인이 맞붙는 페루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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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착원주민과 여성정치인이 맞붙는 페루 대선

김영길의 '남미 리포트'〈122〉

중남미를 휩쓴 좌파바람에 이어 토착원주민들이 정치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여기에다 여성정치세력이 가세하면서 서로가 '새로운 중남미 건설'을 외치고 있어 흥미를 끌고 있다.

카스트로, 차베스, 룰라, 키르츠네르로 대표되는 중남미 좌파정권에 뒤이어 볼리비아 원주민 에보 모랄레스가 대권을 장악했고, 이번에는 페루가 오는 4월 9일로 예정된 대선에서 좌파 민족주의자임을 내세우는 잉카원주민 후손인 올란타 우말라 후보와 여성정치인이자 중도우파인 대중기독당(PPC) 소속의 루르데스 플로레스 후보가 선두 자리를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어 남미 정치계의 화제다.

칠레의 바첼렛 당선자에 이어 페루의 여성대권주자로 관심을 끌고 있는 루르데스 플로레스 후보는 지난 1956년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태어나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변호사를 거처 1999년 국회에 진출했다. 그는 리마를 중심으로 한 엘리트층과 여성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그를100대 중남미 신세대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선정하기도 할 만큼 지명도가 높은 여성이다.

그러나 남미 현지의 정치평론가들은 오는 4월 페루대선에서는 이들 두 후보 중 누구도 과반수득표에는 못 미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결국 2차 결선투표로 이어지면 수적으로 우세한 원주민 유권자들과 혼혈계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우말라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올란타 우말라 후보(42)는 잉카제국의 피를 이어받은 원주민출신 아버지와 백인계 이민자 후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그러나 그는 잉카제국의 후예임을 주장하며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노선을 지지하고 있는 좌파계 인사다. 그는 육군 중령 시절인 지난 2000년 10월 알베르또 후지모리 정권을 향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한 경력을 가졌으며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쿠데타 실패로 체포되어 투옥된 우말라는 후지모리 정권의 실각으로 사면 복권된 후 지난 2004년 말까지 파리와 서울에서 군복무(주한 페루대사관의 무관)를 하기도 했다. 한국 근무를 끝으로 군복을 벗은 우말라는 자신을 따르던 군부세력을 중심으로'인종민족주의당'을 창당하여 좌파 정치세력으로 키웠다. 이들은 잉카유산 회복, 국가산업 및 자원 국유화, 코카재배 합법화, 잉카주민 정체성확립, 칠레와의 주적 개념 강화 등을 당 강령으로 삼고 있다.

***페루 대선, '우파 여성과 좌파 원주민 대결구도로 갈 듯**

우말라 후보는 최근 남미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역사적으로 페루와 볼리비아는 잉카제국의 중심지였다는 사실 외에도 풍부한 광물과 천연가스 등 자원을 가진 천혜의 지역이라면서 이 지역 원주민들의 문화와 언어(캐추아) 또한 같은 형제국가라고 주장했다.

지난 1800년대 초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이 지역이 두 나라로 갈라지게 된 건 아르헨 출신 호세 산마르틴 장군이 페루를 독립시키고 중미의 영웅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장군은 볼리비아를 독립시키면서 타의에 의해 둘로 갈라지는 운명을 맞았다는 얘기다.

그는 또 페루와 볼리비아 양국은 1500년이 넘게 같은 제국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면서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과 형제국가로서의 오랜 역사 관계 회복을 이루어내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신을 혁명가라고 소개한 우말라는 군사반란을 일으킨 것에 대해 후지모리 정권은 부정부패와 의회민주주의를 말살하고 군부의 명령체계를 망가뜨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위험인물', '잔인한 장교' 등의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는 지적에 대해 "나는 잔인하거나 위험한 인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는 지난 2000년 초 'SL(빛나는 길)'이라는 페루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잔인한 것으로 알려진 무장 게릴라단체 토벌작전 중 일부 민간인 피해자가 발생한 것을 두고 나온 말이라고 해명했다.

"나는 궁극적으로 잉카제국의 재건을 희망하며 이를 위해 남미 전체 토착원주민들을 하나로 묶어 국가를 이루는 대통합을 추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우말라는 "우선적으로 형제국가인 볼리비아와 실질적인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잉카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페루가 중심이 되어, 중남미 대륙에 흩어져 소수민족으로 남미 각국 정부로부터 푸대접을 받으며 어렵게 살고 있는 모든 원주민부족을 하나로 묶어 국가를 이루겠다는 원대한 포부다.

우말라 후보는 "만일 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모랄레스 대통령과 만나 허심탄회하게 통합을 논의할 것이며 칠레가 역사적으로 논쟁거리였던 태평양으로 향한 볼리비아 영토반환을 거절한다면 나는 기꺼이 페루의 항구를 볼리비아에 할애해 태평양으로의 뱃길을 열어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잉카제국의 재건과 토착원주민의 주권을 외치는 우말라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와는 달리 백인계 혼혈에 엘리트교육을 받은 고급장교 출신이어서 그가 아버지 혈통을 이어받아 중남미 토착원주민들의 주권회복을 노리는 진정한 혁명가인지, 아니면 다수인 페루의 원주민 표를 의식한 정치적인 제스처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편 칠레의 바첼렛으로 대표되는 남미 정치권의 여성정치인 파워는 아르헨티나가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에비타 뻬론 시절부터 시작된 여성들의 정치 참여는 현재 아르헨티나의 경제, 국방을 비롯한 주요 내각을 여성들이 장악하고 있으며 의회 등에서도 여성정치인들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또한 이들의 정치적인 입지 역시 기존 남성정치인들을 압도하고 있어서 차차기 대선에서는 아르헨티나에서도 여성대통령 탄생이 예상될 정도다.

따라서 중남미 정치계는 향후 좌파와 토착원주민, 여성정치인들 주도로 새롭게 판이 짜여 한편으로는 서로 협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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