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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랄레스 "유럽에는 개들도 여권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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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랄레스 "유럽에는 개들도 여권이 있더라"

김영길의 '남미 리포트'〈120〉

"우리 조상들이 주권을 잃은 후 각종 차별과 멸시를 받아 왔던 과거를 종식시키고 우리 고유의 권력을 회복하는데 500년이 걸렸다. 그러나 나는 볼리비아의 지식인들과 기업인들을 존경한다. 나는 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그들 또한 이 땅의 원주민인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기기를 바란다."

지난 22일 오후 2시18분(현지시간)에 시작된 볼리비아 토착민출신 에보 모랄레스의 대통령 취임연설 서두다. 90분에 걸친 그의 취임연설은 남미전역에 TV로 생중계되었고 국정운영의 밑그림을 비교적 소상히 밝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90분 동안 그는 무슨 말을 했을까.

잉카제국 당시 부족지도자들이 하늘의 계시를 받기 위해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검은색 알파카로 짠 수직의 잉카줄무늬로 특별히 디자인된 상의에 노타이차림으로 취임식장에 들어선 모랄레스는 연설을 시작하기 전 잉카의 지도자들이었던 뚜빠흐 까따리, 뚜팍 아마루 등과 볼리비아 혁명을 이루지 못하고 살해당한 체 게바라, 지난2003 년 10월 코카 재배 합법화 시위를 주도하다 숨진 루이스 에스삐날에 대한 묵념을 제의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5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볼리비아 국회 내부는커녕 국회 앞 무리죠 광장과 라 빠스 중심가조차 현지토착민들의 통행을 금지시켰던 것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우리는 볼리비아의 역사를 바꾸기를 원한다"며 "잃어버렸던 우리의 역사를 되찾는 데는 500년이 걸렸지만 이를 500년 이상 지켜나가겠다"고 모랄레스는 잉카제국의 재건을 약속했다.

"볼리비아의 모든 천연자원은 볼리비아인들의 것"이라고 주장한 모랄레스는 "풍부한 자원을 가진 볼리비아가 이렇게 못 살 이유가 없다"며 토착민들의 뿌리깊은 빈곤이 자원착취로 인한 것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그는 "유럽에 가보니 개들도 여권이 있더라"고 지금까지 볼리비아의 토착원주민들이 서방세계에서 어떤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었는지를 비유한 뒤 유럽과 남미에서 불법적으로 살고 있는 볼리비아 이민자들에게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부여할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또한 볼리비아 고산빈민지역에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신원을 증명해줄 신분증조차 없는 토착민이 다수라며 우선적으로 이들에게 신분증을 발급해줄 것을 약속하고 전기는 물론 상수도시설도 해결할 것이라고 말해 취임식장에 참석한 토착민 대표들 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신정부의 국정모토는 잉카제국시절부터 전해 내려온 기본법인 "아마 수아(도둑질 하지 말라) 아마 줄라(살인하지 말라) 아마 켈라(허비하지 말라)"를 케추아어로 말함으로써 자신이 지난 15세기 초 스페인에 의해 무너진 잉카제국의 적자임을 다시 한번 내세웠다. 이 부분에서는 남미 각국의 국가원수 등 내빈들과 함께 취임식장 귀빈석의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페루의 알레한드로 똘레도 대통령이 머쓱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서 못다 이룬 혁명 이루겠다"**

"국회는 지금까지 회기 내 동안 잠만 자면서 (자원을) 도둑질하는 것과 (토착원주민들에 대한) 살인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으며 자원허비를 통한 부패를 일삼아 왔다"고 지적한 모랄레스는 입법부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추진의지를 표현하기도 했다.

차베스와 룰라, 키르츠네르를 향해 '형님들'이라고 표현한 모랄레스는 피델 카스트로 의장이 역사적인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볼리비아의 정책은 지금까지 소수인 백인 위주였으며 그로 인해 다수인 우리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며 "우리는 이제부터 다수인 토착원주민 위주의 정책 펼칠 것을 분명하게 밝힌다"고도 했다.

이어 "체 게바라의 못다 이룬 혁명을 이어가겠다"고 목청을 높인 모랄레스는 부의 공평분배를 약속했다. 볼리비아 내 소수인 가진자들의 재산을 부유세 등을 통해 거두어들이고 이를 빈민들에게 분배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는 평소 영국의 의적 로빈 훗을 신봉했던 체의 혁명유지를 받들겠다는 얘기다.

선거제도 역시 비민주적이었다고 지적한 모랄레스는 볼리비아 선거법원을 향해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고 경고하고 코차밤바 등의 지역에서 토착민선거인 명부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음을 문제로 지적했다.

볼리비아가 지고 있는 외채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는 해외투자기업들의 자산을 보호해 주겠지만 전 정권들이 진 채무는 상환해야 할 의무는 느끼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마약밀매 제로를 정착시키겠다"고 호언한 모랄레스는 "이를 위해 미국과 협력할 의사가 있음을 천명한다"고 짧게 언급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모랄레스 신임대통령은 "모든 고위공직자의 급여 50% 삭감을 의무화한다"고 말해 토착민들의 비참한 생활과는 상관없이 그동안 호의호식하고 살아 왔던 고위 공직자들부터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주문했다.

모랄레스의 러닝메이트로서 부통령이 된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는 취임식이 끝난 후 "잉카제국이 무너진 후 볼리비아 토착민들은 차별과 착취 등으로 점철된 513년이라는 긴 질고의 세월을 오늘로써 종식시키고 앞으로 5세기동안은 모든 볼리비아 토착민들이 평등과 기쁨, 그리고 행복을 함께 누리기를 기원한다"고 발표했다.

소수의 백인들이 자금과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렵게 집권한 모랄레스가 자신을 지지해준 다수의 볼리비아 토착원주민들의 넘쳐나는 각종 요구를 어떻게 채워줄 것이며 이 과정에서 가진자들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할지가 관심사다.

한편 취임식 현장에서 '형님' 칭호를 받은 키르츠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귀국하자마자 오는 3월부터 볼리비아인들을 포함한 남미출신 불법체류자들에게 합법적인 거주 허가를 내주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불법체류자 대다수가 볼리비아인들이어서 모랄레스 취임 후 최초의 가장 큰 혜택은 아르헨 거주 볼리비아 이민자들이 받은 셈이다.

이와 함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볼리비아 문맹퇴치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하루 20만 배럴의 경유 신용판매, 천연가스 개발 기술 등의 지원과 함께 볼리비아산 대두 콩 20만 톤과 닭고기 20만 톤을 구입하겠다고 취임식 당일 즉석에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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