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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신인도를 자본 아닌 노동이 잰다면...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13〉

2005년 말 프랑스 전역엔 검은 연기들이 치솟았다. 거리의 자동차들을 불 지르고 폭동을 일으킨 사람들은'방리유'라는 이름의 빈민지역에 사는 이슬람계 이주민 2,3세대 젊은이들. 그들은 오래 쌓여 온 박탈감과 소외감을 폭동으로 불살랐다. 급기야 프랑스 경찰은 1959년 비상사태법에 따른 야간통행금지 및 집회금지 조치를 내려야 했다.

새해 들어와서 간신히 불길이 잡힌 프랑스 폭동이 우리 한국에게는 그저 강 건너 불일까. 한국에 머무는 35만(일설에는 50만)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은 힘들고 위험해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이 피하는 이른바 3D 업종의 역군들이다. 그들은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인 시간당 3150원을 받으며 하루 12시간씩 일하기 일쑤다.

(사진 1)경기도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만난 스리랑카 출신 쿠산 살바투레(29). 악덕업주가 밀린 임금을 주지 않은 채 부도를 내고 도망가는 바람에 어려움에 빠졌다(@김재명)

그런데도 악덕업주를 만나 노동의 대가를 떼이거나 몸이 다쳤는데도 보상은커녕 치료조차 못 받고 고국으로 쓸쓸히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밀린 임금 달라고 요구하는 데 지쳐,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라고 외치는데 지쳐, 좌절감에 빠진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판사판식으로 프랑스에서처럼 폭동을 일으키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카슈미르 청년의 꾹다문 입**

필자의 개인적 체험에 바탕을 두고 말한다면, 지구촌 사람들이 한국을 보는 눈길은 그리 다정하지 못하다. 지난 2002년 지구촌 분쟁지역 가운데 오랫동안 질질 끄는 이른바'저강도 분쟁'으로 많은 사상자를 낳아 온 카슈미르에 갔을 때의 얘기 하나.

그곳에서 우연히 택시 운전사 무하마드 가흐산(27세)을 만났다. 그는 "3년 전 한국 인천과 시흥에서 산업기술 연수생으로 일한 적이 있다"고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했다(파키스탄의 공용어는 우르드어와 영어다. 국가교육기관의 문턱을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대부분의 카슈미르 산골 사람들은 영어를 쓰지 않는다). 일을 마치고 늦은 저녁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그런 얘길 듣는 순간 슬며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왜 불안했냐고? 한국인 여행객이 동남아에 놀러 갔다가 전에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했던 사람들로부터 봉변을 당한다는 얘기를 이미 여러 차례 들은 때문이었다. "이 XXX!!!" 하며 거친 한국말로 모진 욕을 하고 돌아서면 그나마 다행! 주먹으로 얼굴을 얻어맞고 발길로 채여, 온몸이 멍든 채 인천공항에 내리는 여행자조차 생겨난다. 동남아 현지인들이 입에서 토해내는 거친 우리말 욕들은 그들이 지난날 언젠가 몸담았던 한국의 공장에서 바로 우리 한국인 간부들로부터 온몸으로 당하며 배운 것임에 틀림없다.

다행히도 가흐산은 품성이 착한 카슈미르 청년이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잔잔한 미소와 큰 눈망울을 지녔다. 그렇지만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았냐고 묻자, 대답하길 꺼렸다. 다음날 아침 9시 호텔 앞에서 만나 하루 종일 같이 다닌 뒤 저녁을 함께 먹으며, 하루 내내 마음에 담아두었던 질문을 다시 꺼냈다. 한국에 대한 인상이 좋았냐고. 가흐산은 또 머뭇거렸다. 대답을 다그쳤다. 그랬더니, "솔직히 말해 좋지 않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말뿐, 곧장 입을 닫았다.

가흐산이 그토록 말을 아끼도록 만든 한국. 그의 머리 속에 그려진 한국의 이미지는 결코 긍정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리운 한국, 다시 가고픈 한국이 아닌, 잊고 싶은 한국이란 음울한 이미지일 게 뻔하다. 우리들 가운데 누가 가흐산의 한국 이미지를 먹칠 했을까.

***베트남 여인과 멕시코 처녀들**

또 다른 우울한 얘기 한 토막.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의 발자취를 더듬기 위해 몇해 전 베트남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국군 백마부대 주둔지였던 나트랑에서 30대 초반의 여인 구에를 만났다. 그녀에 딸린 일곱 식구를 먹여 살리는 생존기법은 발 마사지. 나트랑 해변에서 행락객들을 상대로 1시간씩 발 마사지를 해주고 우리 돈으로 5000원쯤 받는다.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도 조금 할 줄 아는 구에의 마음 속에 새겨진 한국의 추억은 악몽 그 자체. 한국인이 낀 인력송출업체는 그녀에게 "한국 가면 큰 돈 벌 수 있다"고 속삭였다. 그 말만 믿고 안양의 작은 봉제업체에서 하루 12시간씩은 보통으로 일했다. 그러나 끝내는 몸과 마음의 병을 얻은 채 베트남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녀는 "사장님 나빠요"란 말을 되풀이 했다. 베트남은 성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사회다. 한국인 사장은 그녀에게 집적거렸고, 임금도 제때 주지 않다가 어느 날 부도를 내고는 도망쳤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미지는 필자가 바로 얼마 전까지 8년을 보낸 뉴욕에서도 엉망이다. 뉴욕의 한국인들이 많이 손대는 사업 가운데 하나가 봉제업이다. 다 그럴 리야 절대 없다고 믿고 싶지만, 일부 한국인 봉제업자들은 이제 겨우 스무 살이 될까 말까한 멕시코 여공들을 헐값에 착취하면서 수지타산을 맞춘다.

(사진 2)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일하는 지역엔 전화카드 가게들이 많다. 그리운 가족들과의 통화가 그들에겐 큰 위안이다.(@김재명)

그 처녀들은 대부분 미-멕시코 국경을 몰래 넘어 들어온 이른바 불법 체류 신분. 한국인 업주들은 여공들의 그런 약점을 잡고 최저임금(2006년1월 기준 6.75 달러)에 턱 없이 못 미치는 저임금으로 혹사시킨다. 여공들이 하루 종일 들어 귀에 익은 한국어는 '빨리 빨리'와 '일 해!'다.

2003년 겨울, 미국인 친구와 더불어 미 공영 TV인 PBS의 한 프로그램을 보다가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새롭다. 엄마가 병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멕시코로 급히 돌아가야 할 사정이 생긴 한 여공이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그린 고발성 다큐멘터리였다. 그 화면에 등장하는 한국인 업주가 내뱉은 생생한 우리말은 "뭐하고 있어? 빨리 일해!"였다. 영어 캡션으로 번역돼 화면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톨레랑스가 메마른 사회**

지금부터 10년 전 홍세화 님의 자전적 수필집 『파리의 택시운전사』(1995년 판)가 화제에 올랐다. 그 책은 프랑스 사회의 성격을 '톨레랑스'(관용)라고 풀이했다. 다양한 사회구성원을 받아들이는 프랑스 사회의 흡인력이 곧 '톨레랑스'라는 얘기였다.

그로부터 한국사회의 담론 속에는 톨레랑스란 용어가 끼여 들었다. 민주적 합의절차와 토론은 구석에 팽개치고 멱살잡이와 고함이 전면에 배치되는 저급한 정치문화를 꼬집을 경우 "톨레랑스가 아쉽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어느 정도 톨레랑스를 보여 왔는가. 대답은 앞서 살펴본 대로 부정적이다.

'국가 신인도'라는 용어가 있다. 1990년대 후반기 우리나라가 IMF 위기를 맞은 뒤부터 자주 들려오는 용어다. 이를테면, "한국의 국가신인도가 상향 조정됐다"는 따위다. 어떤 이들은 '국가신용등급'이라 일컫기도 한다. 경제용어사전엔 '국가신인도' 또는 '국가신용등급'이 복잡하게 풀이돼 있지만, 요점은 돈을 가진 자가 얼마만큼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느냐를 가리키는 지표다.

문제는 신자유주의 깃발 아래 지구촌 경제, 특히 금융을 휘어잡은 미국의 무디스를 비롯한 민간 신용평가회사의 잣대로 국가신인도가 측정된다는 점이다. 복잡한 숫자놀음으로 객관성을 포장하지만, 결국은 미국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킬 것이라는 점은 누가 봐도 뻔한 일이다. 그 바람에 한국의 많은 알짜기업들이 외국자본에 넘어갔다. 민족자본이냐 매판자본이냐를 따지던 시절이 어느새 아득한 옛날이 돼버렸다.

그런 미국자본의 이해와 교묘히 결탁한 한국의 친미 사대주의자들이 악을 쓰며 펴는 논리가 미군철수 불가론이다. 남한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하면→북한이 쳐들어와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외국 투자가들의 불안이 커진다→한국의 국가 신인도가 떨어진다→따라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자는 한국의 국가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매국노"라는 기묘한 논리전개가 가능해진다.

***자본이 아닌 노동의 잣대로**

뜬금없게 보일지라도, 나는 제안한다. 척박한 이 땅의 3D 업종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하여금 우리의 국가신인도를 재게 하라고. 무디스 같은 외국자본의 손에 우리의 국가신인도를 매기도록 놔두지 말고, 외국노동의 손으로 매겨보자는 얘기다. 그것도 씨티은행을 비롯한 미국계 회사 간부로서 몇 억대 고액연봉을 받으며 한국의 거리에서 고급 외제차를 모는 노동귀족이 아닌, 3D 업종에서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평가로 말이다.

월드컵 축구 4강 기록을 내세워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고 우쭐대는 미련한 짓은 이제 그만 두자. 새해엔 생각해볼 게 많다. 한국을 찾아온 가난한 이주노동자들을 넉넉히 품어야 한국의 참 국가신인도가 높아지는 측면도 함께 생각해보자.

(이 글은 한겨레신문 1월 6일자에 실렸던 글을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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