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라도 녀석이 때리거든 피하지 말고 맞아줘. 누군가 돌을 던지거든 꽃을 던져주라고 했다."
"싫어요. 난 차라리 사람들을 갈겨버리고 말지. 이담에 팔뚝에 힘이 붙으면 우리를 업신여기고 괴롭히는 나쁜 놈들을 때려눕히고 발로 차고…."
"야크처럼 앞뒤 재지 않고 돌진하겠다는 거냐?"
"야크가 어떻게 뛰는지 알게 뭐에요. 히말라야 얘기라면 이제 지긋지긋해요. 난 여기 식사동 가구공단밖에 몰라요. 흐리멍덩한 하늘이랑 깨진 벽돌 더미, 그리고 냄새 나는 바람, 나한텐 이게 전부죠. 게다가 집 나간 바람둥이 엄마까지…."(14쪽)
공장 소음과 가구공장의 옻 냄새, 메마른 시멘트 길과 칙칙한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 염색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새빨간 물을 보며 빈속에 헛구역질을 하던 소년은 생각한다.
'내가 죽게 된다면 아마 코부터 썩을 거다. 태어나서 지금껏 냄새 속에 살았으니까. 독한 화학약품 냄새가 나를 멍청하게 만들테지. 어차피 상관없다. 머리를 굴리면 굴릴수록 세상 살기 힘들다니까.'(16쪽)
***"프랑스 소요사태, 남 일 아니라는 생각 들었다"**
작가 김재영의 단편소설 〈코끼리〉는 섬뜩하다.
자기도 모르게 열세살 소년 아카스의 내면 한복판에 앉게 된 독자들은 당혹스럽다. 네팔인 아버지와 조선족 어머니를 둔 소년의 머릿속은 너무 다양한 불행을 봐버려 히말라야처럼 깊게 패였고, 그 주름진 굴곡마다 분출되지 못한 분노가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이민자 2세들의 절망을 마치 흑백화면 밖으로 튀어나온 것처럼 그려낸 영화 〈증오(La Haine)〉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묻는다. 88올림픽 이후 한국에 오기 시작해 어느덧 그 2세들이 10대가 될 정도로 이주노동의 역사는 계속돼 왔지만, 이 땅은 그 2세들에게 '생애 최초의 굴욕과 증오'를 가르치는 곳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2004년 발표 당시 "무결점이 결점"이라는 평단의 극찬을 받은 〈코끼리〉를 표제작으로 최근 단편소설집을 펴낸 작가 김재영(39) 씨를 27일 오후 인사동에서 만났다.
2000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으로 등단한 그는 "백기완 선생의 며느리라는 호칭보다 내 작품으로 말하고 싶다"며 "최근 프랑스 이민자 청년들의 소요사태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며 운을 뗐다. 소설을 위해 2003년 내내 이주노동자를 취재하면서 수많은 삶을 엿본 그다.
***"그들은 돌아갈 곳이 없다."**
"취재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억압된 분노가 나중에 얼마든지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전할 수 있겠다는 예감을 받았다. 우리 사회가 소외된 자들의 고통을 치유할 노력을 하지 않을 때 그 불만이 언젠가는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왜 이주노동자 2세인 소년을 화자로 삼았을까. 야근하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슈퍼에서 음료수 한 병을 훔치며 '가망 없는 인정을 기대하느니 도둑질할 수 있는 강한 심정을 갖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소년을.
"자신들의 정신적 고향이 고국에 존재하는 이주노동자 1세와 그 자녀들은 처한 상황이 다르다. 1세들은 돈을 번다는 목적의식 하에 자발적으로 왔고 돌아갈 곳도 있기에 수난을 참지만 그 자녀들은 다르다. 돌아갈 고향이 없다. 자신이 태어난 곳은 여긴데, 이곳은 겉모습 하나로 자신들을 냉대한다. 그 응어리가 원한과 분노로 쌓인다. 태생적으로 이 사회에 뿌리내릴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더 책임감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소년을 화자로 삼았다."
***책 제목이 '코끼리'인 이유**
"손으로 먹어라. 그래야 서둘러 먹지 않고 과식하지 않는단다." 아버지 말을 못 들은 체하고 나는 젓가락으로 로티를 찢는다. 과식할 음식이나 있냐고 반박하려다 참는다. 늬들은 손으로 밥 먹고 손으로 밑 닦는다면서? 우웩 더러워 놀리는 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버지 손가락에는 등고선처럼 생긴 지문이 없다. 닳아버린 지 오래여서 지장을 찍으면 짓이겨진 꽃물자국 같은 게 묻어난다. 사람들은 지문이 없으니 영혼도 없다고 생각하나 보다. (…) "사실이란 중요하지 않아. 아무도 우리 말을 믿어주지 않으니까." 부정확한 발음으로 한국 말을 떠듬거리는 아버지는 어릿광대를 연상시킨다. 말이 어눌하면 누구나 멍청하게 보이는 법이다.(13쪽)"
작품 내내 아버지를 원망하고 부인하던 소년은 문득 아버지가 '코끼리'같다고 느낀다. 왜 이 '코끼리'가 제목일까.
"코끼리는 맑고 높은 히말라야에서 신성을 중시하는 전통사회에서 살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후미진 공장지대에 와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상징한다. 우리 사회에서 비천하고 무시당하는 이주노동자지만 그들이 원래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다. 그들 역시 코끼리로 상징되듯 인격적이고 존엄한 존재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한국놈들한테도 안 해준 걸 늬들한테라고 해주겠냐?"**
"니들 이 나라가 워떻게 오늘날 여기꺼정 왔는 줄 아냐? 옛날에 내가 공장에서 일할 땐 손가락은 유도 아녔어. 팔뚝이 날아가고 모가지가 뎅겅뎅겅했으니까. 첨엔 촌뜨기라 멋모르고 일했지. 먹고살기 힘들 때였으니깐 인제 한국놈들은 이런 데서 일 안혀.
막말로 씨발 험한 일이니까 니들 시키지 존 일 시킬려고 데려왔간? 아무리 그래도 안전장치는 해줘야 한다고? 늬들도 자르면 피 나오고 누르면 똥 나오는 사람이다, 이거냐? 웃기는 소리들 마. 한국 놈들한테도 안 해준 걸 늬들한테라고 해주겠냐? 아니꼬우면 돌아가. 젠장. 어차피 늬들도 고국서 공장 차리고 사장 되려고 여기 왔잖아? 노동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되는지 눈 똑바로 뜨고 배워가. 다 산 교육이여"(26쪽)
한국인 필용이 아저씨가 이주노동자들에게 던지는 적나라한 말은 이주노동자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억울하면 돌아가라"는 반응을 보이는 적잖은 한국인들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작가는 "우리가 이들에게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이유는 1970~80년대의 그 치열한 노동운동으로도 해결되지 않은 열악한 현장의 고통이 그대로 이들에게 전가됐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사실 필용이 아저씨 뎅겅뎅겅 얘기는 한참 우리 사회가 산업화하며 자본주의 사회로 뿌리내릴 때 얘기다. 그때 마구잡이로 당했던 노동자들의 권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3D업종이라는 이름으로 남았고 한국인들이 외면한 그 자리를 메운 게 바로 외국인노동자들이다.
이주노동자 문제는 최근에 새롭게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기성세대가 겪었고, 계속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문제다. 과거의 유산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전가됐을 뿐, 우리의 노동환경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거다. 난 그렇게 이해했다."
"그래도 그들의 고국에 있는 것보다 여기서 돈 버는 게 나으니깐 그들도 감수하고 오는 것 아니냐"는 반문에 작가는 "그들은 노동하러 온 거지, 돈 뜯기러, 산업재해 당하러 온 것은 아니다. 그들이 건강하게 노동하고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에 남아서 폐인처럼 돼버리면 우리 사회가 그걸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그런 상태로 돌아간다 해도 도대체 한국이란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라고 분명히 말한다.
***한국문학이 외면한 '소외된 타자의 목소리' 건져올린 작가**
"네팔에서 천문학을 공부하다 온 아버지는 별을 연구하는 대신 여기서 하루에 수백 개씩의 전구를 만들었다. 아버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긴 대롱을 입에 대고 숨을 불어넣으면 매일매일 새로운 전구들이 세상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 아버지 입술에서 태어났다.
나달나달해진 폐를 쓰다듬으며 흐린 형광등 아래로 기어들어 온 아버지한테는 짐승 냄새가 났다. 땀과 화학약품과 욕설에 전, 종일 쉬지 않고 일한 고단한 몸뚱이가 풍기는 단내. 이런 아버지와 나는 어머니에게 선물할 고급 블라우스를 사기 위해 간 백화점 현관에서 거부당했다. 지갑안의 돈을 보여줬음에도. 어머니가 기어코 아버지를 떠난 건 그 때문일까.(31쪽)"
이주노동자들은 이제 공장뿐 아니라 농촌, 건설현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육체가 '단물이 빠져' 비명을 내지를 때, '타인의 고통'에 대한 외면엔 한국의 수많은 작가들도 예외가 없었다. 이들의 아우성이 시궁창으로 속절없이 빨려들어갈 때 나서서 묵묵히 건져올리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평소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이를 문학적으로 소화해내고 싶었다. 중국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낯선 문화와 언어 속에 누구로부터도 나를 이해받을 수 없을 때 느꼈던 충격도 계기였다. 내 모든 것이 낯선 타인이라는 날카로운 시선에 상처받는 걸 경험했고,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를 가진 이들이 서로 존중하는 게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꼭 한국 밖에 나가야 세계화가 아니라, 한국사회를 찾아온 사람들이 갖고온 문화로 소통하는 것도 국내에서 경험하는 세계화"라는 적극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소설집에 이주노동자만 그려진 건 아니다.
***"절차적 민주화 됐다지만 수많은 이들의 경제적 고통은 어쩔 거냐"**
386세대인 작가가 〈자정의 불빛〉에서 "과거는 돌이키는 것만으로도 촌스러운 일이고 진보의 상품가치는 이미 추락했다"고 말하는 공인회계사 '개동건'을 그리는 방식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저자가 소위 '후일담 문학'에 대해 갖고 있는 '안타까운' 심정과도 일치한다.
"과거 1980년대 젊은이들의 행동엔 물론 권위주의도 있었고 잘못도 많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이 염원했던 평등과 행복을 향한 꿈과 열정마저 무의미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체제실험이 실패했다고 그 순수함마저 잘못됐고 꿈 자체를 꾸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반대한다. 작품에서 소시민적 삶을 선택했다가 이제는 '세계화된 경제의 경쟁을 위해 약자를 누르고 일어서야 한다'는 개동건의 처참함과 뻔뻔스러움을 우린 어쩔 것인가. 그걸 같이 묻고 싶었다."
'그 뻔뻔스러움'을 발음할 때 차분했던 작가의 언성이 약간 높아졌다.
"우리 사회가 사실 법과 제도적 측면에서 굉장히 민주화됐고 이에 너무 기쁘고 뿌듯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IMF 이후 계속된 부의 양극화로 인해 사회가 얼마나 황폐해졌고 많은 이들이 경제적 고통으로 시달리고 있나. 그로 인해 그 민주화의 성취가 훼손되지 않았나를 늘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코끼리'가 상징하는 '존엄한 존재이고픈 바람'은 현재의 이주노동자들만의 것이 아니다. 1970~80년대 수많은 공돌이, 공순이, 그리고 그에 앞서 독일로 간 광부, 간호사들의 소망이었다. 알고 보면 우리 모두의 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꿈은 유예됐을 뿐 아니라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금 이 땅이 어떤 아이들에게는 '생애 최초의 굴욕과 증오를 가르치는 곳'이 되고 있음을 솜씨있게 보여준 작가의 치열함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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