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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적 거세로 성욕 억제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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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적 거세로 성욕 억제하면?

['성폭력', 제대로 이야기하기·② ]피할 수 없는 실효성·합헌성 논란

지난 20일 전과자 A씨는 전자발찌를 찬 채로 주부 B씨를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그를 살해했다. 재범방지를 위해 부착한 전자발찌는 A씨의 재범을 막지 못했다. '전자발찌 살해사건'을 계기로 성범죄자에 관한 제재수단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화학적 거세' 방안이 가장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화학적 거세는 화학약물을 투여해 성충동을 억제하는 치료법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오는 30일 화학적 거세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아울러 정부는 전자발찌 부착자에 대한 예방·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전자발찌 경보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전담인력을 구성하고, '위치추적법'을 개정해 부착자의 신상정보를 사법당국이 공유한단 계획이다.

하지만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화학적 거세와 전자발찌가 성범죄 예방의 근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또 당사자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점, 만기출소자에 대한 이중처벌이란 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 김황식 국무총리가 2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성폭력 등 사회안전저해 범죄 관련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학적 거세·전자발찌, 실효성 '미지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0년 발표한 '상습적 성폭력 범죄자 거세법에 관한 연구'를 보면 화학적 거세가 성범죄를 완전히 제거한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화학적 거세의 효과는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에만 지속될 뿐이고, 주사를 맞지 않으면 원래대로 복구되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서는 "자발적인 동의 없이 강제로 이루어지는 약물치료를 통해서는 심리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효과 없는 제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남성의 억제 불가능한 성충동만이 성폭력 발생 이유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성폭력 전문 상담소 사례에서 70%이상의 성범죄는 우발적 범죄가 아니라 계획된 범죄라고 지적한다. 또 상당수 성폭력은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나 분노, 소외감의 표출이자 남성다움의 과시라는 설명도 있다. 이 같은 설명은 화학적 거세를 통해 성욕을 억제하더라도 성폭력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전자발찌도 실효성 논란 대상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자발찌는 위치만 감시하는 것이지 행동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라며 "보호관찰관 이외에 경찰과 연계해 대인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전자발찌를 부착한 채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2009년 0명, 2010년 3명, 2011년 15명으로 증가 추세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도 10명이나 다시 성범죄를 저지르다 검거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전자발지 제도는 기존 형벌의 보완재이지 대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재범을 없애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피할 수 없는 위헌 논란

현행 화학적 거세와 전자발찌가 헌법을 위배하는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화학적 거세의 경우, 2008년 법안 논의과정에서 당사자의 자발적 동의 조항이 슬그머니 빠져버렸다. 이로써 화학적 거세는 하나의 치료가 아니라 강제 처벌의 성격을 갖게 됐다. 징역형과 마찬가지로 법원이 판결을 통해 화학적 거세를 결정한다면, 당사자의 동의는 불필요하다는 논리다.

화학적 거세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많지만, 동의를 요하지 않고 강제로 화학적 거세를 할 수 있는 나라는 폴란드와 한국에 불과하다. 미국, 독일,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화학적 거세를 위해서 반드시 당사자 동의를 거쳐야 한다.

전자발찌제도는 만기출소자에게 발찌를 부착한다는 점에서 '이중처벌' 소지가 있다. 한국의 전자발찌는 일종의 '전자 보호감호제' 개념이다. 보호감호제는 재범 방지를 위해 형량을 마치고 만기출소한 사람을 일정기간 격리하는 제도로, 이중처벌 성격을 띤다. 반면 미국 등에서 전자발찌 제도는 '재택 교도소'개념이다. 주로 가석방자에게 부착된다. 사법당국은 형벌기간이 끝날 때까지 부착자를 관리하고 통제한다.

일각에서는 이중처벌 소지를 없애기 위해 외국처럼 전자발찌를 가석방자에게만 부착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가석방을 양산함으로써 성범죄에 대한 실질적 형량을 오히려 낮추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전자발찌 제도가 성범죄자에 관한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졌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화학적 거세와 전자발찌는 어떻게 해도 바람직한 제도로 만들기 어렵다. 가석방자에게만 제재를 시행하면 '처벌 약화' 문제가 생기고, 만기출소자에게 제재를 가하면 '이중처벌' 문제가 발생한다. 사회적 논란이 불가피한 제도들인 셈이다.

▲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4일 서울시 동대문구 서울보호관찰소 내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를 방문, 신형 전자발찌 부착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성범죄 관련 예산은 오히려 '삭감'

실효성·합헌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최근 몇 년간 해당 정책을 꾸준히 확대 시행해 왔다. 문제는 이런 제도가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성범죄 재발방지를 위한 인프라 구성을 고민하지 않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성범죄자 치료재활 예산, 성범죄 관련 교육예산, 아동성폭력 방지 관련 예산은 오히려 삭감됐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여성가족부의 성범죄 관련 예산은 204억1200만 원으로 전년도 예산보다 11.6% 줄어들었다.

특히 아동성폭행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만들었던 초등학생 안심알리미 서비스는 지난해 예산을 한 푼도 배정받지 못했다. 안심알리미는 초등학교 교문에 설치된 중계기가 학생이 소지한 단말기를 자동으로 인식해 등·하교 확인 메시지를 학부모 휴대전화로 전송해주는 시스템이다. 이 서비스는 재작년 25억3000만 원 예산이 책정됐었지만, 지난해 0원이 배정됐다.

당시 한 야당 관계자는 "사회적 공분이 이는 성폭행 사건이 터지면 화학적 거세를 거론하는 여당이 아동 관련 범죄 예산을 전액 삭감시켰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가해자 치료와 교육이 훨씬 큰 효과 보이기도…

캐나다의 정책사례를 보면, 성 범죄자에게 처벌을 강화할 때 보다 치료와 교육을 실행할 경우 훨씬 뛰어난 재범 예방 효과를 나타냈다. 성범죄자 1명을 격리·감시하는 데 드는 비용을 60명에 대한 치료프로그램에 사용함으로써 재정절감 효과도 있었다.

한국에서도 전자발찌 도입 이전에 성범죄자에 대한 근본적 치료법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오고간 적이 있다. 2007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속기록에는 "전자발찌가 아닌 치료나 교육 등 교정프로그램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이에 당시 법무부보호국장은 "전자발찌법 시행까지 1년 6개월의 여유기간이 있으므로, 성폭력 전담치료 감호소 등의 대책을 준비하겠다"고 답했었다. 그러나 치료감호 제도는 전자발찌법이 도입된 후인 2008년 12월이 되어서야 시행됐다.

그마저도 공론화가 덜 된 까닭에 여전히 성범죄자에 대한 치료 및 교육프로그램의 실시, 효과 분석, 개선 방안 등에 대한 연구나 논의는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다. 근본 처방을 실행할 의지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성범죄. 실효성과 합헌성 논란 한 가운데 있는 화학적 거세와 전자발찌 제도만 믿어서는 안 된다. 손쉬운 제재수단이 아닌, 다각적이고 근본적인 성범죄 재발 방지 처방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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