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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왕국' 뒤엔 '제국' 미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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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고이즈미 '왕국' 뒤엔 '제국' 미국이 있다

<해외 시각> 고이즈미 '개혁'의 실체를 벗긴다 <중>

***왕국**

고이즈미의 연극무대를 떠나서 일반 시민들의 삶을 살펴보자. 신자유주의적 장밋빛 대본이 공연돼야 할 이곳에서도 모든 것이 결코 잘 굴러가고 있지는 않다. 고이즈미가 권좌에 앉아 있던 지난 4년 동안 경제는 위축됐으며(GDP가 2000년 510조 엔에서 2004년 506조 엔으로 감소), 국가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2001년 3월 540조 엔에서 2005년 3월 780조 엔으로. 기타 공공부채까지 합치면 1000조 엔이 넘는다), 노동자의 임금은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봉급생활자의 소득이 2005년까지 7년째 계속 감소).

고이즈미는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작은 정부를 얘기하고, 공공부문의 과업을 민간부문으로 옮기며, 규제완화를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민간금융부문을 살리기 위해 엄청난 공적 자금을 쏟아붓고 있으며,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고속철도, 댐, 공항,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공공투자사업을 계속하고 있다(도쿄-나고야 간의 새 고속도로를 만드는 데만도 5조 엔 이상이 투입되고 있다).

고이즈미가 열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이란 실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직, 이미 취약해진 일본의 전통적 고용시스템의 형해화, 임금삭감, 사회복지 비용의 상승 및 복지혜택의 감소를 의미한다. 불안이 만연해 있으며 국민연금 시스템이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젊은 여성들은 결혼을 회피하고, 이에 따라 출산율도 심각하게 감소하고 있다. 100만 가구 이상이 복지연금에 의존해 생존하고 있으며, 200만~300만 가구는 수입 또는 저축이 없는 채 살아가고 있다.

종신고용제는 사실상 사라졌다. 1995년부터 2004년에 이르는 10년 동안 제조업에서 4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들 중 일부는 중국 등 외국으로 옮겨가 버렸고, 일부는 파견직과 시간제 등 비정규직으로 전환됐으며, 일부는 로봇에 의해 대체됐다. 이 10년 동안 비정규직(freeter)은 400만 명으로 2배가 늘었는데 10년 뒤인 2014년에는 1000만 명이 될 것으로 보이며, 특히 35세 이상의 노동인구 5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사실상 일종의 '산업예비군'이다. 고용주는 이들의 건강이나 복지에 대해 아무런 신경도 쓸 필요가 없으며,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들을 마음대로 이동시키고, 착취하고, 관계를 끊어버리고, 해고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규직에 비해 대략 절반의 임금을 받는데 일생 전체로 따지면 4분의 1에 불과하다. 새로운 빈곤층인 셈이다.

또다른 그룹으로 NEET(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족이 있다. 이들은 15~34세의 인구 중 고용돼 있지 않고, 학교에 다니지도 않으며, 훈련도 받지 않고 있는 사람들로, 그 숫자가 무려 213만 명이나 된다. 일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스트레스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직업의 안정성이 떨어진 것은 물론 임금도 삭감되고 있으며 장래 연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세금 부담은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공식적인 실업자 수는 313만 명으로 비교적 적은 편이나 이는 수치심 또는 절망감 때문에 실업자 등록을 하지 않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남성이 맡았던 전일제 정규직이 값싸고 불안정한 여성의 시간제 비정규직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불완전한 고용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반면 1주일 내내 하루 24시간 일하면서 불평하거나 힘들어 하지 않고, 졸거나 아프다고 하지도 않는 로봇의 사용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캐논사의 경우 오는 2007년까지 국내 생산라인의 4분의 1을 로봇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연간 2만2000명이던 자살자의 숫자가 1997년부터 3만 명 이상으로 급증하더니 그 뒤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04년에는 자살자 수가 3만2000명(하루 90명)으로 미국의 2배였는데, 특히 중년 이상 남성의 경제적 이유에 의한 자살이 늘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성공한' 자살 1건당 '실패한' 자살 5건이 있다는 사실이다. 자살미수까지 합치면 연간 2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일본에서 지내다 보면 기차역이나 지하철역에서 너무도 자주 '인명 사고'에 관한 끔찍한 방송을 듣게 된다. 지난 1970~80년대에 회사에 대한 근로자들의 충성과 일체감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일본, 산업전사의 나라 일본이 이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낮은 나라, 소득격차가 가장 큰 나라 중의 하나로 전락했다.

이번 총선에서 일본 유권자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였던 문제는 우정공사 민영화가 아니었다. 유권자들의 관심사는 연금과 복지제도(52%), 경제와 고용(28%), 대외문제 및 국방(9%) 등의 순이었고 우정공사 민영화에 대한 관심은 단지 2%에 불과했다. 총선이 공고되기 전인 7월 6일 요미우리신문은 우정공사 민영화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 비율은 7%로 연금 및 복지에 대한 관심 비율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은 물론 17개의 국민적 관심사 중 16위에 랭크됐다고 보도했다. 우정민영화를 둘러싼 의회의 위기가 총선 소집으로 치닫고 고이즈미가 자신의 민영화 캠페인을 강화할 때쯤 돼서야 과반수를 약간 넘는 유권자들이 민영화를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민영화 법안이 부결될 경우 조기총선을 실시하겠다는 그의 대담한 결정이 나오면서 고이즈미의 인기는 치솟았다.

일본의 복지예산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GDP의 14.7%. 미국은 14.6%이며 OECD 평균은 24.2%). 더욱이 급속한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의 상황에서 2007년경 베이비붐 세대의 대거 은퇴가 예상되고 있어 앞으로 복지예산은 현기증 나는 수준으로 팽창될 게 분명하다. 2004년 현재 평균 연령(median age)이 42.6세이고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9.5%에 달하는 일본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이제껏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선도하는 국가다. 2004년의 복지예산 32조 엔은 이미 연간 조세수입(42조 엔)의 76%에 이르는데 이 예산이 2025년에는 2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앞으로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공적 서비스와 사회적 보호의 질을 떨어뜨림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사회적 보호를 민간 금융기관이나 보험회사로부터 구매하도록 강요하게" 될 것이다. 이번 총선이 치러지기 1년 전에 자민당의 핵심 멤버를 비롯한 다수의 정치가들이 국민연금을 납부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고이즈미가 국민연금의 위기상황이 선거이슈화 되는 것을 애써 회피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더구나 그 자신도 정체불명의 정치적 후원자가 그의 국민연금을 대납한(1970년 그가 의원에 당선되기 전의 일로, 고이즈미는 이 후원자에게 고용된 적이 전혀 없다) 사실에 대해 의회의 추궁을 받은 바가 있지 않은가. 당시 그는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이 있다. 온갖 종류의 회사도 있고, 온갖 종류의 피고용인도 있는 법"이라는 호탕한 말로 위기를 모면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1억 중산층의 소멸,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의 양극화 등 일본사회의 변화를 분석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2005년의 정치적 사변은 바로 이 뿌리 깊은 사회적 질병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제국**

고이즈미의 왕국 너머에는 미국이라는 제국이 버티고 있다.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일본에 대해 우정사업을 민영화하라고 압력을 넣어 왔으며, 이는 오랫동안 일본의 정책변경에 관한 미국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였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 엔화의 대규모 평가절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가 줄기는커녕 계속 늘어가자 미국은 일본이 사회경제 체제의 '차이' 또는 폐쇄성에 의해 '불공정한' 이득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양국 간의 경쟁조건을 공평하게 만들기 위한 이른바 '구조적 장애 개선(Structural Impediment Initiative: SII)' 협상이 1989년에 시작됐다. 당시 일본정부는 이 용어가 일본 내의 문제에 미국이 일방적으로 간섭한다는 인상을 줄까 우려해 '장애(Impediment)'라는 말을 빼고 '구조협의(structural negotiation)'라고 번역했다. 두 번째 협상에서 미국은 자그마치 200개 이상의 개혁요구를 내놨다. 예산, 조세시스템, 기업의 출자에서 토요일에는 일하지 말라는 요구까지 그야말로 오만가지 요구였다. 이에 대해 당시 일본의 한 고위관리는 "(2차대전 후 맥아더의 점령에 이은) 미국의 제2 일본점령에 다름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미국의 일본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장애'를 제거하기 위한 협상은 이후에도 다양한 명칭 아래 여러 차례 시도됐다. 1993년 클린턴 대통령과 미야자와 총리 정부의 협상에 고이즈미는 우정통신상의 자격으로 적극 참여했다. 우정공사, 그리고 관료에 의해 규제되는 일본의 은행 및 금융 시스템은 일종의 무역장벽, 즉 '장애'이며 마땅히 해체돼야 한다는 미국정부의 견해는 당내 반대파를 공격해야 하는 고이즈미 개인의 정치적 목표와 맞아떨어졌다.

2001년 6월 총리가 된 고이즈미는 부시 대통령과 함께 '미일 규제개혁 및 경쟁정책 개선'이라는 이름 하에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협상 대상분야는 숨이 막힐 정도로 광범위한 것이었다. "정보통신, IT, 에너지, 의료기기 및 제약, 금융서비스, 경쟁정책, 투명성, 법제개혁, 상법 개정 및 분배" 등 한마디로 거의 모든 분야가 망라돼 있었다. 고이즈미의 인기가 워싱턴에서 그토록 높은 것은 기꺼이, 모든 힘을 다해 일본을 아메리칸 스탠더드에 맞도록 변화시키겠다는 그의 열성을 미국측이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이즈미의 우정공사 민영화 법안은 미일 양국 정부 사이에 상당히 여러 번 논의됐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일본우정공사가 "오로지 시장원칙에 따라" 민영화돼야 하며, 일본 정부는 우정공사의 예금 및 생명보험에 일체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고이즈미의 정책은 그러한 방향으로의 "중요한 일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4년 2월 미 무역대표 로버트 죌릭(당시 국무부 부장관으로 내정된 상태였다)은 다케나카 일본 대장상에게 편지를 보내 미국은 8월 2일 일본 의회에 제출된 우정공사 민영화가 성사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해 돕겠다고 선언했다. 이 편지 중에는 죌릭이 자필로 쓴 쪽지도 포함돼 있었는데, 여기서 죌릭은 다케나카의 뛰어난 업무추진을 칭찬하면서 필요하다면 도움을 제공하겠노라고 밝혔다. 민감하고도 논쟁적인 일본 내부의 문제에 미국정부가 사실상 내정간섭이나 다름없는 태도로 관여하는 데 대해 비판 여론이 일자 고이즈미는 다케나카 대장상이 그토록 중요한 인물과 가까워졌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답했다. 2004년 9월 뉴욕에서 부시가 이 문제를 거론하자 고이즈미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절대적 이행을 다짐한 것이나 다름없었고, 당연히 부시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이즈미는 이미 막대한 액수의 미 국채를 사들임으로써 미국경제를 안정화시키는 데 엄청나게 기여했다. 우정공사 민영화는 이라크 침공을 비롯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들을 뒷받침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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