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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의 '환상의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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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고이즈미의 '환상의 왕국'

<해외 시각> 고이즈미 '개혁'의 실체를 벗긴다 <상>

다음은 일본 고이즈미 총리의 장기집권의 '비결'을 파헤친, 호주의 동북아 전문가 개번 매코맥 교수의 글이다.

매코맥 교수는 이 글에서 고이즈미가 지난 4년간 실제 개혁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일본 국민들에게 '개혁의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장기집권에 성공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정공사 민영화를 비롯해 고이즈미가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실상은 일본의 대미 예속을 심화시키고 지난 1980년대까지 상대적으로 평등했던 일본 사회를 극단적인 양극화로 몰고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란한 언론플레이와 기형적인 선거구제도 덕택에 지난 9.11 총선에서 압승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개혁'의 구호만 요란한 가운데 일반 시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우리 한국에도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3차례로 나누어 소개한다.

이 글은 영국의 진보적 격월간지 <뉴 레프트 리뷰> 9~10월호에 실린 것을 필자가 내용을 보강해 미국의 진보적 웹사이트 Znet 10월 19일자에 기고한 것이다. 원문 제목은 'Koizumi's Kingdom of Illusion'이며www.zmag.org/content/showarticle.cfm?ItemID=8958에서 볼 수 있다. <역자>

***마술**

약 4년 전, 고이즈미는 소속당인 자민당을 깨는 한이 있더라도 일본을 '개혁'하겠다는 약속으로 총리에 당선됐다. 4년 가까이 지난 지금 고이즈미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 지난 4년간 수치스러울 정도로 개혁은 거의 진전시키지 못했으면서도 또 다시 개혁의 약속만으로 이전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그 자신이 정부의 수반이면서도 스스로를 정부에 대한 개혁세력의 지도자로 부각시킴으로써 인상적인 승리를 거둔 셈이다.

지난 8월 8일, (상원인) 참의원에서 우정공사민영화법안이 17표 차로 부결되자 고이즈미는 (하원인) 중의원을 해산함으로써 9.11 총선이 치러지게 됐다. 당시 자민당 소속 의원 중 37명이 이 법안에 대해 반대 또는 기권을 하자 고이즈미는 조기 총선이라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하면서 일본 국민들에게 자신의 우정민영화 계획에 대해 '찬성'인지 '반대'인지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우정공사 민영화야말로 개혁의 성패를 가를 중요한 시금석이라는 주장과 함께. 그는 총선기간 내내 집요하게 한 가지 주장만을 되풀이했다. 이번 총선은 개혁에 관한 것이며, 개혁의 핵심은 우정공사 민영화라는 것이었다. 참의원의 법안 부결에 대한 대응으로 중의원을 해산한 것은 사실 적법성이 의심스러운 조치였다(이에 앞서 중의원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가결됐음: 역자). 일본 헌법 59조 2항에 따르면, 동일한 법안에 대해 양원의 표결 결과가 다를 경우, 이 법안은 다시 중의원에 회부돼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시키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이즈미는 이 방법에 의한 법안 통과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이즈미는 법안에 반대한 자민당 의원들을 배신자라고 비난했을 뿐만 아니라 당에서 축출하는 한편 총선에는 이들을 꺾을 '자객'후보들을 내보냈다. 이들 중에는 명망 있고 매력적이지만 정치경력은 전혀 없는 여성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고이즈미는 스스로를 16세기 전국시대의 무장 오다 노부나가에 비유하면서 총선기간 내내 노부나가처럼 행동했다. 또 어떤 때는 자신을 갈릴레오에 빗대면서 우정공사 민영화는 지동설의 제기에 맞먹는 혁명적 발상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나아가 갈릴레오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신념을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본의 유권자들은 자객 후보들에, 정치적 신념을 위해 목숨을 내놓겠다는 고이즈미의 결의에, 그리고 '개혁'의 약속에 열광했다.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67.5%였는데 이는 1990년 이후 치러진 어떤 선거보다도 높은 것이었다.

과거 중대선거구제였던 일본의 선거제도는 1994년 이후 소선거구제에 의한 지역대표 300석과 비례대표 180석으로 바뀌었다. 고이즈미의 자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2580만 표(비례대표)를 얻었다(이는 득표율로 38.18%이며 몇 달 전 토니 블레어가 얻은 득표율보다 3%포인트 가량 높다). 그런데도 38%의 득표율로 전체 의석의 61%인 296석을 차지했으며, 연정파트너인 공명당의 31석(890만 표, 득표율 13.25%)과 함께 전체 의석의 3분의 2가 넘는 327석을 확보했다. 전국적으로 자민당에 표가 쏠린 것은 사실이지만, 불교계인 공명당의 종교성향 유권자들의 가세가 없었다면 자민당 후보들이 도시지역에서 승리하기는 대단히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제1야당인 일본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비례대표에서) 2100만 표, 31%의 득표율을 올렸지만 의석은 177석에서 113석으로 대푹 줄어들었다. 특히 지역대표 소선거구에서 민주당의 득표율은 이전 총선에 비해 1%포인트가 줄었을 뿐이지만 의석은 35석에서 17석으로 반감됐다.

일본공산당은 7.25%의 득표율로 의석의 1.9%만을 차지했다. 이 중 지역대표는 단 한 명도 없지만 의석 수는 종전의 9석을 유지했다. 사회민주당(이전의 사회당)은 5.5% 득표로 의석이 6석에서 7석(1.5%)으로 늘었다. 자민당의 '배신자' 중 17명, 그리고 무소속 후보 1명이 의원직 유지에 성공했으며, 이들은 무소속 또는 신생 군소정당의 깃발 아래 국회의 가장 외진 구석에 자리를 차지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일본의 현대정치 역사상 여당이 거둔 가장 위대한 승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는 상당 부분 선거제도의 특이함에 기인한 것이었다. 자민당은 결코 유권자 과반수의 지지를 얻은 것이 아니며, 사실 1963년 이래 과반수 확보에 성공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다음 표는 1994년 선거구제 개혁으로 자민당이 얼마나 정치적 이득을 누렸는가를 보여준다.

<표> 1996년 이후 자민당의 총선 성적

민의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선거구제도가 민주주의의 실현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득표율에 의해서만 의석을 배분한다면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은 183석, 민주당 149석, 공산당 35석, 사회민주당 27석을 갖게 된다. 아사히신문이 이번 총선의 지역대표 소선거구의 득표상황을 분석한 결과 연립정부(자민당과 공명당)의 득표는 3350만 표로 반대표 전체를 합친 것보다 100만 표 가량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9.11 총선이 자민당에게 압승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지만, 유권자들이 고이즈미와 그의 정책에 결정적으로 손을 들어줬다는 일본 언론의 해석은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지난 반세기의 대부분을 자민당이 집권해 오는 동안 야당 진영은 상당한 변화를 겪어 왔다. 현재의 제1야당인 민주당은 기존 정당(자민당과 사회당)의 구 '좌익' 및 '우익' 세력이 1990년대 중반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한데 뭉침으로써 1998년에 현재의 형태를 갖게 된 잡종의 불안정한 연합체다.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명목상 야당으로 나서기는 했지만 우정개혁이라든가(세부사항에서는 고이즈미와 이견을 보였지만) 신자유주의적 개혁 아젠다에서는 기본적으로 자민당과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 심지어 2003년 총선에서는 '개혁' 과정에서 발언권을 확대하려는 일본 재계의 총본산인 게이단렌의 자금지원을 받기도 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고이즈미가 선거를 단 하나의 주제, 즉 우정개혁에 대한 국민투표로 몰아간다는 사실을 간과했으며 톡톡히 그 대가를 치렀다. 민주당은 복잡한 문제들과 여러 정책대안들만 제시했을 뿐 고이즈미가 만들어내려고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에 대한 비판적 통찰이라든가 확실한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민주당 외에 야당 진영에는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이 있다. 공산당은 2차대전 후 득표율이 2~8%를 꾸준히 맴돌고 있으며 사회민주당은 1990년대 초까지는 꾸준히 15%대의 득표율을 유지해 왔지만 자위대의 합헌을 인정하고, 미일안보조약을 받아들이며,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국가와 국기로 인정한 전 지도자 무라야마 도미이치의 치명적 결정 이후 서서히 쪼그라들고 있다. 이밖에 이번 총선과정에서 자민당에서 튕겨져 나와 무소속으로 남게 된 우정개혁의 '배신자들', 그리고 몇몇 신생 군소정당들이 있다. 사회민주당은 1990년대의 정체성 혼란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태풍을 견뎌내고 있으며, 이번 총선에서는 평화와 현법 수호라는 원칙을 지킴으로써 비록 1석이지만 의석을 늘렸다.

최근 일본의 어떤 총선에서도, 나아가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이번 총선만큼 이미지가 좌우한 선거는 없었다. 고이즈미의 노타이 옷차림, 불룩한 머리모양, 도전적인 자세, 그리고 열정적이며 간단명료한 연설 등이 전국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여름에서 총선일에 이르는 동안 고이즈미는 잘 짜여진 여당 선거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선거운동 전략의 핵심은 정장을 벗어던지고 노타이에 줄무늬 혹은 꽃무늬의 셔츠를 입는 것을 통해 보수적인 자민당 이미지와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개인적인 친근감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이에 반해 야당 지도자 오카다 가츠야는 짙은 색 정장에 넥타이 차림으로 전형적 샐러리맨처럼 보였으며, 연설 내용도 성실하기는 했으나 지루했다. 심지어 가라오케 애창곡이 뭐냐는 질문에 가라오케를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는데, 이는 스스로를 외계인이라고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면 고이즈미는 2001년 총선 당시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부른 CD를 발표함으로써 총리직을 거머쥔 데 이어 2003년 영화배우 톰 크루즈를 만날 때는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를 즉석에서 부르는 순발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오카다와 민주당은 고이즈미의 선거전략을 오판했으며, 그의 영리한 이미지와 말솜씨의 파도에 멍청하게 휩쓸려 들어가고 말았다.

자민당으로의 표 쏠림은 도쿄, 오사카와 같은 대도시 지역, 그리고 청년층과 여성 유권자에서 특히 심했는데 이들 지역과 유권자 계층은 최근 선거에서 민주당이 약진하는 기반이었으며, 2003년 11월 총선의 경우 민주당은 이들 지역및 유권자 계층에서 자민당보다 200만 표(비례대표)를 더 얻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 지도자 고이즈미는 야당 지도자 오카다보다도 '더 반(反)자민당적'인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심어주었다.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일본 국민들은 지난 50년의 기간 중 49년 동안 부동의 권력을 누려온 정당, 4년간 권좌에 앉아 있으면서 실제로 이룬 건 없지만 여전히 단호해 보이며 자신에 찬 말을 뱉어내고 있는 지도자에게 다시 한번 변화에의 기대를 건 것이다.

***우정공사**

이번 총선은 우정공사를 반드시 민영화해야 한다는 고이즈미의 고집 때문에 치러졌다. 그렇지만 일본의 어느 누구도 우정공사의 서비스가 불만족스럽다고 말하지 않았고, 고이즈미 자신도 '관에서 민으로'라는 구호 외에는 우정공사 민영화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우정공사는 독특한 기관이다. 전국에 2만5000여 우체국을 거느리고 우편배달 업무를 할 뿐만 아니라 저축 및 생명보험 업무도 하고 있다. 특히 저축 및 생명보험 업무를 통해 우정공사는 세계 최대의 현금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액수는 자그마치 350조 엔(3조 달러 이상)으로 230조 엔의 우편저축과 120조 엔의 생명보험 쳥약금(일본 생명보험 시장의 30%)으로 이루어져 있다. 규모로만 보면 미국 시티그룹의 2.5배, 독일 폴크스방크(도이체 방크의 자회사)의 20배쯤 된다. 일본의 외딴 마을에서 우체국은 중심적 사회기관의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낮은 이자(1%가 채 안 된다)에도 불구하고 민간은행보다는 우체국에 저금을 한다. 우체국의 안정성, 수수료가 싸다는 점, 그리고 우체국에 저금한 돈이 일종의 국가기금이 되어 국가개발 프로젝트에 쓰인다는 생각에서다. 고이즈미의 민영화 계획은 기존 우정공사를 4개의 기관으로 나눠, 2017년까지 10년에 걸쳐 완전히 민영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7년에도 일본 정부는 지주회사를 통해 전체 주식의 3분의 1 이상을 보유하도록 돼 있다.

일본 우정공사는, 특히 그 막대한 저금 및 생명보험 기금 때문에 1970년대에 다나카 가쿠에이가 완성한 이른바 '토건국가' 시스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일본 국민들의 저금 및 생명보험 기금은 대장성에 의해 고속도로 건설, 공항, 교량, 댐 등을 담당하는 다양한 준 공공기관들에 보내진다. 그리하여 사회적 부가 지역간, 사회계층간에 재분배되는 것이다. 다나카와 그 후계자들에 의해 '토건국가'는 권력과 부패의 망을 전국에 확산시켰으며, 정치를 이익 나눠먹기로 변질시켰고, 이에 의한 단기적 이익과 경제성장 촉진으로 정권의 정통성을 유지하게 했다. 자민당의 정치기제가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이러한 시스템이 지역간 부의 불균형을 시정하고 일종의 복지제도, 즉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기능했기 때문이다.

우정공사는 일본의 관료적 개발주의 국가의 핵심요소가 돼, 한편으로는 투자자금이 개발프로젝트에 흘러갈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개발'이 계속되도록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민당, 특히 다나카파의 득표 및 영향력 행사의 수단으로 작용했다. 이 시스템은 또한 각종 공사 등에 아주 실속 있는 일자리들을 갖고 있어, 그런 일자리를 정치파벌 소속원들에게 은퇴 후에 제공했다. 공직에서 우정자금을 주무르던 이들은 은퇴 후에도 이 자금의 혜택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한마디로 대단히 포괄적이고 효율적인 케인즈주의의 변종이다. 이 시스템 덕택에 일본은 종신고용, 보편교육 및 보건, 기업복지, 회사에 대한 충성 등을 실현시키며 경제적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그 당시 많은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경제성장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또한 공적 이익의 추구와 함께 사적 이익을 위한 조작이 끊임없이 행해졌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들어 성장이 둔화되고 급기야 멈춰버리자 천문학적 액수의 국가부채가 쌓이고 각종 부패사건이 만연하게 된다.

한 비평가가 지적했듯이 이러한 토건국가 시스템은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목가적 자본주의(pastoral capitalism)'라고 할 만했다. 노력과 규율, 기술과 정성이 보상을 받고 사회적 연대가 고취된다는 점에서, 이는 노력과 보상이 서로 무관한 채 오로지 투기만이 판 치는 앵글로색슨계의'야수적 자본주의(wild capitalism)'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점차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 자민당 내부의 반대파들은 점차 스스로의 확신을 강화시켜 가고 있었다. 2001년 총리직에 오른 고이즈미는 우정공사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부각시킴으로써 1972년의 '잘못'(고이즈미의 생각에 따르면)을 바로 잡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1972년의 잘못이란 그의 정치적 스승인 대장성 관료 출신의 후쿠다 다케오와 다나카 가쿠에이 간의 권력투쟁, 이른바 '가쿠-후쿠 전쟁'에서 후쿠다가 패배한 것을 말한다. 2005년은 다나카 시스템 추종자들에 대한 고이즈미의 복수의 해였던 것이다.

반(反)관료적 정치의 승리라고 이야기되고 있는 이번 총선결과는 사실은 관료적 지배를 굳게 신봉하는 대장성의 승리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대장성은 고이즈미의 개혁과제에 포함되지 않은 정부부서일 뿐만 아니라 낙하산 인사와 이권개입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번 총선에서 고이즈미의 압승은 일본 내 권력투쟁에서 그의 정치적 스승인 대장성 파벌의 권력회복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다나카적 국가가 내세웠던 분배 위주, 평등지향적인 원칙을 지지했던 이단자들을 자민당에서 축출함을 의미한다. 심지어 고이즈미는 무심코 스스로 일본 개혁의 필수과제라고 주장해 왔던 우정공사 민영화 법안을 읽어본 적조차 없다고 인정했다.

고이즈미와 자민당이 우정공사 개혁에 모든 것을 건 데에 비하면 이번 총선에서는 우정공사 민영화에 대한 진지한 검증은 말할 것도 없고 이렇다 할 토론조차 없었다. 예컨대 벽지나 오지에 대한 우편배달의 질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편요금이 크게 오르거나 다른 문제점은 없을 것인가, 전 국민의 수십 년에 걸친 저축을 국제금융시장에 노출시켰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토론이나 검증이 없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앞으로 우편배달이 계속 국영으로 남을 것인지, 민간기업이 담당할 것인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의 피땀이 어린 우정공사 보유 현금자산의 안전성은 이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선거 기간 동안 고이즈미는 의도적으로 이 문제를 회피했고, 야당과 언론도 이 문제를 이슈화하지 못했다. 우정공사 민영화가 일본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주장은 거의 현실성이 없는 것이다. 일본의 민간은행들은 현재 기업의 자금수요보다 훨씬 많은 자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업의 자금수요도 사실상 미약하고, 주요 대기업들은 충분히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민영화된 금융기관이 무슨 이유로 이자가 0%에 가까운 국공채에 자신의 자금을 투자하겠는가(더욱이 이미 105조 엔 가량의 국공채를 보유하고 있는 마당에)? 하지만 우정공사가 국공채를 더 이상 사주지 않는다면 채권 가격이 급락하든가 아니면 이자율이 급등해 엄청난 피해를 초래할 것이다. 1987년 일본국철 민영화의 사례, 즉 모든 부실자산을 털어버리고도 민영화 이후 엄청난 규모의 부채가 계속 늘어가고 있는 사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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