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아이가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케이프타운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한 흑인아이와 수도에 사는 부자아빠를 둔 다른 백인아이. 이 둘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가난한 흑인아이는 1살 이전에 죽을 확률이 7.2%이고 평균 1년도 안 되는 교육을 받는 반면, 부유한 백인아이는 1살 이전에 죽을 확률이 3%이고 대략 12년의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백인아이는 아버지처럼 쉽사리 부자가 될 것이고 흑인 아이는 찢어지게 가난한 아빠가 될 것이다. 물론 스웨덴 쯤에서 태어난 보통의 아이는 이 둘 모두보다 훨씬 더 부유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 세상은 역시 평등하지 않으며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어떤 보고서가 이 두 아이를 비교하며 시작한다면 꽤나 삐딱한 입장인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놀랍게도 세계은행의 2006년 <세계개발보고서>의 첫머리다.
***양극화라는 화두와 세계은행**
바야흐로 양극화가 세계의 화두가 된 듯하다. 부자와 빈자의 격차가 점점 확대되는 이 슬픈 경향이 선ㆍ후진국을 막론하고 전 세계에서 심화되고 있고 국가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위기와 구조조정을 거치며 심화된 양극화로 걱정이 태산인 우리에겐 어쩌면 위안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콧대 높은 경제학자들과 국제기구들도 전 세계에서 이 불쾌한 변화에 눈감고 있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세계은행은 지난 9월 '공평함과 발전(Equity and Development)'라는 제목의 <세계개발보고서(World Development Report)>를 펴냈다.
자유화와 개방을 통한 성장, 그리고 그를 통한 빈곤의 해결을 고집해오던 세계은행은 몇 년 전부터 소득분배의 중요성과 빈곤층을 위한 성장(pro-poor growth)을 이야기해왔다. 그들은 마침내 올해 참고문헌만 27페이지가 달린 320페이지짜리인 이 보고서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크게 3부로 이루어진 이 보고서는 1부에서 세계에 만연한 심각한 기회 불균등의 현재 상황을 살펴본 후, 2부에서 기회의 불평등이 왜 심각한 문제인지를 검토하고, 3부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공공정책들을 제안한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1990년대 이후 발전되고 있는, 분배와 성장 간의 관계에 대한 여러 경제학 연구들을 따라 "기회의 균등과 경제발전의 상호보완성"을 힘주어 역설한다. 그 메시지는 무척이나 뚜렷하다. 불공평이 심각한 나라에서는 경제성장이 저해될 수밖에 없으며 성장과 빈곤의 해결을 위해 어떻게든 불공평을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때에 마치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 같지 않은가. 평등이니 분배니 하는 단어만 나와도 눈을 흘기는 사람들은 특히 이 보고서의 탐독을 권한다. 거액의 돈을 들이는 세계은행의 보고서는 그 유려한 문체로도 유명하니 영어공부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불공평한 세계, 그리고 그 해악**
세계가 불공평한 곳이라는 아픈 진실은 아무래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보고서가 보여주듯, 현실에서는 가족의 배경, 성, 인종, 혹은 태어난 국가 등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요인들이 개인의 삶이 행복할 것인지 여부에 무척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같은 개도국 중에서도 이집트의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유아기에 기본적인 예방접종을 받지만 차드의 아이들은 약 45%가 접종을 받지 못하며 각국 내에서도 소득수준에 따라 그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물론 선진국과 아프리카의 후진국의 차이는 더욱 엄청나다. 전염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이 건강한 아이들보다 더 힘든 삶을 살게 될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나아가, 이렇게 갈라진 현실은 별반 나아지지 않고 있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기술변화 때문인지 세계화 때문인지, 혹은 다른 무엇 때문인지 소득의 격차가 더욱더 악화되고 있다.
이웃에 눈을 돌릴 줄 아는 착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음아파 할 일이지만, 보고서는 이러한 불공평함이 왜 심각한 문제가 되는지 여러 사례를 통해 친절하고도 자세하게 보여준다.
먼저 시장이 완전하지 않은 현실의 경제에서 권력과 부의 불평등은 자원의 비효율적인 배분과 낭비를 낳아서 경제성장을 가로막는다. 보통 가난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이들은 좋은 계획이 있어도 돈을 빌리기가 훨씬 어렵듯이 금융시장은 언제나 불완전하며 토지나 교육과 관련된 시장들도 온갖 불확실함과 차별들로 인해 완벽하지 않다. 많은 연구들이 이미 잘 보여주었듯이 이런 현실에서는 보다 평등한 부의 분배와 기회의 균등이 경제의 효율성을 높여 성장에 도움을 주게 된다.
세계은행이 지적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경로는 경제적, 정치적 불평등이 효과적인 제도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심각한 부의 불평등은 사회 전체의 발전을 촉진하는 공정한 경제정책을 가로막고, 보다 많은 사회구성원이 투자와 혁신을 늘이는 데 걸림돌이 된다.
실제로 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들은 흔히 정치적으로도 소외되어 스스로를 위한 정책을 위해 압력을 가하기 어려운 법이다. 중산층이 사라지고 부가 집중되어 부자들이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한다면 이들은 당연히 모두를 위한 재분배정책이나 공평함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들에 딴지를 걸 것이다. 당장 우리 주변만 보더라도 땅 가진 자들이 부동산투기 억제책에 한사코 저항해왔으며, 기세등등하던 정부의 정책도 언제나 돈 있고 빽 있고 힘 있는 이들 앞에 꼬리를 내리곤 하지 않던가.
***불공평에 맞서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러한 불공평함의 해악은 남미와 아프리카 등 많은 개도국에서 더욱 심각하며, 결국 전 사회를 저성장과 불공평함의 악순환이 지속되는 불평등의 덫(trap of inequality)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보고서는 여러 가지 적극적인 노력들과 정책들을 통해 기회와 경쟁조건을 균등하게 만들어야(level the playing fields) 한다고 강조한다.
우선 사람들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과 관련된 기회의 불균등을 해소하기 위해, 아동의 보건과 포괄적인 교육, 그리고 의료를 확충하고 사회적 안전망의 확립과 보다 공평하고 효과적인 조세개혁이 필요하다. 이 모두 돈이 드는 일이겠지만 정부가 몇몇 특권층이 아니라 진정 시민들을 위해 일한다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보고서는 또한 법질서를 보다 공명정대하게 세워서 공평함이 사회적 규준(norm)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특히 보다 공평한 토지개혁을 도입할 것을 촉구한다. 나아가 사회는 도로, 전기, 수도 등 여러 인프라스트럭처를 보다 공평하게 제공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공공서비스의 민영화가 능사만은 아닐 것이며, 역시 중요한 것은 공공의 이익을 해치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칫 강력한 행위자에게 지배당할지도 모르는 시장 자체의 불공정성과 비효율성을 교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금융시장을 보다 활성화하고 보다 많은 이들이 금융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노동시장에서도 유연성과 노동자 보호의 적절한 균형이 요구된다. 나아가 상품시장의 공정경쟁과 지역의 균형적인 발전, 그리고 거시경제의 주의 깊은 관리도 공평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지적한다.
보고서의 정책제언들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세계적 차원에 관한 것이다. 보고서는 점점 갈라지고 있는 세계를 한데 묶기 위해 국내적인 정책뿐 아니라 국제적인 노력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원칙이 실제로 많은 개도국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고 선진국으로의 이민의 일시적 확대, 선진국 상표를 보호하지 않는 제네릭 의약품의 사용 허가, 선진국의 과도한 농업보호 정책의 변화, 빈국에 대한 원조 확대와 그 효과적 집행 등을 제언한다.
세계은행이 국제적 거버넌스에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고려하면 이러한 제안들은 상당히 진보적인 것으로 들린다. 에필로그에서도 쓰고 있듯 세계은행은 정책과 제도의 개혁을 통해 불평등의 덫을 깨고 불공평-저발전의 악순환을 보다 공평한 성장의 선순환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도 결국 누군가가 만들어가는 것"이며 "다른 그룹이 너무 강력하지 않다면 어떤 그룹도 약한 것은 아니다"라는 구절은 좀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2%, 아니 2%보다 좀더 부족한**
이쯤 되면, 워싱턴 컨센서스에 경도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공평함과 분배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세계은행의 전향적인 자세에 박수를 보낼 만도 하다. 한 언론은 이 보고서를 혁명적인 내용이라고 환호하기도 했으며 많은 이들은 이를 세계은행의 가장 진보적인 연구로 치켜세운다. 그러나 여전히 보고서를 읽고 나면 아쉬움도 적지 않다.
먼저 결과가 아니라 기회의 균등을 의미하는 공평함(equity)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리 명확하지는 않다. 물론 능력과 노력의 중요성, 그리고 재분배의 난점을 고려할 때 소득과 같은 결과의 평등 대신 경쟁조건의 균등화를 강조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보고서도 인정하듯 기회의 균등을 측정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나아가 소득의 불평등이 결국 그들이 강조하는 기회와 자산, 그리고 정치적 영향력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을 고려하면 결과의 불평등에 대한 고려와 그 개선을 위한 노력은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또한 심각한 기회의 불균등을 가져온 원인 중 하나가 바로 1980년대 이후 IMF, 세계은행 등이 스스로 제언했던 구조조정 정책이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개도국 정부들이 구조조정을 배경으로 보건과 공적 교육에 대한 지출을 크게 줄였는데 이것이 유아사망률과 빈곤의 악화로 이어졌으며, 위기로 이어진 금융자유화와 개방도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고 보면 아직 세계은행의 반성과 회개는 충분하지는 않은 듯하다.
보고서가 제시하는 정책들도 몇몇 참신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귀에 익은 레퍼토리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노동시장의 규제 완화나 금융시장의 경쟁 강화, 그리고 사적인 재산권을 잘 보호해서 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 등은 오랫동안 들어오던 것이다.
그러나 재산권 보호와 기회의 균등은 갈등의 소지가 있으며, 세계은행의 기대와는 달리 모든 이들을 위한 투자환경 개선과 약자의 능력고취(empowerment)라는 발전전략의 두 원칙도 서로 상충될 수 있다. 나아가 보고서는 정작 중요한 정치적 역관계에 대해서는 자세한 분석을 회피한다.
기적의 모델인 동아시아의 토지개혁이나 정부의 경제개입은 실제로는 사적 재산권을 어느 정도 왜곡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특정한 역사적, 정치적 조건에 기초한 것이었다. 대만이나 한국의 성공적인 토지개혁도 부분적으로는 강성했던 진보세력과 외부 사회주의의 위협이 기득권층을 억누를 수 있게 해주었다. 아이러니컬하지만 중국 등 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보여준 균등한 초기조건이나 높은 교육수준 등도 혁명의 유산이지 않은가.
결국 공평한 사회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더 많은 참여와 실천, 그리고 이에 기초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균등화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기자회견장에서 쿠바혁명을 언급한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보고서의 저자들은 시장을 전복하는 격변 대신 유럽의 역사가 보여주듯 민중의 힘이 강화되어 정부의 정책이 더 진보적으로 바뀌는 점진적인 변화를 이상적인 발전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의 많은 가난한 국가들에서 그런 변화를 기대하기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세계개발보고서>가 던지는 교훈**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보고서는 너도나도 양극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도 무척 시사적이다. 경제의 구조변화와 심각한 소득분배의 악화가 기회의 균등과 사회계층의 이동가능성을 얼마나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라. 이제 누구든 사회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가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출발선의 차이가 그대로 결과의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사회안전망의 확충과 취약한 노동자의 보호, 금융시장의 공평성 강화, 교육기회의 확대, 그리고 부의 불평등 완화 등의 제언들은 우리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어떻든 2006년 <세계개발보고서>는 실패한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고민과 노력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이 보고서가 발간되기 몇 달 전 부시가 지명한 폴 월포위츠가 세계은행의 새로운 총재가 되었는데 많은 이들이 그 임명을 반대한 이 네오콘의 거두도 보고서의 발간을 가로막지는 못한 모양이다.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도 발간사에서 보고서의 의의와 기회균등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 세계은행 보고서의 겉표지는 멕시코의 민중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알라메다 공원의 일요일 오후의 꿈(Dream of Sunday Afternoon in Alameda Park)'이라는 벽화이다.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귀족과 아이들 모두 실제 역사적 인물이라는 8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즐겁게 한데 어울려져 있는 폭 15미터의 대작이다.
고난에 찬 조국의 혁명의 역사를 힘차게 그려냈던 화가는 아마도 그런 꿈을 꾸었을 것이다. 본문의 내용과 꽤나 어울리는 작품인지도 모르지만, 그 꿈이 단지 꿈이 아니기 위해서는 보고서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땀과 노력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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