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대구지법은 "피고인 학교법인과 교장·담임교사·가해자 부모는 1억3400만 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대법원은 앞서 지난 6월 28일 상고심에서 가해학생 서 군과 우 군에게 각각 장기 3년에 단기 2년 6개월, 장기 2년 6개월에 단기 2년의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판결을 이틀 앞둔 지난 14일 대구시 수성구에 있는 승민이네를 찾았다. 승민이의 부모는 현직 교사다. 어머니 임지영 씨(경북 영천 금호중학교 교사)는 개학 준비를 위해 방학 중에도 학교에 출근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 권 모 씨(경북 안동 모 고등학교 교사)는 최근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남은 큰 아들과 막내 아들을 가슴에 묻은 아내와 함께 하기 위해서다. 거실 한쪽에는 그동안의 교직생활을 증명하는 물품들이 쌓여 있었다.
▲ 고 권승민 군의 방에 놓인 영정. 어머니 임지영 씨는 매일 아침 이곳에서 기도를 한다. ⓒ프레시안(이명선) |
"아빠, 자살하면 기분이 어떨까?"
지난해 11월 초 승민이는 아버지 권 씨에게 "아빠, 자살하면 기분이 어떨까?"라고 물었다. 권 씨는 평소 독서량이 많은 승민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TV를 보다 나온 말이었고, 심각하게 물은 것도 아니어서 지나가듯 흘려 들었다.
그로부터 50일 후 아버지를 닮아 착하고, 거짓말할 줄 모르고, 꾀부릴 줄 모르던 14살 승민이는 아파트 7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애들이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절 괴롭혔어요. 매일 라면을 먹거나 가져가고 쌀국수, 용가리, 만두, 수프, 과자, 커피, 견과류, 치즈 같은 걸 매일 먹거나 가져갔어요." - 승민이의 유서 중 |
부부는 '제발,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승민이의 유서를 공개했다. 유서를 통해 드러난 폭행·갈취·고문 등은 중학생의 행동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잔인했다.
승민이는 친구들에게 라디오 전원선에 목이 묶인 채 끌려다녔고 화장실에서 물고문을 당했다. 게임 캐릭터의 능력치를 키우라는 협박도 이어졌다. 그러나 승민은 보복이 두려워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유서에 "원래 진실을 말해서 우리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다"고 남겼다.
권 씨는 "교직 생활 20년이지만, 우리 아이처럼 당한 경우는 처음 봤다"며 "교사인 우리도 감을 잡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가해자는 완벽하게 아이를 괴롭혔고, 피해자인 우리 아이는 완벽하게 그 사실을 부모에게 숨겼다. 그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아이의) 자살을 못 막았다"며 가슴을 쳤다.
▲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임지영 지음, 형설Life 펴냄) ⓒ형설Life |
최근 임 씨는 승민이가 떠난 지난해 12월 20일의 사건과 학교폭력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형설Life 펴냄)를 출판했다. 그는 책을 낸 이유에 대해 "승민이 사건으로 뉴스와 대책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학생 자살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며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지속된 구타의 흔적"
"새파란 멍, 초록색 멍, 그리고 불그레한 색, 노란색으로 변해 가는 멍 자국으로 민이의 엉덩이에서 허벅지까지 하얀 살이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 43쪽)
임 씨는 시신 검안 과정에서 확인한 승민이 몸의 멍을 보고도 아들이 폭력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검시관은 "오랫동안 지속된 구타의 흔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진짜 꿈 같았다"며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가해학생들은 직접 구타하는 것 외에도 '요즘 안 맞아서 영 맛이 갔네', '문자 답 늦을 때마다 2대 추가', '내가 죽일 거니까 혼자 디지지 마라', '물속에 처박자' 등 수시로 문자를 보내 승민이를 협박했다. 승민이는 죽기 전날까지도 괴롭힘을 당했다.
"오늘은 12월 19일, 그 녀석들은 저에게 라디오를 들게 해서 무릎을 꿇리고 벌을 세웠어요. 그리고 5시 20분쯤 그 녀석들은 저를 피아노 의자에 엎드려 놓고 손을 봉쇄한 다음 무차별적으로 저를 구타했어요. 또 제 몸에 칼등을 새기려고 했을 때 실패하자 제 오른쪽 팔에 불을 붙이려고 했어요. 그리고 할머니 칠순 잔치 사진을 보고 우리 가족들을 욕했어요. 저는 참아 보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 승민이의 유서 중 |
권 씨는 "눈물이 나서 도저히 읽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애어른이라고 해야 하나. 자기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가려다 보니, 나중에 감당이 안 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듯 애써 승민이를 이해했다.
"우리 아이가 얼마나 죽기 직전까지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그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많은 결심을 하고, 많은 포기를 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잠 못 이루면서 그 생각을 했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권 씨는 밭은 숨을 내쉬더니 "잠깐 나갔다 오겠다"며 일어섰다. "걱정되니 휴대폰을 들고 가라"는 아내의 말에 그는 "금방 온다"며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 가해학생들이 고 권승민 군 폭행에 사용한 물건 ⓒ연합 |
"한 학교에서 학교폭력 희생자가 두 명, 우연 아니다"
대구시 수성구 'ㄷ'중학교에서는 지난해 두 명의 학생이 자살했다. 승민이가 자살한 12월에 앞서 7월, 같은 학년의 여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
보영(책에서 사용한 가명)은 왕따를 당하는 학생을 대신해 익명으로 교사에게 편지를 썼다. 교사는 이를 반 학생 전체에게 벌을 주는 등 공개적으로 처리했고, 편지를 보낸 사람이 보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화가 난 몇몇 학생들이 보영이를 괴롭혔다. 다음날 보영이는 자살했다.
보영이가 죽은 후 학교는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임 씨는 "학교가 1학기에 학생이 죽었는데 2학기 개학 후에도 학생상담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때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관심을 더 기울였다면 승민이는 구제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승민이가 1학기 때보다는 2학기 때 집중적으로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에 보영이 사건 후 학교와 교사가 적극적으로 학생 상담을 했다면 승민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임 씨는 "한 학교에서 학교폭력으로 두 명이나 희생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며 "그렇기 때문에 학교 측 책임이 크다"고 비판했다.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한 학교, "정신병자 같다"
임 씨는 또 사건 발생 후 학교와 담임교사가 보인 태도에 분노했다. 학교는 승민이가 집에서만 맞았다고 주장하며 집단 괴롭힘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는지 몰랐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경찰조사 결과 승민이가 교실에서뿐 아니라 다른 반에서도 구타를 당하고, 이동할 때마다 늘 심부름을 했다는 학생들의 증언이 나왔다.
얼마 전부터 부부는 학교폭력 피해로 자살한 학생 가족들과 지속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 대부분이 사건을 대하는 학교의 태도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고 한다. 학교가 학생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면서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하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권 씨는 올해 4월 발생한 경북 영주 중학생 자살 사건을 예로 들어 "학교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 전부 다 정신병자 같다"라며 "아예 노골적으로 같이 공모해서 (사건을) 다 덮는다"라고 성토했다.
중학교 2학년 이 모 군은 지난 4월 16일 경북 영주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이 군은 유서에 자신을 폭행한 학생들의 이름을 남겼으며,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전 군 등 세 명은 폭행 사실 대부분을 시인했다. 가해학생들은 이 군을 연필로 찌르거나 주먹으로 때렸으며, 얼굴에 뽀뽀를 하고 성기를 만지는 등 강체추행도 서슴치 않았다. 숨진 이 군은 지난해 5월 정서행동발달 선별 검사 결과 자살위험도 수치 고위험군 판정을 받았다.
자살한 이 군의 어머니는 당시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아들은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자살한 게 아니다. 유서에 있듯 무자비한 폭력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학교는 숨진 학생은 자살 고위험군이란 것을 부각시켜 학생 관리에 소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승민이 엄마라 죄송합니다"
승민이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은 원인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정부는 '학교폭력 예방 대책'을 발 빠르게 내놨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학생들은 죽어 갔다. 몇 명의 학생이 죽었는지 숫자를 헤아리는 것조차 무의미해졌다.
학교 교무주임인 임 씨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종종 교육청에 간다. 승민이 사건 이후 교육당국은 회의 때마다 학교폭력 대책을 논의하라고 지시했다. 임 씨는 이런 지침이 '면피용'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는 "'회의 때마다 저 때문에 죄송합니다'라며 고개 숙인다"고 말했다.
"아마 많은 선생님들은 우리 애 때문에 힘들다고 말할 겁니다. 왜냐하면 학교로 정말 많은 공문들이 내려오거든요. 한번은 '학교폭력 대책 교사 연수'를 갔는데, 한 교사가 '학교폭력 공문 때문에 미치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정말로 반성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가 생긴 것 자체가 정말 교사들의 책임이예요."
권 씨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일선 교사들"이라며 "폭력에 대한 교사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학교폭력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강조했다. 그는 또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대책을 마련해줬다면 아이들이 왜 죽었겠는가"라며 승민이 사건 이후 발생한 학생 자살 사건에 대해 베르테르 효과라고 보도한 몇몇 언론을 비판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정을 내린 게 고작 남을 따라하는 심리 때문이겠느냐는 게다. 폭력에 시달린 아이들의 상처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보도 태도라는 것.
▲ 고 권승민 군은 만화를 즐겨 그렸다. 평소 철학과 역사 책을 즐겨 읽었던 그의 꿈은 검사였다. ⓒ프레시안(이명선) |
경쟁 위주의 교육이 문제… "스펙, 돈으로 해결할 수 있어"
현직 교사인 부부는 지금과 같은 학생 폭력과 자살은 경쟁 위주의 교육체계에 원인이 있다고 밝혔다. 경쟁에서 뒤쳐진 학생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권 씨는 "과거와 달리 지금 대입제도가 내신과 수능을 모두 잘해야 한다"며 "교육과학기술부는 과목이 줄어 학생 부담도 작아졌다고 하지만, 열 과목을 시험 보나 네 과목 시험 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과목을 줄여서 부담을 없애겠다고 한 정책이 지금은 학생들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는 비판이다.
스펙으로 결정되는 입시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행 입시 제도에서 학생들의 인성은 지원서에 적힌 스펙으로 평가된다는 게다. 임 씨는 "스펙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돈이 있으면 사실 (스펙 쌓기가) 쉽다"고 말했다. 특히 '경제적 격차가 학력 격차로 이어지는 교육 현장을 목격하면서 교사로서의 자존감도 떨어지고 있다'고 고백했다.
판결은 나왔지만…
지난 16일 법원의 판결로 승민이의 죽음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이 명확해졌다. 19일 오후 어머니 임지영 씨와 추가로 전화 인터뷰를 했다.
임 씨는 손해배상 소송 결과에 대해 "학교폭력에 대한 학교와 교사 측, 가해학생에게 책임을 물었는데 어느 정도 인정은 됐지만, 교육청과 대구시의 책임은 기각됐기 때문에 완전히 받아들인다고 말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재심 청구 등 향후 법적 절차에 대한 질문에 임 씨는 그저 "고민 중"이라고만 답했다. 판결을 앞두고 긴장했었는지, 임 씨는 이틀 동안 먹을 것을 목으로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문득 베란다를 내다보니 풀이 자라고 있더라구요. 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며 내 새끼는 무슨 생각을 하고 뛰어내렸을까. 그때 무슨 생각 했을까. 혹시 그때 엄마가 와서 자기를 구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힘든 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겠죠. 평생 살면서 여기를 가도 생각나고 저기를 가도 생각날 겁니다. 죽을 때까지 우리 가족들에게 승민이는 지울 수 없는 존재예요. 시간이 지난다고 절대 잊힐 것 같지 않습니다. 그냥 감수하면서 사는 거죠. 그러나 다른 사람은 이런 일을 안 겪게 해야죠. 그게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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