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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혼란으로 미국의 이라크구도 깬다"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8> 이라크 저항세력의 투쟁전략

이라크 반미저항세력의 투쟁은 극단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9월14일 폭탄을 가득 실은 차량들이 목표물을 향해 몰고 들어가 적어도 150명을 죽이고 230명쯤을 다치게 만들었다. 14일 하루 동안에 자살폭탄테러에 동원된 것으로 확인된 차량만도 11대에 이른다. 이런 연쇄 자폭테러는 이라크 사태의 비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저항세력들은 어떤 전략 아래 그러한 극한투쟁을 벌이는가. 비평가의 말대로 허무주의적 저항인가. 보다 근본적으로, 전투적 무슬림들은 테러전술로써 슈퍼 파워 미국을 이슬람 땅에서 몰아낼 수 있겠는가. 어지러운 시대에 이런 물음들은 꼬리를 문다.

***"지하드로 누가 죽는가. 이게 지하드냐?"**

9.11 4주년을 맞아 미국과 영국은 새삼 테러 공포에 떨고 있다. 주요시설물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9.11 뒤 4년 동안의 상황은 부시-블레어의 시각에선 '테러와의 전쟁' 또는 '전세계 극단주의와의 투쟁'이지만, 알-카에다의 입장에선 지하드(jihad, 성전)다. 현재 시점에서 이슬람권과 관련된 테러의 주요배경은 이라크다. 이슬람 민중들은 미국이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노려, 부수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안보 이익을 안겨주려, 이라크를 침공해 들어갔다고 여긴다.

영국의 정보기관 M15는 내부 보고서에서 영국에 대한 국제테러의 위협수준을 언급하면서 "영국 극단주의자들의 주된 이슈는 이라크"라고 잘라 말했다. 이는 토니 블레어 총리를 비롯한 영국 관리들이 "7월의 두차례 런던 테러는 이라크 침공과는 관련 없다"고 말한 것과는 달리 솔직한 분석이다. 전투적 무슬림들이 벌이는 반미 지하드 현장 가운데 현재진행형으로 가장 뜨거운 곳이 이라크다. 유럽의 전투적 무슬림들에게 이라크는 서구세력과 이슬람이 싸우는 첨예한 전선으로 비쳐진다.

이라크 반미 지하드는 그러나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하드로 누가 죽느냐다. 4월말 이래 3개월 동안 이라크 저항세력은 차량폭탄테러를 비롯한 여러 수단으로 1,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였다. 대부분이 친미 이라크 정권의 '협력자들과 하수인'들인 정부관리, 군, 경찰, 또는 그 지원자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애꿎게도 일반 민간인들의 희생도 컸다. 이라크 테러주역 아부 무사브 자르카위의 테러전술에 이라크 민초들이 '부수적 피해'를 입는 일들이 늘어나자, 반미감정이 높은 수니파 사람들 가운데 "이게 지하드냐?"며 등을 돌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미국의 앤소니 조스 교수(성요셉대, 정치학)는 게릴라전쟁사에 관한 책을 여러권 써냈다.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저항세력의 차량폭탄전술을 가리켜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전술이고 뭐고 없는) 터무니없는 폭력'(wanton violence)이고 패자가 하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얼핏 보기에 이라크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전략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현대사에서 성공적인 여러 저항세력들과는 달리 정치세력화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저항세력에겐 반미투쟁의 장기적인 전략이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미 육군대학 전략연구소 스티븐 메츠 연구원도 웹 사이트에 실린 한 논문에서 이라크 저항세력의 무차별 차량폭탄테러를 가리켜 '참으로 허무주의적(nihilistic) 저항'이라 비판했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이라크 저항세력이 이렇다 할 정치 이데올로기도 보이지 않고, 정치적 대변인도 두고 있지 않다는 점도 지적한다. 게릴라전쟁에서 민중지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마오쩌뚱의 물(민중)-고기(게릴라)론에 비춰보면, 이라크 저항세력은 전략적 오류를 저지르는 듯이 보인다. 과연 그럴까.

***"혼란으로 미국의 이라크구도 깬다"**

역사의 기록은 뛰어난 전략전술가들도 무장투쟁에서 테러가 때때로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마오쩌뚱은 물과 고기론으로 민중지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혁명은 만찬이 아니다"라며 피의 테러를 인정했다. 호치민의 리더십 아래 베트콩도 베트남의 친미 정부관리들을 겨냥한 테러전술을 선택적으로 이용했다. 그것은 어느 쪽으로 붙을까 눈치를 보는 민초들에게 베트콩에 대한 지지를 강제로 끌어내는 효과가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아랍 게릴라들을 이끌며 터키군의 후방을 괴롭혔던 영국군 장교 T.E. 로렌스는 "반란군은 민중들로부터 2%의 적극적인 지지와 98%의 소극적 지지만 얻으면 된다"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이라크 저항세력이 얼핏 보기에 마구잡이 차량폭탄테러를 감행하는 것은 무엇을 노린 것인가. 여러 이라크 전문가들의 견해를 모아보면, 저항세력의 전략은 이라크를 혼란과 무정부상태, 그리고 내전상태로 빠져들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라크전역의 혼란은 이라크 국민들로 하여금 무능력한 이라크 친미정권을 불신하도록 만들고, 미국의 이라크 지배전략에 타격을 입히는 결과를 낳게 마련이다.

이라크 저항세력의 주축은 수니파고, 그들의 폭탄차량 테러에 희생당한 사람들은 주로 시아파와 쿠르드 족이다. 잦은 폭탄차량 테러로 혼란을 부추기고, 이라크 종족 사이의 내전 양상으로 발전시켜, 2006년도에 정식으로 출범하는 친미 이라크 정권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저항세력의 전략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무차별 테러를 보면서 일부 온건 수니파 사람들도 저항세력에게 등을 돌리는 모습이다.

제2차 세계대전 뒤 그리스공산당이 친미 아테네 정부군에 맞선 무장투쟁에서 실패한 것은 농민들로부터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던 탓이었다. 그들은 시골마을을 불태움으로써 그리스 경제를 마비시켜 친미 아테네정권에게 부담을 주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북아일랜드의 도시게릴라 IRA도 지난 30년 동안 영국정부를 상대로 투쟁하면서 테러전술을 펴왔으나, 북아일랜드에서 영국세력을 몰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이라크 저항세력도 결국에는 실패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미국이 펴는'이라크 필패론'**

미 보수적인 싱크탱크인 해리티지재단의 선임연구원 제임스 카라파노는 올 봄에 펴낸 그의 책 『긴 전쟁 승리하기(Winning the Long War)』에서 이라크저항세력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근거는 두 가지. 첫째, 마오쩌뚱의 중국공산당이나 호치민의 북베트남처럼 저항세력을 조직적으로 편성해 해방구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다. 둘째, 알제리아 독립전쟁(1954-1962년)의 민족해방전선(FLN)처럼 테러를 일삼았던 무장투쟁조직도 대중적 지지에 기반을 두었는데, 그런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카라파노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저항세력은 결국 패퇴하고 말 것"이라 전망한다.

미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자 네오콘(neocon, 신보수주의) 이념의 나팔수인 미 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 객원편집인인 막스 부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승리할 수가 없다고 입을 연다. 프랑스군을 상대로 했던 1950년대 알제리 독립전쟁 때나 옛소련군을 물리친 1980년대 아프간내전 때와는 달리, 이라크 저항세력은 통일된 저항조직 · 지도자 · 투쟁이념을 갖추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위의 두 사람이 펴는 논리는 "이라크 저항세력이 테러를 비롯한 여러 저항공세를 펴도 승리하기 어렵다"는 부시행정부의 낙관론을 대표한다. 이라크에는 호치민(베트남)이나 피델 카스트로(쿠바)같은 혁명지도자가 없는 게 사실이다.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는 외국인(요르단 국적)이다. 집권 바트당 출신들은 사담 후세인을 반미투쟁의 한 정신적 버팀목으로 여기지만, 감옥 속의 그가 투쟁을 끌어갈 수는 없다.

지속적인 저항력과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공간인 해방구(근거지)를 마련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소수파다. 지지기반인 수니파는 인구의 20%에 지나지 않는다. 이라크 18개 주 가운데 저항세력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지역은 4개 주뿐이다. 그나마 저항세력이 지배하는 '해방구'는 하나도 없다. 팔루자를 6개월 동안,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를 2개월 동안 지배했던 것이 전부라 할 만하다.

***"시간 걸려도 반미 단일대오 이뤄진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여러 갈래다. 그들의 투쟁동기도 각기 다르다. 전 집권 바트당 출신들은 구체제로의 복귀를 바란다. 수니파 무슬림들은 시아파가 이라크를 지배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라크 민족주의자들은 미군을 비롯한 외국세력들을 몰아내고 싶어한다. 외국인 무자헤딘들은 더 나아가 이라크를 근거지로 삼아 반미 글로벌 지하드 전선이 중동지역은 물론 세계로 넓혀지길 바란다. 반미라는 공통목표가 있긴 하지만, 이념적 통일전선을 이루기 쉽지 않다.

저항세력의 또다른 약점은 선거로 출범한 정부를 상대로 싸운다는 점이다. 친미 괴뢰정권이라고 비판을 받긴 하지만, 현 정부는 지난 1월 제헌의회 선거로 출범했다. 이럴 경우,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저항력의 집중이 이뤄지지 못한다. 막스 부트는 "콜롬비아, 스리랑카 등에서 보듯, 선거로 출범한 정권이 아무리 약하다 하더라도 반정부군이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다"며, 이라크 상황을 낙관한다. 쿠바혁명을 남미로 퍼트리고자 1966년말 볼리비아 산악지대로 갔다가 그 다음해에 사살됐던 체 게바라도 선거로 출범한 정부를 상대로 한 반정부 게릴라 활동의 어려움을 꼽았었다.

이라크는 오는 12월 총선으로 2006년 정식 정부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이라크 저항세력은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총력전을 펴겠지만, 갈수록 어려운 싸움을 벌일 전망이다. 다른 반론도 없지 않다. 1930년대 마오쩌뚱이, 그리고 1940년대 호치민이 반정부 무장세력들을 묶어 정치적 단일조직으로 만드는 데도 여러 해가 걸렸다. 이라크현지취재 때 만났던 비판적 지식인들은 "이라크에서도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미 지하드의 단일대오가 이뤄질 것이고, 투쟁은 끈질기게 이어질 것"이라 주장했다.

(사진) 이라크 저항세력의 폭탄차량공격 현장(@연합)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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