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극장가가 기준없는 수치 논쟁에 빠져 있다. '시장점유율 64%', '500만 관객 동원' 등등 지난 한 달 동안 일부 저널과 평론가, 시장분석가들은 수치 상의 성과만을 지나치게 극대화함으로써 한국영화에 대한 장미빛 환상을 다시 한번 부추겼다. 가장 큰 문제는 몇몇 영화를 놓고 마치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듯 스코어 기록을 비교해 나가고 있는 것.
일부 저널들은 이미 지난 주부터 '<웰컴 투 동막골>이 <친절한 금자씨>를 눌렀다'는 기사를 내보내는가 하면 영화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동막골>이 700만 관객을 넘길 것'이라는 예측기사를 쓰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웰컴 투 동막골>과 <박수칠 때 떠나라>를 묶어 이 두 영화를 각각 제작하거나 연출한 장진 감독의 성공사례에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관객 머릿수 세기'에만 열 올리는 세태**
그러나 국내 영화계가 지나치게 단기적인 박스오피스 실적에만 눈을 돌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자칫 영화투자와 제작 등 산업 전반에 대한 정교한 분석을 해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웰컴 투 동막골>과 <친절한 금자씨>를 현재의 국내 박스오피스 집계 실적으로 등가비교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국내 박스오피스의 집계 기준은 여전히 관객들의 '머릿수'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어 ▲해당 영화에 대한 순수제작비 ▲마케팅 비용 ▲전국 각 극장간 부율(극장과 배급사가 수익을 나누는 비율) 적용에 따른 매출액 변동 ▲12세 관람가 혹은 15세, 18세 관람가 등을 규정하는 연령별 등급 ▲사전 해외수출 실적 등등 다양한 변수들을 거의 포함하지 못하는 단순수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할리우드 등 이른바 선진 영화산업계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박스오피스의 개봉 첫주 말 성적을 관객수가 아니라 매출액 기준으로 발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가 전국에서 100만 관객을 모았다고 하더라도 제작비를 25억원을 들였느냐, 50억원을 들였느냐에 따라 흥행평가가 크게 달라진다. 100만 관객을 모을 경우 통상 투자배급사는 30억원 정도를 가지고 가게 되는데 전자의 경우는 5억원이 남게 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20억원의 적자를 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웰컴 투 동막골>이 500만 관객을 넘기며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또 그것이 갖는 작품의 '내적 에너지'에 대해서는 정당하게 평가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장 안에서 여러 영화와의 비교 흥행평가는 1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이 영화의 총제작비(순수제작비 80여억원)를 감안해야 한다.
이에 비해 <친절한 금자씨>의 경우 순수제작비는 42억원으로 <동막골>의 절반 수준이었던 상황. 연령별 등급 역시 <동막골>은 12세 관람가, <금자씨>는 18세 관람가로 애초부터 같은 체급으로 등가비교될 성질의 영화들이 아니었다. <친절한 금자씨>는 현재 전국 350만 관객 수준에서 종영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메이저 배급사의 <머니게임>보다 영화계 양극화에 주목해야"**
<웰컴 투 동막골>과 <친절한 금자씨>를 각각 투자배급한 쇼박스와 CJ엔터테인먼트 두 메이저 배급사 간의 대결 구도로 흥행분석을 몰아가는 것 역시 국내 영화산업을 지나치게 '머니게임'화 하는 것으로 비판받고 있다. 쇼박스와 CJ엔터테인먼트 모두 국내 영화산업을 이끄는 굴지의 메이저 회사들로서 이번 영화들로 윈윈의 시장 전략을 어느 정도 성공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들 회사의 실적과 향후 매출 전망 등은 이번처럼 한두 편의 영화가 아니라 과거 1년이면 1년, 여름시즌이면 여름시즌 등등 특정 기간을 기준으로 그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향후의 작품 라인업이 어떠한가에 초점을 맞춰야 함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흥행평가는 한두 편 영화의 결과에만 촛점을 맞추는 지엽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더더욱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두 메이저 회사의 시장 과점 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돌파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일부의 분석처럼 <친절한 금자씨>와 <웰컴 투 동막골>, <박수칠 때 떠나라> 등 단 세 편의 영화가 국내영화의 시장점유율을 64%까지 끌어 올린 것은 밝은 측면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의 양극화처럼 우리 영화산업 역시 현재 과도한 양극화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라면 자칫 국내 영화산업이 일거에 몰락할 수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나름대로 일리를 갖고 공명되고 있는 것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가 꼭 영화제목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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