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현대와 옛 물건의 조화, 홍정실 교수의 공간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현대와 옛 물건의 조화, 홍정실 교수의 공간

김유경의 문화기행 '서울, 북촌에서' <17>

한국 골동품의 본산은 강북 인사동이다. 물건 파는 가게, 사고 팔고 보는 사람 모두 인사동을 정점으로 움직인다. 골동상인들은 정기적으로 지방을 다니며 물건을 사 모으고 '어디에 좋은 물건 나왔다' 하는 정보를 모아 움직이는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그렇게 해서 전국에서 모여든 옛 물건들이 진열장에 나와 있다가 제2, 제3의 주인에게 옮겨갔다. 소도시에서 가정집을 돌며 수집한 물건들이기도 하고 소장자가 다시 내놓는 것들이 돌고 돌기도 한다. 지금은 북한, 중국, 대만 물건들도 많이 들어온다.

최근에는 이곳의 오랜 가게들이 많이 사라지거나 주변동네로 넓게 포진했다. 인사동 개발과 맞물려 여기 큰길은 골동품이 진열장에서 방긋 웃는 듯한 아기자기한 맛을 잃었다. 지금 여기서 한국적 정취의 본류를 만나는 것은 마치 숨바꼭질이나 보물찾기 놀이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도 뒷골목으로 접어들면 한국적 미감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물건들과 마주 대할 여지는 있다.

한 집의 실내건축을 미학적으로 평가할 때 종종 골동가구를 얼마나 갖고 세련되게 다루면서 사는지를 기준 삼는다.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고전적 물건들이 아니라면, 골동에 애정을 갖고 사서 갖는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감각을 갖추도록 훈련된 심미안이 우선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재력이 따라야 한다.

아주 확실한 현상 하나는, 한국의 미술대가로서 한국 골동의 아름다움에 빠지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옛 물건의 조형과 아름다움을 이해하면서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했다.

그저 그런 골목길, 겉보기에는 전혀 치장이 안 돼 무심하게 지나칠 만한 골동상이 있다. 물건들은 반 창고 비슷이 적당히 놓여 있지만 가만히 보면 흥미가 가는 것들이 많다. 50대의 주인은 '중국 물건은 금방 싫증나서 한국 물건만 취급한다'고 했다.

흔하지 않은 진짜 물건들이 이 집에 모여 들기에 우정 이들을 보러오는 사람들 간에 고미술 이야기가 끝간데 없이 펼쳐지기도 한다. 여기서 고려때 참외모양 청자화병 한쌍 중 하나가 이승만 대통령때 트루만 미국대통령한테로 '선물'로 '징발'돼 갔다는 어이없는 시절의 이야기도 들었다. 박물관에서 돌려달라는 편지를 내기도 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골동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 다닌다. 재벌가 부인들이 물건을 많이 보러 다니고 딸을 동반해 다니는 기업가도 있다. 상류생활에서 심미안은 일종의 장비이기도 하다. 한 여성은 변덕이 심한 걸로 상인들 간에 소문이 나있다. 그런데 골동가게를 기웃거리면서 구경할 때 여럿이 같이 들어오는 일행은 절대로 물건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면서 냉대하는 것도 종종 보았다. 그렇게 해서 골동업계가 잘되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골동상에서 팔린 물건은 고미술품만 전문 배달하는 인력이 맡아한다. 보통 화물운전자는 고가구가 섬세한 것이란데 대한 인식이 없다. 수백년 된 옛 물건을 일반 화물 다루듯 하면 부서지니까 포장부터 치밀하고 다루는 손도 어디를 어떻게 붙잡아야 할지 노하우가 있다.

골동 배달을 십수년째 하는 A씨는 '서울에서 골동 사가는 집 동네는 일정하다.'고 말한다. 강북은 성북동, 평창동, 이태원, 한남동에 주로 가고 강남은 역삼동, 청담동의 단독주택이나 고급 빌라로 들어간다. 대부분 사업가, 장성 출신이 많고 외국인 수집광도 적지 않다. 주한 미국대사였던 스나이더씨 부인도 한국골동에 취미가 깊었다. 지방은 별장들이 있는 설악산, 대 저택 등에서 가져간다. 비싼 아파트동네인 압구정동에는 거의 배달이 없었다니 뜻밖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국골동보다 더 좋은 물건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조선 가구는 한식 양식 공간 모두에 잘 어울린다고 한다. 아파트나 현대주택에 화각장이나 자개장 소반 달항아리 책장 반닫이 궤 그런 것들이 놓인 광경은 흔히 보는 것이다. 평창동 관경재에서는 벽난로 앞에 큰 소반을 놓고 쓰고 있었다.

강남에 집을 건축한 사람이'방 하나 만큼은 순수 한식가구로 꾸며 달라'는 주문을 내기도 한다. 프랑스에도 한국골동을 갖춘 집이 퍽 많다고 들었다. 프랑스 이야기가 나왔을 때, 사업가 K씨는 '포도주에 제일 잘 맞는 음식은 바로 한국의 개고기'라고 했다. 프랑스 포도주의 대단한 경력을 가진 누군가가 그래서 서울 교외에 개고기와 포도주만 차려내는 음식점을 냈다. 동서문화의 융합은 그처럼 자연스러워 보인다. 고전의 현대적 조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 무형문화재 입사장(入絲匠) 홍정실 원광대 교수의 작업실과 집은 강남의 건물 안에 가장 다양한 조선골동으로 채워놓은 공간일 것이다. 갖가지 장식과 작업 연장을 벌여둔 그의 작업장을 볼 때마다 '과연 전문가구나' 하는 감탄이 일었었다. 원광대와 문화재 전수회관 두 군데 작업실에는 입사작업에 필요한 갖가지 금속도구, 자료, 미술품들이 다양하게 들어서 있고 삼성동 집에는 살림살이용 옛 물건들이 온고이지신을 말하는듯 실용화되어 있었다.

그의 작업실은 금속공예에 관련된 일과 미적 휴식이 어울린 장소로 예술가적 손길이 강하게 느껴졌다. 모든 물건은 조선 골동이 대종을 이루고 있었다. 복잡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일목요연하고 꽃병같은 한가한 물건이 나와 있는 단순함도 있어 도대체 어떤 경지에 올라야 그런 솜씨가 나오는지 궁금했었다.

나로서는 끌 말고는 도구 이름 하나도 알아보기 어려웠다. 평범한 사람같으면 엄청난 분량만으로도 압도돼 질식했을 것이다. 그런데 홍교수는 수백가지 물건을 '헌 칼 다루듯' 하고 있었다.

강남구 삼성동 그의 집에도 가보았다. 공동주택 빌라는 개인공간 같은 한갓진 맛은 덜했지만 들어서는 입구부터 펼쳐진 골동과 현대감각의 어울림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 작업실과는 또 다른 살림집의 분위기였다. 부드럽고 살림과 직접 연관된 고가구들이 많았다.

현관에는 돌로 된 물확에 뜰에 핀 목련 꽃잎 몇 개를 띄웠다. 넓은 거실에는 평범치 않은 옛 물건 장식들이 많았다. 붙박이장의 문은 한옥문짝이었다. 에어컨 등이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벽난로 위에도 작은 문 두짝이 장식처럼 걸렸는데 옛 가구에서 떼어낸 문짝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특별한 집으로 보였다.

커다란 무쇠솥에 가득한 꽃, 큼직한 백동 촛대, 이런 물건들이 현대적 거실을 기와집 대청마루에 와서 마당과 방을 두루 보고 있는 기분이 나게 했다. 목욕탕의 거울도 옛 장롱에서 떼어 낸 작은 거울을 달았다. 아파트 안에 고급 한옥을 꾸며놓고 사는 것 같았다. 곳곳에 장식된 수많은 미술품은 '청소하기 좋게 배열하는게 우선' 이라고도 했다. 그런가 하면 부엌은 마술을 부린 것처럼 단순하면서 놋그릇 등은 실용과 장식을 겸하고 있어 현대적 감각이 물씬 우러났다.

가스렌지에는 무쇠밥솥을 놓고 밥을 해 숭늉을 만드는 재래식 밥짓기로 살고 있었다. 신식 부엌에서 아일랜드라고 부르는 별도 조리대는 여기서 재조립됐다. 몽골의 꽃무늬 목가구에서 예쁜 문짝을 뒤판에 옮겨달아 눈에 보기 좋게 하고 앞쪽은 실용의 서랍장으로 쓰게 했다. 차도구 등이 서랍 속에 다 들어있는데 '식구들이 각자 타먹는 것으로 배열 순서가 바뀌면 안된다'고 했다. 위에다가 대리석 상판을 붙였다.

군것질거리로 사온 양갱에 잣을 박아 썰어서 차와 같이 담아내니 특별한 음식처럼 보였다. 부엌 싱크대는 돌화분에 담긴 꽃을 놓기 위한 테이블 같았다. 놋그릇 여러개가 예쁜 보자기를 깔고 목판에 담겨있는데 조각품 같았다. 자개소반의 상판이 그림틀처럼 놓여있었다. 살림과 예술이 하나였다. 주부의 일을 이렇게 감각적으로 할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한국골동을 비롯한 옛 물건들은 홍교수가 40여년 금속공예에 매진하면서 모아들인 예술품, 연장, 살림들이다.

'금속세공에 관련된 물건이면 필요에 의해 기능적인 면을 보고 사들이곤 해요. 물건의 공예적인 가치는 그것을 만든 사람과 긴밀하게 연계되니까 예술대가들의 사유를 통한 체험을 이해할 수 있어요. 이름 없는 장인의 심성에서 나오는 손길에 감탄할 때가 많지요. 많은 사람의 찬사를 받은 물건은 내가 봐도 좋아요. 그 사유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고. 제가 하는 일의 자료가 되는 것이면 금상첨화구요.'

한국 옛 물건들을 많이 두고 사는 데 대해선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항상 고미술 기본은 자기나라 자연과 환경에서 조성된 것인 만큼 애정이 가는거라고 생각합니다. 각국 공예품의 차이점에서 그 민족성을 알 수 있어요. 외국 물건은 좋아 보이기는 해도 내가 이렇게 만지고 싶지는 않아요.'

집안과 작업실을 꾸민 감각에 대해서도 말했다.'전시는 자기의 일부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지요, 나 자신과 결부되어 있으니까. 주어진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나 하는건 음식취향, 입맛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옛것과 현대, 동양과 서양, 모든 것이 하나의 정점에서 만나는 것임을 홍정실 교수는 자신의 주변 공간에서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장신구가 인간 위에 옷을 입히듯 공간도 그렇게 꾸며진다. 강남에서 본 가장 한국적인 풍경 하나가 홍정실교수의 빌라와 작업실이었다.

사진

1. 옛 문짝을 달고 무쇠솥, 촛대, 문갑과 고가구 등이 놓인 거실 한면. 크고 작은 옛 문짝이 집안 곳곳에 활용됐다. 사진 박보하

2. 현대식 서재에도 옛 가구가 많고 평범치 않은 소품들이 장식으로 사용됐다. 사진 박보하

3. 부엌은 간결 그 자체이면서도 아름다웠다. 주부의 일터가 이렇게 꾸며질 수도 있었다. 사진 박보하

4. 찬탁에 장식된 자개판, 옛 물건들. 사진 박보하3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