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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는 미국과 차베스의 '미디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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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는 미국과 차베스의 '미디어 전쟁'

김영길의 '남미 리포트' <75>

"지난 500년 가까이 외세에 의해 재단되고 왜곡된 남미문화를 우리의 시각으로 만들어 전하자"며 '남미의 알자지라'를 목표로 지난달 첫 방송을 시작한 텔레수르(Telesur)를 놓고 전세계 진보세력과 미국 및 베네수엘라 친미보수세력 간에 격렬한 미디어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텔레수르 방송은 CNN 등 서방언론들의 뉴스독점을 견제하고 남미통합을 촉진한다는 목표 아래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주도 아래 아르헨티나, 쿠바, 우루과이 등 남미 국가들의 참여로 설립됐다. 지난 7월 24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치러진 텔레수르 출범식에는 프랑스의 석학 이냐시오 라모네, 영화 '리썰 웨폰'의 주연배우이자 시민운동가인 흑인 배우 대니 글로버 등 전세계의 진보적 인사들이 참석했다.

라모네는 세계적 권위의 국제문제 전문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발행 겸 편집인으로 '세계언론감시운동(Global Media Watch)'의 주창자다. 미국 및 초국적기업 주도의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맞서기 위해 그 이데올로기적 첨병인 거대보수언론에 대한 감시 및 대안언론을 창출하자는 것이 이 운동의 목표다.

이처럼 미국의 이념적 헤게모니에 대한 정면도전을 내세운 텔레수르가 개국하자 미국은 즉각 '테레수르 죽이기'에 나섰다. 미 의회는 텔레수르가 개국하기도 전인 지난 7월 22일, 자국의 방송관련 법령을 개정하여 베네수엘라 국민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라디오, 텔레비전 프로그램 방영을 추진하고 나섰다. 또한 미국이 텔레수르의 위성중계 시스템에 전파 방해를 할지도 모른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남미 현지언론들은 이를 두고 미국과 차베스 간에 미디어전쟁이 시작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는 베네수엘라 보수세력도 반격에 가세했다. 지난 2003년 반차베스 쿠데타를 주도했던 베네수엘라 보수언론들은 지난 2일부터 이 방송사가 실제로는 베네수엘라 정부자본만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연일 폭로ㆍ비방전을 벌이고 있다.

베네수엘라 현지의 일부 언론들은 "19%의 공동지분을 갖고 있는 쿠바는 텔레수르의 운영에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투자계획이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폭로하고 "이와 같은 사정은 20%와 10%의 지분국가인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도 비슷한 상황이어서 결국 다국적 공동운영은 명분뿐이며 텔레수르가 베네수엘라의 오일달러로 단독 운영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또한"콜롬비아가 최근 텔레수르의 수신거부를 천명했고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의 국가들도 아직 채널권 확보나 방영시간 등에 대한 세부계획을 세우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공격수위를 높였다.

베네수엘라 현지언론들 가운데 특히 <엘 티엠포>, <엘 나시오날> 등은 일제히 이 방송이 차베스의 정치적인 선전기구로 전락할 가능성을 거론하며 자칫 텔레수르가 베네수엘라의 오일달러를 잡아먹는 거대한 괴물로 변할 수도 있다고 열을 올리고 있다.

<엘 티엠포>는 "텔레수르가 남미통합을 외치고 있으나 방송 기조가 일반시민들보다는 일부 엘리트층을 겨냥하고 있는 느낌이며 최근에는 기독교방송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치적인 선전기구가 아닌 공영방송으로서 더욱 독립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엘 나시오날>은 "텔레수르가 이런 식으로 가다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운영이 될 것"이라며 "텔레수르는 베네수엘라의 오일달러를 먹는 거대한 괴물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곁들였다.

이들 언론들은 또 베네수엘라 국내의 시청자들의 의견을 인용해 "이 방송은 사상적인 편견(반제국주의와 반미, 반자본주의, 반세계화, 반자유무역주의, 반민영화 등)의 전파와 개인(차베스)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21세기에 그런 시도가 먹히겠느냐"는 등의 비판을 실기도 해 노골적으로 텔레수르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차베스 타도를 외치는 보수 언론인들도 텔레수르는 정치적인 배경 속에서 탄생했고 정치적인 선전물로 전락할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텔레수르가 획기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아닌 역사와 시청자들에 의해 패배를 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더불어 이들은 베네수엘라정부가 왜 독재자인 카스트로 정권에 지원을 하며 많은 베네수엘라인들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콜롬비아 반군들에게도 자금줄 역할을 하느냐는 불만을 쏟아내기도 한다.

카라카스 대학의 한 교수는 "지금은 차베스 개인을 위한 홍보 또는 남미 전체의 통합을 운운하기보다 차라리 베네수엘라의 풍부한 오일달러 자금원을 국내문제 해결에 활용해야 할 때"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제유가 폭등으로 넘치는 오일달러를 쿠바 지원이나 차베스 개인의 정치적인 헤게모니 쟁탈을 위한 남미통합 프로젝트들에 퍼부을 게 아니라 베네수엘라 국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극빈자 구호 계획을 세우고 부의 공평분배에 심혈을 기울여 나라 경제를 살리는 데에 활용하라는 것이다.

반면 텔레수르의 자문이자 창립멤버인 아르헨티나의 미겔 보나소(민주개혁당 의원이자 고급정론지 <빠히나 12>의 칼럼니스트)는 3일(현지시간) "텔레수르가 서방의 거대 언론재벌들에 맞서 성공하려면 중남미라는 지역을 벗어나야 하며 서방언론들과 속보경쟁을 벌이는 것보다 진실되고 현지실정에 맞는 새로운 개념의 뉴스를 생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첫술 밥에 배부를 수 없으니 처음부터 남미보다는 세계 전체를 목표로 삼고 남미의 문화와 실제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라는 주문이다.

'미국과의 미디어전쟁'으로 불리는 차베스의 텔레수르 방송프로젝트가 이렇게 시작부터 미국과 국내 보수언론들로부터 노골적인 견제를 받고 있다. '남미의 알자지라'를 지향한다는 이 야심찬 계획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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