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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프레임'과 그 비판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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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종인 프레임'과 그 비판의 싸움?

[남재희 칼럼] 2012년 대선의 양상 달리 읽기

스티브 잡스에 관한 월터 아이작슨의 전기가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어 한국에서도 민음사가 톡톡하게 재미를 보았다. 그 아이작슨의 헨리 키신저 전기도 대단히 잘 쓴 책이다. 그것을 읽다 보면 키신저의 사고방식에 '철학적 깊이 읽기(philosophical deepening)'라는 표현이 있어 관심을 끈다.

거기서 읽은 아까운 일화 하나.

키신저는 하버드 대학생 때 지도교수가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과 <판단력 비판>을 주며 비교하여 논문을 써오라고 하니 3개월간 노력한 끝에 논문을 제출하여 교수의 큰 칭찬을 받아 학문적 성공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지금 들추어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리는 그 <순수 이성 비판>을. 미국 일류 대학 수재들의 수준을 짐작할 만하다.

'철학적 깊이 읽기'. 연일 우리 언론을 장식하는 대통령 선거 관련 기사들에 매몰만 되지 말고 한번 '철학적 깊이 읽기'를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본다.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어려운 일이겠기에 여하간 '다르게 읽기'라도 시도하고 싶다.

▲ 김종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공동선대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그럴 때 얼핏 떠오르는 것이 김종인 프레임이다. 박근혜 씨의 비상대책위원을 했고, 지금은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인 그는 '경제 민주화'에 거의 '원조(元祖)'이다시피 한 명성을 갖고 있다. 헌법 119조 2항의 이른바 경제 민주화 조항을 그가 입안했기 때문. 경제 민주주의는 일반화된 개념이기에 그의 '특허'는 물론 아니다.

'경제 민주화'가 그동안 선거 정국의 화제의 중심이다시피 했다. 그럴 때마다 그 입안자는 으레 거론되어 원조의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운이기도 하고 재주이기도 하다.

그 경제 민주화에서 재벌 개혁이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었고 논의도 그렇게 진행되어 왔다. 특히 야권 진영은 그 재벌 개혁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원조 설렁탕'인 김종인 박사가 "내 입으로 재벌 개혁이니 해체를 말한 적이 없다"고 시치미(?)를 떼고 돌아선 것이다.(<조선일보> 7월 23일 자 "'경제 민주화' 元祖…김종인 박근혜캠프 공동선대위원장") 닭 쫓던 개, 담 넘어 본다는 속언대로인가. 경제민주화를 운위하던 많은 사람들이 어처구니 없게 되었다. 나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내가 언론에서 읽은 바로는 재벌 개혁을 논의한 적은 여러 번 있으나 그의 입에서 재벌 개혁이란 말을 들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기록들을 보니 기자가 재벌 개혁을 물었을 경우 그가 재벌 개혁을 운운하고 말하지는 않은 것 같고 어떻든 자기 나름대로 답변을 하였다. 그러니 독자들은 재벌 개혁을 인정하고 그 전제 위에서 답변을 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질문에는 포함되고 답변에는 포함 안 된, 묘한 '회피 어법'이다. 아! 그런 재주도 있었구나 싶다. 그러니 내가 멍한 느낌일 수밖에. 원칙대로 말하면 기자가 재벌 개혁 운운하고 물었을 때에 답변에 앞서 스스로의 재벌 개혁에 관한 입장을 분명히하고 응했어야만 했다.

김 박사가 지금에 와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집권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시점이기에 재벌과의 일종의 타협이나 화해를 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경제 민주화, 재벌 개혁에 열을 올리고 있는 야당 측에서 김 박사의 '회피 어법'에 대한 문제 제기나 비판을 하는 것을 못 들었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고리처럼 순환출자 하는 등 약간의 지분으로 거대 기업군을 지배하는, 세계에서 많지 않은 경우일 것이다. 그리고 온갖 부문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문어, 차라리 공룡을 만들어냈다.

미국 역사에 보면 트러스트·버스팅(Trust-busting: 독점기업 해체) 등 거대 기업을 깬 사례가 가끔 있었다. 재2차 대전 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 총사령부는 일본의 산업 민주화(분명 산업 민주화란 표현이다)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미쓰이(三井), 미쓰비시(三菱), 스미토모(住友), 야스다(安田) 등 4대 재벌을 해체하였다. 그리고 일본 국회는 '과도 경제력 집중 배제법'을 통과시켰다.

김 박사 편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한때 유명했던(?) 장하준 교수가 재벌 옹호론으로 가세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거기에 대항해서 반격을 가하고 있는 김기원 교수 등은 아직은 출력(出力)이 약한 것 같다. 이정우 교수가 등판할 만한데, 그가 정책 참모로 있는 문재인 씨의 (대선 후보) 공천 전망이 아직 모호한 상태이고, 또한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 참모를 지냈기에 그 족쇄가 얼마간 느껴지는 것 같다. 그밖에 이동걸 교수도 있다.

그 김종인 박사가 또다시 말의 재주를 보였다. 박근혜 씨의 정책 방향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와 비슷한 '제3의 길'이라는 것이다. 노동당의 블레어가 보수당 마가레트 대처의 정책을 많이 수용하여 '제3의 길'이란, 여하간 득표에는 성공한 이론을 내세웠는데, 이번엔 보수 쪽인 박근혜 씨가 개혁 쪽의 경제 민주화와 복지 이론을 수용하여 '제3의 길'을 한다니 그것은 '역(逆) 제3의 길'이라 하겠다. 아무튼 역시 표를 얻는 데는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번 대선의 논쟁은 이제까지는, 어떻든 결과적으로, 김종인 프레임 위에서 진행되는 것만 같다. 프레임을 먼저 만드는 쪽이 유리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복지는 민간 운동 단체와 야당이 먼저 제기해 이슈가 되었다). 나쁠 것은 없다.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중상모략의 네거티브·이슈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그런 건설적인 이슈로 논쟁을 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그 결과로 국민들에게 무언가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대선을 앞두고도 큰 상상력의 이슈는 안 나오고 있다. 작은 착상(着想)의 이슈만이 계속 나온다. 우선 남북관계나 평화의 문제가 수면 하에 있다. 손학규 씨가 중립화 통일 운운의 안을 내기는 했으나 시기적으로 아직 요원한 이야기여서 다이내미즘(dynamism)을 느낄 수가 없다. 경제적인 실리 문제에 정신이 팔려서인가. 그러다 보니 남북문제에 집중했던 야권의 정동영 씨도 잠적하고 말았다.

여당에서 김종인 박사가 뜬 것만이 아니다. 야권에서도 경제통들이 뜬다. 이용섭, 박영선, 심상정, 이해찬(그도 정책통이다) 등등의 경제 문제에 관한 발언들이다.

대선 정국에서 또 하나 느끼는 것은 기득권 세력이 노골화되었다는 것이다. MB의 기득권 세력 편중은 거의 절망적이어서 말할 것 없고, 박근혜 씨도 서슴없이 5.16 세력을 옹호하고 그 재결속을 돕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 조직은 막강하다. 철옹성이라 할 만하다. 재계, 지방토착 세력, 거대 언론, 권력 장치를 중심으로 한 관료, 현저히 보수화된 개신교 세력 등등.

거기에 비하여 비판·반대 세력은 산만하고 허약하다. 서민들, 특히 지방 서민들의 움직임이 안 보인다. 노동 세력은 허약하다 못해 요즘은 '컨택터스'인가 하는 노조 파괴 용역 경비업체에 폭행을 당하는 신세가 되고 있다. 자본 측은 참 편리하게 되어 있다. 노조 파괴의 그런 용역회사라는 '민영화된 권력'을 돈 주고 손쉽게 살 수 있으니 말이다.

학생층은 취직전선에 정신이 없다. 무엇보다 스펙을 쌓아 회사나 공직의 사닥다리를 오르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문제는 중산층 화이트·칼라 시민들인데, SNS시대에 이들의 동태에 관심이 가지만 아직은 잘 모를 일이다.

이들 모두는 야당의 유세에 영향을 받는다. 의식이란 주어진 게 아니다. 야당의 유세를 통해 의식화가 진행될 때 달라지는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의 볼 점이다. 야당 측이 후보 경선을 되도록 다단계화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프레임 설정에서는 새누리 측이 분위기를 잡고 있고, 앞으로 진행될 후보 경선이나 대선의 유세에서 야당 측이 국민들의 잠재된 의식을 어떻게 일깨울 것인가 하는 것이 살펴볼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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