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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경의 문화기행 '서울, 북촌에서' <15> 세검정을 지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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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경의 문화기행 '서울, 북촌에서' <15> 세검정을 지나다 2

아! 이 부드러운 삶의 휴식이여-성필관씨네 공연날 저녁

효자동 북쪽에서 부암동사무소에 이르는 길 한쪽은 산의 나무를 야생 그대로 보며 지나는 시내버스 길이다. 겸재 정선의 그림에 이 길은 창의문으로 가는 산골짜기였다. 칠궁으로 들어서는 골목에는 봄에 이팝나무가 하얗게 무리지어 피고 큰 나무가 있어 길가이면서도 구중심처같은 고즈넉함이 서려있다. 출근시간대면 여기를 지나는 자동차가 꼬리를 물지만 걷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학교 끝난 시간에 학생들이 왁자하게 떠들며 버스를 타고 떠나면 늦은 밤에는 한갓지게 적막한 산길이 된다. 정릉까지 가는 북악 스카이웨이가 여기서 시작되고 옛날 능금밭을 생각게 하는 능금나무 길이 부암동 뒷골까지 이어진다.

이 길의 커피집, 고깃간, 세탁소 등 조촐한 가게들 틈새로 이층집의 아래층 빈 공간에 밤새 불이 환하게 켜진 '풍경'이 보였다. 주인 부재중(She's not in)이란 영어글짜가 뒤집어진 채 간판처럼 보이고 의자와 탁자, 그림틀 두어개가 시멘트 바닥에 기대있을 뿐이다. 의도된 설치미술임이 분명했다. 어디선가 들으니 이 거리를 흥미있어한 예술가가 그렇게 꾸몄다고 한다.

옆에는 퀼트 방석 등이 쌓여있는 옷 수선집이 온갖 헝겊을 잔뜩 재어놓았다. 여기도 사람의 기척은 없고 오래된 먼지 냄새 같은게 느껴졌다. 그 위의 항아리 집에는 각종 옹기들이 맨땅에 잔뜩 포개져 있었다. 한국의 도자기 예술사는 옹기를 예술대접 않기로 작정한 듯 하지만 옹기를 보면 힘이 세다는 느낌이 들고 아름다운 형태를 한 것이 많다. 1970년대 한국에 온 외국인들은 한옥 마당 한가운데 높은 장독대에 큰 독부터 작은 항아리까지 차곡차곡 놓인 것을 인상적인 한국적 풍경으로 바라보았다.

어디서나 보는 철물점에 나와 있는 수수 빗자루를 보고 화가 최욱경이 그 색감에 '흥분된다'고 했었다. 여의도 그의 집이자 화실에는 말머리 뼈부터 경찰이 수배중인 범인들 사진전단, 벌집, 온갖 물감통, 완성된 그림 등 수백가지 물건이 집안 전체에 예술작품처럼 장식돼 있었다. 빗자루도 벽에 '전시' 된 하나였다. 그녀는 트럭이 공사용 흙을 군데군데 쏟아놓는 거리를 창밖으로 내다보면서 '설치미술 같다'고 했었다. 이십수년전 그 말을 듣던 이들은'설치미술이란 게 저런 건가 부다'하는 얼굴을 했다.

작고한 최욱경이 이 거리를 지금 본다면 어떤 표현을 할지 부질없이 궁금해진다. 그의 20주기 기념전이 지난 6월 있었다. 그의 그림에는 창틀같은 것이 그림위에 덧 그려진 것이 있다. 화가는 이를 두고 '숨 쉬는 것 = 예술'이라고 글로 써가며 설명했었다. 세검정 길에서 생활의 굳건한 모습들 사이로 보이는 예술가들의 손길이 최욱경이 말하는'숨 쉬는 것' 이란 말을 떠올리게 했다.

부암동 일대에 능금나무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지만, 동사무소 맞은편이 능금나무 길이다. 여기에 환기미술관이 있다. 마당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 화가들이 지나쳐 갔다. 이들의 차림새를 보면 도통해서 사는 사람들 같고 그들이 지나는 거리가 생기있어 진다. 여기서 뒷골로 더 들어가면 성필관ㆍ용미중 두 음악인 내외의 한옥에 붙여지은 공연장 '삶을 축제로 !(Art for life)'가 있다.

'삶을 축제로' 공연장은 2004년 5월 문을 열었다. 70여명이 딱딱한 나무 벤치 의자에 일렬로 앉아 보는 작은 양관인데 안채인 한옥과 연결되고 작은 파티나 전시를 할 수 있는 홀과 마당이 한데 어우러져 특별한 극장이란 느낌이 났다.

한옥은 김길성 대목이 대대적인 수리를 했다. 기와지붕을 받치는 보가 특히 아름답고 정성들인 개축과정을 거쳤다. 음악에 들어선 지 40년, 두 내외는 강남의 아파트 생활에서 헤어나 어떻게 하면 죽을 때까지 연주를 할 수 있나 생각했다.

생활에 타격이 왔지만 나가던 학교도 그만두고 산골같은 부암동에서 발견한 한옥에 공연장을 붙여지었다. 그때부터 지난 연말까지 매주 토요일 공연이 올랐다. 한옥에서 사는 나날은 생활을 순하게 만들었다. 매일 아침 4시에 일어나 마당부터 쓴다.'현대인의 말초적 고민은 이런 노동으로 다 없앨 수 있다'고 했다.

공연은 이곳을 사랑하는 음악인들이 국악 양악 가릴 것 없이 무대를 올렸다. 마술도 하고 건축가의 출연도 있었다. 연말은 '조선시대의 크리스마스' 란 이름의 음악회였다. 여기서는 예술의 전당같은 큰 무대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살에 와 닿는 듯한 음악적 즐거움이 있다. 성필관은 이곳을 두고 이렇게 썼다.

'아, 이 부드러운 삶의 휴식이여! 삶의 진실이란? 머릿속에서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온몸으로 살아낸 것들을 통하여 창조되어야 한다. 진정한 삶의 모습들... 예술은 변화이다. 힘들여 변화를 구할 것이다. 모든 것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간단히 마음속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성필관의 오보에, 용미중의 플루트, 서정실의 기타, 소프라노 이춘혜가 출연한 어느 날의 음악회에 갔었다. 공연 후에는 아래층 홀에서 간단한 저녁을 먹고 밤늦게 까지 뒤풀이를 보았다. 미얀마 양반들이 입는 검은 옷차림의 성필관씨가 오보에를 가지고 무대에서 못들은 다른 음악들을 자유로이 연주했다.

'해 달 별 밤하늘이 아름다워요. 거기 어울리는 뉴에이지 음악으로 지금부터 연주합니다.'

'알비노니를 위하여' 란 곡이 연주됐다. 음악가 알비노니를 너무도 좋아하는 한 천문학자가 명왕성 다음의 행성을 발견하고 거기다 알비노니의 이름을 붙였는데 음악은 그 별을 생각해 만들어진 것이란다. 오보에로 연주되는 음색이 감미로왔다.

밖에는 낙소스의 투명한 대리석을 가지고 만든 조각가 성경민, 코르테 부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크리스탈 섞인, 낙소스 섬에서만 나는 이 투명한 대리석 조각은 빛을 받으면 반짝였다. 창호지같은 온화한 투명효과에 먹선같은 화강암이 섞여 크리스탈로 형성된 낙소스 대리석은 빛과도 감응되기에 명상을 위한 조각에 많이 쓰인다고 했다. 성경민, 코르테 부부는 이 돌로 그리스신화와 해 달 번개 에너지의 움직임 등 자연에 관한 조각 작품을 만들어 냈다.

'광대한 우주 공간을 떠도는 별을 향한 정념과 낙소스 대리석 조각에 어울리는 음악이죠'

자작곡도 나왔다. 소프라노 이춘혜씨가 '나의 살던 고향'을 불렀는데 동요로만 듣던 그 노래가 그렇게 역동적일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록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 서정실씨가 '무대에서 생소한 실험곡 듣느라고 애들 쓰셨다'면서 친근한 기타곡 알함브라의 궁전을 들려주었다. 중년남자가 콧노래로 따라 불렀다.

'예술적인 생애'를 논하기도 했다. '음악의 정원'이란 곡은 마치 바다 밑의 해초들이 파도에 일렁거리는 정경 같았는데 이 아름다운 곡을 만든 작곡가는 '어디로 어떻게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고 했다. 한 음악가의 연극적 비극 비슷한 생애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완전 신파다!' 하고 되받기도 했다. 가히 사상의 교환이라고 부를 만했다. 음악소리와 두런거리는 말소리로 저녁시간이 부드럽게 흘러갔다. 누가 그 자리에 왔는지는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했다.

숨죽이고 듣는 무대공연과 달리 뒤풀이 때는 어린애의 소리도 끼어들고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산중에 숨어있는 한송이 꽃같은 용미중씨가 플루트 연주를 전후해 음식을 만들어 냈다. 동네 커피집의 주인이 커피달이는 솜씨를 뽐내며 자원봉사하고 있었다. 음향기구 설치 등은 회사의 고급간부라는 어떤 남성이 땀을 흘리며 애쓰고 있었다. 관객은 입장료만 내면 뒤풀이까지 다 참석할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이 보이지 않게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쳐 차려졌다. 무대예술을 향유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마당엔 달이 휘영청하고 한옥처마의 긴 그림자가 드리웠다. 신전이란 이름의 조각이 그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옛 정자에서 벌어지는 풍류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때는 창을 그냥 들었겠지만 지금은 서도창으로 부르는 캐롤을 듣게 된 셈이다. 능금나무 길을 따라 주택가 창문에서 비치는 불빛이 따뜻한데 한줄기 상쾌한 밤바람이 지나갔다.

'삶을 축제로' 모임은 특정한 계층도 아니고 누구든 접근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이런 글을 올렸다.

'생활이 너무 가볍기도 하고 또는 너무 진진하기만 해서 영혼이 닿는 내 모습은 어떤 것인가 찾고 싶었어요. 겉으로 내색도 못하는 삶의 무게가 나를 만사에 굳게 합니다. 그곳에서 내 영혼이 숨을 내 쉴 수 있을까요. 그곳이  나이도 지위도 인격조차도 저울질 당하지 않는 자유로운 곳이길  바랍니다.'

동네 주민 한 사람은 '이 동네에 이런 곳이 생겨 좋습니다.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아요' 라고 했다.

올 들어 공연은 주인이 상을 입어 움직이지 못하다가 7월 16일부터 재개될 예정이다. 음악회만으로는 단조로운 듯하여 영화모임도 갖는다고 했다. 오후에는 도자기 사진 등의 전시판매도 한다. 수익금의 절반은 암환자 자녀를 위한 장학금으로 쓰인다.

대문을 나서 뒷골로 가는 길 허드레 땅에는 최근 정원가꾸기가 취미인 한 사람이 꽃밭을 꾸며 놓았다. '우리 동네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이렇게라도 나서고 싶다'고 했다. 내년에는 세검정 일대 가볼만 한 곳 지도를 만들어 보겠다고 주인 내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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