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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노무현이 좌파인지 신자유주의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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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노무현이 좌파인지 신자유주의자인지

[김제완의 '좌우간에']<6> 진보 보수 구분하는 세 번째 잣대 만들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보였나? 이런 지극히 단순한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지금도 어렵다. 이제 역사 속의 인물이 된 지 3년이 지났지만 노무현과 노무현 정부가 진보였는지에 대해 이 사회에서 합의된 의견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는 스스로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했지만 진보 보수 진영에 따라 평가는 엇갈린다.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 이라크 파병, 대북송금 특검 등을 노무현은 왜 추진했나. 그의 임기 중에도 소득 양극화가 심해졌고 부동산이 폭등해 서민들 살림이 어려워졌다. 이런 점들을 들면서 진보진영에서는 노무현 정부를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부른다. 반면에 보수진영에서는 북한 퍼주기, 국가보안법 폐지 시도, 반미, 종합부동산세, 교육 3불정책, 좌경 교과서, 전시작통권 환수, 과거사위원회 등 각종위원회 활동 등을 거론하며 좌파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노무현과 노무현 정부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나. 모든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규정방법은 없는 걸까.
▲ 노무현 전 대통령 ⓒ뉴시스

강북에서 전세 사는 사람 중에 종부세를 반대하고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비율이 낮지 않다는 사실이 몇 해 전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이 현상을 누군가 "계급배반투표"라고 이름 붙였다. 강남좌파도 계급을 배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일들은 왜 생기는 것일까?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동포들 다수가 공화당을 찍는다고 알려져 있다. 미 하원의 3선 의원을 역임한 김창준도 공화당 출신이다. 그런데 공화당은 소수민족 이민자들에게 불리한 정책을 내놓는다. 그런데 소수민족인 재미동포들이 왜 자기들에게 우호적인 민주당을 외면하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일까.

사형제에 절반만 반대한다고 사형수를 반만 죽일 수 있나

위의 세 가지 수수께끼 같은 문제들을 풀 수 있다면 이글을 쓰는 목적은 완성된다. 필자는 이 문제들을 판단할 도구인 잣대를 만들어보려 한다. 이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중요한 재료가 필요하다. 그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사형제나 낙태 동성애 등에 각각 찬성의견, 반대의견을 내놓는다. 그런데 똑부러지게 사형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형제 반대에 마음이 기운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2/3 정도 또는 절반정도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형수를 2/3만큼 또는 절반만 죽일 수 있을까. 결국은 찬성 아니면 반대를 선택하게 된다. 조지 레이코프교수는 그의 저서 "프레임전쟁"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했다. 그가 이 책에서 언급한 미국의 사례를 한 가지 더 들어보자.

북극의 야생생물 보호지역에서의 군사훈련에 대한 찬반논란이 일었는데 전적인 찬성 반대보다는 '적당한' 정도의 훈련에 찬성한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적당한 훈련도 훈련이다. 결국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훈련에 찬성하는 셈이 된다. 결코 중간적인 것은 없다. 자신을 중도파로 분류하는 사람도 어떤 이슈영역에서는 보수적이며 다른 이슈영역에서는 진보적이다. 레이코프가 중도는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거론한 이야기들이다. 그의 이 같은 지적에서 이념문제를 둘러싼 혼란들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 한 가지가 찾아진다.

통계학의 개념을 빌어서 말하면 단위 사안들에 대한 판단은 명목척도의 대상이다. 명목척도는 어떤 개념의 고유속성이 "있고 없음"에 따라서 구분이 되는 기준이다. 남자와 여자와 같은 성별처럼 진보적 성질이 있으면 진보이고 보수적 성질이 있으면 보수가 된다.

그러나 진보와 보수가 혼재돼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이런 경우를 위해 통계학은 순서척도를 마련해 놓았다. 순서척도는 어떤 성질이 "많고 적음"에 따라 구분되는 경우를 판단 대상으로 놓는다. 나이, 길이, 키, 몸무게 이런 것들이 대상이다.

어떤 사람이 열 개의 사안 중에서 좌파적인 판단을 9개 우파적 판단을 1개했다면 물을 것도 없이 극좌파이다. 좌파적 판단을 6개 우파적 판단을 4개 했다면 중도좌파이다. 반대로 좌파 4개와 우파 6개는 중도우파이며 좌파 1개와 우파 9개를 선택했다면 극우파이다. 이처럼 순서에 따라 값이 주어진다.

상반된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으므로 인간을 진보 보수로 구분할 수 없다고 말한 안철수 같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순서척도는 인간을 진보 또는 보수 나아가서 어느 정도 진보인지 보수인지까지도 규정지을 수 있도록 해준다. 인간 존재 내부에는 왼쪽으로 이끄는 힘과 오른쪽으로 이끄는 힘이 맞서 있는데 이중에 어느 쪽이 더 강한가에 따라 존재라는 몸통이 끌려가게 된다. 필자는 이런 특성을 솔로몬 왕의 우화를 빌어서 "왼팔 오른팔의 원리"라 이름 붙였다.

왼팔 오른팔의 원리로 재어보면

왼팔 오른팔의 원리를 잣대 삼아서 재어보면 그동안 사회과학이 해결하지 못해 쩔쩔맸던 문제들이 설명된다. 먼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보였나 보수였나를 살펴보자. 보수 쪽은 진보정책만 보고 좌파라고 하고 진보 쪽은 보수정책만을 보고 신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좌파신자유주의자"라는 말이 탄생했다. 이 말은 네모난 동그라미처럼 형용모순이지만 이 말에는 진실을 찾는 실마리가 보인다. 두 가지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어느 속성이 더 많은가에 주목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채택했던 대표적인 정책 100가지를 선정해서 그것 하나하나를 진보인지 보수인지를 판별하고 그 개수를 세어보면 의미 있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물론 어떤 정책들에는 가중치를 둔다든지 하는 전문적인 고려가 필요하겠다. 이런 방법이 유효하다는 것이 확인되면 노무현이 진보인가라는 문제의 답을 찾아낼 수 있다. 그 결과는 진보 보수 진영의 합의하에 중고교 교과서에 게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계급배반투표라는 용어는 강북에서 전세 사는 사람에게는 모욕적인 말이다. 자기 동료를 배신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저학력이거나 물려받은 재산이 없거나 남들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살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엊그제 뉴스를 보면 국내 굴지의 한 은행이 저학력자에게는 더 높은 대출이자를 매겼다고 한다. 이들이 부딪친 세상은 매우 험난해서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야 하는 일이 절박한 과제였을 것이다. 많은 경우 이런 사람들은 이기적이 된다. 그런 태도는 보수정당의 가치나 속성과 일치하며 이 때문에 그 당에 투표할 수 있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면서 경제적 조건에 따라 의식도 그에 맞게 변한다고 믿는다. 유물론자들은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다른 요인들도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빈민층이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행위를 자기분열적인 현상으로 보며 이들의 전도된 의식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교육 선전을 강화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유이나 문제는 그런 견해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경제적 조건이 강력한 것이긴 해도 반대쪽으로 이끄는 요인들이 더 많으면 그 사람은 보수주의자가 될 수 있다. 강남좌파도 강북우파와 위치만 반대쪽에 있을 뿐 그 본질 기제는 다름이 없다.

미국시민권 동포가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유도 계급배반투표와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는 어려운 일을 당해서 뒤로 넘어지려고 할 때 누군가가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낯선 외국생활 중에는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뒤통수가 땅바닥의 돌부리에 부딪치는 아찔한 경험을 한번이라도 하게 되면 존재의 변화가 온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누구나 보수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재미동포 유권자들에게 공화당은 이렇게 보일 것 같다. 민주당에 비해서 반공정신이 투철해서 대북 강경입장을 보이며 기독교 정신에도 더 충실하다. 소수민족 차별은 공화당의 여러 가치 중에 한가지일 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공화당의 정책 중에서 지지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들이 각각 몇 개인지 세어보면 그들이 공화당에 투표할 것인지 여부를 알 수 있다.

부언할 것이 있다. 앞의 글들에서 필자는 좌우의 세계는 흑백논리가 아니며 좌와 우 사이에는 수많은 이념 좌표의 지점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바깔로레아 시험문제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안철수가 바깔로레아에서 배울 것은) 그리고 155마일 휴전선에서처럼 좌우의 대치장면도 100개가 넘을 것이라고 했다. (좌우 논쟁, 155마일 휴전선처럼)

이 같은 이념의 특성들에 대한 이해부족이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래서 임시적으로라도 정식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바깔로레아의 원리"와 "155마일 휴전선의 원리"라고 이름을 붙인다. 이 글에서 살펴본 "왼팔 오른팔의 원리"와 함께 진보 보수를 구분하는 세 가지 원리를 구성한다. 비록 어설프고 자의적인 시론에 불과하지만 우리사회에 만연한 이념을 둘러싼 혼란을 줄이기 위한 시도로 보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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