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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아들', 권영길과 이문열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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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아들', 권영길과 이문열의 차이는…

[김제완의 '좌우간에']<1> '이넘의 이념'

연재를 시작하며

진보 보수라는 용어의 조합을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말같지만 좌파 우파의 대용품으로 사용된 것은 90년대 중반경부터입니다. 80년대에는 사용되지 않았죠. 서양의 사회과학 사전에는 진보주의라는 말이 없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모든 이념은 진보를 지향하므로 진보주의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우리가 밥먹듯이 말하는 진보 보수라는 말에는 이런 여러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애 마지막 몇 달동안을 "진보주의 연구"에 매달렸습니다. 이때 진보의 비밀들을 발견하고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듯한 충격을 겪지 않았을까요. 노 전 대통령은 그의 유저 '진보의 미래'에서 이런 불평을 했습니다. "이론적으로 보수 진보를 이야기하면 뭔소리 하고 있는지 얘기하는 사람도 모르고 그냥 헷갈려 버려서 '뭐 그리 어려운 소리 해쌌노?' 이렇게 돼버리기 때문에..." 그의 말을 통해 우리는 진보 보수를 규정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의 생애 마지막 작업은 미완의 작업으로 남겨졌습니다. 그 연구를 잇겠다면서 여러사람들이 나섰지만 수차례의 시도에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보 연구가 생각보다 간단치가 않다고 말합니다.

저는 지난 80년대 사회과학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엔엘 피디의 갈등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헷갈리는 이념문제를 종주국에 가서 공부하고 와야겠다고 결심하고 91년 프랑스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공부를 중단하고 재외동포언론운동에 15년 동안 매진했습니다. 재외국민 참정권 되찾기 운동에 40대 장년의 열정을 바쳤습니다. 저는 지금 다시 못 다한 공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시기적으로도 이념 연구가 더욱 필요해졌습니다. 두 번에 걸쳐 호남이 지지하는 정권을 거치면서 지역갈등이 크게 완화됐는데 그 자리를 이념갈등이 차지하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진보 보수 갈등이 나타나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이념갈등은 한국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요즘 통합진보당 사태로 때 아닌 색깔논쟁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요. 이념의 혼돈이 잘 나타난 사례입니다.

한반도는 이념에 의해 분단된 세계유일의 땅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찾기 힘든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하는데도 국가보안법의 영향 때문이겠지만 우리학계에 이념연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념 문제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확인시켜서 간격을 벌려놓기나 하지요. 그래서 어떤 누리꾼은 "이넘의 이념"이라고 재치있게 말하더군요. 그런 이념 이야기를 재미있는 사례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려 합니다.


좌우간에,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이문열과 권영길은 모두 40년대 생으로 지리산의 경상도쪽 자락에서 태어났다. 이들의 부친은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문열의 부친은 가족을 남기고 월북했고 권영길의 부친은 국군에 의해 사살됐다. 이 두사람의 공통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60년대에 같은 대학을 다녔으며 작가와 기자라는 문필업에 종사했다. 이와 같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조건에서 살아왔지만 두 사람의 이념은 우리사회 양극의 두 끝점에 위치한다. 무엇이 이들 두 사람을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도록 했을까?
▲권영길 전 의원(좌)와 이문열 소설가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와 최우원 부산대 철학과 교수는 우리사회의 이념 스펙트럼에서 가장 왼쪽과 가장 오른쪽에 서있다. 진보정당도 이제는 자본주의 극복을 꿈꾸지 않고 기껏해야 복지국가를 주장하지만 김상봉은 여전히 자본주의 극복을 말한다. 최우원은 몇 해 전 이런 주장을 했다. "민족반역범 악마 김정일과 그것의 노비 김대중, 노무현, 주사파 일당이 꾸며온 평화협정 체결 등의 음모를 철저히 분쇄하고 국법에 따라 처단한다." 이들은 현재 50대의 동년배이며 각각 독일과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한반도의 남서쪽과 남동쪽 중심도시에서 국립대학 철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처럼 공통점이 많은데도 무엇이 그들을 양극단에 서게 한 것일까.

80년대에 처음으로 주체사상을 소개한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은 한국사회운동에서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는 90년대 초 서해안 바닷가에서 북한이 보내준 잠수함을 타고 평양을 방문했다. 그 뒤에 지금 언론에서 언급되는 민혁당을 만들었으나 북한정권에 실망하고 전향했다. 그의 경우처럼 진폭이 큰 전향은 다시 찾기 어려울 것 같다. 그 뒤에 동료들을 이끌고 나와 뉴라이트 운동을 시작했으며 지금은 북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김영환을 극좌에서 극우로 이동하게 만든 동력의 실체는 무엇일까?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70, 80년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투사였던 이재오 김문수 등은 왜 반성문을 쓰고 한나라당으로 건너간 것일까? 그들의 존재 내부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더 이상 고생을 하고 싶지 않다는 세속적 욕구가 발동했나? 아니면 좌파 동료들과 갈등이 있었던 것일까? 김문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2009년 8월 언론 인터뷰에서 기자가 변절에 대한 입장을 묻자 자신은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과거에 노동운동도 진보이었고 경기지사로서 투자유치와 일자리 만들기를 위해 뛰어다니고 있는데 이것이 진보 아니냐고 반문한다. 말장난 같기도 하고 맞는 말 같기도 하다.

70년대 박정희와 맞선 시기,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김수환 추기경이 2000년대에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그를 비난했다. 그는 변절한 것일까? 돌아보면 그는 70년대나 2000년대나 양심적인 종교인의 자리에 한결같이 그대로 서있었다. 종교인이 좌파일 리가 없다. 굳이 이념스펙트럼에 비춰보면 중도우파였다. 그런데 군사정권은 극우였기 때문에 그는 상대적으로 왼쪽의 자리에 서게 됐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김대중 노무현의 시대를 거치면서 민주화도 압축성장했다. 이 사회의 중심이 그보다 왼쪽으로 건너갔다. 그는 그 자리에 변함없이 서있었지만 갑자기 이 사회의 오른쪽에서 편재하게 됐다. 그렇다면 그가 변절한 것이 아니라 이념의 착시현상 때문이 아닌가.

작가 박완서의 타계 일주년 기념작으로 올해 1월 소설집 "부처님 근처"가 재출간됐다. 작가활동 초기인 73년 발표된 작품인데 이념전쟁의 와중에 작가의 오빠가 빨갱이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실제 경험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여느 분단소설과 달리 작가의 오빠도 좌익이었다. 박완서는 나이 스무살에 목도한 오빠의 죽음이 평생 뇌리에 상흔으로 남아 고통을 겪었던 것 같다. 그가 나이 칠십이 넘은 몇 해 전 어느 케이블 TV와 인터뷰를 했다. 이때 그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통일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될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가 두렵다는 것이다. 자기 생전에 그런 일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고 했다. 듣는 이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 말이다. 도대체 이념이 뭐길래.

지난해 3월 진보대통합 주제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는 옆자리에 앉은 유시민 당시 국민참여당 연구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와 같이 하려면 좌클릭해서 진보 쪽으로 오시오." 그러자 유시민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진보인데요?" 필자는 이 장면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지켜보다가 좀 과장해서 말하면 현기증이 일어났다.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더없이 중요한 논의를 하는 자리에서 마치 봉숭아학당 같은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노회찬은 진보를 레프트라고 여기고 말했던 것인데 유시민은 진보를 리버럴이라고 보고 말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진보인가.

우파 좌파, 보수 진보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같은 부모 아래 같은 환경에서 성장한 형제들 간에도 진보 보수가 갈라지는 것을 보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 같기도 하다. 최근 몇해동안 미국의 과학자들이 이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내놓았다. 뉴욕대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아모디오는 2007년 논문에서 사람마다 정치 성향이 다른 까닭은 뇌 안에서 정보가 처리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아모디오는 43명에게 보수주의자인지 자유주의자인지 정치적 입장에 대해 질문하고 두개골에 삽입한 전극으로 전방대상피질(ACC)의 활동을 측정했다. 자유주의자의 뇌에서 이 부위가 보수주의자보다 2.5배 더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에서 열거한 모자이크 그림과 같은 단편적인 사례들은 이념이라는 잣대로 설명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변절자라는 말을 듣고 가슴아파했던 사람이라면 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기도만 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이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좌파 우파 진보 보수 등 이념 연구가 금기시되다시피 했다. 국가보안법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에 이념에 가까이 갔다가는 경을 치기나 했을 테니 이해가 된다. 그 결과 이념에 대한 연구 부족이 지금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이념갈등의 원인들 중 하나가 됐다. 이념의 본산지인 유럽에서는 복잡다기한 정치 사회 현상들을 간편하게 판단하도록 해주는 잣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이념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손사래치고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또는 좌우 중 다른 한쪽에 대한 적대감이 촉발돼 걷잡을 수 없는 싸움에 휘말리곤 한다. 앞으로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따져보고 이념의 혼돈에서 비롯된 갈등들이 있다면 풀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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