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한옥동네를 관통하는 길에 오밀조밀 가게들이 모여있다. 집집이 대문을 닫아걸고 적막 속에 잠겨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가게들한테서는 생활의 활력과 아름다움, 그리고 어떤 구조까지 보이는 듯 하다.
제일 번화한 곳은 경복궁 4거리에서 삼청동까지 이르는 큰 길 양쪽과 선재아트센터 부근이다. 여기엔 군부대 아닌 척 장미꽃 넝쿨진 기무사의 담벼락(감시카메라가 있다), 화랑, 음식점, 한복집, 골동상, 공방, 싸전(쌀집), 방앗간, 박물관, 기타 업종들이 저마다 뽐내고 있다.
<사진 1> 북촌에서 철물점을 30여년째 운영하는 허만희씨. 일대 한옥구조가 변천돼가는 과정을 말해 준다. 하지권
그 안쪽 계동과 가회동 주택가 골목길은 큰길가처럼 대규모는 아니고 아직 일차적인 생활 모습을 반영하는 가게들이다. 몇십년을 붙박이처럼 이곳에서 지내면서 터줏대감이 된 자영업자들의 밀집이지만, 이 일대가 유명세를 타면서 자본이 용트림치듯 거리가 빠른 속도로 변신하는 것이 가게들을 통해서도 보인다.
서울시가 쓴 중구와 종로구의 대표업종 소개에 보면 종로구에는 한복집이 들어있고 중구에는 양장, 양복점이 있다. 정말 종로구 일대를 다니면서 보면 한복집이 많이 눈에 띈다. 양복점이 많은 중구는 언뜻 생각하기에 사회활동하는 남자들의 체취가 더 강해 보이고, 종로구의 한복집은 전통주거가 많은 일대의 특징을 나타내 주는 듯 하다.
사간동 삼청동 일대에는 역대 대통령 부인, 외교관, 사업가 부인들이 국위를 염두에 두고 특별히 해 입는 유명한 집부터 신진 디자이너가 선보이는 한복진열장이 인테리어 소품처럼 눈에 들어온다. 수시로 바뀌는 이 진열장에는 요즈음 책거리 병풍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골동에 깊이 빠져든 디자이너 소장의 한국 중국 문방구 소품들로 채워져 있다.
사진관에는 복온공주(순조의 둘째딸) 활옷유물을 본뜬 활옷을 입고 사진찍은 신부의 자태가 걸려있다. 이 옷은 한국의 복식유물 중에서 내가 본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고 정교한 옷이었다. ‘누굴까, 이런 아름다운 옷을 새로 만들어 입고 시집가는 아가씨는.’
그런가 하면 이상하게 변형된 무대한복이 유해 사탕처럼 내걸린 상점이 줄줄이 늘어선 데도 있고 종로에는 오래된 주단집이 아직 명맥을 잇고 있다.
<사진 2> 끝도 없이 많은 공구가 정리된 철물점안. 렌치 망치같은 것을 다량 수집해 놓았다. 사진 하지권
번쩍거리는 신식 상점 사이에는 국수 등을 파는 조그만 구멍가게들이 변화무쌍한 업계의 추격에 ‘굴하지 않고’ 자리하고 있다. 바닥에 놓인 곡식봉지마다 이름표가 꽂혀 있다. 서리태콩, 줄양대콩, 현찰(현미찹쌀), 차조, 찰보리, 석이버섯, 거름용 깻묵 등 전문적으로 찾는 식품들이다. 이런 이름을 듣는 것도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소금팝니다’ 문에 써붙인 집이 보이고 삼청동 작은 수퍼에서는 올봄 메주 9말을 팔았다. 이들은 이 동네의 정신적 상징같았다.
옛날식 목욕탕은 다들 집에서 샤워하거나 찜질방, 사우나를 찾아가니까 손님이 줄어 폐업한 채이다. 방앗간이 유난히 많고 고깃간이 별도로 있고 떡집에는 ‘축 돌’을 새겨 높게 고인 의례용 고임도 판다. 갓난아이 돌을 축하하는 고임새는 이 동네에서만 보았다. 얼마나 더 이런 가게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소격동의 한 철물점을 지났다. 예닐곱평 되는 가게에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이 천장서부터 사방벽 가득 컴퓨터처럼 일목요연히 정리돼 있어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주인 허만희씨는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철물점을 운영하는데 북촌의 변천과 함께 한 철물점의 세계를 볼 수 있었다.
그가 설계해서 만든 수백개 정리함에는 각종 못과 몽키, 렌치, 스패너, 배관공구, 드릴 등 수많은 전문공구들이 들어차 있었다. 천장에는 오색실로 손잡이를 묶은 낯익은 갈빗자루도 보였다.
그동안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던 연탄집게 같은 것은 오래전 사라졌다. 최근에는 수도나 난방기 부속품 정도가 소매되고 드릴같은 공구는 임대해 간다. 그런데 가끔은 원초적인 갈빗자루를 찾는 집이 있다.
‘청소기를 쓰면 자개장 같은 고급 가구에 흠내기 쉬우니까 갈비를 쓰죠. 갈비는 하얗게 핀 갈대를 훑어서 삶아만드는데 1주일 걸리니까 국산은 아무도 안 만들고 중국산이 들어와요.’
아이엠에프를 겪으면서 철물점 체계도 급변했다. 전에는 못이나 반생이(공사장에서 많이 쓰는 까만 철사)를 공사장에 납품하고 많이 팔았는데 지금은 도매집에서 퀵 배달하며 팔아 소화하고 스티로폴과 pvc파이프 같은 것도 도매집이나 대량유통업체와 경쟁하는 것이 됐다. 소매가 줄면서 큰길가 50평쯤 되는 넓은 가게에 물건을 펼쳐놓고 하다가 골목길로 옮겨왔다.
‘인젠 소매로 앉아서 마진 내던 때는 지났어요. 건물 수리하는데 한부분을 맡아 특별한 공구를 가지고 일 나갑니다. 드릴같은 것 임대하고 벽에 정확한 크기로 환기구 뚫는 것, 철창문 같은 일이 주종이죠.’
북촌의 한옥동네가 고래등같은 큰집에 벼슬아치만 살았던 것도 아니고 자기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닌 소박한 집들이 많았다. 그런데 북촌이 전부 대가 양반들만 산 것처럼 말하거나 개축하는 집은 틀에 박힌 큰집 흉내만 내니까 뭔가 본질이 흐려진다는 느낌이 든다.
북촌 원주민들은 거의 없다고 봐야지만 딴동네보다 오래 살아서 한번 들어오면 30년 이상 사는 주민이 대부분이다. 얼마 전부터 북촌이 명소로 떠오르고 옛것에 대한 재인식이 확산되면서 이 일대 한옥은 강남 아파트에 맞먹는 값이 되었다. 최근에는 재정지원을 받아 대규모로 개축하는 집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주거구조도 재편성되는 중이다. 개축하거나 주인이 바뀌면서 완전 주거용이기보다는 본집은 따로 있고 업무용이나 반 주거용으로 2차 주택처럼 즐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에는 어디에 무슨 집이 있다는 것 다 알았는데 요즘 무슨 화랑, 디자인회사 정신없이 들어서니까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와중에 한옥에 자기 나름의 미적 구조를 만드는 이들이 있다. 꽃담을 만들거나 벽난로를 들이거나 방 하나만큼은 구들을 놓고 재래식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이다. ‘울 일이 있었는데 아궁이에 불을 때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고 한 아버지가 말했다. 뭐든지 태울 수 있는 아궁이가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한다.
허만희씨가 하는 집수리는 이런 꽃담 만들기 같은 것이다. 주문이 있으면 즉각 이 동네의 칠, 유리, 토수 등 전문기술자들이 한 팀을 이룬다. 유리도 그림을 치듯이 해서 잘라내 끼우고 꽃담은 전통무늬 말고도 집주인이 내놓는 디자인에 따라 기와를 오려서 무늬를 만들어 박는다. 바깥 담벼락이 아니라 집안에서 볼 수 있는 한폭의 벽화 구실을 한다. 정원의 돌장식이 바람에 넘어갔다고 세워달라 하고, 시멘트 마당은 깨고 마사토 흙으로 대체한다.
전에는 진흙에 석회만이 아니라 미역줄기를 끓여 넣고 짚보다 고급하게 서사(스사?)라는 머리칼 같은 실도 넣어 흙들이 서로 엉겨붙는 힘을 갖도록 했다. 지금 한구석에 두고 팔고는 있지만 거의 모두 본드로 대체됐다. 한옥은 일반 자재가 아니라 경첩 하나를 써도 특이한 장식으로 대장간에서 맞춰오곤 하니까 철물점에 갖다놓을 수가 없다.
옛날 한옥에서 폐기하는 자재중 오래된 재목은 잘 말라서 새 재목보다 힘을 잘 받는다 하여 그대로 쓰고 구들장은 박석으로 재활용된다. 대궐에도 이런 박석을 깔았었다. 작은 구들돌은 3천-5천원, 크고 좋은 구들돌은 2만원쯤 한다. ‘전에는 다 깨버렸지요. 요즘엔 정원을 구들장 돌로 깔아달라고 해요.’
‘인제는 구들장도 대부분 다 걷어버린 셈입니다. 전에는 구들 잘 놓아서 방이 오래 따뜻하게 하는 기술자를 土手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절은 방구들을 잘 놔서 한달씩이나 따뜻하게 했다잖아요. 지금 구들을 놓기는 해도 그런 고급 기술 가진 토수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배관으로 난방을 해도 아랫목 윗목을 구별해 달라는 주문이 들어온다. 어디 한군데는 시원한 데가 있어야 정신을 차리겠다는 것이다.
철물점을 오래 하면서 허만희씨에게 공구는 실용을 넘어선 수집품이 됐다. ‘이런 공구는 반은 용도상, 반은 애정이 생겨 모으게 된거죠. 한번밖에 안 쓰게 될 거라도 사요. 시장 돌아다니면서 구해다 닦아서 진열해 놓고 들여다 보죠. 외국의 한 회사 공구인데 이 회사는 한번 사면 평생을 부속공급 해주거든요.‘
이런 공구 수집가들이 한국에 많다고 한다. 외국 살면서 공구를 많이 접해본 사람들이나 철물에 관심많은 남성들이라는데 억대 단위로 모으고 정성들여 닦고 만지면서 좋아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설치한 간이 승강기를 타고 지붕을 오르내리던 그에게 누가 찾아왔다.
‘허박사 이 카메라 좀 고쳐주쇼. 작동이 안되는데 망치루 한번 때려보면 어떨까. 아니면 기름을 좀 부어주구려.‘ ’이거 깔고 앉았구만 그래.‘
철물점에 온 친근한 고객과 주인이 그런 대화를 나눴다. 오래된 기와 지붕에는 암치료에 쓴다는 풀이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북촌의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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