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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연대 '협박의 정치'를 끝내라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반대가 투표동기가 되지 않으려면

19대 총선이 끝난 이후 나와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정서는 기본적으로 허탈감이었던 것 같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여당인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이 거대정당으로 군림해온 지난 4년간 이루어진 일들에 분노하던 이들에게 이번 총선의 결과는 도저히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MB 심판이 마치 시대정신인 것처럼 느껴지던 상황이었기에 아무리 새누리당이 박근혜 체제하에서 쇄신을 단행했다고 하더라도 단독과반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모두들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쨌든 전국적 차원에서 야권연대를 실현한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였기에 새누리당이 단독과반을 차지한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란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 결과가 정말 그렇게도 납득하기 어렵고 당혹스러운 것이기만 한 건지 냉정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대 총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야권연대의 승리를 바라며 지지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기 위함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권에 화가 나 있었고, 여당인 새누리당에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나꼼수>식 어법을 빌려 표현하자면, '가카에게 빅엿을 먹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에 투표를 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지지한 이들의 투표형태는 이명박과 새누리당에 대한 반대투표, 혹은 불신임 투표였다고 할 수 있다.

▲ 4.11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새누리당 박근혜 중앙선대위원장이 12일 오전 기자회견을 마치고 당사를 나서며 취재진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그런데 내 생각에는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단독과반의 다수당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번 총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를 지지했던 가장 큰 이유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명박과 새누리당에 있었다. 다시 말해, 시민들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정치적 비전이나 노선 혹은 정치적 활동 방식에 대해 공감하고 동의해서 이 정당들을 투표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 싫어서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이 정당들에게 표를 주었다는 것이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자신들의 고유한 내용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끌어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중적인 반MB 정서에 편승하여 19대 총선의 전략을 수립하는 순간 이미 야당은 이번 총선에서 부차적인 역할 밖에 할 수 없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을 심판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시민들에게 자리매김한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이 반대투표 내지는 불신임투표라는 형태로 표출된 시민들의 정치적 행위를 '반발의 정치'라고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정치 세력이 자행하는 실정이나 폭정에 대한 반발로서 시민들이 그 세력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에게 투표하는 정치적 행위를 반발의 정치라고 부를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문제는 시민의 정치적 선택 행위에서 특정한 정치 세력의 정치적 지향에 대한 동의와 지지가 아니라 어떤 정치 세력에 대한 거부와 반대가 더 근본적인 동기가 된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시민들의 '반발의 정치'의 맞은편에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협박의 정치'가 있었다. 처음 이 두 정당이 만들어질 때 지지율은 상당히 높았고 19대 총선에서 야권단일화만 이룬다면 여당에 압승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하지만 이미 많이 지적된 바와 같이 양당은 모두 야권 연대를 위한 협상 과정이나 당직 인선 및 공천과정 그리고 선거운동 과정에서 시민들의 기대에 반하는 모습을 수차례 보여 왔다.

문제는 야당이 이러한 실책을 저질렀다는 사실 자체보다는 그 실책을 수습하는 과정에 있었다. 민주통합당은 정책적 기조를 이전보다는 사회경제적 평등을 지향하는 쪽으로 설정했지만, 그러한 기조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명확하게 제시하지도 못한 채 오로지 MB 심판만을 내세우며 선거에 임했다. 사실상 민주통합당이 선거과정에서 한 일이라고는 통합을 통해서 규모를 키우고 야권연대를 통해서 여야 1:1 대결구도를 창출한 것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와 같이 민주통합당의 쇄신은 여러모로 미진하였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에도 별다르게 응답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진보통합당의 경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진보정당을 지향한다면서도 자신의 지지지기반인 노동자, 농민 후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또한 진보정당의 강력한 지역적 지지기반인 울산과 창원에서는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 현역 시·도의원직을 사퇴한 이은주, 손석형을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하는 등 진보정당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 행태를 보였다. 심지어 민주노총 내에서 발생했던 성추행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혐의가 있는 정진후 후보를 공천하는 등 도덕성 문제로 비판을 받는 인물을 비례대표 상위순번으로 배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행태에 대한 비판들에 통합진보당은 오로지 MB 심판의 기치를 내세워 무마하려는 식의 대응으로 일관했다.

▲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4.11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지난 13일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프레시안(최형락)

시민들이 이와 같은 행태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비판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그에 대해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선거전에 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자신들 외에는 MB와 새누리당의 대안이 없다는 현실 인식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일정하게 현실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이명박과 새누리당의 집권기간 동안 정부와 여당에 분노한 많은 시민들이 권력교체를 열망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과 같은 선거제도, 즉 단순 다수 득표자가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는 소선거구제도 하에서 시민들이 새누리당의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는 정치세력은 야권연대를 이룬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이번 총선에서 당선 가능한 야권 후보를 찍어야만 새누리당이 다시 다수당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민주통합당 이나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를 지지하지 않는 시민들조차도 새누리당이 의회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두 당에 투표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정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정당 후보의 낙선이 더 우선시 되는 과제였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MB와 여당에 대한 심판 프레임으로 선거에 임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경우 쇄신은 턱도 없이 부족하고 정책은 대단히 부실하며 선거 전략은 지극히 진부하더라도 새누리당이 다시 다수당이 되는 것이 싫다면 결국 시민들은 자신들에게 투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야권은 머물러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정당들의 핵심인사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시민들의 지지를 적극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근본적 혁신과 변화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아무리 개판을 쳐도 MB와 새누리당이 싫으면 어쩔 수 없이 우리한테 투표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라는 식으로 이들은 선거에 임했다.

나는 이를 일종의 '협박의 정치'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아무리 미흡하고 부족하더라도 자신에게 투표하지 않는다면 자신 보다 더 나쁜 정당이 권력을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협박,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킨 정치세력을 심판하고 싶다면 자신들의 모습이 어떠하던 간에 자신들을 찍어야 한다는 협박을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것이다. 이런 협박은 종종 '최선이 불가능하다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는 논리로 포장된다.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보여준 정치는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경제적 평등을 볼모로 잡은 '협박의 정치'였다.

이러한 반발과 협박의 정치라는 구도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이명박 세력과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반대항으로서만 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다시 말해 이 두 정당에는 시민들의 표를 흡인할 수 있는 독자적인 동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에서 결국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게 된다. 새누리당이 MB 지배하에 있던 한나라당과 확실하게 차별화된다면, 박근혜의 정치가 이명박의 통치와 명확하게 단절될 수 있다면 굳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을 지지해야 할 이유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의제의 의미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의제란 다수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국가권력을 수임한다는 원리로 운영되는 정치제도이다. 이 제도가 시민의 자기통치, 혹은 시민에 의한 시민의 통치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투표를 통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의사표현이 전제되어야 한다. 대의제는 참정권을 가진 시민들이 적극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을 선택하고 지지하는 활동에 기반하고 있을 때에 비로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하지만 19대 총선은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시민들의 능동적 지지가 표출되는 정치적 장이었다기보다는 시민들의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거부가 표현되는 장이었다. 이와 같은 경향은 올 연말 대선에서도 작동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지지에 의한 대의가 아니라 거부에 의한 대의라는 방식으로 대의제가 전도되어 작동하는 상황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소선구 중심의 선거제도,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는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민주주의 원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선거제도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현재 한국 상황에서 지역별 소선거구에서 단순 다수득표자가 승리하게 되는 선거 제도는 시민들 측에서의 반발의 정치를, 정당 측에서는 협박의 정치를 하도록 만드는 제도적 조건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발의 정치와 협박의 정치는 대의제를 민주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 대의 민주주의의 원리를 전도시키는 원인이 된다.

대의제도가 민주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능동적 정치참여에 기초해야 한다. 시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지향에 부합하는 정당에 투표하더라도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만 시민들이 반발의 정치를 하지 않을 수 있다. 단지 내가 싫어하는 세력의 집권을 저지하는 것이 정치적 선택의 일차적 원인이 아닐 수 있기 위해서, 다시 말해 내가 지지하는 세력이 집권하는 것이 정치적 선택의 근본적 동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러한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전면적인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대 총선은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도에 의해서 치러야 한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대의제도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가장 핵심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취지문]

PR청년포럼은 PR포럼의 청년그룹으로서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라는데 동의하는 개인, 청년단체, 시민사회단체, 언론사, 정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PR포럼에서는 청년들이 다양성이 인정되는 속에 합의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례성, 다양성, 공정함이 보장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얼마나 열망하는지, 이를 위해 비례대표제 확대를 얼마나 고대하는지, 조금은 거칠지만 생생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열망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정치의 해인 2012년에 비례대표제 확대가 우리 사회 주요한 사회적 아젠다로 자리매김하는데 청년들의 이 작은 몸짓들이 마중물이 되어주길 간절히 소망하며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연재를 시작해봅니다.

PR청년포럼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prforum.tistory.com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슈퍼스타K가 아니다

-구럼비 파괴되던 날, 나는 비례대표제를 고민했다
-이게 선거인가! 이게 사는 건가!
-그래서 결국 경제 민주화는 누가,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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