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Blog)라는 생소한 이름의 문화 현상이 유행이다. 웹(Web)에서 'b'를 따고 로그(log)에서 'log'를 따서 만들어진 최신 합성어인 블로그는 간단히 말하자면 인터넷 홈페이지에 마련된 잡기장(雜記帳)이나 공개적인 일기장을 의미한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주인은 자신의 신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간단한 사색, 혹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부지런히 올리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수시로 그곳을 방문하여 '댓글'을 남기며 의사를 소통한다.
블로그를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은 캘리포니아에 자리잡은 유저랜드 소프트웨어(UserLang Software)라는 회사의 설립자인 데이브 와이너(Dave Winer)라고 알려져 있는데 확실한 것은 아니다. 블로그는 구체적이고 엄밀한 개념이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특정한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누가 최초로 시작했는지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마치 세상에서 '일기'를 처음 쓰기 시작한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없는 일이다.
블로그라는 행위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인터넷이나 홈페이지라는 개념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적인 토대는 이미 수년전부터 존재해왔으며 블로그는 그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작성되는 지극히 간단한 '홈페이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오늘에 와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며 하나의 문화적 유행으로 번진 데에는 몇 가지 기술적인 배경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값싼 홈페이지 호스팅(hosting) 서비스의 등장, 제로보드(zeroboard)와 같은 편리한 소프트웨어의 보급,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의 대중적 확산이다.
한 달에 1만원도 되지 않는 비용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인터넷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웹 호스팅 서비스와, 무료로 배포되는 게시판 형식의 홈페이지 만들기 도구인 제로보드와 같은 소프트웨어는 '홈페이지 만들기'의 대중화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리고 고화질의 선명한 사진을 홈페이지에 자유롭게 올리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디지털 카메라는 사람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창작'과 '표현'의 욕구를 크게 자극했다.
웹호스팅, 제로보드, 디지털 카메라와 같이 이미 존재하는 기술적 도구들에 대한 일정한 이해가 있으면 자신만의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명백히 블로그가 확산되는 기술적인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블로그라는 특이한 문화 현상은 '기술적인' 토대만으로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이 가지고 있는 본질의 핵심은 '기술적인' 발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왜' 그러한 문화 현상에 동참하는가에 대한 이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요즘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이다. 책을 제대로 읽지는 않았지만 대강의 요지는 살펴보았다. 이 책에 대한 찬사와 비판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필자의 경우에는 사이쇼 히로시씨가 주장하는 바를 보면서 찬사나 비판보다는 일종의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몇 시든 상관없이, 이미 충분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을 향해서 이 책은 '더 바쁘게' 살아야 한다고 선동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느 신문에 실린 이 책에 대한 서평은 안타까움 정도가 아니라 '서글픔'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아침에 아파트단지를 나오는 차들을 관찰하면 재미있는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고급 승용차일수록 이른 시간에 아파트를 빠져 나온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관찰은 상대적으로 돈이 많고 출세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는 사람보다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보통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더 많아서 '승용차'를 끌고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관찰'이나 '법칙'은 의미 있는 결론이 되기 어렵다. 설령 이 법칙을 사실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이 서평이 밝힌 요지대로 하자면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하는 까닭은 결국 '고급 승용차'를 타고 이른 시간에 아파트를 빠져 나오는 '상대적으로 돈이 많고', '출세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는 것 이상이 아니게 된다. 고작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 아침에 좀더 '일찍' 일어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바쁨'과 '경쟁'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다. 다른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타인과의 '경쟁'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고, 정신없는 '바쁨'의 불구덩이 속에 자신의 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숙명적인 삶의 조건 속에서 이웃과 마음으로 나누는 의사소통의 길은 단절된다. 몸은 바쁘지만 마음은 외로워지고 삶은 분주하지만 영혼은 점차 소리 없는 적요(寂寥)의 늪으로 빠져 들어간다.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어루만지고 끌어안아주기를 소망하지만, 정작 나 자신을 타인에게 내놓을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이웃과의 진실한 친교는 정체되고 단절되는 것이다.
블로그는 이와 같은 모순된 삶속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탈주'의 공간을 제공해주었다. 자신의 삶과 영혼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드러내고, 홈페이지를 방문한 지인(知人)들이 작성한 '댓글'을 확인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작업은 '바쁨'과 '경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나의 홈페이지를 방문한 지인에 대한 보답은 내가 그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댓글'을 달아주는 것만으로 일정하게 상쇄가 된다. 간편함과 효율성, 가벼움과 자유분방함을 내면적 속성으로 하는 블로그는 그래서 바쁜 현대인들에게 '중독' 수준의 매력을 갖는 문화 활동이 되었다. 결국 블로그라는 현상의 본질은 단절된 의사소통의 회복을 갈망하는 현대인들의 욕망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일기'란 오직 자기 자신만 보는 것이라는 '편견'에 길들여져 있던 사람들에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일기를 적어나가거나 다른 사람의 일기를 들여다보는 것은 흥미로운 파격이 되었다.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글과 사진을 '편집'하는 것은 즐겁고 진지한 창작 활동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일에 힘껏 몰입했다. 지인들끼리 나누는 정감어린 '댓글'에서는 인터넷 문화의 악풍경인 욕설이나 비방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댓글'과 '조회수'는 블로그에 매료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물과 공기처럼 소중한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블로그는 인터넷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한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놀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화 행위는 일정한 교육적 수준, 경제적 능력, 그리고 시간적 여유를 요구하기 때문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보편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블로그는 계층 간의 차이를 확인하는 '닫힌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지나치게 '가벼운' 의사소통은 사람 사이의 만남이 갖는 전면적이고 묵직한 의미를 왜곡할 수 있는 여지마저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학생, 여성, 아마추어 저널리스트, 전문 직업인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블로그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의사소통 방식이라는 점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그들이 나누는 정보 중에 유익한 내용이 많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가벼운' 외피 안에 감추어져 있는 서로의 삶에 대한 '진정성'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에 다가가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지만, 그 마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은 월간지 [빛과 소금] 4월호에 게재되었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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