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서명준의 '베를린통신'을 연재한다. 필자는 현재 베를린자유대 언론학 박사과정에 있으며 앞으로 2주에 한번 꼴로 독일 등 유럽 소식을 프레시안 독자에게 전할 예정이다. 편집자
3.11 마드리드 테러가 스페인 국내문제로 끝나길 바라던 유럽의 기대는 이제 무너진 것같다. 폭탄 테러의 알 카에다 개입 가능성이 짙어지면서 테러 공포의 파장이 유럽대륙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급진주의자의 테러는 이미 기차역, 축구경기장, 대형매장 등 유럽의 일상공간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테러의 목표는 이라크 점령군이나 정부기관이 아닌 출근길의 시민, 즉 유럽 ‘사회’를 겨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드리드 테러 이후 다른 유럽국가의 국민들도 이슬람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데 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테러 대응조처를 한층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이에 따라 외국인법과 현재 논의중인 대테러법안에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또 보수야당은 이번 기회에 자국내 치안문제에 군대를 투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헌법(Grundgesetz)은 나치 히틀러 망령의 재발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2차대전 후 치안유지를 위한 군대투입을 금지하고 있다.
학교내 이슬람스카프 착용금지 법안을 둘러싸고 테러조직으로부터 협박성명을 받은 프랑스는 이미 경계수준을 1단계 상향조정했고, 독-불 양국정상은 지난 16일 파리회담에서 긴밀한 대테러 협력을 천명하기도 했다. 사실 지난 9.11 이후 테러조직의 동향은 양국 안보정책의 관심사가 되어 왔으며 독일의 경우 테러 조직의 군수물자 지원 등에 대한 추적이 있어왔다.
그 대표적인 예로, 독일 함부르크 알 카에다 세포조직의 공급책이자 9.11 테러 공모혐의로 현재 미 교도소에 수감중인 람지 비날쉬브(Ramzi Binalshibh)를 들 수 있다. 2001년 7월 경 자살여객기 조종사인 모하메드 아타(Mohammed Atta) 등 9.11 테러 분자와 스페인에서 접촉해온 비날쉬브는 독일과 스페인 내 알 카에다 조직의 긴밀한 연락망을 구축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도 9.11 참사 이후 지금까지 약 20명 이상의 독일 거주 이슬람인이 테러 기도혐의로 체포되었고 독일-스페인 테러 지원조직들의 접촉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 지난해 여름 함부르크 지방수사국이 체포한 알제리인 압데라작(Abderrazak M.)은 자살테러단을 스페인으로 투입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증거부족으로 석방되기도 했다.
또 최근 독일에서는 세계 최초로 9.11 테러용의자에 대한 재판이 열린 바 있다. 지난 2월 독일 함부르크 지방법원은 3천건 이상의 테러 원조, 9.11 자살여객기 조종사인 모하메드 아타를 도운 혐의 등으로 함부르크 테러단 소속의 모로코인 모타사덱(Motassadeq)에게 15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지난 3월 4일 항소심에서 헌법재판소는 모타사덱에 대한 재심 판결을 내렸다. 독일 헌재는 현재 미 교도소에 수감중인 비날쉬브의 재판이 열리지 않아서 사건관련 재판자료가 없는 상태이고 미국 정부와 독일 연방정부의 비밀유지조처로 비날쉬브의 심리가 불가능하므로 함부르크 지방법원의 증거자료를 불충분한 것으로 판결한 것이다. 독일 헌재는 또 형사심리에서 행정부의 비밀유지조처가 원칙적으로 피고에 불이익으로 작용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지난 2월 초 함부르크 알카에다 세포조직 창설 멤버로 자금거래 지원과 은신처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독일 유학생 압델가니 음주디(Abdelghani Mzoudi)가 함부르크 지방법원으로부터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이 밖에 4명의 알 토히드(Al Tawhid) 테러단 소속 이슬람인이 독일 내 테러를 기도한 혐의로 뒤셀도르프 지방법원이 심리중이며 연방검찰은 최근 베를린에서 테러단체를 구성하려 한 혐의로 급진주의자 1명을 기소한 상태다. 또 작년 프랑크푸르트 지방법원은 지난 2000년 슈트라스부르크에서 테러 지원혐의로 4명의 알제리인에게 구류형을 선고한 바 있다. 한편, 지난해 11월 바이에른주 경찰은 이라크 전선으로 향하던 4명의 독일 망명 북이라크인을 체포하기도 했다. 이들은 항공편으로 테헤란에 도착, 산악을 넘어 바그다드로 진입할 예정이었다.
여기서 바로 테러조직의 테러범 충원방식을 알 수 있는데, 바그다드 전투에서 부상 당한 이슬람 테러분자들이 독일로 정치적 망명을 하고 여기서 재무장되어 다시 바그다드로 파송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베를린과 바그다드를 잇는 성전(聖戰)관광인 셈이다. 즉, 독일로 망명했다가 이라크로 재파송, 폭탄전문가가 되어 독일측과의 접촉을 맡거나 독일로 귀환해 지하드를 위한 새로운 테러범을 발굴하여 훈련시키는 방식이 사용되고 있다. 이때 테러범 훈련단계는 마치 일반 학교처럼 단계별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단계마다 시험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정부는 이렇게 독일을 거점으로 훈련된 테러범이 작년 한 해에만 19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고, 올들어 이를 50명으로 상향조정했다. 그러나 실제 숫자는 이를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현지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이러한 테러지원 방식은 옛 소련 점령 당시의 아프가니스탄을 연상시킨다. 당시 소련군은 몇 년간 지속된 게릴라전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패퇴했었고 이 시점에서 바로 알 카에다가 창설된 사실은 이미 알려진 바다.
이 달 말 열리는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는 3.11 마드리드 테러 이후 회원국 경찰과 정보당국의 협력을 촉구하는 법안 마련,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제3세계와의 협력 등 유럽 차원의 대테러 합동전략 수립이 주요 의제로 채택되어 본격적인 논의가 있을 예정이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이렇다할 대안을 마련치 못한 유럽 각국의 정치권이 얼마나 효과적인 테러 방지책을 마련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감시활동을 강화하고, 관련 법규정을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시민의 안전을 완벽히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예컨대 지하철역에 공항검색대와 같은 시설을 설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치안 유지를 위해 군대투입을 주장한다면 스페인 군대가 마드리드 참사를 예방할 수 있었을지를 자문해야 한다. 나아가 외국인 강제추방 법조항을 강화하려 한다면 단지 의심스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체적인 혐의도 없이 외국인을 국외 추방할 수 있을지를 각각 해명해야 한다.
“국가가 자국민을 완전히 보호할 수 있다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한 오토 쉴리 독일 내무장관의 국가안보회의(Sicherheitskabinett) 발언은 따라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는 또 법률강화로 치안이 강화된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알 카에다의 네트워크화도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번 테러는 유럽의 국경수비가 삼엄해진 점을 고려, 새 조직을 꾸리는 것은 힘들다고 판단한 알 카에다가 하부조직인 북아프리카 그룹(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인으로 구성)을 동원한 것으로 보도됐다. 독일 주간지 DIE ZEIT(3월 18일자)는 한 테러전문가의 말을 인용, 이같이 보도하면서 현재 유럽 전역에 약 3백개의 알 카에다 전위대가 활동 중인 것으로 분석했다. 독일 정보당국은 그러나 이 테러조직들이 알 카에다와 얼마나 깊숙히 연관되어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신문은 비판했다. 현재 독일 정보당국은 마드리드 테러와 독일 내 세포조직과의 관련성을 추적중이다.
유럽의 심장부에서 201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이번 테러의 배후를 색출하고 심판하는 일은 유럽연합(EU)의 대테러전쟁에서 어쩌면 가장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9.11 이후 테러방지를 위한 두 번째 진지한 기회를 갖게 된 유럽이 과연 독자적이며 효과적인 테러방지책을 마련할 수 있느냐가 관심의 초점이다. 미국의 이라크전쟁은 과연 테러와의 전쟁이었는가. 유럽 지도자들은 우선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이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당선 직후 테러와의 전쟁을 약속함과 동시에 이라크주둔 스페인군의 철수를 선언했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은 결코 테러와의 전쟁이 될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이라크전쟁이 대테러전쟁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부시행정부의 세계인식을 유럽지도자들이 추종하는 한 진정한 테러방지책은 나올 수 없다. 나아가 유럽 역시 테러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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