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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을 키운 것은 키신저와 럼스펠드였다"

김재명의 뉴욕통신 <26> 미 기밀서류로 본 미국-후세인 유착

1년 전 3.20 침공으로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1970년대와 80년대 미국은 이라크와의 관계 정상화에 노력했고, 후세인의 권력강화를 도왔다. 특히 호메이니 혁명으로 1979년 이란의 친미왕조가 무너진 뒤 미국은 이라크를 완충지대 삼아 이란이 미국의 중동 이해관계(석유 공급선의 안정과 이스라엘 안보)에 끼치는 위협을 막으려 했다. 위와 같은 사실들은 미 조지워싱턴대 부설기구인 국가안보기록보존소(The National Security Archive)가 비밀해제된 미국 정부의 문서들을 내놓음으로써 밝혀졌다.

(사진) 최근 공개된 미 정부 기밀서류는 미국과 후세인의 끈끈한 유착관계를 잘 드러낸다. (@ National Security Archive)

이 기밀문서들은 1970년대 포드행정부 시절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1973-1977년)이 그의 고위 보좌관들과 나눈 대화록, 키신저 국무와 이라크 외무차관과의 회담기록, 런던주재 미 대사관이 국무부에 보낸 비밀전문(電文), 레이건 특사 럼스펠드에 보낸 슐츠 미 국무의 훈령 등이다. 이들 문건들은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중반에 걸쳐 사담 후세인과 유착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비롯한 미-이라크 양국 관계의 비화들을 전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 초기엔 중립을 선언했었다. 그러나 이라크가 이란에 밀리기 시작하자, 걸프만 일대의 미 석유이권을 지키려면 이란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레이건 행정부 고위관계자들은 1983년 11월26일 ‘국가안보 결정지침(National Security Decision Directive), 약칭 NSDD 114 문건으로써 이란-이라크전쟁과 관련한 미국의 중동정책을 새로이 다듬었다.

그 주요내용은 ▷미국의 이권이 걸린 중동 석유지대를 지키기 위한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걸프만에서의 미군 작전능력을 높이는 조치를 취하며, ▷미 국무와 국방, 그리고 합참의장이 함께 걸프만 일대의 긴장이 높아 가는 데 맞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1970년대 포드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당시 다국적 제약회사 Searle 회장, 현 미 국방장관)가 레이건 대통령의 특사로 이라크에 파견돼, 사담 후세인과 회담을 가진 것도 중동지역 미국 이권을 지키기 위한 포석이었다.

1983년 12월20일 럼스펠드는 이라크 바그다드 대통령궁에서 후세인을 만나 악수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90분 동안에 걸쳐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밀담을 나누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럼스펠드에게 “미국은 이란의 승리를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점을 후세인에게 분명히 밝히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었다. 후세인을 만났을 때 럼스펠드는 이라크가 이란군에 대해 화학무기를 사용하고 있는 점을 전혀 비난하지 않았다. 럼스펠드의 이라크 2차방문은 3개월 뒤인 다음해 3월에 이뤄졌고, 이라크 외무장관 타리크 아지즈를 만났다. 바그다드로 향하는 럼스펠드에게 당시 국무장관 슐츠는 비밀전문을 보내 “미국의 이라크 지지를 강조하라”는 지침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2차에 걸친 럼스펠드의 바그다드 방문이 이뤄졌을 무렵, 이라크는 국토면적에서나 인구에서 대국인 이란군의 공세에 밀려 마즈눈 유전지대를 빼앗기는 등 고전하고 있었다. 미국은 군사정보와 물자를 비롯해 물심 양면으로 후세인 정권을 지원했다.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수출입은행을 비롯한 국제금융기관들에 압력을 가해 이라크의 전쟁비용을 대주도록 했다. 1982년 미 국무부는 국제테러리즘 지원국가 명단에서 이라크를 뺐다. 럼스펠드 방문이 있은 지 1년도 못돼 미-이라크는 닫혔던 외교관계를 텄다(1984년11월).

당시 이라크는 이란-이라크 전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함으로써 국제법을 잇달아 어기고 있었다. 미국은 형식적인 비난성명을 발표했을 뿐, 이라크 지도자들에겐 후세인 정권 지지를 분명히 거듭 밝혔었다. 이는 2003년 3.20 이라크침공 때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를 침공명분의 하나로 삼았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1970년대 포드 행정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로 이어온 미 공화당 정권의 대이라크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을 보여주는 문제의 기밀서류들을 살펴본다.(이 글은 <월간중앙> 3월호에 실린 것을 다시 정리한 것임).

***<기밀서류 1> 키신저 국무와 하마디 이라크 외무의 대화록(1975년 12월17일)**

***“미국은 쿠르드족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으니, 걱정 마라”**

1975년 말 양국 외무장관(헨리 키신저 미 국무-사둔 하마디 이라크 외무)이 프랑스 파리 주재 이라크대사관저에서 만났다. 두 사람의 회동이 있기 전까지 양국 외무장관급 대화는 여러 해 동안 이뤄지지 않았었다. 1967년 6일전쟁 뒤, 특히 1973년 중동전쟁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적극 밀어 전쟁의 승패에 영향을 끼쳤다. 이로 인해 이라크는 다른 이슬람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과의 관계를 닫고 있었다. 키신저 국무는 미국의 이슬람권 관계 정상화 노력의 일환으로 이라크 외무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키신저 국무= 최근 몇 년 동안 양국은 접촉이 없었다. 우리의 만남이 앞으로 양국 간에 더 빈번한 교류의 기회로 삼자. 국가이익 측면에서 미-이라크 관계를 가로막는 기본적인 걸림돌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당신의 견해는 다르겠지만...

▶하마디 외무= 물론 다르다. 양국 사이에 접촉이 드물었던 까닭을 우린 서로 잘 알고 있다. 이라크는 아랍의 일원이다. 우리는 미국이 오늘의 이스라엘이 있도록 만든 주역이라 믿는다. 1948년 독립국가를 이룬 이래 미국의 도움 없이는 오늘날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이라크의 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 중이다. 미국은 보다 정교한(sophisticated) 무기들을 이스라엘에 대줘왔다. 이는 아랍세계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처사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중동지역에서 군사강국으로 만들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금 핵무기를 지닌 군사강국이면서도 아랍세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만 하면, 그것이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은 현재의 국경선에 만족하지 않고 기회다 싶으면 늘 분쟁을 일으켜 바깥으로 팽창하려 든다. 경험적 사실들이 이를 말해준다. 특히 우리는 회교도와 기독교도들의 충돌로 내전상태인 레바논사태를 핑계로 이스라엘이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3년 뒤인 1978년에 일어났다-역자 주).

▶키신저 국무= 당신의 말뜻을 이해한다. 미국은 군사개입은 안 된다고 이스라엘에 강력히 경고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사태 개입은 또 다른 10만명의 아랍인들을 이스라엘 지배 아래 몰아넣을 뿐 중동 평화를 더 어렵게 만들뿐이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이 아랍세계에 언제까지나 위협이 되리라 보진 않는다. 어떻게 인구 3백만 국가가 위협이 될 수 있겠나? 내 생각엔 10년이나 15년 뒤 이스라엘은 레바논처럼 아랍세계에 이렇다 할 영향력도 없이 생존에 급급한 작은 나라로 머물 것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생존을 바랄 뿐, 중동지역을 이스라엘이 지배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스라엘은 나를 국무장관 자리에서 몰아내고 싶어한다.

▶하마디 외무= 언론보도를 보면, 미국이 이라크 북부의 친이란계 쿠르드(Kurd)족에게 무기를 대줬다고 한다. 쿠르드 족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키신저 국무= 지난날 이라크가 소련의 위성국가라고 여길 때는 이란이 쿠르드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미국은 반대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란-이라크가 쿠르드족 문제를 놓고 타협을 봤으므로 미국이 개입할 이유가 없다. 내가 약속하지만, 미국은 이라크의 현 국경선에 영향을 미칠 어떤 형태의 개입도 하지 않을 것이다.(쿠르드족 분리독립문제에 관한 한 미국은 이라크 정부를 지지하겠다는 약속이다-역자 주).

▶하마디 외무= 그렇다면 이라크도 미-이라크 두 나라 관계 개선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두 나라는 서로의 국내문제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이라크에 들어와 활동하는 몇몇 미국 기업들은 아주 공평한 대접을 받고 있다. 끝으로 쿠르드족 문제는 우리 이라크로선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키신저 국무= 미국의 대이라크 정책이 냉담한(unsympathetic) 것은 아니다. 걱정하지말고 지켜 봐달라.

***<기밀서류 2> 조지 슐츠 미 국무가 럼스펠드에게 보낸 비밀 훈령(1984년 3월24일)**

***“미국이 이라크 지지한다는 걸 확신시켜라”**

미 국무장관 조지 슐츠는 1984년 3월 바그다드 2차 방문길에 나선 럼스펠드 앞으로 비밀전문(電文)을 보냈다. 럼스펠드가 바그다드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담은 일종의 훈령이었다. 럼스펠드의 이라크 방문 직전 미국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사용했던 점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 이라크 쪽으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그런 앙금과 긴장은 럼펠드의 이라크 방문 당시까지도 이어졌다. 슐츠 국무는 그 비밀전문에서 이라크 권력 1인자인 사담 후세인이나 타리크 아지즈 외무장관을 면담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들을 만났을 때 ‘미국이 미-이라크 양국관계 증진을 바란다는 점을 확신시키라’는 훈령을 내렸다. 그 이틀 뒤 럼스펠드는 6시간 동안의 짧은 이라크 방문 일정 속에서 아지즈 외무장관을 만났다. 아래는 국무부 비밀전문의 요약.

지난 12월 럼스펠드 당신이 이라크를 방문한 뒤로부터 3개월 동안에 두 가지 사건이 바그다드 분위기를 악화시켰다. 첫째, 이라크는 이란의 대공세를 제대로 물리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마즈눈 유전지대를 이란에 빼앗겼고, 많은 사상자를 냈다. 둘째, 지난 3월5일 미국이 이란군을 향해 이라크군이 화학무기를 썼던 사실을 비난하는 성명을 내자, 미-이라크 양국 사이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이 같은 두 측면을 감안할 때, 이라크 지도자들과의 면담에서 그들은 아랍-이스라엘 분쟁이나 레바논 사태 등에 대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전황(戰況)이 더욱 나빠지면서 그들은 살아남느냐의 문제에 매달려 있다. 이런 긴급상황에서도 사담 후세인이나 타리크 아지즈가 당신을 접견한다면, 그것은 이라크 정부가 미-이라크 관계증진에 관심을 갖고 있고, 미국이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를 얼마나 도울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뜻한다.

지난 3월15일 워싱턴에서 나(슐츠 국무)와 이글버거 국무차관이 이라크 외무차관 이스메트 키타니를 만났다. 우리 두 사람은 미국이 낸 화학무기 비난성명은 생화학무기 사용을 엄격히 반대하는 미국의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키타니에게 설명했다. 아울러 미국은 첫째,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이 승리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 둘째, 미-이라크 관계를 증진시키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또한 미 부통령이 타리크 아지즈 외무장관을 워싱턴으로 초청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키타니는 미국의 화학무기 비난성명을 납득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당신의 이라크 방문 길에도 그 비난성명에 대한 이라크 쪽의 거센 항의가 다시 이어질 것이다.

이란 호메이니를 겨냥한 미국의 적대적인 정책,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에 대한 우호정책을 지켜보면서 이라크 관리들은 미국의 중동정책에 혼란을 느끼는 듯하다. 이글버거 차관은 미 우방국들의 무기들이 이란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들을 이라크 키타니 외무차관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미국의 한결같은 이라크 지지정책을 확신시키려는 뜻에서였다. 이라크 지도부는 이런 사실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라크는 이스라엘이 이란에 계속 무기들을 수출하지 못하도록 미국이 제동을 걸어주길 바라고 있다. 당신은 이라크 지도자들을 만난다면, “미국은 이스라엘 당국에 이란으로의 무기수출이 지닌 문제점을 다시 한번 지적했다”고 강조하길 바란다.

***<기밀서류 3> 럼스펠드의 후세인 면담 보고서(1983년 12월21일)**

***“후세인, 레이건 대통령 친서 받고 크게 만족”**

영국 런던 주재 미 대사관이 미 국무부로 보낸 ‘럼스펠드의 임무; 1983년 12월20일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과의 면담’이란 제목의 비밀전문. 레이건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이라크를 방문한 럼스펠드는 바드다드 대통령궁에서 사담 후세인을 만나 레이건의 친서를 전달했다. 두 사람은 90분 동안에 걸쳐 레바논, 팔레스타인 문제, 그리고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가 열세에 몰린 상황을 둘러싼 미-이라크 공동관심사와 미국의 대(對)이란 무기유입 차단노력을 둘러싼 대화를 나누었다. 럼스펠드는 그 자리에서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사용해선 안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럼스펠드는 이란군의 공세로 페르시아만 석유 수출길이 위협받고, 시리아(이란의 동맹국)로 통하는 송유관이 막힌 상황에 내몰린 후세인에게 송유관 건설을 제안했다. 요르단 남부 홍해 지역의 아카바 항구로 통하는 송유관 건설 아이디어였다. 후세인은 ‘이스라엘의 위협으로부터 송유관의 안전을 미국이 보장해준다면...’하며 긍정적으로 검토할 뜻을 비쳤다.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고전하는 후세인 지원 방안 협의와 더불어, 이라크 유전지대와 요르단 남부항구 아카바를 잇는 송유관 건설은 럼스펠드의 바그다드 방문 목적 가운데 중요한 안건이었다. 여기에는 조지 슐츠 미 국무와 관련이 깊은 미 건설회사 벡텔 그룹의 로비가 숨어있다.(슐츠 국무는 벡텔 그룹 회장 출신). 미 국무부는 럼스펠드-후세인 회담을 가리켜 미-이라크 관계 증진을 위한 이정표(milestone)를 세웠다는 평가를 내렸다. 다음은 영국 런던 주재 미 대사관의 기록 요지.

럼스펠드를 접견하면서 사담 후세인은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건네 받은 데 이어 럼스펠드로부터 “미-이라크 양국관계를 회복하는 데 걸림돌이 무엇이든 모두 제거됐다”는 말을 듣자, 아주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면담은 이라크 외무장관 타리크 아지즈와 통역자가 배석한 가운데 90분 동안 이어졌다. 우리 내부의 판단으로는 이번 럼스펠드-후세인의 만남은 미-이라크 관계발전에 도움이 되는 획기적 사건이며 중근동 지역에서의 미국의 입장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날 면담에서 사담 후세인과 타리크 아지즈는 모두 군복 차림에 허리엔 권총을 차고 있었다. 두 사람은 활기차고 자신감에 넘치는 표정이었다. 후세인은 럼스펠드에게 세가지 측면에서 기쁘다고 말했다. “첫째, (럼스펠드와) 진지하고 솔직한 정치적 논의를 하게돼 기쁘다. 둘째, 이란-이라크전쟁의 의미와 (이란이 승리할 경우의) 위험성을 지적한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받아 기쁘다. 셋째, 미국이 이라크와 관계증진을 바란다는 점을 확인하고 기쁘다”고 말했다.

***“미친 놈들이 서로 할퀴도록 놔둬라”**

대화 주제를 아랍국가들 쪽으로 바꿔, 후세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랍세계엔 매우 부자인 나라들과 매우 가난한 나라들이 섞여 있다. 그런데 서방국가들은 아랍국가들이 소련의 영향력 아래 머물러 있길 바라지 않는다. 우리 아랍국가들도 동서 양진영 슈퍼 파워 어느 쪽 그늘에도 머물길 바라지 않는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은 중동의 가난한 국가들이 소련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면 그들을 재정적으로 도와야 할 것이다”

후세인은 미국의 대중동정책을 비판했다. “미국은 시리아의 레바논 침공(레바논의 기독교세력과 이슬람세력이 내전을 벌이자, 1976년 시리아가 군사 개입한 것을 가리킴-역자 주)이나 걸프전쟁(이란-이라크전쟁을 뜻함-역자 주)에 처음부터 강건너 불구경하듯 관심이 없었다. 마치 ‘이 미친 놈(lunatics)들이 서로를 할퀴도록 내버려 두라’는 투였다. 시오니스트(이스라엘)들도 그 불이 오히려 더 커지길 바래왔다. 만약 이라크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그 불을 끄겠나? 만약 시리아와 (1978년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나눠먹는 걸 미국이 막지 않는다면 독립국가로서의 레바논은 사라질 것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해 레바논에서 철수하도록 만들고, 우리 아랍국가들도 시리아에 마찬가지로 철수 압력을 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국가든 약소국들을 침략해 차지하고픈 유혹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어 후세인은 현재 진행중인 이라크-이란 전쟁이 빨리 끝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라크-이란 전쟁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던 지난 4년 동안, 우리 이라크는 군사적으로 어려운 고비를 맞이했었으나 이제 극복하는 단계다. 지금은 언제 전쟁이 끝날 것인가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라크는 전쟁이 오래 끄는 걸 반기지 않는다” 이에 럼스펠드는 “이라크 대통령과 더불어 서로의 생각을 나눌 기회를 만들어 줘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럼스펠드는 이란-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이 이란으로 무기가 선적되는 것을 막으려 노력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미국은 이라크-이란 전쟁으로 중동지역이 더욱 큰 불안정 속에 빠져드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더구나 이라크가 전쟁으로 약해지거나 이란이 이익을 챙기고 야망을 키우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미국은 이라크의 주권이 지켜지고 이란의 세력이 커지지 않는 선에서 전쟁이 평화적으로 매듭지어지길 바라고 있다. 이란과 시리아의 세력이 커지는 걸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 미국과 이라크는 공통의 이해관계에 있다. 미국은 다른 국가들이 이란으로 무기를 수출하지 말라고 촉구해왔고, 미국의 통제(control) 아래 있는 제3국들의 대이란 무기송출을 성공적으로 막아왔다”

***럼스펠드의 송유관 건설 제안 뒤엔?**

후세인은 이란군 공세와 시리아의 적대적 행위로 석유 수출이 어렵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라크-이란 전쟁이 날로 커져가고 있는 점과 관련, 이란이 이라크의 인내심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전쟁 중에도 이란은 계속 석유를 수출하지만, 이라크는 페르시아 만으로나 시리아 쪽으로 이어지는 송유관이 폐쇄되는 바람에 석유수출길이 막혀 버렸다. 교전국 쌍방이 페르시아 만 지역에서 군사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럼으로써 이란은 물론 이라크도 페르시아만 지역으로 석유를 수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후세인의 희망사항이었다.-역자 주).

후세인의 이 말을 받아 럼스펠드는 “이라크 석유가 안정적으로 수출돼야 한다는 후세인 대통령의 견해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지즈 외무장관과 어제 저녁 요르단 남부 아카바로 통하는 새로운 송유관 건설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어진 후세인의 발언. “지난날 이라크는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송유관 건설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방해와 위협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 정부와 미국 기업들이 아카바 송유관 건설에 관심을 둔다면, 우리는 이를 다시 검토해보겠다. 이라크와 미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면, 미국이 (이스라엘의 위협으로부터) 송유관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고전하는 후세인 지원 방안 협의와 더불어, 이라크 유전지대와 요르단 남부항구 아카바를 잇는 송유관 건설은 럼스펠드의 바그다드 방문 목적 가운데 중요한 안건이었다. 사담 후세인이 ‘미국기업이 관심을 갖고 있다면...’하고 언급한 미 기업은 바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 대형 건설수주를 독차지하고 있는 건설회사 벡텔 그룹이다. 1984년 당시 벡텔 그룹은 아카바 송유관 건설사업에 큰 관심을 갖고 로비를 벌이고 있었다. 럼스펠드를 바드다드로 파견했던 조지 슐츠 미 국무는 1974년부터 무려 8년 동안 건설회사 벡텔 그룹의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여기서 이른바 정실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보게된다-역자 주).

<관련링크> http://www.gwu.edu/~nsarchiv/NSAEBB/NSAEBB107/index.htm
http://www.gwu.edu/~nsarchiv/NSAEBB/NSAEBB82/

<필자 이메일: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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