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자 리포트 "일자리와 임금, 나눌 것인가? 독식할 것인가? (1)"에서 보았듯 현재 한국의 고용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의 부족이다.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너무나 많다. 또 고용이 불안정하다. 그러므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면 현 정부가 주장해 온 대로 경제성장을 계속하면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정상적인 사회라면 그럴 것이다. 한국은 최근 몇 년 사이 다른 나라들보다 높은 비율로 성장해왔다. 경제성장률이 2010년에 6.2%, 2011년에 3.8%이다. 그런데도 고용사정은 점점 악화되어 왔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점점 희망을 잃고 있다.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성장과 고용증가가 별 상관관계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대기업의 상황을 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30대 기업의 2010년 매출액은 총 630조 원가량으로 GDP의 절반을 좀 넘는 수준이다. 매출액이 3년 전인 2007년에 비해 약 56%나 늘었으니 엄청난 증가세이다. 이 기업들의 전체 영업이익은 약 8.4%로 상당히 높다.
이 숫자들을 보면 이 기업들이 최근 수출 붐을 타고 얼마나 호황을 누리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 기업이 지난 3년간 늘린 일자리는 단 4만4809개에 불과하다.(<한겨레> 4월 4일자) 이것은 앞으로 경제성장이 얼마나 많이 이루어져도 일자리가 늘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더 나쁜 것은 앞으로는 경제성장의 가능성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호언장담하던 정부조차 내년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7%로 낮춰 잡고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세계경제는 성장이 더 이상 불가능한 시대로 진입하고 있으므로 조만간 마이너스 성장으로 갈 가능성이 훨씬 크다.
따라서 아무리 새로 성장산업을 발굴하고 키워봤자 이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 전 세계적인 불황이 오면 수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한국경제는 매우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줄어들 것은 뻔한 이치이다.
▲ 서울 중구 서울고용센터 1층에 붙어 있는 '취업 희망 메시지들'. 취업을 바라는 젊은이들의 간절한 소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연합 |
물론 현재 복지가 주된 정치적 의제 가운데 하나이므로 노인요양이나 보육 등 사회적 서비스 일자리를 어느 정도 늘리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재정문제 때문에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또 그것은 성격상 주로 중년층 여성들에게 적합한 직종들이며 일반적으로 좋은 일자리라고 하기는 어렵다.
일자리와 임금을 나누는 수밖에 없다
일자리를 더 이상 늘릴 수 없다면 어떻게 할까? 방법은 하나뿐이다. 고용구조의 틀을 전체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있는 일자리와 임금이라도 더 공평하게 나누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어 먹는 방법이다. 좀 과격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 방법밖에 없다. 우리의 발상을 바꾸지 않으면 돌파구가 없다.
그것은 가능할까?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인들은 현재 과도하게 많은 시간을 일한다. 직장에서 밤늦게까지 연장근무 하는 것을 다반사로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와 고용인원을 많이 줄인 대신 취업자에게는 더 많은 일을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이 일종의 사회적인 관습이 되어버렸다.
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직장인은 10명 가운데 7명이 초과 근무를 하고 있고 하루 3.1시간, 일주일에 평균 4일, 한 달에 평균 53시간을 초과 근무하고 있다. 응답자의 65.8%가 과중한 업무량을 호소하고 있고 두 명 이상의 몫을 하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60%에 이른다.(<한겨레> 2010년 5월 4일자)
지난 11월 7일자로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것을 보면 완성차 5개사의 노동자들은 주당 55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다. 심한 경우에는 63시간까지도 일을 시킨다. 현재 법정 근로시간은 40시간이고 근로기준법에서는 연장 근무를 12시간까지 허용한다. 그러나 그것도 훨씬 넘어서서 연간 2400시간이나 노동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이러한 장시간 노동은 국제적 수준에서도 지나치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10년에 독일은 연간 1419시간, 프랑스는 1562시간, 네덜란드는 1377시간, 스웨덴은 1624시간, 미국은 1778시간, 일본은 1733시간을 일했다. OECD국가들의 평균은 연 1749시간이다.
반면 한국은 2193시간이다. 한국의 경우는 그나마 1994년의 2640시간에서 점차적으로 축소된 것이다. 그럼에도 선진국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20-50여%까지 더 많은 시간을 일한다.
이는 한국에서 근로자들이 혹사당한다는 의미도 있으나 다른 의미에서 본다면 한 사람의 노동인구가 다른 사람의 노동 몫을 그만큼 더 가져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것을 OECD국가들의 평균 정도만으로 낮추어도 단순계산으로 지금보다 일자리가 25% 정도 늘어난다.
그렇게 하면 한국의 노동인구는 무려 437만 명이나 늘어날 수 있다. 이것은 실업자 330만 명과 과잉된 자영업자 수로 추산되는 약 170만 명을 합친 숫자인 500만 명을 완전히 포괄하지는 못하나 그 87%에 달하는 숫자이다. 일자리를 나누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고용문제의 큰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일자리를 나누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임금격차가 너무 크게 때문이다. 청년실업이 많은 것도 청년층의 눈높이에 맞는, 적정한 임금의 안정성이 높은 괜찮은 일자리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임금격차는 어느 정도일까?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또 산업별·기업별·학력별로 차이가 매우 크게 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평균은 약 두 배 격차가 난다. 그러나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가면 사정이 더 달라진다.
대기업의 평균 연봉은 2010년에 약 3500만 원 정도이다. 그러나 상위 100개 회사 가운데 85개 회사의 평균은 무려 6195만 원이다.(<조선일보> 7월 26일자) 일부 잘 나가는 대기업은 8, 9천만 원에서 1억 원 이상에 이르기도 한다.
공기업도 상당히 높아 거의 대기업 수준이다. 한국방송공사는 평균 연봉이 8257만 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8525만 원, 산은금융지주는 무려 1억 2083만 원에 달한다. 연봉 7000만 원이 넘는 곳이 46곳이나 된다. (<조선일보> 8월 3일자)
공무원들의 보수도 결코 낮지 않다. 공무원은 평균 월 361만 원을 받으나 여기에 여러 수당들이 더 붙는다. 사립학교 교직원은 평균 월 403만 원이다.(<내일신문> 4월 22일자)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 격차도 너무 크다. 고용노동부가 2010년 6월에 조사한 전국 3만2000개 사업장 고졸자의 평균 임금은 대졸자의 57.9%에 불과하다.(<동아일보> 8월 6일자) 나이를 먹을수록 격차가 커진다. 고작 4년을 더 공부하는 것치고는 너무나 심한 불평등이다.
최저임금도 너무 낮은 수준이다. 2011년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4320원으로, 월로 치면 주 40시간 근무일 때 90만 2880원, 44시간이면 97만 6320원이다. 그런데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사람은 2010년 3월 기준으로 211만 명으로 전체의 12.7%에 달한다. (<프레시안> 2010년 6월 13일자)
그러니 최고 임금을 1억 원으로 보아 비정규직 평균과 비교하면 무려 6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들에 비하면 무려 9배 정도이다. 이렇게 한국에서는 임금격차가 매우 크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임금수준과 고용안정성이 높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고 모두 머리를 싸맨다. 이것이 바로 청년실업, 사교육과열, 공교육 파행, 스펙쌓기 과열, 가계적자 등 다른 많은 문제들의 근원이다. 따라서 이 격차를 줄이지 않고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상식이 한국사회에서는 지켜지지 않는다.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서울역 광장 시위 ⓒ프레시안(김봉규) |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선진국의 경우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1인당 GDP와 같거나 많아도 2배 이하이다. 또 유럽의 경우, 스웨덴이 대표적이지만, 대체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오랜 시간을 두고 노동계급 자신이 임금정책을 그 방향으로 유도해 왔다.
그러므로 대기업 노동자나 중소기업 노동자나 노동의 양과 질이 비슷하다면 임금 격차가 크게 나지 않는다. 노동계급 전체가 대체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임금을 받는다. 이것을 보면 한국의 비정상적으로 큰 임금격차가 한국인들의 보다 평등한 삶을 해치며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크게 좀 먹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기업의 독과점 체제가 고용문제의 근원
따라서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은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현안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어떤 정당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주장하기도 하고 또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당도 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쉽게 가능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런 임금격차가 기본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익률 차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부(정보통신부문)의 영업이익률은 2007년에 10.3%, 2008년 8.9%, 2009년 8.7%이다. 반면 2차 협력업체 20개사의 평균 이익률은 2007년 0.9%, 2008년 2.2%, 2009년 1.9%에 머물렀다.
현대차 계열사인 11개 부품사의 영업이익률은 1999년 7.7%에서 2009년 상반기 9.3%로 높아졌으나 비계열 1차 부품업체는 같은 기간 4.6%에서 2%로 떨어졌다.(산업연구원 자료) 이 정도면 이들 중소기업들은 거의 적자운영 수준이다.
문제는 이런 관계가 일부 기업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대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내며 승승장구하는 사이에 그 납품업체나 협력업체는 죽어가고 있다. 따라서 중소기업들이 아무리 비정규직을 줄이고 임금수준을 올리려고 마음먹어도 그런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재벌과 대기업들이 독과점체제를 구축하고 중소기업들을 마음대로 쥐어짤 절대적 수단을 가지고 있는 현재 한국의 상황이 그대로 유지되는 한 그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 일방적인 관계 자체를 무너뜨려야 비로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래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올릴 수 있다.
반면 중소기업의 이익률이 올라가면 상대적으로 대기업의 이익률은 하향 조정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대기업 노동자뿐 아니라 그에 영향을 받는 공기업 근로자나 공무원들의 연봉이 어느 정도 낮아지는 것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격렬히 반발할 것이다. 특히 조직노동은 이에 대한 모범답안을 이미 마련하고 있다. 노동계급은 자본과 싸워 노동계급 전체의 임금 몫을 키울 생각을 해야지 이미 확보하고 있는 몫을 줄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마 싸우기만 하면 얼마라도 더 많은 임금 몫을 얻어낼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나 이는 비현실적인 판단이다.
또 한 편에서 대기업 노동자들의 높은 임금은 대기업의 생산성이 높은 만치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느 기업이 많은 이익을 낼 때 노동이 자본과 함께 그 분배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그 문제에 시비를 걸지 말라는 것이다.
대기업의 장부만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연관 중소기업 전체의 장부를 같이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대기업이 기업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서 중소기업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이익의 많은 부분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계급 전체를 생각한다면 그런 이기적인 주장은 매우 곤란하다.
결국 한국의 고용문제를 풀려면 네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하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힘의 관계를 바꾸는 것이다. 그리하여 중소기업들이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성장을 하게 만듦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을 올리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현재의 지나치게 많은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비정규직의 상당 부분을 정규직화하여 고용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또 많은 실업자, 반(半)실업자들을 구제하고 현재 과도하게 팽창해 있는 영세 자영업자도 흡수해야 한다.
세 번째는 과도한 임금 격차를 줄여야 한다. 그래서 같은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임금을 받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수많은 저임 노동자들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또 정규직, 특히 대기업 정규직이나 공무원직을 차지하기 위한 지나친 과열을 줄일 수 있다.
네 번째는 고졸자와 대졸자의 임금격차를 크게 줄여 대학 진학이 임금 면에서 크게 유리하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대학진학률이 낮아질 뿐 아니라 사교육을 줄여 가계의 실질적인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또 중등교육이나 대학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고 매우 어렵다. 한편에서는 지금까지 무제한한 이익만을 추구해온 대자본의 잘못된 생각과 관행을 바로 잡고, 다른 한 편에서는 조직노동의 잘못된 이기적 행태도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득권세력의 엄청난 반발과 저항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민 대다수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강력한 정부가 등장해야만 그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고용상황이 매우 어렵고 경제상황의 악화에 따라 앞으로 그 고통이 점점 커질 것이므로 그러한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고용과 임금 정책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고용문제가 교육정책, 주택정책, 복지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정책들의 동시적인 개편을 통해 교육비, 주거비, 의료비, 노후비용 등 생계비의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여 주어야 한다.
이는 새로운 정책방향이 조직노동이나 다른 고임금 직종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도 장기적으로는 자신들의 이익을 크게 해치지 않는다는 생각을 불어넣어 주어야 불필요한 반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새로운 고용·임금정책이 빠른 시일 내에 제자리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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