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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마녀, 개미투자자는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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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마녀, 개미투자자는 봉

<미디어비평> 조선일보 4일자 경제섹션을 보고

***노동조합은 마녀, 개미투자자는 봉**

한국 증시에서 개미들은 과연 ‘봉’인가. 큰손들이 돈 벌 때 힘겨워 하고 큰손들이 힘겨워 할 때 망하는 개미들. 깡통 들고 분노하는 개미들의 모습들이 심심찮게 신문지상에 오르내린다. 그리고 언론보도를 보면, 이들이 지목하는 분노의 대상은 항상 정부였다. 노동조합의 ‘난동’을 정부가 ‘원리원칙’을 포기함으로써 방관했다는 언론의 논리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기업과 언론의 책임에는 침묵한다. IMF전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언론이 언제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증시정보를 제공한 적이 있는가. 자신들이 투자하는 종목을 밝힌 적이 있는가. 재앙이 다가오는데도 개미들에게 몸조심하라고 경고음을 내보낸 적이 있는가. 국민의 알권리를 운운하며 과연 그 알권리를 제대로 충족시켜 준 적이 있는가. 이런 언론이 과연 깡통 쥐고 분노하는 개미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지난 8월 4일 월요일자 조선일보의 경제섹션 B1면을 보면 『영세한 2ㆍ3차업체들 줄도산 우려-현대차 장기파업에 협력업체 ‘휘청’』이라는 기사가 지면 머리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3000여 업체 가동중단에 급여 줄고 체불까지」, 「“임금 높은데 너무 한다” 노조에 불만 터뜨려」라는 제목도 기사 중간에 한 자리를 차지한다.

***경제침체의 주범은 노동조합**

최근 들어 노동조합이 한국 언론의 눈에는 ‘마녀’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너나 할 것이 없이 언론사들이 마녀사냥을 위한 ‘연속기획기사’가 유행이다. 한국의 경제침체 주범이 노동조합이고 배후세력이 정부라는 인식이 확고하다. 이런 마녀사냥에 딸려 들어간 정부는 더 이상 언론의 비난을 참지 못하고, 입으로는 언론개혁을 외치지만 행동으로는 굴복한다. 보수언론과 한 길에 하나가 되기로 작심한 것 같다. 사측 대항권이라는 희대의 노동탄압 술책을 정책으로 내놓고, 파업의 단순가담자도 엄중한 법적 제재를 가하고, 손해배상청구액도 노동조합 하나가 감당하기 힘든 백억 대를 내놓는다. 정부와 언론은 경제침체의 주범으로 노동조합을 찍어 ‘공인’하고, 이제 노동관련 정책에 대해서는 ‘한통속’임을 선언한다.

이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 심지어 청년실업자들마저도 이제는 공공연히 노동조합 때문이라며 원망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언론과 정부의 ‘한통속 연대’가 성공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한국 경제의 회생은 노동조합을 철저히 단속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사회 심리적 분위기가 무럭무럭 커나간다.

이것을 조선일보의 편집기술이 증명한다. 위의 기사 바로 오른쪽에 『“경기저점은 올 하반기, 내년 상반기 이후 회복”-조선경제 자문위원 설문조사』라는 제목을 갖다 붙인다. 앞이 안 보이는 경기침체를 실감할 수 있는 보도다. 머리기사와 준머리기사가 한국경제의 어두운 미래를 점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1면 머릿기사에서 노동조합의 파업과 3천여개 업체의 줄도산 우려를 강조하면서 바로 옆에 한국경제의 저점에 대한 불편한 전망을 내놓으면서 노동조합이 경제침체의 주범임을 간접적으로 부각시킨 것이다.

한데 가히 충격적인 기사가 B5면에 혜성처럼 나타난다. 일곱 빛깔 무지개 그래픽까지 동원한 화사하고 푸른 칼라의 5면 머릿기사는 『“8월 증시 맑을 것”』이다. 종합주가지수 620에서 거의 45도 각도로 하늘을 향해 치솟는 그래프를 보면서 앞서 1면의 침울한 분위기를 단번에서 떨쳐낸다. 「“최대 780까지 오를 수도” 증권사들 낙관, 경기회복 기대 커…개미들 무관심은 악재」라는 중간제목은 주가상승국면과 경제회복국면을 시위하듯 그래픽을 떠받들고 있다.

***경기회복에 개미들의 무관심은 악재**

1면에서 노동조합 때문에 죽어 가는 한국경제를 애절한 목소리의 통곡하던 조선일보가 5면에서 화려한 그래픽을 통해서 ‘8월 증시 쾌청’이라는 행진곡을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크게 틀어 놓으면서 일거에 분위기를 일신한다. 감동적이다. 하지만 이해하기는 힘들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모르겠다. 같은 날 같은 신문에서 한국 경제를 전망하는 기사를 이렇게 판이할 수가 있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개미들 무관심은 악재’라며 축제 분위기에 작지만 날카로운 가시는 또 뭔가. 경쾌한 행진곡을 배경으로 깔면서 “개미들이여! 투자하라!”는 열정적인 선동가의 연설이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증권사들의 간절한 여망이 조선일보라는 선동가의 혓바닥에서 감동적으로 분출되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음악을 끄고, 연설을 외면한 채 냉정한 눈으로 1면과 5면을 보면서 1면이 거짓인지, 5면이 거짓인지 그것이 알고 싶은 욕구가 가득해 진다. 침체의 늪에서 아둥바둥하는 한국경제가 올려다 본 하늘이 검은 먹구름에 뒤덮여 있는지, 비온 후 맑게 갠 하늘에 칠색 찬란한 무지개가 피어 있는지, 최소한 조선일보 지난 5일자로는 도무지 판단할 수 없다. 오로지 노동조합이라는 마녀를 사냥하러 가자는 목소리만 확연하다. 개미투자자는 봉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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