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때: 12월 8일 오후 4시
곳: 서울 목동 SBS 사옥
말 상대: SBS 고위 경영진
"요즘 표정관리 하느라 힘들겠다."
"표정관리는 무슨."
"다 알아. 화장실 가서 히죽히죽 웃는 거."
"아니거든!"
"왜?"
"진짜 걱정은 이제부터니까."
"시청률 1%도 못되는 '태산명동 서사필(泰山鳴動 鼠四匹)'인데 뭐가 걱정이냐."
"조만간 하나씩 무너질 텐데, 미디어 재벌이 가만있겠냐고."
"그거 말 되네."
#2
때: 같은날 저녁 8시
곳: 서울 YMCA 뒷골목 한식집
말 상대: 조·중·동 중 한 매체의 임원
"종편 시발이 생각보다 시원치 않데. 자네네 종편 채널도 그다지 감동적이지 못하고."
"우린 죽기 살기에요. 사원들 주머니 탈탈 털어서 납입자본의 30%를 채웠거든요. 종편 망하면 우리도 망해요."
"하긴 그렇겠네. 잘 돼야 할 텐데. 근데 납입자본이 문제가 아니잖아. 1년에 최소 5000억은 꼴아 박아야 근근이 유지될 텐데, 뒷심이 있나?"
"1년만 지켜봐 주세요. 우리 컨텐츠 장난 아니거든요. 분명히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테니."
"글쎄. 그렇게만 된다면야. 사실 종편 무더기 배정은 시청자의 채널 선택 다양성 측면에선 바람직한 정책이었을지 모르지. 하지만 무리해서 참여한 조·중·동·매가 걱정돼서…."
배지도 않은 아이 팔아먹을 궁리부터?
#3
때: 2011년 2월~11월
곳: 서울 모처(某處) 몇 군데
아직 수태도 안한 애를 놓고 미래 산모(産母)[일단 'a'라고 해두자]와 금고에 각종 영화와 돈 쌓아 놓고 있는 극장주인 마님이 만났다.
"얼마 있으면 내가 애를 낳을 텐데, 얼마 주고 데려 갈 거요?" (꼭 정주영 영감이 영국 가서 조선소 짓겠다고 융자해 달라 할 때 같네.)
"지금 당장 주면 생각해서 드리고, 애가 나오면 절반 값에 드리리다."
"무슨 흥정이 그래요."
"시간이 갈수록 애 데려가겠다는 작자가 줄어들 텐데, 뭘."
"조금만 더 주시면 안될까?"
"딴 데 가보쇼(조만간 매물 줄줄이 나올 텐데)."
#4
때: 12월 1일 오후 3시 40분
곳: 케이블 채널 19번
갑자기 화면이 위·아래로 갈라진다. 등장인물의 목이 '댕강' 잘라져 보인다. <TV조선> 화면이란다. 북한 TV인가? 이름 한번 촌스럽다.
참, 어제 법원이 <조선일보>가 비련의 여인 장자연 사건과 관련, '장자연 리스트'를 폭로한 국회의원 두 명과 <MBC> 전 앵커 신경민을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 두 건을 모두 원고 패소 판결했지.
근데 오늘 또 저런 사고가!
혹시 "저승에 가서도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유서를 남긴 장자연의 원혼(冤魂)이 조선일보를 계속 해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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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편 공동모니터링단 출범 기자회견 |
예상보다 더 심각한 현실
그러려니 했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현실은 더 참담했다.
우선 컨텐츠가 빈약했다. 아니 거의 없다. 전두환한테 TV, 라디오 뺏긴 게 무슨 훈장이라고 시위하면서 종편 배정을 당연한 듯 떠들어댔던 <중앙일보>가 야심차게 선보인 <JTBC>. 이거 거의 경로당 수준이다.
1980년 11월 30일 <중앙일보·동양방송> 깃발 휘날리는 흑백 화면을 비롯, '청실홍실'에 후라이보이 곽규석이 진행하던 '쇼쇼쇼'에 이르기까지. 나처럼 환갑 늙은이라면 모를까, 여타 다양한 연령층의 시청자들이 과연 채널을 고정시킬까?
그래도 <Q채널>이다 <디스커버리 채널>이다 해서 워밍업 좀 한 애들이라, 앓는 소리 없으니 조금은 봐줄 만하다. 게다가 '보광'이라는 후광(後光)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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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롱거리가 된 TV조선의 '형광등 100개' 화면 |
자칭 '매체 파워 1위'라고 기고만장했던 <조선일보>가 만든 <TV조선>은 그야말로 가관.
박근혜 불러 놓고 남녀 두 명이 '판'인가 뭔가 벌여놓고 '근혜어천가'를 불러대더니만, 급기야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망발성 자막까지 내보낸다.
걔네는 내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가 정권을 잡을 것으로 아는 모양이지? 하긴 <JTBC>, <채널A>, <MBN>도 예외 없이, 게다가 보도채널이라는 <연합뉴스TV>까지 같은날 일제히 박 여사를 화면에, 지면에 모셨지.
역시 조·중·동!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 탁월하다.
"광고료 지상파 70% 달라"고?
그런데 '돈 먹는 하마', 종편을 운영하려면 쏟아 부어야 할 돈이 장난 아닌데?
방법이 있지.
우선 막무가내식 떼쓰기.
지상파 광고료의 70%선을 요구하고 있다. 지상파의 70%?
영상매체 광고료는 시청률로 계산하는 게 상궤(常軌).
오늘 시청률 조사기관 TNmS 발표에 따르면 올해(1월 1일~11월 30일) 시청률 1위 프로그램은 KBS-1TV 일일드라마 '웃어라 동해야'로 평균시청률 36.4%(전국기준)를 기록했다. 다음으로 SBS 주말드라마 '시크릿가든'(26.5%), KBS-2TV 주말드라마 '오작교 형제들'(25.5%)의 순. 그렇게까지 가지 않아도 지상파 평균 시청률은 대략 6% 이상 된다.
이쯤에서 종편 시청률을 살펴보자.
개국 첫날 평균 시청률 2%, 초기 시청률 0.6~0.8%.
시청률 조사기관 AGB닐슨의 8일자 종편 시청률 통계. <JTBC> 0.339%, <채널A> 0.312%, <MBN> 0.273%, <TV조선> 0.232%.
오늘(12일) AGB닐슨이 내놓은 지난 열흘간 종편 평균 시청률(전국가구 기준) 통계.
<JTBC> 0.549%, <MBN> 0.356%, <채널A> 0.343%, <TV조선> 0.326%.
다른 시청률 조사회사 TNmS미디어코리아의 시청률 통계. <JTBC> 0.440%, <TV조선> 0.372%, <MBN> 0.358%, <채널A> 0.316%. 이 정도면 케이블TV에서도 10∼20위권. 바닥이라도 보통 밑바닥이 아니다.
그런데 뭐? 지상파의 70% 수준의 광고료를 내라고?
조·중·동 애들 산수나 배웠나? 3년 후엔 아예 지상파와 동등한 대우를 해달란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
칼만 안든 강도 조·중·동
광고주들로선 기가 막힐 노릇. 그런데 요즘 광고시장은 sellers' market이 아닌 buyers' market 시대다. 따라서 미디어가 광고료를 얼마에 달라고 한다고 호락호락할 광고주가 아니다.
실제로 광고업계에 따르면, 종편 4개 사는 연간 6000억 원 수준의 광고 매출을 목표로 했지만 12월 현재 턱없이 낮은 수준의 광고를 수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JTBC는 한 달에 100억~120억 원을 희망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받은 광고료는 30억 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광고주들이 말을 잘 안 듣는다? 그러면 몽둥이를 안 뺄 수 없지.
'막강한' 종이신문이 있지 않은가.
"너 정녕 그런 식으로 나오면 맞는다!"
이거 ○○환경신문, ○○검경일보하고 다를 게 뭐 있나.
게다가 지상파는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를 통해 광고 수주하기 때문에 광고 매출이 공개되지만, 종편은 '광고 직거래'를 하기 때문에 음성적으로 입체적으로 광고주를 압박하기가 용이하지 않은가. 앞으로 대한민국 미디어 광고시장, 엄청나게 질퍽거릴 거, 불 보듯 뻔하다.
레밍의 집단 자살이 떠올라
쥐는 동물계(界·kingdom), 척색동물문(門·phylum), 포유강(綱·class), 쥐목(目·order), 쥐과(科·family)에 속하는 동물이다. 아주 영민하다. 따라서 아무한테나 쥐에 빗댄 별명을 붙이는 건 쥐에 대한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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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밍의 집단자살을 떠올리게 하는 종편 |
하지만 오늘 대한민국 종편에 대해선 '쥐'라는 별명을 붙일 수밖에 없다. 쥐에게 미안하지만. 왜?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사필(鼠四匹)이기 때문.
쥐에도 종류가 있다. 지상파를 세렌게티(Serengeti)의 포식자로 볼 때, 종편은 쥐다. 1강(强)을 시궁쥐(norwegian rat)라 한다면, 3약(弱)은 나그네쥐(lemming)다. 레밍은 가끔씩 떼로 자살하는 이상한 습성을 지닌 동물이다. 아마 종족의 적정한 개체 유지를 위한 본능이 레밍의 DNA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겠지.
다음회는 <MB 정권 3대 비리 의혹 ③ 종편 비리 下 <정권은 왜 종편 배정을 서둘렀나>가 나갑니다. 필자의 이메일 주소는 blest01@daum.net 입니다. 기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분은 주저말고 메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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