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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경제정책의 변천6 :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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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경제정책의 변천6 : 신자유주의

[이근식의 '상생적 자유주의']<20>

현재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천박한 천민 자본주의는 지난 30년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가 만든 것이다. 앞의 칼럼 "사회적 자유주의"와 "질서자유주의"에서 본 바와 같이, 현대의 신자유주의 말고도 과거에 사회적 자유주의(19세기 말 영국)와 질서자유주의(2차대전 이후 서독)라는 두 번의 신자유주의가 있었지만, 이 글에서는 요즘 쓰는 대로 현대의 신자유주의를 그냥 신자유주의라고 부르자.

역사적 배경

지난 11월 27일 자 "복지국가" 에서 본 바와 같이 1930년대의 대공황으로 시장에 대한 신뢰가 붕괴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개입을 주장하는 신고전학파종합이 구미의 주류경제학으로 등장하였다. 신고전학파종합은 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에 사뮤엘슨으로 대표되는 시장의 실패 이론을 종합한 것으로, 불황과 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확대 재정금융정책, 빈부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적극적 소득재분배정책, 독과점과 공해의 규제 및 공공재의 정부공급과 같은 정부의 적극적 경제 개입을 주장하였다. 신고전학파종합을 지지하여 정부의 적극적 경제 개입을 주장하는 경제학자 및 정책 당국자들을 케인지안이라고 부르고 이들의 주장이 실현된 2차대전 이후 선진국들을 복지국가라 부른다.

케인지안들의 주장에 따라서 2차대전 이후 서방 선진국 경제에서 정부 역할은 급속하게 증가하였다. 미국의 경우 총 국민소득에서 정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929년의 약 10%에서 1980년의 약 40%로, 네 배로 증가하였다. 2차대전 이후 약 30년간 미국을 비롯한 서방선진국들이 과거와 같은 대규모의 공황을 한 번도 겪지 않고 전례 없는 장기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케인지안들의 개입주의적 경제정책 덕분이었음을 부인하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만사가 양면의 칼날이듯이, 정부의 비대화는 동시에 정부의 실패(정부의 월권, 무능과 부패)를 증대시켜 왔다. 이에 대한 비판과 반성으로, 정부의 실패와 시장의 성공(시장경제의 효율성 실현)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1980년을 즈음하여 영미에서 다시 지배적인 정책기조로 등장하여 자유방임의 경제정책이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1979년에서 1990년까지 집권하였던 영국의 대처(Margaret Thatcher)수상과, 1980년에서 1988년까지 재임하였던 미국의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에 입각하여, 규제철폐, 공기업의 민영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의 정책을 실시하였고 이는 세계화와 함께 전 세계에 퍼져서 오늘날의 지배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영미 경제학에서의 이러한 신자유주의를 선도한 사람이 하이에크(Friedrich Hayek)와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뷰캐넌(James Buchanan)이다. 하이에크는 신자유주의의 자유방임의 사회철학을 주도하였고, 프리드먼은 거시경제학에서 신자유주의경제학을 주도하였으며, 뷰캐넌은 미시 경제학에 속하는 공공 경제학에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주도하였다. 이들이 이론이 등장한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풍미하기 시작하기 훨씬 이전인 1950년대부터이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정책과 경제학의 두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는데, 경제정책으로서의 신자유주의는 1980년경부터 시작되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신자유주의경제학은 이미 5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전번에 본 바와 같이 서독은 2차대전 직후부터 이미 자신들의 질서자유주의에 따라서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케인즈의 총수요관리 정책을 비판하였으니 이는 영미의 신자유주의 정책보다 30년 빠르다.

신자유주의의 내용

하이에크, 프리드먼과 뷰캐넌의 세 사람 간에는 이론상 다소 차이가 있으나 현대 신자유주의의 주요 주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이들은 2차대전 이후 영미와 같은 선진 민주국가에서 나타난 국가의 실패(state failure)를 비판하여 등장하였다. 칼럼13에서 본 바와 같이 국가의 실패란 정부의 실패(경제에서 발생하는 정부의 무능과 비리)에 더하여, 정부에 의한 인권 유린, 사유재산의 침탈, 교육과 문화의 왜곡, 전쟁 촉발 등과 같이 비경제적인 면에서 발생하는 정부의 폐해를 모두 합한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들이 비판하는 국가의 실패는 후진국이 아니라 선진 민주국가에서 발생한 국가의 실패라는 점이다. 케인즈와 케인지안들은, 그들이 사는 구미 선진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잘 발달되어 있어서 정부는 유능하고 공평무사하게 업무를 집행할 것이라 생각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이 정부를 과신하였음을 보여 주었다고 하겠다. 선진국의 정부가 후진국의 정부보다는 더 민주적이긴 하지만 선진국의 정부도 케인지안들이 가정한 것과 같은 전지전능하고 공평무사한 정부가 결코 아니다. 선진국 민주정부를 실제로 운영하는 정치인과 관료들도 윤리의식과 정보가 부족한 불완전한 인간임은 후진국과 다름없다.

둘째, 국가의 실패를 강조하는 이들은 당연히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을 주장한다. 세금의 감축, 통화남발을 금지하는 엄격한 통화관리, 적자재정의 금지, 정부기구의 축소, 공기업의 민영화, 경제규제의 축소, 무역과 자본거래 등 대외거래의 자유화, 노동자보호의 축소를 통한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이 모두 이 주장에 속한다.

이들은 특히 케인지안들의 총수요조절정책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지난 칼럼 "복지국가"에서 본 바와 같이, 케인즈는 투자의 부족으로 인한 총수요 부족이 불황의 원인이며, 이는 정부가 통화발행을 통해 조달한 재원으로 재정지출을 확대하여 총수요를 증대시킴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구미 국가들은 고용증대를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이런 케인즈 정책을 채택하여 대략 1970년대 초까지는 큰 불황 없이 비교적 순탄한 번영을 구가하였다. 그러나 약을 오래 쓰면 신체에 내성이 생겨서 약효가 감소하듯이, 인플레 기대심리라는 내성이 경제에 형성됨에 따라서, 총수요확대정책의 효력이 점차 감소된 반면 인플레는 점차 악화되어 왔다. 인플레 기대심리란, 소비자, 판매자, 기업, 노동자가 모두 물가 상승을 미리 예측하고 거기에 맞추어서 자신의 경제행동을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가 총수요확대를 위해 통화를 증발시키고 그 결과로 5%의 인플레가 발생할 것이 예측된다고 하자. 그러면 판매자는 가격을 5% 인상시키고, 채권자는 이자율을 5% 더 올려 받으려 하고, 노동자는 임금을 5퍼센트 더 올려 받으려고 한다. 그 결과 물건 값, 이자율, 임금이 모두 5% 상승하게 되어 소비도, 투자도, 고용도 모두 원위치로 환원하게 되어 총수요확대정책의 효력이 상실된다.

더욱이 1974년부터 시작된 제1차 국제 석유파동으로 세계적으로 인플레가 급등하자, 인플레와 불황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테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발생하게 되어 케인즈 처방은 더 이상 사용이 힘들게 되었다.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자들은, 케인즈의 총수요확대정책은 인플레만 악화시킨다고 반대하고, 엄격한 통화관리와 균형재정을 주장하였다. 인플레 없이 물가가 안정되어야 시장의 효율적 자원배분기능이 살아나서 고용도 증대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2차대전 직후 오위켄이 주장한 질서자유주의와 동일한 내용이다. 2차대전 이후 오위켄의 주장에 따라서 엄격한 통화관리를 통하여 물가안정을 유지하여 온 서독의 실업률이 고용확대를 위해 물가안정을 희생시켰던 미국 등 다른 선진국들의 실업률보다 장기적으로 더 낮았던 것을 보면 오위켄의 주장이 옳았다고 생각된다. 1980년대 이후에는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이를 인정하고 물가안정을 위해 엄격한 통화관리와 균형재정정책을 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장경제에서는 물가안정이 고용, 투자, 소비, 등 모든 경제활동이 원활히 이루어지기 위한 기본조건일 것이다. 그러나 1930년대의 대공황과 같이, 경기가 장기에 걸쳐서 심각한 불황에 빠졌을 때에는 케인즈의 처방이 필요할 것이다. 2007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세계 금융위기를 맞아 미국 등 주요선진국들이 긴급 구제금융을 계속 제공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긴급 구제금융이란 국가에 의한 통화발행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러한 긴급 통화증발이 없다면 세계자본주의경제는 이미 붕괴하였을 것이다.

셋째, 복지제도의 축소이다. 2차대전 이후 선진국들은 공공복지제도를 꾸준히 증대시켜 왔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것이 정부의 재정적자를 팽창시킬 뿐만 아니라, 근로의욕을 감소시키는 복지병이라는 부작용을 일으킨다고 보고 이의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현대의 신자유주의는 2차 대전 이후 복지국가를 지향하였던 영미에서 정부의 비대화가 초래한 국가의 실패를 비판하며 다시 부활한 자유방임주의이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현대 신자유주의는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하였으나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세계 전체로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파급되었다. 영미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에 파급된 이유는 아마도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소련의 몰락 후 유일한 초강대국이 된 미국의 영향력이 강화되어 미국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신자유주의를 세계로 확대시키기가 용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은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그 간 세계적으로 형성된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다. 후진국에서는 민주주의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의 실패가 선진국에서보다 훨씬 더 심하게 나타났다. 정경유착에 의한 권력형 비리가 만연하고 정부와 공기업들은 비리와 비능률로 만연되었다. 이 결과 후진국들에서도 비대한 정부에 대한 혐오가 만연하여 신자유주의가 쉽게 수용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고 보인다. 우리나라도 이에 해당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기여

신자유주의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기본적으로 현대에 부활한 경제적 자유주의(자유방임주의 경제정책)이므로 신자유주의의 장점과 폐해는 모두 자유방임의 자본주의경제의 장점과 폐해이다. 모든 이념이 그러하듯이 신자유주의도 장점과 아울러 단점을 갖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최대 기여는 그간 선·후진국에 존재하였던 전지전능하고 공평무사한 국가라는 환상을 깨뜨려서 국가의 실패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신자유주의 덕분에 사람들이 국가의 실패를 인식하고 그동안 누적된 국가의 실패를 축소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간과하지만,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수십 년간의 관치경제로 인하여 국가의 실패가 심각한 우리나라로서는 신자유주의가 지적한 국가에 대한 실패에 대한 경고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자, 파시스트, 개입주의자들은 정부가 모든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단 이들만이 아니라 우리 보통 사람들도 어려운 일만 생기면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불평한다. 이러한 생각의 밑바탕에는 정부는 전지전능할 뿐만 아니라 사리사욕이 없는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암묵적인 가정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망상이다. 독재국가에서도, 선진 민주복지국가에서도, 정부는 민간기관과 동일하게 정보의 부족을 벗어나지 못하며, 정책목표를 수행할 능력도 매우 한정되어 있다.

정부는 사리사욕에서 자유로운 공평무사한 존재는 더욱 아니다. 국가의 기본적인 특징은 폭력의 독점이다. 일반 국민들의 무기 소지는 불법으로 금지하고 국가만이 군대와 경찰이라는 이름으로 무기를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행사할 수 있다. 국가권력자들 역시 이기적인 인간에 불과하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시절처럼 국가권력자들은 국민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는 폭력을 이용하여 마음대로 국민들의 기본권을 유린한 경우가 많다. 국가 폭력이 국민들에 의하여 견제받기 시작한 것은 근대 민주주의정부가 확립되면서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국가가 등장한 이래 지난 수천 년 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국가 권력자들은 국가라는 명분을 빌려서 자신들이 독점한 폭력을 이용하여 국민들을 마음대로 억압해 왔다.

독재국가에서와 달리 민주국가에서는 정부를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존재한다. 국민들이 선출한 사람들이 정부의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현대 선진 민주국가에서는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 자신과 같이 유능하고 사심 없는 인사가 정부를 맡는다는, 케인즈의 '하비 가의 전제'(Harvey Road presupposition)가 이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하아비 가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수들이 모여 사는 케임브리지의 거리이며 케인즈도 여기 살았다. 캠브리지 교수와 같은 통찰력과 양심과 능력을 겸비한 인사들이 정부를 운영한다는 이러한 전제 위에서 현대 민주선진국에서는 정부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개입주의 정책이 채택되어 왔다.

독재국가들에 비하면, 확실히 현대 선진 민주국가에서 국가의 실패는 매우 적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자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민주국가에서도 국가의 실패는 상당한 정도로 존재한다. 현대 민주국가에서도 막강한 정부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전지전능한 정부가 아니라 정부의 이름을 빌려 정부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이며 이들도 정보와 능력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이기적인 인간에 불과하다. 나아가서 뷰캐넌이 '정치에서의 그래샴의 법칙'이라고 이름 붙인 바와 같이, 정부의 고위직에 있는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은 비양심적인 인사인 경우가 많다. 뷰캐넌에 따르면, 출세와 승진을 위해 투자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고위직에 오를 확률이 높고, 고위직의 기대수익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출세를 위해 더 많이 노력하며, 도덕심이 박약한 사람일수록 출세의 기대수익률이 높다고 생각하므로, 출세한 사람 중에는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많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일찍이 밀(J.S. Mill)이 지적한 바와 같이, 타성과 패거리 정신이 관료들의 특징이다. 또한 정부기관은 경쟁할 대상도 없고 도산을 걱정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민간기업과 달리 무사안일주의와 무능에 빠지기 쉽다.

이처럼 국가의 실패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현대의 민주복지국가에서는 한동안 국가의 성공에 도취하여 이 당연한 일을 망각하고 있었다. 이를 일깨워 국가의 실패가 존재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것이 신자유주의의 공로이다. 선진 민주국보다 정부의 투명성이나 관료들의 도덕성이 훨씬 떨어지는 후진국에선 국가의 실패를 지적하는 신자유주의의 경고를 더욱 경청하여야 할 것이다.
▲ "월가를 점령하라" ⓒ김지연

신자유주의의 폐해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동시에 여러 가지 심각한 폐해를 낳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폐해는 자본주의의 실패라는 자유방임 자본주의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다시 노정 시킨다는 것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자본주의의 실패란 시장의 실패(빈부격차, 실업과 불황, 독과점화, 환경파괴, 공공재의 부족 등)에 더하여, 자본주의사회에서 발생하는 비경제적인 병폐들(윤리타락과 인간성 황폐화, 인간소외, 공동체의 약화, 전쟁과 침략의 촉진 등)을 합한 것을 말한다. 현대의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실패를 전 세계적으로 심화시키고 있다. 중산층의 몰락과 빈부격차의 확대, 실업과 비정규직의 확대, 금융위기의 빈번한 발생, 국가부채의 증가와 구미 각국 재정위기의 심화 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중산층과 서민층의 생활은 피폐해지고 있다. 2008년 봄 미국 서브프라임 금융시장의 붕괴 이후 선진국들이 천문학적인 구제자금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금융시장의 불안과 재정위기와 실물경제의 불황은 여전히 악화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본주의의 실패가 고삐 풀린 말처럼 전 세계를 휘젓고 다니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정부의 규제 완화로 시장의 실패를 억제하여 오던 정부의 힘이 크게 약화되었다. 세계화로 개별 정부의 힘은 약해지고 시장의 힘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자유방임의 자본주의의 장점(생산성의 제고)과 동시에 폐해인 자본주의의 실패가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란 이름으로 행해진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는 근로자의 대량 해고, 임금 삭감과 비정규직 확대를 용이하게 하여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을 감소시키고 고용을 불안하게 하였다.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 완화는 금융시장을 투기시장으로 만들어 2008년 봄에 터진 미국의 서브프라임 시장 붕괴와 그 이후의 세계금융 위기를 초래하였다. 금융 자유화로 국제 투기 자본을 끌어들여서 경제 자유화의 성공 사례로 꼽혔다가 세계금융위기로 외국자본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바람에 삽시간에 국가 경제의 파탄을 맞은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는 경제 자유화로 인한 성공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잘 보여 준다.

현재의 세계화를 과거의 세계화와 구분하는 중요한 차이 중 하나는 금융규제의 완화로 초래된 투기의 세계화이다.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상업자본주의 시대에는 상업이 19세기 산업자본주의 시대에는 제조업이 주로 돈을 버는 업종이었다. 그러나 20세기 투기자본주의 시대에는 주식이나 증권, 외환과 같은 금융자산의 매매가 주로 돈을 버는 업종이 되었다. 금융자산의 매매는 본질적으로 도박(투기)이다. 아무 생산 활동 없이 단지 배팅만 잘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 주식시장 등 금융시장이 발달한 이후 특히 주식시장이라는 도박판이 경제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일찍이 1930년대의 중반에 케인즈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가 주식시장이라는 '카지노' 위에 얹혀 있다고 개탄하였다. 주식시장은 도박판이고 도박판은 부화뇌동하는 대중의 속성상 폭등과 폭락의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1929년 가을 미국 뉴욕의 주식시장이 붕괴하자 대공황이 전 세계를 휩쓴 것은 이를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2차대전 이후 자본의 국제거래를 억제하여 오던 각국의 금융규제가 신자유주의정책으로 인하여 1980년대에 대폭 철폐된 이래 세계경제의 투기화가 다시 격화되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외환시장과 증권시장)에서 컴퓨터로 국경에 상관없이 순식간에 거래되는 금액은 세계무역거래액의 거의 200배에 이른다. 이처럼 거대한 투기자본의 빈번한 이동으로 인하여 지금 세계경제는 과거와 비교가 안 되게 훨씬 더 불안정해졌다. 지난 1997년 하반기에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이 환란을 겪은 데에는, 취약한 경제구조라는 대내적 요인도 작용하였지만, 기본적으로는 국제투기자본들의 투기라는 대외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였다고 생각된다.

둘째, 세계화가 신자유주의의 병폐를 더욱 악화시켰다. 과거에는 경제활동이 대부분 개별국가의 범위 내에서 행해졌으므로 경제에 대한 개별 국가의 개입이 가능하였으나, 경제의 세계화가 이루어진 현재에는 이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다국적기업들은 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나라로 공장만이 아니라 기업본부까지도 이전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민간의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과거보다 훨씬 힘들어졌고 불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재 세계금융시장에서의 투기를 혼자서 제어할 수 있는 개별정부는 하나도 없다. 자본은 전 세계를 무대로 자유롭게 활동하게 된 반면에,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정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별로 구속을 받지 않고 본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다.

셋째로, 자본주의의 실패는 현재 미국의 독점 금융자본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인하여 더욱 심화되고 있다. 방금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현재의 세계화의 경향 그 자체를 개별 정부가 막기는 힘들며, 세계화로 인해 개별국가의 경제 장악력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개별정부가 보다 주체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옹호하는 정책을 시행한다면, 신자유주의에 따른 폐해를 다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러하지 못하다. 그렇게 된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클린턴 미국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의장과 세계은행의 수석부총재를 역임하였던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가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미국 재무부와 IMF가 차입국들에게 잘못된 신자유주의정책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한 미국 재무부의 강요에 의하여 우리 정부가 1990년대에 너무 급속하게 급격한 자본 자유화와 금융 자유화를 시행하여 우리나라에 IMF 환란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IMF 환란 직후에는 IMF가 우리나라에게 잘못된 과다한 초고금리정책을 강요함으로써 필요 이상으로 수많은 기업들을 도산하게 하여 불황과 실업을 대량으로 야기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강요 말고 또 하나 문제되는 것은 신자유주의 자체가 전 세계에 유행처럼 퍼져서 각국의 경제정책당국자와 경제전문가들이 신자유주의에 세뇌되어 시장 만능주의라는 미신에 빠져서 자유방임의 시장경제를 숭배하여 각국의 정부들이 자발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IMF 환란 이후 우리나라 정부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기업들의 대량 해고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국내의 은행들과 우량기업들의 주식을 헐값으로 해외에 매각한 것을 마치 자신들의 업적인 양 자랑스러워 한 것이 그 예이다. 신자유주의 유행 이후 시장의 실패를 말하면 마치 경제학자가 아닌 것처럼 취급되는 이상한 세상이 되었다.

넷째로, 사회규범의 변화천민 자본주의의 부활이다.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의 폐단을 확대시킨 가장 큰 이유는 사회의 일반규범(norms) 내지 사회 분위기를 바꾼 데에 있다고 생각된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크루그만(Paul Krugman)의 말처럼,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인 193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의 복지국가시대에 정상적인 회사는,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대개 평생직장이었으며 단순히 월급을 받기 위해 다니는 곳이 아니라 직원 간에 서로 돕고 사는 일종의 공동체였으며, 손쉬운 해고와 임원의 과다한 봉급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 시절에 지나친 분배의 편중이나 대량해고를 막았던 것은 이런 사회 분위기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유행하면서 시장 숭배주의가 만연하면서 대량 해고나 기업 임원들이 초고액의 연봉이 비난이 아니라 오히려 칭송의 대상이 되었으며, 기업은 서로 돕고 사는 공동체가 아니라 단지 이윤을 창출하여 주주들의 돈을 벌어 주는 영리조직으로 전락하였다. 직원을 대량 해고시켜서 회사 이윤을 올린 냉혹한 경영자의 탐욕스럽고 뻔뻔스러운 얼굴이 잡지의 표지에 실려서 만인의 선망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성을 박탈하는 이런 사회분위기의 만연히 현 신자유주의에서 자본주의의 실패가 노골적으로 거침없이 발로되게 한 가장 큰 요인인 것 같다.

원래 자본주의는 천민자본주의였다. 폴라니(Karl Polanyi)가 지적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는 공동체 사회를 파괴하는 사탄의 맷돌이다. 대중을 저임금의 노동시장으로 내몰기 위해서 자본주의는 기존의 빈민지원제도를 파괴하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정착한 18-9세기 유럽에서 천민 자본주의적 의식에 물든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비참한 빈곤을 당연시하였다. 사회도 적자생존이라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진화하는 유기체이므로 사회진보를 위해서는 열등한 사람들이 도태되는 것을 방치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스펜서(Herbert Spencer)의 사회진화론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구미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윤리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부정하는 이런 비인간적인 풍조를 비판하고 공동체로서의 사회의 기능을 다시 부활시킨 것이 구미의 복지국가였다. 이를 비난하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함에 따라서 천박한 천민자본주의가 부활하였다.

신자유주의의 지배로 사람들은 다시 윤리의식을 상실하고 자신과 돈밖에 모르는 동물이 되었다. 윤리의식이 상실된 천민자본주의에서 대중은 생활이 불안정해지고 빈곤해졌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낙과 보람도 상실한 채 허황된 부와 권세만을 쫓는 부나비가 되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수단으로만 대하고 돈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가족도 친구도 기만하는 것이 예사로 되었다. 재벌총수만이 아니라 대통령도 교수도 교사도 모두 마치 일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처럼 입만 열면 경쟁력 타령이다. 하지만 이등도 꼴찌도 다 같이 서로 도우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진정한 사회공동체이다. 사회공동체를 파괴한 천박한 천민자본주의를 부활시킨 것이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폐해라고 생각된다.

개입주의와 자유방임주의의 교대

"자본주의 경제정책의 변천 1 : 중상주의"부터 지금까지 고찰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의 경제정책의 변화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의 경제정책은 역사적 상황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해 왔다는 것이다. 자유방임주의와 개입주의가 교대로 등장하는 현상이 반복되어 왔다. 대략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는 전형적인 개입주의인 중상주의가, 19세기에는 자유방임주의가, 20세기에 들어 와서 1970년대까지는 다시 개입주의인 신중상주의가, 1980년대부터는 또다시 자유방임주의인 신자유주의가 지배적 조류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불황 기가 시작된 1870년대부터 대공황이 발생한 1920년대 말까지는, 자유주의에서 개입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대외적으로는 보호무역주의라는 개입주의정책을 다시 실시하기 시작하였으나 대내적으로는 자유방임주의가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현재의 신자유주의 하의 미국 경제를 고정된 미국식 자본주의라고 보고 이를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위에서 본 것처럼 미국의 자본주의도 개입주의와 자유방임주의를 교대하여 왔다. 고정된 미국식 경제란 없다. 미국 자본주의도 지금까지 계속 변하여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변하여 갈 것이다.

시장은 시장의 실패라는 문제를, 정부는 정부의 실패라는 문제를 갖고 있으므로 개입주의와 자유방임주의 그 어느 것도 완전한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하나의 주의가 상당 기간 지속되면 자체의 문제가 누적되어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그 반대의 주의가 등장하는 역사가 되풀이되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 신자유주의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자유방임주의 하에서는 자본주의의 실패가 확대될 것이고, 그 정도가 대중이 감내하기 힘들 정도가 되면 다시 개입주의가 대중의 지지를 받고 복귀하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자본이 지배하지만 민주주의의 발달 덕분에 정치에서는 사람의 머릿수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금권정치가 힘을 발휘하긴 하지만 시장의 실패가 한계를 넘으면 고통을 겪는 다수 민중의 힘이 평화적 과정이거나 아니면 폭력적 방법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몰아내고 대시 개입주의를 등장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요즘의 "월가를 점령하라"라는 시민운동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미 이러한 저항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국가의 실패를 경험하였으므로 앞으로 등장할 개입주의는 국가의 실패를 예방할 수 있도록 과거보다 합리적인 모습으로 다시 등장해야 될 것이다. 즉 관료와 정치인들도 이기적 인간임을 감안하여 이들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보다 정교하게 갖춘 개입주의가 등장할 것이 예상된다. 특히 정부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시민단체의 발달과 인터넷의 보급은 이에 유효한 수단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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