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습관의 노예인 경우가 많다. 매체를 수용하는 것도 습관에 좌우되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웬만한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훨씬 더 빠르고 편리하게 뉴스를 수용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젊어서부터 종이신문을 봐오던 습관 때문이 종이신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은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것을 기피하고, 심한 경우에는 그에 거부감을 가지기조차 한다.
그렇다면, 종이신문은 계속 생존할 수 있을까. 일견 그럴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종이신문의 미래가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날이 갈수록 종이신문에 익숙한 세대는 줄어들고 배달은 더 어려워지는 반면에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는 늘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자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터넷 언론의 정세도가 점점 더 높아지고, 그 수용이 점점 더 편리해지고 있고, 그 내용과 형식은 점점 더 발전하고 있다. 종이신문의 수용환경은 점점 더 악화하는 반면에 인터넷 언론의 수용환경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결국, 신문은 궁극적으로는 종이를 매체로 하기보다는 인터넷을 매체로 할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매체발전사를 보면, 한 번 사회적으로 널리 수용된 매체는 그와 성격과 기능이 비슷한 새로운 매체가 등장해도 소멸하지 않고 나름대로 새로운 모습과 역할로 생존하게 된다. 구매체와 신매체 사이에 역할의 조정이 일어나 신구 매체 모두 생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매체 공존의 법칙'이다.
예컨대, 잡지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서적은 그 전문성과 심층성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살아남았고, 신문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잡지는 그 전문성과 다양성을 더욱 강화해서 살아남았다.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영화나 라디오는 한 때 위기를 맞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라질 것으로 전망되었다. 하지만 영화는 젊은이들에 의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텔레비전 자체가 영화에 대한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오히려 더 번창하게 되었다. 라디오는 일터와 자동차와 부엌과 같이 라디오만이 수용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호소함으로써 텔레비전과 공존하게 되었다.
방송이 출현하여 신속하게 뉴스를 전하게 되자 신문의 위기설이 대두했었다. 특히 텔레비전이 등장하여 현장에서 생생한 뉴스를 전하게 되자 신문의 사망선고가 발해졌다. 그러나 신문은 심층성을 강화함으로써 텔레비전의 시대를 잘도 견뎌냈다. 사실 방송 뉴스는 신문 뉴스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문 뉴스를 더욱 요구하게 만들었다. 방송에서 듣고 본 피상적인 내용을 신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하려는 사람들의 성향 때문이었다. 방송은 신문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보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인터넷에 연결된 개인용 컴퓨터 또는 단말기)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이러한 매체 공존의 법칙은 커다란 시험대에 올랐다. 언뜻 생각하면, 인터넷도 하나의 새로운 매체에 불과하고 따라서 기존의 매체와 인터넷과의 역할 조정이 이루어져 과거의 매체들과 인터넷이 공존할 수 있을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인터넷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매체 공존의 법칙은 여전히 유효할 법하다. 현재 어느 정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특이한 속성으로 볼 때 매체 공존의 법칙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기존의 다른 매체와는 달리 인터넷은 내용과 형식에서 모든 매체를 포괄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인터넷을 멀티미디어 또는 통합매체라고 부른다. 기존의 매체와는 달리 인터넷은 문자 메시지 즉 텍스트(인쇄매체), 음성과 음향(라디오), 그림과 동영상(텔레비전) 등 모든 매체와 그 내용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터넷은 상이한 유형의 매체와 그 내용들을 하나의 매체로 통합해가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서 서적, 잡지, 신문과 같은 인쇄매체를 수용할 수도 있고, 라디오나 텔레비전과 같은 방송도 수용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인터넷은 기존의 매체를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해버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은 다른 매체들이 갖지 못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여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매체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 게다가 즉각적인 피드백이 가능한 상호작용성, 다른 정보원에로의 연결이 가능한 하이퍼링크, 원하는 내용을 즉각 찾아볼 수 있게 하는 검색기능 등의 뛰어난 장점이 있다.
결국, 개인용 컴퓨터나 단말기를 켜고 인터넷에 연결시키는 순간 서적, 잡지,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을 따로 수용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인터넷을 통해서 모든 매체의 형식과 내용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모든 매체, 모든 내용이 인터넷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온라인화를 끝까지 거부하는 매체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인터넷이 보편화하지 않아서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이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매체의 온라인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고, 유무선 인터넷의 보편화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게다가, 16대 대선 과정에서 목도했듯이,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수용하게 되면 기존 뉴스 매체의 판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터넷을 통해서 뉴스를 수용한다는 것은 단지 몇몇 뉴스 매체에만 접근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서 뉴스를 수용한다는 것은 거의 모든 뉴스 매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기존의 지배적인 뉴스 매체는 그 지배적인 지위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상에서 그들은 지배적인 소수일 수 있지만 온라인 즉 인터넷 상에서 그들은 수십 개, 아니 수백 개의 뉴스 매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런 두려움 때문인지 우리 신문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몇몇 거대 종이신문들은 인터넷과 인터넷 언론들의 부작용에 대한 과장과 비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인터넷 언론의 영향력이 확인되기 시작한 민주당 국민경선 때부터 이들 신문에는 인터넷과 인터넷 언론에 대해 간간이 비판적인 내용들이 나오더니 대선 이후에는 아예 적대적인 내용들이 더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한때는 인터넷을 정보사회의 총아라고 추켜세우던 이들 종이신문들이 이제 인터넷을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 신문의 비난이 아니라 하더라도 인터넷이나 인터넷 언론들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세상에 무엇이든 부작용이나 부정적인 측면이 있기 마련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 부작용을 개선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 상의 에티켓도 확립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이나 인터넷 언론의 부작용은 그 유용성이나 장점에 비하면 별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거대 종이신문들이 인터넷과 인터넷 언론의 부작용을 과장되게 비난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을 대체하는 데 대한 앙갚음인지도 모른다.
사실 부작용이나 문제점으로 말하면, 종이신문은 더욱더 심각하다. "자전거 신문"으로 불릴 만큼 자본력을 이용하여 불공정 거래로 신문시장의 질서를 교란시켜 왔고, 특정 정치세력의 집권을 위해 편파보도를 자행할 뿐만 아니라 그런 편파보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하기까지 한다. 군사독재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했고 그 반대급부로 기자는 출세를 했고 신문사는 이권을 챙겼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에 대해서 반성하는 빛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권력을 남용하고 그에 대해 뉘우치지도 않는 도덕적 해이에까지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종이신문의 횡포도 오래 계속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아직도 몇몇 종이신문의 위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종이신문의 영향력이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고, 반대로 인터넷 언론의 영향력이 급히 부상하기 시작했다. 전국이 유무선 인터넷망으로 뒤덮이고, 인터넷이 모두에게 보급되고, 개인용 컴퓨터 또는 단말기의 정세도가 더 높아져 언제나 어디서나 유무선 인터넷을 통해 하드카피 이상의 선명도가 높은 소프트카피로 온라인 언론을 수용할 수 있게 되면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수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종이신문에 길들여져 인터넷을 사용할 줄 모르거나 사용하려 하지 않는 완고한 소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종이신문을 고수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서작성을 위해 컴퓨터 대신 타이프라이터를 고수하는 것과 같이 낡고 비효율적인 행동이다. 게다가 그런 소수를 위한 종이신문의 가격은 어지간한 부자가 아니면 구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그런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 수가 줄어들어 결국에는 종이신문의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는 정도가 되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종이신문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그리고 온라인 언론이 지배하는 시대가 전개된다. 그 추세는 10여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16대 대선때부터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고, 인터넷과 인터넷 언론에 대한 적대적인 기사의 양산에서 볼 수 있듯이, 무엇보다 종이신문들 자신에 의해서 감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종이신문의 종말이 신문 그 자체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종이신문이 대표해온 저널리즘은 온라인 언론으로 고스란히 계승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터넷을 통해 신문은 새로운 모습으로 도약한다고 할 수 있다. 쌍방향성, 멀티미디어, 하이퍼링크, 검색기능 등등의 인터넷이 가진 여러 기술적 장점과 저널리즘이 결합하여 훨씬 더 융통성 있고 민주적인 신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소수의 거대 신문이 언론계를 지배하는 현상은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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