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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생각하는 결혼과 가족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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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생각하는 결혼과 가족의 진화

hari-hara의 '생물학 카페' <11>

***'설 풍속도 변하고 있다'/ 역귀성 늘고 5일 근무로 미리 성묘**

설 귀성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짧은 연휴와 폭설 영향도 있겠지만 주5일 근무와 역귀성 등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면서 설 풍속도를 바꾸고 있다. 목포지방해양수산청이 설 연휴 3일 동안 뱃길 교통 편의를 위해 평소보다 여객선을 100회 증편 운항하고 있지만 이용객은 60~80%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귀성객이 크게 준 것은 짧은 연휴와 설 전에 내린 폭설 영향도 있지만 주5일 근무 시행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5일 근무 시행으로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많은 자녀가 교통대란을 피해 설 한 달 전부터 고향을 찾아 성묘하고 부모님들을 뵙고 가는 등 발빠른 귀성객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신안군 암태면 박평숙 씨(67)는 "지난 주에 서울과 광주에 있는 자식들이 다녀갔다"고 말했다. 신안군 팔금면 읍리 박흥섭 씨(55)는 "이번 설에는 객지에 나가있는 자녀가 별로 오지 않고 오히려 부모들이 목포와 광주, 서울 등지 자식들 집으로 간 역귀성이 많아 마을 명절 분위기가 적막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2003년 2월2일)

즐거운 연휴 보내셨나요?

이번 연휴는 역귀성이 많았다던데, 귀성 대열에 합류했던 저로서는 글쎄요… 어쨌든 이 번 명절은 오지 않은 친척들이 많아서 여느 때보다는 좀 조용하게 지나간 듯 합니다. 저희 집이 큰 집이고 어른을 모시고 사는지라 어렸을 때부터 명절이란 작은 집 식구들에 고모들에, 아버지 사촌 형제들에 명절이면 북적북적대다 못해 시끄러웠던 기억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 사는 곳도 멀어지고 떨어져 있던 세월도 길고 하다 보니 예전처럼 그렇게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우리 집에서부터도 변화된 명절 풍속을 느낄 수 있더라구요.

어쨌든 각설하고, 이번 연휴는 다른 때보다 좀 짧아서 정신없이 지나간 감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가끔씩 찾아오는 이런 쉬는 시간이 없고서야 어찌 이땅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숨통트고 살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명절 풍속도가 바뀌었다 해도 이런 국가적 명절 때면 늘 그렇듯이 사람들은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할 일 접어두고, 길바닥에서 스무 시간을 지낼망정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열에 합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애써 찾아가서 오랫만에 만난 가족과의 만남이 그리 즐거운 것만은 아닙니다. 사실 명절은 그동안 뿔뿔이 헤어져 있던 가족 친지들이 한꺼번에 한 자리에 모이는 쉽지 않은 경우라서 오랫동안 따로 살아서 라이프 스타일이 전혀 달라진 가족들이 부딪쳐 불편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이 일시에 폭발하기 딱 좋은 자리이죠. 그렇지만, 그걸 알면서도 때가 되면 또 모이는 사람들. 바로 '가족의 힘'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가족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온 부락이 한 가족이던 공동체 사회와 일가친척이 모두 한 집에 같이 살던 대가족제를 지나 현대의 가족의 의미는 '부부를 중핵으로 그 근친인 혈연자가 주거를 같이하는 생활공동체(Yahoo 백과사전 참조)'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 흠… 그렇다면 결혼이란 제도로 새로운 인연을 맺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자녀와 부모/형제가 가족이란 말인데, 그럼 결혼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가족은 가족이 아니란 말인가요? -

결혼(結婚)은 인간에게만 있는 특이한 관습입니다. 사실 생물학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산물에 더 가깝죠.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물종들에게는 이런 관계는 결혼이 아니라, '짝짓기(mating)'일 뿐. 동물들에게는 일정한 발정기가 있어서 그 때마다 짝을 찾아서 수정을 하고 새끼를 낳아 기를 뿐이죠. 물론 새끼의 양육에 서로가 같이 의지하고 도와주는 종이 있기는 해도, 그들을 결혼과 가족이라는 단어로 묶기에는 무언가가 모자라 보입니다. 만약에 인간이 동물과 별다를 바 없는 하나의 생물종이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에게 있어서도 결혼은 성적인 욕망을 해결하고, 근본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외의 의미는 없거나 상당히 부수적이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듯 결혼과 가족의 의미도 변해서 대를 잇기 위해 결혼을 한다는 것은 구시대적인 유물로 치부되고, 현재의 결혼은 상당부분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원시시대, 인간이 동굴에서 생활할 적에는 결혼이란 개념은 없었을 것입니다. 남녀가 어느 정도 자라서 서로의 벗은 몸에 흥분하게 될 때가 오면 자연스레 뒤엉켜서 사랑을 나누었을테고, 요행히 배란일과 맞아 떨어지면 아이가 태어났겠지요. 당시에는 부부란 개념도, 어떠한 금기(禁忌)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이는 태어나면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체, 어머니 손에서 자랐을테죠. 그들에게 근친상간 따윈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애초에 누가 누구의 자식인지를 알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인간이 머리가 좀 깨이고 동굴을 벗어나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 겁니다.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 원래는 들판을 뛰어다니며 사냥감을 쫓던 남성들이 두 손 걷어부치고 논밭으로 뛰어든 것까진 좋았는데,(이 전까진 식물의 열매나 종자를 채집하는 건 여성의 몫이었다고 합니다) 이 농삿일이라는 게 좀 힘이 들어야 말이죠. 추수철에는 고양이 조막손이라고 빌리고 싶다는 속담처럼 일손이 많이 필요한데 일손을 어디서 구합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를 낳는 것입니다. 이제 자식을 낳는다는 건 이제 유전자가 명령하는 단순한 존재 본능을 넘어서서 새로운 노동력을 창출해내는 공장 역할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저마다 '자신의 노동력' 확보에 필사적이 됩니다.

학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 일종의 계약이 맺어지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성은 자신이 경작하는 토지에 필요한 노동력인 아이를 생산해 줄 수 있는 여성을 원하게 되었고, 여성은 에너지 소모가 무지하게 큰 임신과 출산과 육아의 과정 동안 자신과 아이들을 보호하고 먹여 살려줄 사람이 필요했으니까요. 따라서, 결혼이란 '노동력의 재생산'이라는 의미와 부(富)를 늘리고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기능을 더하게 되었죠. 어부지리로 성욕도 해결하구요. 그래서 많은 지역에서 아내를 얻기 위해서는 처가에 그에 합당하는 재물을 주고 아내를 사오는 '매매혼'의 풍습이 생겨났고, 차츰 농경의 규모가 커지고 부의 불평등이 일어나면서 재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아내의 숫자가 달라지는 경우도 생겼지요. (물론 환경과 문화에 따라서 여러 종류의 결혼 제도가 생겨난 것 역시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만, 여기서는 가장 보편적인 흐름만을 이야기하기로 하죠)

세월은 흘러흘러 이제 21세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만큼 결혼과 가족에 대한 이미지도 느낌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결혼을 통해서 성적 욕구를 해소하고 아이를 낳아서 사회 구성원을 재생산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예전보다 그 기능이 많이 축소되었죠. 또한 한 결혼정보회사가 실시한 '결혼을 하는 이유' 라는 설문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답변은 상대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같이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집에서 독립해서 벗어나고 싶어서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그 변화를 단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예입니다.

즉, 결혼을 통해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기존의 가족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그렇다고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지요-으로 결혼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에서 사람들의 의식은 많이 변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상황이 이러니 결혼을 통해서 새로운 가족-남편이나 아내가 아니라, 그 혹은 그녀들의 원래 가족-이 생기는게 당연히 싫고 부담스러운게 사실입니다. 따라서, 요즘 들어 , 동거에 대한 이야기가 불거져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의 동거란 '혼전' 동거가 아니라, 아예 혼인 자체를 배제한 동거, 진짜로 '같이 산다(同居)'라는 의미가 강조된 것입니다)

<사진> 여자는 남자에게 한 달간의 계약 연애를 제안하고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영화 속의 여주인공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고 당당하게 혼자 서는 모습으로 상투성을 거부한다. 사진은 영화 [마들렌]의 한 장면.

때로는 2세를 두고도 평생을 동거로 살아가는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드물지만 말입니다. 작가 한리마씨가 대표적인 경우. 그녀는 결혼식도,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채 가족을 이뤄 살고 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불편함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자녀가 사생아로 호적에 올라가는 것-에다가 옵션으로 주위의 노골적인 반감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결혼이란 제도의 불합리성으로 인한 괴로움보다는 훨씬 낫다는 게 그녀의 답이지요. 이런 풍조에 덧붙여 요즘에는 동성 커플의 동거 역시 드물지만 서서히 생겨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는 인간이 동물과 분명하게 갈리는 시점을 '자식 낳는 것을 거부하는 때' 부터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존속시키려는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기에,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워낸 다음에는 수명이 다해 다음 후손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자신의 목숨을 반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인간은 과도기에 들어섰습니다. 인간에게도 자신의 유전자를 존속시키려는 본능은 있어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 자신의 아이를 애지중지 키우지만, 예전처럼 아이가 생기는 대로 낳지는 않거든요. 아이의 터울을 조절하고, 피임을 해서 아이가 생기는 것을 막으며, 때론 단산을 하기도 하지요. 아이보다는 자신의 인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늘어갑니다. 또한 예전처럼 한평생을 아이를 낳고 키우다가 접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충분히 키워서 어른으로 만든 뒤에도 몇십 년은 더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사람들은 예전처럼 거의 모두가 다 결혼해서 가족을 이뤄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입니다. 그래서 결혼률이 떨어지고, 출산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건 아닐는지…(현재 우리 나라의 출산율은 가임 여성 한 명당 1.4명이라고 합니다. 가임여성 1인당 2.1명 정도가 되어야 인구가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고 하니, 이 상태로는 인구가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겠죠. 그래서 이제는 정부도 산아 제한 정책을 중단하고, 출산장려정책을 도입하느라 서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나 혼자라는 근본적인 외로움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들은 결혼을 넘어서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동거 커플, 동성애자 가족, 혈연을 넘어선 공동체 모임 등이 그러한 것들일 겁니다.


...세상이 변하고 삶이 변하면 당연히 관습도 바뀌고 문화도 바뀔 것입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어 변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진화(進化)'입니다. 결혼도 가족제도도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니 그 역시 인간이 변해가고 문화가 바뀌어 가면서 같이 진화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옛 가족의 형태와 옛 결혼 문화를 답습해갈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인간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니까요.


- hari-hara(harihar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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