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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家 비판···신중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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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家 비판···신중해야 할 이유

신영복 고전강독<145> 제12강 한비자(韓非子)-13

4)법가 유감(法家 有感)

법가에 대한 비판으로서 가장 먼저 드는 것으로 법가(法家)는 전국시대(戰國時代)의 군주(君主)철학이라는 것입니다. 애민(愛民)사상이 아니라 군주의 권력을 중심에 두는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비민주적 사상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비민주적 성격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면에 있어서도 군주권력에 과도한 무게를 두었기 때문에 시스템으로서의 관료제도를 실패로 이끌었다는 것이지요. 관료의 역할과 임무를 최소화(最小化)함으로써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결과적으로 관료제의 효율성을 살려내지 못하였다는 것이지요.

다음으로는 법가의 현실성에 대한 비판입니다. 법가는 변화된 현실을 인정하고 당대의 사회적 과제에 대하여 새로운 대응방식을 발빠르게 모색하였다는 점에서 다른 학파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법가가 추구한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방책(方策)에는 민부(民富)의 기초가 없다는 것이지요. 부강(富强)의 물적 토대가 허약하다는 것이지요.

법가의 이러한 한계가 비록 천하통일이라는 현실적 과업을 달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법가가 추구한 현실성(現實性)이 한대(漢代) 이후 유가(儒家)의 현실성에 그 지위를 넘겨주는 역설을 낳았다는 것이지요. 결국 법가의 현실성은 단기적(短期的) 현실성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가비판에 대하여 우리는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여러 사상가들에 관하여 함께 읽는 동안 그 사상의 장단점을 지적하는 것을 최대한으로 자제해왔습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사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전체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구성하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 진한(秦漢)을 하나의 역사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진(秦)과 법가(法家)는 전국시대의 혼란을 통일하는 과정으로서, 그리고 한(漢)과 유가(儒家)는 중앙집권적 전제군주국의 통치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었지요. 진(秦)과 한(漢)은 각각 창업(創業)과 수성(守城)이라는 역사적 임무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어떠한 사상체계라 하더라도 그것을 전체 과정의 일환으로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상(位相)을 묻고, 결코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법가의 장단점과 한계를 지적하는 것은 물론이며, 법가의 특징을 규명하는 것이 법가의 개별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요.

개별적 가치나 배타적 성격에 탐닉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관념론적 신조(信條)입니다. 다른 것과의 연관 즉 관계론에 대한 혐오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지요. 모든 사상이 갖는 한계란 실상 객관적 진리나 완성된 체계에 도달할 수 있는 조건이 역사적으로 제약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지요. 역사적 제약의 상대적 표현이라고 해야 옳은 것입니다.

법가는 물론이며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 읽은 모든 사상체계에 대해서도 똑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상은 모든 사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도도한 역사의 과정에서 출몰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떠한 철학체계라 하더라도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인식을 제약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모든 사상은 궁극적으로는 개념적 인식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법가적 대응양식 역시 당시 수많은 부국강병책의 하나였음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부국강병은 그 목표가 천하통일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천하통일은 궁극적으로는 전국시대라는 대쟁지세(大爭之世)를 지양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모든 제자백가들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법가의 경우 부국강병의 구체적 모델이 전제군주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관료국가라는 데에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중앙집권적 관료국가가 전국시대의 혼란을 평정하고, 혼란의 재발을 막는 데에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 법가의 논리입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법가사상을 군주철학에 촛점을 맞추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지요. 틀린 것은 아니지만 부분을 확대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법가사상에서 적극적 의미로 읽어야 하는 것은 개혁성(改革性)과 법치주의(法治主義)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상에 비하여 분명한 차별성을 갖는 법가의 특징입니다. 법가의 개혁성은 구사회의 종법구조가 이완되고 보수적 저항성이 약화됨으로써 형성된 새로운 공간을 충분히 향유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공간은 일차적으로 과거의 관념적 제약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미래사관 변화사관이 그것입니다.

법가의 개혁성은 이 과거의 구조가 해체되고 새로운 구조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구성되는 개념입니다. 법치주의는 이러한 개혁성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백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가의 법치주의는 먼저 성문법의 제정과 신상필벌의 원칙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서 대단한 진보입니다. 군주의 자의적 폭력에 대한 제도적 규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 예측가능성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법치주의 가장 발전된 형태가 관료제입니다. 관료제도는 시스템에 의한 통치이기 때문입니다. 이 관료제에 대한 규제방식으로서의 군주의 술(術)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 술치(術治) 때문에 법가가 권모술수(權謀術數)의 학(學)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부분에서 결론을 내리기에 신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춘추전국시대라는 시대적 성격과 관련된 것입니다. 춘추전국시대란 무도한 시대이며 혼란의 극치를 보이는 시대입니다. 임금을 죽인 것이 36번, 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52번이었습니다. 이러한 하극상과 혼란이 재발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법가에 있어서는 관료에 대한 견제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관료는 언제든지 제후(諸侯)나 대부(大夫)의 지위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관료들의 이반(離叛)을 통제하고 견제하지 못하는 한 전기의 모순과 혼란이 반복되지 않을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군주의 술치(術治)는 군주의 은밀하고 부정적인 권력이라기보다는 관료제라는 새로운 제도의 작동원리로서 이해되어도 좋을 것입니다.

법가를 다시 읽는 우리가 결코 놓쳐서 안 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혁성과 법치주의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원리를 제도화하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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