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공정거래위원회가 15개 언론사의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과징금 1백82억원 전액을 면제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언론계는 물론, 시민단체와 정치권 등 각계의 시선이 매우 비판적이다. 한 마디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언제부터 불공정거래위원회였느냐'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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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비판에는 지난해 언론사 세무조사와 공정위 조사를 '언론길들이기'라며 "DJ 정부는 언론에 재갈물리기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던 한나라당까지 동참했다. 한나라당은 구랍 31일 '또다른 언론길들이기가 우려된다'는 성명을 통해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길들이기'였던 만큼 늦게나마 잘못을 인정한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면서도 "하지만 새정권 출범을 앞둔 '화해의 제스처'와 더불어 다른 뜻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여 개운치 않다"고 지적했다.
"채찍이 통하지 않자 당근으로 언론을 길들이려 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는 것이다. 공정위의 원칙없는 결정은 한나라당 성명대로 "이번 결정에 앞서 법 위반은 유효하지만 과징금은 면제한다는 논리는 너무나 궁색하다. 공정위의 부당내부거래조사와 국세청 세무조사에 대한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는 정치적 공방용 논리가 차라리 설득력을 갖게 한다.
공정위의 원칙 없는 결정에 대해 정치권에서 가장 강한 비판을 제기한 곳은 민주노동당. 이상현 민노당 대변인은 "공정위의 과징금 취소 결정은 어떤 논리로도 납득할 수 없다"며 "언론사의 불공정거래행위를 눈감아 준 공정위는 불공정거래위원회로 간판을 바꾼 것인가"라고 비꼬았다. 그는 "이번 처사는 언론에 특혜를 베푸는 불공정행위이며 언론개혁이라는 국민의 열망과 배치되는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시민단체 "정치적 판단, 엄격해야 할 법제도 집행 훼손"**
전국언론노조 등 언론단체들과 참여연대와 민언련 등 시민단체들의 공정위 비판은 "자전거와 TV까지 신문경품으로 제공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위의 과징금 면제결정은 전형적인 정권말기의 정치적 행정이라는 것"이며 "특히 원칙을 갖고 국정을 이끌어나가야 할 노무현 정부의 앞길에 벌써부터 초를 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번 공정위의 결정의 근거를 납득할 수 없으며 이는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결정으로 법제도의 엄격한 집행을 훼손한 것이라는 점에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이러한 공정위의 결정이 정권말기에 그동안 불편했던 언론과 정치권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으며, 이러한 원칙의 훼손이 노무현 새정부의 경제개혁에 나쁜 선례를 남길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측도 애초 공정위 결정에 대해 유감표명을 한 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원칙을 어긴 처사'라는 비판적 입장은 고수하고 있다. 정순균 대통령직 인수위 대변인은 "신문사들이 경영상의 어려움을 내세워 과징금을 감면하거나 없애달라고 하는 요구를 받아들여 원천적으로 무효화시킨 것은 원칙을 어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직 인수위는 공정위의 과징금 취소가 발표된 지난달 30일 "스스로 원칙을 저버린 이해할 수없는 조치로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비판했었고, 노 당선자도 "처분할 때도 이유가 있어야 하듯이 취소할 때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경위를 알아보라"고까지 불편한 심경을 나타냈었다.
하지만 아직 인수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업무를 승계하지 않은 상태에서 더 이상 현 정부의 결정사안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는 어렵다는 판단하에 입을 다물기로 했다고 볼 수 있다.
표면적이지만 공정위 결정에 당혹스러워 하기는 청와대도 마찬가지다. 애초 이번 공정위 결정배경에 청와대가 개입해 정치적 논리로 언론과의 불편해진 관계를 청산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청와대측은 오히려 "공정위가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공정위의 어처구니 없는 결정 때문에 청와대까지 불똥이 튀었다"며 "이처럼 중요한 결정이 정치(精緻)하지 않게 제멋대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일단 청와대 언론분야 담당인 공보수석실은 공정위 결정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DJ정부와 언론간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켜 대언론홍보를 포기하다시피하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중 하나였던 공정위 조사의 결정 번복을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이 단독으로 했을리는 없다는 것이 언론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어떻게든 정치적인 고려가 작용했을 것이며 그 배후에는 현 정권의 실세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공정위 "언론사 경영여건과 공익기관이라는 점 고려한 결정"**
이에 대해 공정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인수위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지난해 신문사들의 경영상황을 점검해보니 조선일보를 제외하곤 모두 적자기업이었고 일부 신문사의 경우 수해를 입기도 했다. 특히 한국일보는 '도저히 낼 능력이 없다'며 청원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일부 신문사의 경우 공정위 과징금 부과결정에 대해 법원에 행정소송을 내거나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법원쪽에 알아보니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감을 받았다"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기여하는 언론사의 공익적 특성 등 여러가지 정황을 감안해 면제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정치적인 고려는 전혀 없었으며 순전히 언론사의 어려운 경영여건과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점을 감안해 내린 결정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공정위 주장은 참여연대가 지적한 것처럼 "법적용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결정 전체를 취소하여야 한다"는 논리와 상충된다. 즉 공정위 표현대로 부당내부거래의 법위반성 자체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그에 따른 과징금 부과조치는 엄정하게 집행돼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노무현 당선자가 지켜야할 언론개혁의 원칙**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갖고 있는 분명한 소신중 하나가 언론과의 관계에서 '정치는 정치, 언론은 언론'이라는 원칙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출범도 하기 전에 벌써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다. 아직 현 정부의 공식 임기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월권행위를 할 수는 없겠으나 노 당선자가 유념해야 할 몇 가지 언론개혁을 위한 원칙이 있다.
첫째 지난 2001년 실시됐던 언론사 세무조사와 공정위 조사는 이제 국세청과 행정부의 손을 떠났다는 점이다. 여러 정치적 논란이 있었으나 이제는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고 조용히 그 결과를 지켜볼 일이며 정치적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정위의 과징금 면제결정은 이미 나온 결과를 없던 것으로 하자는 얘기나 다름 없다. 사법부의 판단이 채 나오기도 전에 정부부처가 원칙준수라는 게임의 룰을 저버리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둘째 언론개혁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적 공감대이며 언론개혁의 공론화 과정을 위해 제도적 틀을 만들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동안 시민단체 등에서 제안했던 국회 산하의 언론발전위원회를 만들어 정치권과 학계, 시민단체,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서 언론사의 소유지분 제한이나 신문·방송시장의 독점 제한문제, 현실에 맞는 정간법 개정 등 다양한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언론개혁에 대한 논의는 무성했으나 이를 제도화할 법적 장치나 공론화할 수 있는 기구는 전무했다.
셋째 언론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수렴된다면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이를 요구하고 시행하라는 것이다. 모든 신문과 방송이 사시(社是)로 내걸고 주장하듯이 언론은 우리 사회의 공기이며 언론의 주인은 독자이자 국민이다. 국민의 바람과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언론사, 공익이 아닌 사주 개인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언론사는 이미 스스로 설 땅을 상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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