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法治···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法治···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신영복 고전강독<137> 제12강 한비자(韓非子)-5

3) ‘한비자(韓非子)’ 예제(例題)

國無常强無常弱 奉法者强 則國强 奉法者弱 則國弱(有度)

“항상 강한 나라도 없고 항상 약한 나라도 없다. 법을 받드는 것이 강하면 강한 나라가 되고, 법을 받드는 것이 약하면 약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法不阿貴 繩不撓曲 法之所加 智者弗能辭 勇者弗敢爭 刑過不避大臣
賞善不遺匹夫 故矯上之失 詰下之邪 治亂決繆 絀羨齊非 一民之軌
莫如法 屬官威民 退淫殆 止詐僞 莫如刑 刑重則 不敢以貴易賤
法審則上尊而不侵 上尊而不侵則主强 而守要 故先王貴之而傳之
人主釋法用私 則上下不別矣(有度)

阿貴(아귀) : 귀족에게 아첨함. 辭(사) : 말씀. 이유를 달다.
決謬(결류) : 그릇됨을 결단함. 絀羨(출선) : 法外를 물리침. 羨은 列外.
齊非(제비) ; 올바르지 못한 것을 가지런히 함.
屬官(속관) ; 勸勉. 屬은 勵의 잘못. 易賤(이천) ; 천한 자를 업신여김.
法審(법심) ; 법이 자세함.

“법은 귀족을 봐주지 않는다. 먹줄이 굽히지 않는 것과 같다. 법이 시행됨에 있어서 지자(智者)도 이유를 붙일 수 없고 용자(勇者)도 감히 다투지 못한다. 과오를 벌함에 있어서 대신도 피할 수 없으며, 선행을 상줌에 있어서 필부도 빠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윗사람의 잘못을 바로 잡고, 아랫사람의 속임수를 꾸짖으며, 혼란을 안정시키고 잘못을 바로 잡으며, 예외(例外)를 인정하지 않고 공평하게 하여 백성들이 따라야 할 표준을 하나로 통일하는 데에는 법보다 나은 것이 없다. 관리들을 독려하고 백성들을 위압하며, 음탕하고 위험한 짓을 물리치고 속임과 거짓을 방지하는 데에는 형보다 나은 것이 없다.

형벌이 엄중하면 귀족이 천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못하며, 법이 자세하면 임금은 존중되고 침해받는 일이 없다. 임금이 존중되고 침해받는 일이 없으면 임금의 권력은 강화되고 그 핵심을 장악하게 된다. 그러므로 옛 임금들이 이를 귀중하게 여기고 전한 것이다. 임금이 법을 버리고 사사롭게 처리하면 아래 위의 분별이 없어진다.”

법지상주의(法至上主義)의 선언입니다. 법치는 먼저 귀족(貴族), 지자(智者), 용자(勇者) 등 법외자(法外者)에 대한 규제로 나타납니다. 법 위에 군림하거나, 법을 지키지 않는 사회적 강자(强者)들에 대한 규제에서 시작합니다.

주(周) 이래로 규제방식에는 예(禮)와 형(刑)이라는 두 가지 방식이 있었습니다. 공경대부(公卿大夫)와 같은 귀족들은 예로써 다스리고, 서민들은 형으로 다스리는 방식이었습니다. ‘예는 서민들에게까지 내려가지 않고, 형은 대부에게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禮不下庶人 刑不上大夫)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법가는 주대(周代)의 이러한 예(禮)와 형(刑)의 구분을 없앱니다. 귀족을 내려 똑같이 상벌로써 다스리는 것입니다. 유가는 반대로 서민을 올려서 귀족과 마찬가지로 예로써 다스리자는 주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가는 유가의 이러한 방식을 현실을 외면한 백면서생(白面書生)들의 주장이라고 조소하는 한편, 유가는 법가적 방식을 비열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이지요. 어쨌든 법가는 공평무사한 법치를 주장하며 어떠한 예외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법가의 법치원칙은 누구를 위한 법치인가 하는 점에서 오늘날의 민주법제와 구별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법가의 법은 군주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핵심입니다. 바로 이 점이 법가비판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법 역시 군주는 아니더라도 지배계층이 권력을 강화하고, 권력을 재생산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지요. 대부(大夫)는 예(禮)로써 다스리고 서민은 형(刑)으로 다스린다는 과거의 관행이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범죄(犯罪)와 불법행위(不法行爲)라는 두 개의 범죄관이 있습니다. 절도, 강도 등은 범죄행위로 규정되고 선거사범, 경제사범, 조세사범 등 상류층의 범죄는 불법행위로 규정됩니다. 전혀 다른 2개의 범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소위 범죄와 불법행위는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이나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도 전혀 다릅니다. 범죄행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매우 가혹한 것임에 반하여,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더없이 관대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그 인간 전체를 범죄시하여 범죄인(犯罪人)으로 단죄하는 데 반하여, 불법행위에 대하여는 그 사람과 그 행위를 분리하여 그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만 불법성을 인정하는 불법행위자(不法行爲者)정도입니다. 이것은 주나라 이래의 관행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역설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법가의 법지상주의가 인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군주를 위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폄하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은 물론 사회구조에 대하여 매우 허약한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나중에 설명할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법가의 군주권을 강화하는 이론은 나름대로의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중앙집권적 권력구조만이 전국시대의 혼란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생하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로울 것이며, 인(仁)의 도리는 처음에는 잠깐동안 즐겁지만 뒤에 가서는 곤궁해질 것”(法之爲道前苦而長利 仁之爲道偸樂而後窮)이라는 주장이 그렇습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