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는 남북ㆍ대미관계, 이번 대선을 통해 다시 드러난 동서 지역갈등 해소와 국민통합, 경제개혁 지속 추진 등 산적한 과제가 쌓여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하나의 시급한 당면과제가 있다. 바로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들과의 관계재정립과 언론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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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 입문 이후 노 당선자는 줄곧 제도언론으로부터 '찬밥' 대접을 받아 왔다. 특히 조중동 등 이른바 거대보수언론은 민주당 후보 국민경선, 후보단일화 등 이번 대선의 주요한 고비고비에서 그에 대한 집요한 반대를 숨기지않았다. 우리나라 신문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조중동의 일관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것은 사실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 과정에서 노 당선자와 조중동간의 적대적 관계가 심화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노 당선자는 조선일보에 대해 인터뷰는 물론 취재거부까지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일개 정치인 노무현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이같은 적대적 관계가 계속돼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관계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말이다. 여기에는 물론 과거의 공과에 대한 엄정한 시시비비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노 당선자의 정치 입문 이후 지난 십수년간 조중동은 일종의 '가해자'였다. 이들 신문은 끊임없이 그를 '불안하고 과격한 정치인'으로 덧칠해 왔다. 선거 당일 조선일보의 사설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는 이들 보수언론이 얼마나 간절히 노무현 후보의 낙선을 바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신들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지금, 이들 신문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설정에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지독한 박해를 받아온 노 당선자로서도 이들 신문에 대한 감정이 결코 곱지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무작정 '용비어천가'를 부르거나, 아니면 현 DJ정부에게 했던 것처럼 노무현정부에 사사건건 반대로 일관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닌 것같다.
이번 대선에 조중동은 노무현 후보에게 진 것이 아니라 민의(民意)에 졌기 때문이다. 변화를 열망하는 민의를 외면한 채 자신들의 지휘 아래 민의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스스로의 오만함에 취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조중동은 자신들이 얼마나 민의와 동떨어져 있음을 자각하고 그 원인을 찬찬히 되새겨 보는 일을 최우선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노 당선자에게는 우선 과거의 원한이나 섭섭함을 과감하게 털어버릴 것을 권하고 싶다. 이제 노 당선자는 일개 정치인이 아니라 4천7백만 국민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또한 은밀한 거래로 특정 언론의 논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유혹도 떨쳐버려야 할 것이다. '원칙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본래의 이미지에 걸맞게 '정치권력과 언론간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형성해 나갈 것을 권하고 싶다.
이와 함께 왜곡된 신문시장 질서를 바로 잡아 작지만 색깔 있는 신문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데도 관심을 가져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노 당선자 "대통령 되면 조선일보와의 관계재정립 깊이 고려하겠다"**
노 당선자는 민주당 국민경선과정과 대선 선거운동 기간은 물론 지난 10여년간 이들 보수언론들, 특히 조선일보로부터 결코 호의적인 대접을 받지 못했으며 때로는 무시 외면 경멸의 대상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노 당선자가 대통령 후보라는 공인의 신분이면서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는 물론 취재거부를 선언했던 사실은 상징적으로 조선일보가 얼마나 노 당선자에게 악의적인 보도를 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조선일보와 노 당선자의 관계가 악화된 결정적 계기는 11년전 '주간조선'(91년 10월 6일자)의 '노무현 의원, 과연 상당한 재산가인가'라는 기사다. 당시 조선일보 자매지인 주간조선은 노무현 당시 국회의원이 서민의 탈을 쓰고 실제로는 호화 요트생활을 즐긴다는 식의 보도를 했다. 노 당선자가 "언론에는 좋은 언론과 나쁜 언론이 있는 것 같다"며 '나쁜 언론'을 얘기할 때 단골로 인용하는 보도가 바로 이 기사다.
당시 노 당선자는 "터무니없는 모함으로 가득찬 기사"라며 명예훼손 손배소를 제기했고, 법원은 "조선일보사는 노 의원에게 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조선일보와 노 당선자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너버린 듯 계속 악화되기만 했지 좋아지지는 않았다. 지난 4월 민주당 국민경선 과정에서 '일부 신문 폐간론과 신문국유화'의 진위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졌을 때 조선일보가 보여줬던 태도, 그리고 노 당선자의 이들 언론에 맞서 싸우겠다는 수 차례의 의지표명 등이 대표적이다.
노 당선자는 '조선일보가 스스로 과거 잘못을 고백하고 사죄하지 않는 한 이같은 입장은 여당 후보가 되든, 대통령이 되든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해왔으나, 지난 3월 28일 민주당 국민경선 과정중 전주TV토론에서는 "대통령이 돼서도 특정 언론과 인터뷰를 거절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대통령이 되면 깊이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대한민국의 차기대통령이다. 조선일보 등과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시점이 된 것이다. 외국에서도 국가원수가 싫어하는 언론이 있을 경우 해당언론에 대해서는 엠바고 파기 등을 이유로 출입금지를 시키는 사례도 있다. 노 당선자가 과거의 입장을 견지해 특정신문과의 관계를 계속 거부하겠다면 최고권력자인 그에게 누가 뭐라 할 것인가.
하지만 노 당선자는 당선 직후 "지지자와 반대자를 모두 포용하는 대통령이자 국민의 심부름꾼이 되겠다"고 다짐했고 "7천만 국민대통합을 이뤄내겠다"고 약속했다. 노 당선자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대척점에 서 있는 이들 보수언론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일이다.
***"언론개혁과 함께 투명하고 공개적인 관계재정립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특정언론과의 인터뷰를 거부하며 계속 불편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진정한 국민통합을 바라는 국민들의 눈에는 그가 추구하는 것은 국민통합이 아니라 분열로 비춰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아직도 한국 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보수언론들은 이를 빌미로 DJ에게 한 이상으로 노 당선자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노 당선자가 보수언론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면서 유념할 것은 다시는 과거처럼 비선조직에 의존해 비공개로 적당한 타협책을 강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언론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큰 만큼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정간법 개정이나 신문시장 투명화 등 언론의 공익적 기능을 강화시키기 위한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지난 20일 전국언론노조와 한국기자협회,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등이 노 당선자에게 '언론개혁은 사회개혁의 가늠자'라며 언론개혁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이 같은 사회 일각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즉 노 당선자는 앞으로 한국 현실과 외국 사례 등을 다각적으록 검토해 한국 언론이 바로 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하며 동시에 보수언론들과의 관계정립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국민통합을 실현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언론개혁을 위해 중요한 것은 국민적 공감대다. 김대중 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 언론개혁에 대한 화두를 던진 뒤 세무조사를 실시하며 많은 국민적 반감을 산 것은 시기도 시기려니와 사주의 호화원정 도박 의혹 등이 사실로 드러난 일부 언론사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주고 이른바 조중동이라는 보수언론 3사에 대해서만 일제히 8백억원대의 천문학적인 세금을 추징했기 때문이다.
이 사례를 통해 명심할 것은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다. 언론사 세무조사 등 정부의 대언론조치가 특정 언론의 보도 논조에 대한 보복으로 비쳐져서는 안 된다. 정부의 조치는 보도 논조와 관계없이 보편적, 무차별적으로 적용돼야 한다.
노 당선자가 수 차례 언론개혁에 대한 의지를 밝혔듯이 차제에 한국 언론이 진정 국민을 위한 언론으로 바로 서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물론 진정한 언론개혁은 자율적인 개혁이 최선이다. 하지만 신문시장 정상화를 위한 신문고시가 사문화된 데서 드러나듯이 자율적 언론개혁에만 의지하기에는 우리 언론의 현실이 너무 부끄럽다.
***"조중동은 과거 반성하고 정론지로 거듭나길"**
언론개혁에 앞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도 이제 스스로 과거 보도태도를 반추해보며 진정 언론으로서의 책임을 다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불편부당하지 않은 기사를 양산해왔는지 반성해야 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 기자들이 가장 부끄러워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속한 언론사가 과거의 친일행적이나 동아투위 사건, 친재벌적인 보도태도 등에 대해 솔직하게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일보의 한 중견기자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대한 무조건적인 안티운동(anti)이 아니라 언론을 바로 세워주려는 프로운동(pro)으로 전환된다면 우리도 외부의 비판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조중동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은 바로 과거다.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에는 할 말이 없으며 이를 하지 않고는 바로 서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대선 당일인 19일 20일자 신문 초판을 내며 머릿기사 제목으로 '[21C 첫선택] 李·盧 개표초반 접전 양상-투·개표 순조…밤 9시쯤 當落윤곽, 최종투표율 70%線 그칠 듯'(조선일보), '대선투표율 사상 최저-최종투표율 70%대 초반 예상…14, 15대 크게 못 미쳐(수도권 충청 강원 울산지역 저조)'(동아일보)라고 달았다.
두 신문이 다른 신문들은 물론 외신들까지 긴급속보로 보도한 '노 당선자가 이회창 후보에 앞섰다'는 방송3사의 출구조사 결과를 애써 외면하려 한 것은 바로 이들이 얼마나 노 당선자의 당선이 아닌 낙선을 고대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다.
그래 놓고는 노 당선자가 확정된 직후 20일자 시내판에서는 '盧 당선자 '분열의 상처'부터 아물려야'(조선일보), '盧 당선자, 안정된 국정운영을'(동아일보)라고 강조했다. 이번 대선을 세대간 대결로, 지역갈등으로 선도하며 사회불안을 야기시킨 것은 다름아닌 보수언론들이다. 근거없는 흑색선전을 중계보도하고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발언들을 비판없이 기사 제목으로까지 뽑은 언론들이 바로 자신들인데 스스로는 아무런 자성도 보이지 않은 채 당선자에게만 '통합'을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드러난 것은 한국 사회에서 발행부수 1, 2, 3위를 자랑하는 '조중동'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이며 이들의 발행부수가 바로 사회적 영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와 언론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발행부수가 많고 규모가 큰 이들 언론사들이 바로 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 조선일보 중견기자는 "조선일보는 우리 사회 메인스트림을 반영하기 때문에 여중생 사건 등을 다룰 때도 한미관계 등을 고려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에서 드러난 것은 미국이라는 외생변수가 한국 사회에 엄청난 변수를 가져왔다는 점인데 이러한 변화의 목소리를 다루는 데 수동적이고 조심스럽다 보니 실기(失機)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써야 기사가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오십보 백보다. 중앙일보의 경우 97년 중앙일보에서 작성된 ‘이회창 경선전략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보고서 파문을 의식한 듯 동아ㆍ조선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지면 곳곳에서 불공정 보도행태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노 당선자는 아우르고 조중동은 반성해야"**
이제 한국의 21세기를 이끌어갈 첫 대통령을 뽑은 새로운 시대가 개막됐다. 당선자는 보수언론은 물론 자신에게 표를 주지 않은 모든 국민들을 아우르고 진정한 국민통합을 이뤄야 할 것이다. 한편 보수언론들은 지금까지의 권력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보여 국민들이 바라는 진정한 정론지로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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