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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겨레에도 힘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

<속보>한겨레신문 홍세화 기획위원의 공개질의서

지난 5일 민주노동당 찬조연설자로 MBC '100분토론'에 출연했다가 "사규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직무정지 조치된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이 10일 조상기 편집위원장(편집국장) 앞으로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홍 위원은 이 글에서 "한겨레에도 힘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며 "편집위원장은 나에게서 ‘왜냐면’의 편집권을 박탈한 근거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과정과 절차를 밟았는지 밝히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홍 위원은 "한겨레는 진정 ‘진보적 대중지’를 지향하는가?"라고 반문하고 "누구의 한겨레가 진정한 ‘진보적 대중지’인지 또 <한겨레> 구성원들의 그것은 무엇인지 끝까지 검증해본 뒤에 내 거취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홍 위원은 또 지난 7월 한겨레신문 내에 진보정당 가입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사내 윤리위원회 앞으로 보낸 ''견제권력'과 진보 언론인의 정당활동-일차원적 사고에서 벗어나야'라는 첨부문서를 통해 "나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창간 정신이 구성원의 진보정당 입당을 가로막는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며 그 이유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은 권력(pouvoir)이 아니라 '견제권력(contre-pouvoir)'"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 위원은 "한겨레가 견제권력에서 조중동처럼 권력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지만 나는 그 때에는 한겨레에 없을 것"이라며 "마찬가지로, 진보정당이 견제권력에서 권력이 되기를 기대하지만 그 날이 왔을 때 나는 거의 틀림없이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홍세화 기획위원회 한겨레신문 편집위원장 앞으로 보낸 공개질의서 전문과 지난 7월 윤리위원회 앞으로 보낸 첨부문서 전문이다.

***'편집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한겨레에도 힘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

지난 금요일(12/6) 오후에 편집위원장은 나에게 ‘왜냐면’의 편집권을 박탈하고 이를 부국장단에게 넘긴다고 전화로 통보했다. 내가 그 전날 밤 MBC <100분 토론>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지지자로 참석하여 공개적으로 ‘선거운동’을 벌였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편집위원장에게 문서로 된 결정서를 요구했으나 편집위원장은 내가 입사하여 ‘왜냐면’ 편집을 시작했을 때도 문서작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내 요구를 거부했다. 통화는 그렇게 편집위원장의 일방적 통보로 끝났다.

나는 지금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살아오면서 적지 않은 일을 겪었지만 <한겨레>에서 이런 인격적 모욕을 당할 줄 몰랐다. 외할아버님은 분노의 깊이가 깊은 그만큼 긴 시간을 참고 기다린 뒤에 대응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돌이키며 사흘을 보냈다. 그 동안 한 가닥 희망을 갖고 편집위원장이 자신이 저지른 전횡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거나, 혹은 부국장단 등으로부터 시정 요구를 받는 등 <한겨레> 조직의 자정 능력을 통하여 이 폭력적 행위가 번복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한겨레>에 힘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집단에 숨어 있는 구성원들의 편의적이며 이기적인 수구성을 확인한다.

‘똘레랑스의 부드러움은 앵똘레랑스에 대한 단호한 자세를 요구한다’는 내 원칙에 의해, 편집위원장에게 이 공개질의서를 보낸다. 질문은 아래와 같다(경어 생략).

1. 편집위원장은 나에게서 ‘왜냐면’의 편집권을 박탈한 근거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과정과 절차를 밟았는지 밝히기 바란다. 미리 지적하지만, 기자들의 정당활동을 금지하는 사규를 거론하지 않기 바란다. 사규의 그 조항은 상위 체계인 실정법에 어긋나거니와, 나에게는 이미 사문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첨부 문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내가 지난 7월 하순에 작성하여 <한겨레> 윤리위원회 앞으로 보냈던 그 글에 대해 나는 아직까지 그 누구로부터도 반론이나 비판을 받아본 적이 없다. 사규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반론이나 비판을 펴지 않으면서, 사규를 무기로 삼아 행동하는 것은 그 어떤 조직에서도 옳지 않다. 그래서 다시금 묻는다. 나에게서 ‘왜냐면’ 편집권을 박탈한 근거와 그 절차와 과정이 무엇인지를.

2. 편집위원장은 지금까지 ‘왜냐면’의 형평성에 문제가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구체적인 예를 적시할 것을 요구한다. 또 편집위원장은 특정정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에게 여론 면을 맡길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편집위원장에게 그 특정정당 안에 민주당은 제외되는 것인지 묻는다. 멀리 되돌아갈 필요도 없다. 나에게 ‘왜냐면’ 편집권을 박탈한다고 통보한 바로 그 날에 출고된 12월7일치 신문 여론 면에는 최상천 씨의 ‘누가 옳은가’라는 글이 실렸다. 나는 조중동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이회창 선거운동’을 일상적으로 벌이듯이 한겨레 또한 ‘노무현 선거운동’을 일상적으로 벌이고 있다고 보는데, 그래도 그 글만큼 ‘노무현 선거운동’을 노골적으로 하는 글을 보지 못했다. 나는 편집위원장에게 논리적 정합성도 뒤떨어지는 그 글보다 더 심한 편파성을 보인 글을 ‘왜냐면’에 실린 민주노동당 당원의 글 또는 민주노동당에 관련된 글 중에서 적시할 것을 요구한다. 아니, 왜냐면의 모든 글 중에서 단 한 개라도 찾아서 적시할 것을 요구한다.

3. 모든 결정 과정이 무척 느리기로 정평이 나 있는 <한겨레>에서 나에 대한 ‘왜냐면’ 편집권 박탈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윤리위원회의 소집과 그 결정을 기다릴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편집위원장의 답변을 요구한다. 또 MBC 백분 토론에 참가한 것과 비슷한 이유로 참가했던 대한매일 기고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태도를 180도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조직은 구성원 사이에 지켜야할 최소한의 윤리가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번 편집위원장의 폭거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의 배반을 본다. 내가 왜 이런 수모를 받아야 하는가? 도대체 내가 한겨레에 무슨 누를 끼쳤단 말인가. 기가 막힌다. 50대 중반에 제3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왜냐면 기획을 통하여 한겨레에 몸담게 됐다. 나에게서 왜냐면 편집권을 박탈한다는 것은 곧 한겨레를 떠나라는 말과 큰 차이가 없다. 한겨레에 힘의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는 것 이상으로 한겨레에서 이런 비인간적 전횡과 폭력이 일어난다는 것에, 또 그것이 견제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

한겨레는 진정 ‘진보적 대중지’를 지향하는가? 나는 종종 한겨레가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공격으로부터 민주당을 방어하는 야전사령부에 소속된 홍보실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는다. 또 나는 한겨레에 진보를 용인하지 않는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의혹을 갖고 있다. 아무튼 편집위원장의 한겨레와 나의 한겨레는 다른 게 분명하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든 진보정당의 육성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든 한겨레의 아우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한겨레를 쉽게 떠나는 편리함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의 한겨레가 진정한 ‘진보적 대중지’인지 또 <한겨레> 구성원들의 그것은 무엇인지 끝까지 검증해본 뒤에 내 거취를 결정할 것이다.

편집위원장은 나의 공개질의에 대해서 성실하게 답변하기 바란다. 이번 사태가 발생하게 된 데에는 사규와 관련하여 7월말에 제기했던 내 글에 대해 윤리위원회가 유야무야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응했던 탓이 크다. 편집위원장은 그 전철을 밟지 말고 공개적인 글로 답변해주기 바란다. 모두들 이른바 기자 아닌가.

2002년 12월 10일, 작성자 홍세화


***첨부문서: ''견제권력'과 진보 언론인의 정당활동'-일차원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7월24일(2002년) 오전 <한겨레>의 윤리위원장은 나에게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할 것을 권유했다. 7월23일 오후에 열린 윤리위원회의 의결 내용이라고 했다. 입사 6개월밖에 안 된 사람으로서 ‘윤리위’의 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 착잡한 심정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위원장에게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한가지 물음이 영영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나에게 ‘세 개째의 개똥’을 먹으라고 요구하는 게 아닌가, 하는 물음이다. 누가 알았겠는가? 다른 조직도 아닌 한겨레가 나에게 세 개째의 개똥을 먹으라고 권유할 줄을!

한겨레 윤리위의 탈당 권유는 궁극적으로 한겨레냐, 민주노동당이냐의 양자택일 요구로 연결되는 듯하다. 그러나 나에게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켜보려고 애쓴 하나의 원칙과 정면으로 부닥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한겨레의 탈당 권유는 부드럽게 이루어졌지만 내 가슴에 앙금을 남겼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은 입당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식인들도 젊은이를 비롯한 사회구성원들의 탈정치화를 걱정하지만 스스로 정당에 참여하는 일은 피한다. 예외는 오직 보수정당의 공천을 받을 때다. 풀뿌리 정당정치는 발전하지 못하고 보스 정당정치가 계속된다. 이와 같은 정치상황에서 진보정당 참여는 참여자 나름의 원칙과 세계관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탈당 권유를 1시간 여 동안의 회의를 거쳐 의결한 한겨레 윤리위가 과연 윤리적인가 묻고 싶기까지 하다. 탈당 권유를 받는 사람의 처지에 잠시 동안이라도 서보았다면 정치적 신념 표현을 스스로 부정하라는 요구안을 간단히 의결할 수 있었을까? 물론 정당활동을 금지하는 사규가 있긴 하다. 그러나 구성원의 정치적 신념 표현을 가벼이 여길 만큼 “일단 권유해 보자”라는 행정편의주의가 앞섰던 게 분명해 보인다.

감히 말하건대, 그 문제 조항을 지금까지 꿰차고 있는 것은 한겨레가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그 동안 한겨레가 타성과 나태에 젖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창간 정신을 지키라는 말은 14년 전 창간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이 규정했던 것을 계속 고수하라는 뜻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정치-사회적 상황변화에 끊임없이 긴장하며 대처하라는 요구일 것이다. 실정법이 허용한 자유를 사규로 금지하려면 누구나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나는 납득할 수 있는 그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다.

나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창간 정신이 구성원의 진보정당 입당을 가로막는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권장해야할 일이라고 본다. 왜 그런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은 권력(pouvoir)이 아니라 ‘견제권력(contre-pouvoir)’이다. 기자의 정당활동 참여를 반대하는 논리는 아주 단순한 삼단논법에 따른 것이다. 즉, 정당은 권력 장악을 목표로 한다, 신문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따라서 기자의 정당 활동은 금지되어야 한다...그러나 단순 명쾌해 보이는 이 논리는 ‘권력’과 ‘견제권력’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일차원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령 “한겨레는 권력인가, 견제권력인가?” 이 질문은 우문이 될 것이다. 한겨레가 견제권력에서 조중동처럼 권력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지만 나는 그 때에는 한겨레에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진보정당이 견제권력에서 권력이 되기를 기대하지만 그 날이 왔을 때 나는 거의 틀림없이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한겨레 사규의 정당활동 금지조항은 본디 권언유착과 언론을 권력지향의 발판으로 이용하는 사이비언론인을 겨냥한 것일 터이다. 그것은 실상 선언적 의미가 컸을 뿐 실효성은 없었다. 그 점을 한겨레 구성원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반면에, 14년 전 창간 당시와 달리, 노동자, 농민 등 기층 민중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이 합법화된 오늘, 문제 조항은 다만 견제권력의 응집을 가로막는 데에만 작용할 뿐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정당정치 현실에 비추어볼 때, 정당활동 금지조항은 실제에 있어서 기자직을 권력지향의 발판으로 이용하려는 기자에겐 그 어떤 구속력이나 규정력을 갖지 못하는 반면에, 우리가 지금 목격하듯이 진보정당 활동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기자가 무슨 정당 가입이냐?”라고. 그러나 이 질문은 “교사가 노동자냐?”라는 질문과 같은 차원의 것이다. 기자는 정당 가입의 투명성에 의해 자신이 작성하는 기사에 대한 자기검증을 더 철저하게 하고 일상화하게 된다. 이 점은 기자가 비밀당원일 때와 공개 당원일 때의 차이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비밀 당원보다 공개 당원이 더 자신의 당파성에 합리적 논거와 균형감각을 요구받는 것이다. 가령 나는 ‘왜냐면’에 실릴 글을 선정하면서 공개 당원일 때와 그렇지 않을 경우 민주노동당 관련 글에 어떻게 반응할까? 똑같이 반응해야 마땅하지만 공개 당원일 경우 균형감각에 더욱 신경 쓸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왜냐면’에 민주노동당 당원의 글은 “진보정당 토론 참여 막지 말라”, “그렇더라도 장상 총리를 앉히고 싶다”의 두 개가 실렸을 뿐이다. 내가 만약 공개 당원이 아니었다면 한두 개의 글은 더 실렸을지 모른다.

요컨대, 한겨레의 문제 조항은 구성원들에게 자기성찰과 긴장을 덜 요구하는 비밀당원이 되도록 부추기는 어리석음을 저지른 것이다. 기자의 양식(良識)과 자율성에 맡겨두어야 할 부분을 침범한 결과다.

기자가 지켜야할 객관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면 팩트 뿐이며 이에 대한 시각과 분석에 차이가 있다. 기자의 정치-사회적 의식과 가치관, 세계관은 그가 당원이든 아니든 기사 작성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자의 당파성에 합리성이나 균형감각이 담겨있는가 없는가에 있다. 그리고 기자의 당파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은 드러내지 않는 것보다 객관적 검증의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칼럼 난에 이따금 등장하여 한국의 정치-사회적 현안에 개입하는 기 소르망이라는 프랑스인이 있다. 그는 ‘석학’, ‘문명비평가’라고 소개된다. 일반 독자는 그의 칼럼이 석학 문명비평가의 객관적 시각에서 나온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프랑스에서 신자유주의를 맹종하는 자유민주당의 이데올로그로서 ‘세계화란 곧 미국화’인데 그것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프랑스에선 <피가로>지에 어쩌다 실리는 그의 글에 그의 당파성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지만 한국에선 석학 문명비평가의 객관성이 담보된 글로 둔갑한다. 이 수법은 조선과 동아가 그들의 보수-수구적 편향을 신문에 철철 넘치게 하면서도 객관성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는 속임수와 같다. 그렇다면, 진보적 대중지를 지향하는 한겨레는 기자의 당파성을 드러내지 않고 객관성을 담보한 양하는 것과 오히려 그것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자기 검증과 객관적 합리성을 요구받도록 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마땅한가. 나아가 한겨레는 구성원들에게 민주노동당 등의 진보정당 공개 가입을 적극 권유하여 민주당, 한나라당 공개 가입도 이끌어냄으로써 권력 지향적인 비밀 당원이 없도록 하는 쪽이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어떤 이는 말한다. “진보정당의 당원임이 밝혀진 한겨레 기자의 기사나 분석에 대해 조중동 등이 물고늘어질 것”이라고.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시기는 지났다. 그 기사나 분석에 합리적 논거가 담겨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돌파할 수 있고 또 돌파해야 한다. 조중동은 한겨레의 준거 참조물이 아니다. 한겨레의 차별성은 조중동을 준거 기준으로 하는 차별성이 아니라 한국사회에 치열히 대면함으로써 획득되는 것이어야 한다.

또 어떤 이는 말한다. “한국에서 신문이 대선 후보중 지지 후보를 밝힐 때가 아직 못된 만큼 기자의 정당활동도 아직 시기상조다”라고. 그러나 신문이 대선 지지후보를 밝히는 것과 기자가 가입 정당을 밝히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각 나라 정당정치의 현실에 따라 신문이 대선 지지후보를 밝힐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자의 정당 가입은 내가 아는 범위의 모든 나라에서 허용되고 있다. 지금 시기상조라면 그 때는 언제 오는가? 모든 사용자에게 주5일 근무제는 언제나 시기상조다. 진보적 대중지를 지향한다면 지금까지 잘못된 타성을 정면에서 깨부숴야 마땅하다. 진보적 대중지가 진보의 투명성을 회피해서야 되겠는가?

***<경위와 요구>**

나는 한겨레 사규가 구성원들의 정당 가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7월22일 조상기 편집국장을 통해 처음 인지했다. 금년 1월16일의 귀국 이전까진 실정법 상으로 언론인의 정당 참여가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고, 2월1일 한겨레 입사 시에 나는 사규를 읽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3월에야 나는 언론인과 대학교수의 정당활동이 허용되었다는 점을 알게되었다. 김석준 부산대 교수가 민주노동당 후보로 부산 시장 선거에 나선 것을 보면서였다.

나는 3월30일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프랑스에 있을 때부터 글쓰기를 통해, 또 나 자신에게 약속한 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보잘것없지만 나에게 허용된 상징자본을 진보정당에 힘을 실어주는 데 써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입당하던 날, 나는 “내 생전에 기층 민중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에 합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날이 올까?”라고 처연히 자문했던 30년 전의 내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잠시 감격스러워했다. 지금도 나는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기보다는 ‘진보’정당에 입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당원으로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매달 당비를 내고 당 기관지인 <진보정치>에 한 달에 한 차례 칼럼을 기고하는 일이다.

나는 언론인의 정당활동을 정당법은 허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불허되고 있다는 얘기를 몇 차례 들었다. 그런데 사람마다 서로 다른 근거를 댔다. 나는 막연히 기자들끼리 정당활동을 하지 않겠노라고 서약한 <기자윤리실천요강>같은 것이 있나, 하고 짐작했을 뿐이다. 워낙 정당활동 불허를 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세히 알아보지 않은 탓도 있다. 그러나 정당법이 허용하는 것을 한겨레가 허용하지 않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튼 나는 사규를 어겼다. 하지만 나는 한겨레와 진보정당이 양립불가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양립되어야 한다고 보는 편이다. 나는 한겨레를 떠날 의사가 추호도 없듯이 진보정당을 떠날 의사도 추호도 없다. 나는 문제 조항의 개정을 요구한다. 앞으로 정해진 날까지 개정 여부를 심의해주길 바란다. 그 날까지 사규를 어긴 구성원으로서 불이익을 준다면 감수하겠다.

홍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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