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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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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 (8)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길] 주한미군의 중립화 ➁

주한미군의 주둔 여부는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운명을 쥔 결정적인 요소이다.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한미동맹이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한, 중립화 통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중립화와 주한미군 철수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주한미군의 철수를 필수적인 요소로 상정하는 중립화 통일 이행표를 작성해야한다. 필자가 제시하는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이행표에 따르면, 제1단계에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전제로 한) 주한미군의 중립화(평화유지군化)에 관한 공론화와 오스트리아 중립방식의 공론화가 동시에 진행된다. 동시 진행되는 이 두 가지 과제를 풀기 위해 오스트리아가 어떠한 방식으로 소련군을 철수시켰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오스트리아 방식을 참고하는 주한미군의 중립화'를 공론화할 수 있겠다.

1. 오스트리아의 중립화와 소련군 철수

오스트리아와 소련 양국 정부 대표는「오스트리아 국가조약」에 관해 조속한 결말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1955년 4월 12~15일에 모스크바에서 논의하게 되었다. 양국 대표는「오스트리아 국가조약」의 최종안에 언급, 오스트리아 연방 정부가 아래와 같은 결정ㆍ조치를 수용하도록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다; ➀ 오스트리아 연방 정부는 이미 1954년의 '베를린 회의'에서 군사동맹을 체결하거나 또는 자국의 영토 내에 어떠한 외국의 군사기지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성명에 입각해 국제적 의무로 스위스와 동일한 형식의 영세중립을 택하겠다는 것을 선언한다.

오스트리아 정부 대표단의 성명을 고려하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각료회의 부의장 몰로토프와 동 미코얀은 소련 정부의 이익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성명을 발표하였다; ② 소련 정부는 이 조약이 효력을 발생한 후 4대 강국의 모든 점령군이 1955년 12월 31일까지 오스트리아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강광식, 321~322)

이처럼 오스트리아와 소련이 중립화에 관한 조약을 맺고 소련군을 철수시킨 경과ㆍ협상 내용ㆍ논점 등을 파악하면서 공론화(주한미군의 중립화에 관한 공론화와 오스트리아 중립방식의 공론화가 동시에 진행됨)하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공론화하면서 주한미군 철수운동과 중립화 운동을 병행했는데도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으면, 중립화 통일 이행표 제1단계의 핵심적인 부분이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본래 패권국가ㆍ제국주의 국가의 해외주둔 군대는, 주둔하고 있는 나라에서 정변(혁명, 민중봉기, 쿠데타 등)이 발생하거나 패전하지 않는 한 철수한 사례가 없다(여기에서는 중립화와 관련된 미군철수를 거론하고 있으므로 정변이나 패전이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패권국가ㆍ제국주의 국가의 국익을 위해 철수시킨 사례는 있다. 소련 정부의 이익을 위하여, 1955년에 소련군을 오스트리아에서 철수시킴으로써 오스트리아를 영세중립 국가로 만든 사례가 있으므로, 이러한 사례를 미국에 적용하면 어떨까? 미국 정부의 이익을 위해 주한미군을 남한에서 철수시킴으로써 통일 한국을 영세중립 국가로 만들자고 미국 정부에 줄기차게 제안하면 어떨까?

2. 미국 쪽의 중립화 구상

미국 정부쪽에서 국익을 고려한 미군철수 계획을 짜면서, 미군철수 이후의 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방안으로 한반도의 중립화를 구상한 사례가 있다. 또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를 추진하기 위해 중립화의 대안을 제시한 사례도 있다.

해리슨(Selig S. Harrison)은 남북대화의 결실을 위하여 우선 남북대결이 냉각되어야 하며 이를 유도하기 위해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이에 따라 한국문제로부터 4강[미국ㆍ중국ㆍ소련ㆍ일본]의 '더 큰 분리'(greater detachment)를 촉진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ㆍ중ㆍ소는 모두 남북한에 대한 각자의 군사조약을 약화하고, 4강이 남북한에 대해 '대칭적 관계'를 수립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결국 남북한에게 통일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주게 되며 4강의 공식적 조약 없이도 한반도에서 '사실상의 중립화'가 추구되는 것으로 그는 보고 있는 것이다.

한편 라이샤워(Edwin Reischauer)와 바네트(Doak A. Barnett)도 같은 시기에 유사한 제의를 하였다. 라이샤워는 미국이 "세계 다른 지역에서의 긴장상태와는 별도로 남ㆍ북한 양 정부로 하여금 외세의 압력에 대한 불안 없이 그들의 통일문제를 검토하도록 하면서, 한반도 중립화에 대한 4강의 합의를 얻기 위해 미 지상군의 철수를 활용해야 한다"고 제의하고 있다. 바네트는 "남ㆍ북한 양 정부에 의한 균형 있는 군축이 취해지도록 단계적인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궁극적으로는 한반도를 비핵지대화하고, 나아가 중립화된 지역으로 설정하는 특별협정까지도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강광식, 2010, 205)

이와 같은 사례를 심층분석하면서 미국 쪽의 한반도 중립화 구상을 실현가능한 정책으로 승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 분단 고정화 직전의 웨드마이어(Wedemyer)안, 한국전쟁 휴전 직후의 노울랜드(Knowland)안, 미 국무부안, 1960년대의 맨스필드(Mansfield)안과 같이 미군철수의 대안으로 제기된 한반도 중립방안 등에서도 참고할 사항이 있을 것이다.

1947년 7월 미국의 장군 알버트 웨드마이어는 미국이 "한국의 영구적인 군사중립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제의했다. 한국전쟁 중인 1952년에 미국의 작가 로버트 올리버(Robert T. Oliver)는 스위스 모형에 따른 한국의 영세중립화를 제의했다. 1951년 4월에 갑작스런 해임을 당하기까지 UN군을 이끌었던 맥아더가 독일, 오스트리아, 일본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중립화도 제안했었다는 사실 또한 밝힐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1950년 8월 21일 미 국무성은 오랜 분석 끝에 [유엔] 총회에 상정할 목적으로 "한국에서의 미국의 활동지침"에 대한 개정초안을 내놓았다. 이 안은 미래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프로그램으로서 한국의 비무장 중립화를 고려하고 있다. 미국은 UN군이 38선을 통과한 직후부터 한국통일에 대한 미국 정부의 목표로서 중립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구하였다. 1950년 11월 6일 날짜의 미 국무성 비망록은 중국과 소련 국경선을 따라 중립지역 혹은 안전보장 지대를 설정하여 한국문제를 처리할 UNCURK를 새롭게 창설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중공군의 대규모 참전과 12월말부터 시작된 유엔군의 퇴각은 한반도 중립화 계획안을 백지화시켰다. 미국의 긴급한 당면과제는 교전행위를 종식시키고 휴전협정을 성취하는 것이었다. 1951년 7월 8일 개성 근처에서 휴전협정을 위한 대화가 시작되었고, 1953년 7월 27일 합의사항에 대한 공식서명을 함으로써 끝이 났다.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수단으로서 통일된 그러나 중립화된 한국을 생각했던 트루먼 행정부의 생각이, 국무성 유엔 차관보(John D. Hickerson) 등이 1953년 6월 8일에 작성한 비망록에서 채택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중립화된 통일은 휴전협정 이후 미국의 주요한 정책이 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한국의 중립통일은 한국문제의 군사적 해결을 거부하는 정치적 해결의 유일한 실제적 가능성을 제공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안은 시도되지도 못했고 미국은 중립화된 한국의 구상은 고사하고 휴전협정 자체도 이승만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황인관, 68~82 요약)

3. 미국의 중립화 구상을 거부한 이승만 정권의 책임

미국의 국익을 위한 한반도 중립화 구상이 휴전협정과 이승만 정권의 반대에 밀려 실현되지 못했다. 만약 이승만 정권이 미국 쪽의 한반도 중립화 구상을 적극 지지했다면 지금의 한반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은 휴전협정 체결된 뒤에도 이승만 정부에게 중립화 통일을 제의했으나 거절당했다. 휴전회담 기간 동안에 한국을 중립화 시키려던 미국의 정책적 고려는 통일 한국을 위한 훌륭한 전략이었으며 또한 합리적인 대안이었다.(황인관, 1992, 86ㆍ88ㆍ89ㆍ101) 이러한 합리적인 대안을 거부한 이승만 정권 때문에 중립화 통일은커녕 분단이 고착되었다. 이승만 정권이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을 저해한 책임이 크다.

<인용 자료>
* 강광식『중립화와 한반도 통일』(서울, 백산서당, 2010)
* 황인관『미국과 한반도 통일전망』(서울, 한백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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