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다. 다 이긴 경기였는데 겨우 비기고 말았다."
필승 코리아를 외쳐 부르던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후반 종료 휘슬과 함께 아쉬움의 탄성을 냈다.
경기결과는 1:1. 한국팀은 실질적으로 전후반 내내 경기를 지배했지만 결국 비기는 데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미국 역시 한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강팀의 면모를 과시한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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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전반 23분경 한국의 주 공격수 황선홍이 헤딩 슛도중 찢어진 눈자위 치료를 받느라 약 2분간 나와 있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수적 우위 속에서 공격을 펼치던 미국은 미드필드 왼쪽에서 오브라이언이 가볍게 중앙으로 올려준 볼을 매티스가 가볍게 왼발로 슛, 첫 골을 뽑아냈다.
한국팀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기까지는 50분 이상이 걸렸다. 후반 11분경 교체멤버로 투입된 안정환은 후반 33분 이을용이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으로 띄워 준 프리킥을 가볍게 머리로 받아 골네트를 흔들었다. 이을용은 황금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함으로써 전반전 귀중한 페널티킥 찬스를 아쉽게 놓쳤던 실수를 한 순간에 만회했다.
한국팀은 이로써 1승1무 승점 4점을 기록해 미국을 골득실차에서 1골차로 앞서며 D조 1위를 유지했고 14일 포르투갈 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한국 선수들에게 미국전에서 보여준 6만여 홈팬들과 전 국민의 열성적인 응원은 상당한 심적 부담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전반전 이을용이 이번 대회 들어 처음으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지 못했던 것도 한미전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전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에 선수들 몸 무거워**
그동안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와의 평가전이나 지난 4일 폴란드와의 예선 1차전에서 보여줬던 한국 선수들의 가벼운 몸놀림과 정확한 슈팅은 이날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국팀은 후반 42분경 최용수의 골키퍼와 1:1 찬스를 비롯해 전후반 10여 차례에 걸쳐 미국 골문을 두드렸으나 마지막 문전처리 미숙으로 아쉽게 승부를 뒤집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한국팀이 보여준 투지는 황선홍의 부상 투혼 등을 비롯해 국민들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후반 33분경 천금의 동점골을 터뜨린 안정환은 지난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때 미국의 오노 선수에게 빼앗겼던 금메달의 아픔을 달래려는 듯 쇼트트랙 모션의 골 세리모니로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결국 경기결과는 특급비상상태에 들어갔던 월드컵 안전대책본부 등 치안당국의 바람대로 무승부로 끝을 맺었다. 7천여명의 안전요원들을 경기장에 배치한 한국 치안당국은 심정적으로는 한국팀의 승리를 기원했으나 만약의 불미스런 상황에 대비해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는 게 가장 무난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월드컵 안전대책본부 등 치안당국 육해공 넘나든 특급 안전대책 마련**
10일 열린 한미전은 안전당국의 긴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줬다. 이날 한미전에는 1만명의 경찰병력과 9백명의 군 병력이 투입된 경계경보 1등급 수준으로 치러져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1만명의 경찰병력 투입은 지난 달 31일 열린 개막전에 투입된 1만1천5백명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치안당국이 한미전에 대비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를 보여 준다.
경찰과 군은 또 대구 월드컵경기장과 한반도 해안의 미군 함정, 미 대사관 등 주요 시설물에 대테러전에 대비한 특수부대와 생화학전 전문가, 대공방어망 등을 이용한 입체적인 작전을 펼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9일 한미전에 대비해 '최고 안보수준의 치안부대가 동원됐다'며 "이는 지금까지 동원된 안전대책중 최고 수준"이라는 월터 개그(Gagg) FIFA 안전담당관의 인터뷰를 실었다.
***안전요원 추가문제로 김 대통령 대구 경기장 관람 포기**
한미전 응원과열을 우려해 대구행을 포기한 김대중 대통령은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박선숙 대변인이 대독한 브리핑을 통해 "오늘 박세리 선수가 LPGA에서 우승했고 8일 폐막된 프랑스의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한국 만화영화 '마리 이야기'가 대상을 차지했다. 한국의 애니메이션이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는 것도 기쁜 일이며 한국의 문화가 국제사회에서 거듭 인정받고 있는데 대해서도 축하할 일이다. 우승한 박세리 선수와 '마리 이야기'의 이성강(李成疆) 감독에게 축하를 보낸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의 대구행 포기는 반미감정이나 응원과열 외에도 상당 수 치안병력이 추가 동원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게 FIFA측의 설명이다. 월터 개그 FIFA 안전담당관은 "김 대통령이 대구 경기장을 찾았을 경우 1천명 이상의 경찰병력이 추가 동원돼야 했을 것"이라며 "김 대통령이 대구행을 포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주한 미 대사관, 반미감정 고려한 듯 미국 국가 한국인이 부르게 해**
한미전의 민감성을 감안한 듯 주한 미국대사관은 한미전에 앞서 한국인 정경주씨(미국명 케이 워호)로 하여금 미국 국가를 부르게 했다. 미 대사관의 결정은 미국과 한국이 적대관계가 아니라 우호적 관계임을 강조하려는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성가 가수인 정씨는 미국인 목사인 캔 워호씨의 부인으로 현재 기독교선교방송인 극동방송국의 라디오프로그램 고정 진행자다.
정씨는 월드컵 공식사이트인 피파월드컵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내 남편은 미국인이고 내 아이들은 한국계 미국인이기 때문에 이번 일에 대해 특별한 느낌이 든다. 정말 큰 영광이다"고 말했다. 정씨의 미국 국가 연주에는 80명의 금관악기 악단의 반주가 곁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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