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강력하고 정의로운 국가가 필요하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강력하고 정의로운 국가가 필요하다

[민미연 리포트-다시 한국을 생각한다]<13>

조폭적 사회 한국

지금의 한국은 정상적인 나라가 아니다. 철저하게 힘만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모든 것을 힘 있는 자, 힘센 집단들이 독식하고 있다. 힘깨나 쓰는 조폭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힘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개인이나 집단이 그렇다.

재벌이나 대기업은 모든 것을 자신만이 독차지하려 한다. 중소기업이야 죽건 말건 국가 경제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빨아낼 수 있는 대로 빨아내고 짓밟을 수 있는 대로 짓밟는다. 자기들 배만 불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기의 극치이다.

대기업 노조나 공기업 노조들도 자기들의 집단적인 힘을 믿고 제멋대로이다. 정규직 평균 임금의 몇 배를 받으면서도 그것도 모자라 수틀리면 파업을 하고 떼를 쓴다. 얼마 전에 어느 대기업 노조는 단체 임금협상에서 자식들에게까지 직업을 세습시키는 터무니없는 조건을 관철시켰다.

국회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정치인들도 다르지 않다. 선거법을 자기들에게만 유리하게 만들어 놓고 계속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 또 정쟁만 벌이면서도 자기네 이익과 관련된 사안에서는 여야가 혼연일체다. 지난번에는 한 번이라도 국회의원을 하고 나면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법안을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도대체 양심이 없다.

사법부 근처에서 밥 벌어먹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전관예우라는 더러운 구시대적 작풍이 아직도 살아 숨 쉰다. 판사나 검사를 하다 변호사 개업을 하면 몇 년 안에 평생 먹을 걸 번다고 한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소송서류에 도장 하나 찍는데 3000만 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니 국민이 사법부를 믿을 수 있겠나.

고위 공무원들은 다른가. 이권부서에 근무하던 장관 등 많은 고위직은 퇴직하면 얼마 안 되어 연관 대기업이나 김앤장 같은 로펌에 취직하여 거액의 봉급을 받는다. 그리고 공무원으로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대기업을 위해 아낌없이 퍼붓는다. 정경유착이 안 생기려도 안 생길 도리가 없다. 이들이 부패 고리의 정점을 만든다.

이뿐 아니다. 힘 있는 직업단체, 사회단체들은 조금도 자기네 이권을 잃지 않으려고 정부 당국과 국회에 로비하고 뇌물을 바치고 악다구니를 하며 싸운다. 양보라고는 한 치도 없다. 그러니 정부당국자들도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국정을 공정하게 돌볼 수 없다.

이 틈에 죽어나는 것은 아무런 조직이나 힘이 없는 서민 대중이다. 이들을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은 어디에도 없다. 목소리가 작은 만치 이들의 이익은 철저히 짓밟힌다. 무엇이 공동체인가. 한국을 하나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가?

무슨 얼토당토않은 '공정사회'인가

물론 이에는 신자유주의가 큰 영향을 미쳤다. 1998년 이후 모든 기업들이 살아남기 경쟁을 하며 효율과 이익을 모든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후 모든 것을 돈으로 계산하는 천박한 풍조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모든 가치기준을 단기적 이익에 종속시키는 이기적인 사회로 바뀐 것이다.

정부 정책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제경쟁력 확보와 무역흑자 달성을 명분으로 수출대기업의 보호와 육성에만 매달렸다. 그래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갈취하든 말든, 자영업자나 노동계급을 짓밟든 말든, 모른 체 그대로 방치했다. 현 정권에 들어와서는 오히려 세금 감면과 고환율로 이들에게 더 큰 보상을 안겼다.

그래서 재벌들, 특히 삼성그룹 같은 괴물을 키웠다. 삼성이 삼성전자 같은 세계적 기업을 성장시킨 점에서 국가 경제에 일부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에서 보듯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국의 민주주의 질서 자체를 위협하는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이다.
▲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는 삼성그룹은 이제 거의 국가 안의 국가가 되었다. 2008년 항소심 재판에서 조세포탈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나오는 삼성 이건희 회장 ⓒ뉴시스

사방에서 죽겠다는 아우성이 커지고 민심이반이 심각해지자 작년 하반기에 들어와 이명박 정권은 뜬금없이 공정사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또 최근에는 동반성장 등의 말 잔치를 벌이고 있다.

요사이에는 몇몇 재벌들이 돈을 내서 복지재단을 만들겠다는 등 부산을 떨고 있는데 아마 정부의 압박을 받은 듯하다. 또 지금까지 재벌경제를 일방적으로 옹호해 오던 보수언론들의 논조도 건강한 자본주의를 만들자는 식으로 약간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해 온 일을 보면 뻔뻔스럽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힘의 구조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푼돈을 약간 낸들 무슨 도움이 될까. 또 정부가 사회를 공정하게 만들 의지조차 별로 없는데 무엇이 바뀌겠는가. 동반성장위원회의 정운찬위원장이 정부에 대해 노골적으로 볼멘소리를 할 정도인데 정부의 정책변화를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되랴.

이렇게 사회에 불공정경쟁이 난무하고 힘 있는 자, 가진 자의 횡포가 자심해지자 이제 한국 사람들도 '정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한국사회가 바른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이다. 작년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책이 우리의 실정과 잘 맞지 않을 것 같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책에 열광한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의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의가 도덕적인 외침만으로 실현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강력한 실천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시장이 국가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사기적 주장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와 특히 영미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모든 것이며 국가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면 시장의 효율이 떨어지므로 경제는 전적으로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선진국들이 다른 약소국들의 시장을 개방하기 위한 술수이다. 또 미국 자본주의도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강력한 정치력과 군사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이번 경제위기에서도 미국의 국가는 최종 대부자로서의 기능을 계속 요구당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양적 완화 등의 경기 부양책을 쓰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그러나 만약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면 기업이나 국민들도 당연히 그런 요구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순진하게 그대로 믿고 따랐다. 그래서 그것이 결국 한국 같은 나라를 정신적으로 무장해제시키고 한국사회의 건강성을 파괴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국가의 권능을 포기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의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긴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재벌, 대기업, 부유층이 독식하는 탐욕의 사회로 만들었고 사회의 균형추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 아직도 '시장'이라는 헛된 주문을 외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이런 엉터리 경제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미국 젊은이들은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금융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 이는 미국인들도 이제 시장만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가 소수 자본가들만 배를 불릴 뿐 대다수 서민들의 생활을 곤궁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내세운 워싱턴 D.C.의 시위대. 실업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미국 젊은이들이 드디어 미국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AP=연합뉴스

그래서 그 중심인 월스트리트를 공격하고 금융 자본주의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다. 이 운동은 3주 만에 벌써 20개 도시로 확산되었을 뿐 아니라 유럽으로도 번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 사회질서에 대한 전면전의 시작이라고 하겠다. 결국 전 세계적으로 시장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 회복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국가가 사회의 불균형을 바로 잡아야

한국에서 지금 당장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시장이 망쳐 놓은 사회의 균형을 바로 잡는 일이다. 힘센 자나 집단에 휘둘리는 한국사회에 기강을 세우고 이들의 폭력성을 제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야말로 강력하고 정의로운 국가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이제 세계 경제위기가 본격화하면 대외경제에 취약한 한국사회는 상상을 허락하지 않는 상황에 빠질 것이다. 이제 국가가 어떻게 하라고 권고하고 기다리는 단계는 지나갔다. 국가가 나서서 모든 것을 규율하고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왔다.

우선 독과점 체제와 온갖 편법을 통해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망치고 있는 재벌이나 대기업의 힘을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들의 독식구조를 없애지 않는 한 한국경제는 서서히 질식하게 되어 있다. 재벌의 순환출자구조와 출자총액제한 문제를 다시 본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지금처럼 우월자적 지위에서 중소기업을 짓밟고 갈취하는 행위를 끝장내도록 해야 한다. 적정한 남품가 결정을 비롯해 중소기업의 이익을 보장해주고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의 영역에 무차별적으로 끼어드는 행위를 중단시켜야 한다.

자본과 노동의 관계도 보다 평등하게 바꿔야 한다. 자본이 제멋대로 노동자들 위에 군림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전체 노동자의 90%나 되는 비조직 노동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들이 자본과 조직노동, 국가에 대해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고칠 것은 고치게 해야 한다.

몰락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이들은 노동인구의 약 1/3을 차지하는 거대 세력으로 이들의 붕괴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불안요인을 가져오게 된다. 이들이 스스로 일해서 먹고 살 수 있게 하느냐 아니면 복지 시스템으로 먹여 살릴 것인가를 국민이 선택해야 한다.

분별없는 FTA 정책으로부터 농민들을 보호해야 한다. 전 세계적인 식량대란이 눈에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공산품을 조금 더 팔기 위해 농민들을 죽이는 것은 근시안적일 뿐 아니라 무모한 정책이다.

현재 지나치게 진행되고 있는 소득의 양극화를 당장 저지시켜야 한다. 각종 정책의 일대 쇄신을 통해 빈부차가 구조적으로 줄어들도록 정책을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사회는 두 개의 계급으로 갈라져 싸우며 끝을 모르는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일부 정치세력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전 국민의 전폭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현재의 유명무실한 노사정위원회의 규모를 대폭 확대하고 정치적인 비중도 훨씬 강화한 국가 최고 의사결정 기구를 만들고 이 기구와 국회가 함께 민주적인 방식으로 협력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정치이야기는 끝내고 한국의 사회와 경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검토해 보자.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