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폐간과 김병관 전 명예회장의 퇴진' '메이저신문 국유화' 등 이인제 후보측이 주장한 노무현 후보의 언론관련 발언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언론계가 요동치고 있다. 무엇이 쟁점이고 문제인지를 살펴보자.
문제의 핵심은 노무현 후보의 발언이 사실인지와 해명과정의 불명확성, 이인제 후보측의 관련정보 입수경위, 또 당시 노 후보와의 술자리에 참석했던 기자들은 왜 사건의 진실에 대해 100% 공개하기를 꺼려하는지, 언론들은 왜 당시에는 침묵하다가 이제 와서 이 후보의 입을 빌어 대서특필하고 있는지 등이다.
***노 후보측, 당시 발언 소상히 털어놓아야**
첫 번째 쟁점은 노 후보측의 일관성없는 해명과 문제 발언의 진위여부다. 지난 4일 이인제 후보측의 김윤수 공보특보가 노 후보의 언론관련 발언을 기자들에게 발표했을 때 노 후보측은 "완전한 조작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소설을 쓰라"는 등의 입장을 보이며 관련사실을 100% 부인했다.
그러나 이 후보측의 공세가 계속되고 언론에서 관련발언을 대서특필하자 노 후보는 5일 경인방송이 주최한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토론회에서 (동아일보 폐간 발언에 대해서는) "인간의 기억엔 한계가 있다. 술 먹고 했을 수도 있고 해서 (적극적인 해명을) 망설이고 있는 것"이라며 적극 부인에서 한발 물러섰다.
당시 술자리에 참석했던 기자들중 한 사람인 대한매일 이종락 기자는 6일 '취중진담? 취중환청?-노무현 '언론 국유화 발언' 본사기자 증언'을 통해 "(동아일보와 관련해) '폐간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들은 것 같다는 참석자도 있었다. 기자도 비슷한 뉘앙스로 들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또 한겨레21 임석규 기자(당시 한겨레 정치부 소속)는 6일 '노무현 언론발언 참석기자의 증언'에서 노 후보가 "(사원지주제와 관련해) 한국은행 특별융자라도 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말했으며 "기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사주가) 퇴진해야 한다는 얘기와 함께 '폐간'이란 표현도 했으나 참석 기자 가운데 한 사람이 '진담이냐'고 묻자 농담으로 웃어넘겼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문화일보 천영식 기자는 5일자 '8월 1일 모임경위-분위기'란 기사를 통해 이날 자리가 '언론관에 대한 노 후보의 평소 소신을 피력하는 자리였다'며 "이날 발언은 전부 오프더레코드(비보도요청)를 전제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다른 두명의 기자는 SBS와 YTN 기자로 밝혀졌다.
노 후보 발언중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메이저신문 국유화 발언'과 관련해서는 지난 5일 긴급회동을 가졌던 5명의 참석기자들 모두 "들어본 적이 없다"거나 "기억에 없다"는 입장, 혹은 "(사원지주제나 한은 특융 등을 통해) 동아일보를 공영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였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제 당면한 문제는 노 후보와 기자들과의 모임에서 나온 발언이 비보도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해도 이미 공론화된 이상 노 후보가 스스로 문제가 되고 있는 당시 발언의 진위여부와 소신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데 있다.
노 후보가 당시 정황에 대해 정확하게 기억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처음에는 "완전한 조작"이라며 부인하다가 파문이 커지자 "어떤 기자가 내가 그 말을 했다고 보도했다는데 내가 100%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기억밖의 일이며 (했더라도) 의미를 담아서 한 일은 없다"고 한발 빼는 불분명한 태도는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정직한 정치인의 모습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노 후보는 새로운 정치를 희망하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노풍'을 일으키고 있는 만큼 불거진 사안에 대해 분명한 태도와 소신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 후보측, 정확한 정보입수 경위 및 확보'증거' 공개해야**
두 번째 쟁점은 이인제 후보측의 문제시된 노 후보 발언의 공개방법과 입수경위의 불명확성에 있다. 이인제 후보는 5일 경인방송 토론회에서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한 기자가 자발적으로 찾아와 이야기해 주었다"며 "고발을 하면 검찰에 증거를 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초 노 후보 언론발언을 공개한 김윤수 공보특보는 처음에는 "출처는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다가 기자들에게 "모 신문 데스크가 친한 후배인데 정보보고로 올라온 것을 보여줘서 그 메모를 복사했고 직접 참석자에게 확인절차를 거쳤다"고 밝혔다. 이 후보와 김 특보가 노 후보 발언을 입수한 경위가 서로 다른 것이다.
이 후보와 김 특보의 발언중 일치하는 부분은 출처가 언론인이라는 것이다. 이 후보는 '한 참석 기자'이며 김 특보는 '언론사 간부'다. 지난 99년 문일현 중앙일보 기자가 작성한 언론문건이 평화방송 이도준 기자에 의해 상대 당에 넘겨지는 권언유착의 대표적인 병폐가 채 잊혀지기도 전에 또 다시 언론과 정치권간의 유착관계를 통한 정보거래가 입증된 것이다.
또 참석기자 전부에게 확인을 거쳤다는 말과는 달리 한겨레와 SBS 기자는 이 후보측의 확인과정이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참석기자중 한 명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얘기해줬다는 이 후보의 주장에도 5명의 기자 모두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이 후보측은 현재 노 후보가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형사고발하면 노 후보의 언론관련 발언이 진실임을 입증할 증거를 제출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미 경선중인 양 후보와 모든 언론이 이 문제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고 있으며 국민들도 진실을 알 권리가 있는 만큼 이 후보측은 납득할 수 있는 정확한 입수경위를 밝히고 증거가 있다면 명확하게 제시해 노 후보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당시 참석 기자들, 들은 대로 밝혀야**
세 번째 쟁점은 지난해 8월 1일 노 후보와 동석했던 기자들의 진실규명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이 후보와 노 후보의 경우 경선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의 주장이든 진실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이해관계를 떠나 비교적 객관적 위치에 있는 진실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기자들이 사실관계를 밝혀야 노 후보 발언을 둘러싼 진위공방의 실체규명이 가능하다.
현재 지면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와 노 후보 언론관련 발언을 공개한 곳은 대한매일과 문화일보, 한겨레 등 3개 신문이다.
첨석자중 한 사람인 천영식 문화일보 기자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모임이 끝난 후 데스크에 정보보고를 하지 않았다"며 "노 후보의 발언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천 기자는 기사화하지 않은 이유로 "첫째 오프(비보도)를 전제로 한 모임이었고, 둘째 당시 분위기가 서로 (문제가 된 노 후보의 발언 등을) 유도하는 분위기였으며, 셋째 노 후보 발언의 진실이 무엇인지 명확치 않았다. 정색을 하고 발언했다면 말 실수로 보고 쓸 수도 있었겠지만 진담이냐고 물으니까 농담으로 웃어넘겼다"고 밝혔다.
천 기자는 "특정언론의 행태를 비판하는 말이 많았는데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다. 기사화하기에는 공식화된 말들이 아니었다"며 "문제가 됐던 이회창 총재의 '창자를 뽑아버리겠다 발언' 등을 모두 쓸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임석규 한겨레 기자는 전화통화에서 "기사에 다 썼다"며 자신이 쓴 6일자 한겨레 기사를 보라고 말했다. 임 기자는 증언기사를 통해 "'메이저 신문 국유화' 얘기는 없었다"며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싼 이야기가 화제였다고 밝혔다.
임 기자는 또 '다른 기자들 "이인제 쪽에 '확인'해준 적 없어"'라는 기사에서 당시 참석기자들과의 회의내용을 공개하며 이 후보가 주장한 '5명의 기자 확인'이나 '참석기자중 한 명의 제보' 발언은 확인결과 사실이 아니라고 보도했다.
임 기자는 지난 5일 민주당 기자실에서 당시 참석기자들과 회의를 갖고 이들을 대표해 당시 발언내용을 공개하려 하다가 당사자들간의 견해차이로 발표를 중단한 후 "3개사는 공개에 찬성했으나 2개사에서 반대입장을 표명해와 공개가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결국 5명의 기자가 다시 부정도 시인도 하지 않는 'NCND(No Confirm No Deny)' 상태로 돌아선 것이다.
이 시점에서 5명의 기자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취재원과의 비보도를 전제로 한 모임이란 이미 보도가 된 상태에서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 이번 노 후보의 언론관련 발언 진위공방의 경우 기자들이 습득한 정보는 자사의 이익이나 개인적 정견을 떠나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필요한 공적 정보의 개념이지 보도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개인적 혹은 회사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차제에 분명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정치와 언론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정치인과 기자의 관계는 지난해 8월 노 후보와의 술자리에 참석했던 대한매일 이종락 기자가 지난 1일 대한매일 뉴스넷 기자커뮤니티에 취재후기를 통해 밝힌 것처럼 '불가근 불가원'이다. 이 기자는 이인제 후보가 제기한 음모설의 배후자 실명을 승용차내 인터뷰를 통해 단독 특종한 후 취재원과의 인간적 신뢰를 저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많은 고민을 했으나 "열흘간의 장고끝에 필자가 선택한 길이 옳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정치인 발언 받아쓰기 관행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노 후보 발언의 진위를 둘러싼 마지막 쟁점은 언론의 보도태도다. 대학시절부터 친구였던 5명의 84학번 기자들이 노 후보와 유종필 공보특보를 불러 술자리를 가진 게 지난해 8월이다. 당시 상당수 신문사에는 모임에서 나온 노 후보의 발언이 정보보고됐다.
소위 '빅3'의 한 간부는 "지난해 사내에서 노 후보의 문제 발언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아마 확인이 되지 않았거나 분위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쓰려고 해 기사화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즉 지난해 이미 알고 있었던 정보를 확인이 어렵고 소송이 두려워 쓰지 않다가 정치인이 발표하면 인용 형식을 빌어 대서특필하고 있는 게 오늘날 한국 메이저 언론들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국정감사 기간중에는 면책특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의 무책임한 발언들을 검증없이 보도하고,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경선과정에선 특정 후보에 상대후보 정보를 제공하고 그 후보가 공개하면 다시 이를 받아쓰는 우리 언론의 구태가 또 재연된 것이다.
언론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교훈을 다시금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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