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이 한반도에 엄청난 반발과 함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자 한국의 최대 동맹국이라는 점에서 협조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미국을 따르는 것만이 우리 민족의 살 길이 될 수는 없다. 이에 프레시안은 각계 전문가들의 글을 통해 현상황에서 우리의 대응은 어떠해야 하며 바람직한 한미관계는 무엇인가를 점검해 본다. 편집자
***미국은 우리 민족의 생존전략에 적대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군사비 증액 요구를 골자로 한 2002년도 연초 국정연설에서 밝힌 '악의 축(Axis of Evil)' 발언과 '선제 공격론'은 적어도 우리에게 다음의 두 가지를 매우 명백하게 일깨우고 있다.
첫째는, 현재 진행중인 남북간 냉전체제 청산의 노력을 미국은 거부하고 있다는 점, 둘째, 한반도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군사적 지배대상으로 남아 있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사안은 대북 관계에서 이른바 한미 공조체제의 균열로 나타나고 있고 둘째 사안은 미국의 주도에 의한 한반도 긴장고조로 압축되고 있다. 한 마디로, 미국 부시정권이 이 모든 반 평화적 사태전개의 원인 제공자인 동시에, '우리의 민족적 이해관계에 적대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부시 발언에 대한 과잉반응의 결과가 결코 아니다. 우리는 남과 북의 관계를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틀로 보지 않고, 서로 한계를 극복하고 보완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통일국가로 발전하는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악의 축”이라는 개념 자체가 남과 북 사이에 존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냉전체제 해체의 과정에서 군사적 요소는 부차적인 것이 되도록 하는 가운데 평화적 질서가 중심이 되는 미래를 상정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상호군축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부시 정권은 군사적 해결의 방식에 철저하게 우선권을 두고 있다. 그리하여 일본을 군사강국으로 부상시키는 데 결정적 일조를 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무장력 강화, 그리고 민족경제에 지대한 부담이 될 군비경쟁의 위험에 우리가 무방비하게 노출되도록 각종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민족적 이해관계와 미국의 세계 전략적 목표가 본질적으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충돌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우리 민족의 정상적 진로에 부당하게 개입해 들어오고 있는 미국에게 있다. 미국이 비켜서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한미 공조 조율” 운운의 논리는 따라서 그 책임을 우리 자신에게도 돌리는 방식이 된다는 점에서 치열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면, 미국의 진로방해가 가능하지 않도록 반외세 반패권적 자세를 강력하게 가지려는 의지가 박약한 것에 있을 뿐이다. 이 충돌의 현장에서 우리는 미국의 압력에 대한 굴종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의 평화적이고도 자주적인 입지를 확보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인가의 과제가 제기되고 있다.
***소위 대북 공조용 한미 관계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한미 관계의 기존질서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을 주목하게 된다. 미국이 우리민족의 냉전체제 해체전략에 대해서 이렇게 적대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한, 우리와 미국은 동일한 목표와 이익을 공유하는 동맹이 아니라 서로의 국가적 이익이 화해할 수 없는 모순의 관계, 즉 “적(敵)의 관계”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기존의 소위 대북 공조용 한미 관계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지점에 우리가 와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의 패권적 야망을 위해 우리 자신이 희생될 것인지, 아니면 우리 민족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서 미국 부시정권과의 대결까지도 결연히 감수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 대결을 두려워하는 순간,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굴종과 항상적 전쟁의 위기이며 그것을 극복하는 순간, 엄청난 민족적 단결에 기초한 평화의 진전과 민족 자주의 공간확대 가능성이 새롭게 열린다.
이번 부시 발언이 미치고 있는 충격파의 가장 극명하고도 놀라운 결과는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번영과 발전, 안전과 생명에 미국의 정책과 자세가 최대의 장애이자 위협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한국 대중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점이다. 전쟁의 위기는 남북간 대결구도에서가 아니라, 미국의 대북 전쟁정책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패권체제에 대한 격렬한 저항행위로 연결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내부적으로는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는 정치세력이 날이 갈수록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실로, 남과 북의 화해와 단결은 미국의 부시 정권에게 동북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자신의 세계전략을 가로막는 사태진전이 되는 것이며, 이러한 남북 결속이 더 강화되기 전에 이 결속의 고리를 약화 내지는 파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이에 실패하면, 미국으로서는 한반도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동북아시아 지역에 대한 주도권이 약화되는 것을 뜻하게 된다. 따라서 제국주의적 지배체제를 유지하려는 한, 미국은 이러한 현실이 발생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중동 지역의 이란과 이라크에 대한 공세적 접근, 동북아시아의 한반도에 대한 군사주의적 노선은 이러한 미국의 위기의식을 반영해주고 있으며 그와 함께, 실질적인 전쟁으로 이어질 것인가는 별도로 한반도 민중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패권체제 유지 강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다는 점에서 이러한 미국의 입장에 '공조'할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자유의 전투? 자유의 학살**
뉴욕 타임스 1월 31일자 윌리암 사파이어의 글, '자유의 전투를 수행하기 위해(To Fight the Freedom's Fight)'의 골자는 전쟁의 파괴적 결과를 우려하는 한국에 더 이상 발목 잡히지 말고 미국의 우수한 군사력에 자신을 가지고 선제공격을 하는 것이 미국의 안보를 위한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자유의 전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과거 레이건 시대, 미국의 패권정책을 위한 제3세계 군사주의 노선의 집행자들을 '자유의 전사(Freedom Fighter)'라고 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이른바 그 자유의 전사들이 민중들을 학살하고 군사적 억압과 경제척 착취를 주도한 제3세계 파시스트 세력이었다는 점을 안다면, 국내에도 조선일보와 한나라당 등을 비롯한 적지 않은 추종자가 있는 윌리암 사파이어류의 사고와 논리가 어떤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지가 자명해진다. 그것은 자유를 위한 전투가 아니라 자유를 학살하기 위한 전쟁 내지는 전쟁체제인 것이며 그로써 무고한 민중들은 지배자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박탈당해야 하는 것이다.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진행되면서 미국 내 대자본은 부시를 주축으로 하는 군사주의세력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전략을 취하였다. 위기 앞에서 자본 블럭 내부의 균열을 막고 미국 정치와 언론 내부에 나름대로 발전해온 자유주의적 장치의 견제를 격파하면서 제국주의 질서의 정치군사적 안정에 최대한의 역량을 집결시키려는 것이다. 이것은 곧 파시즘의 등장을 의미한다. 제국주의가 위기에 몰렸을 때 동원하는 정치적 기반은 언제나 자본과 군사의 동맹체제인 파시즘이다. 경찰과 정보기능의 강화를 겨냥한 '조국 안보국',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비판을 억압하기 위한 '애국법안', 외국인까지도 군사법정에 세우도록 한 '군사재판 법령' 등등은 모두 이러한 파시즘적 기능의 제도적, 법적 현실을 보여준다. 전쟁정책에 대한 의회의 무력화(無力化) 내지는 무비판적 동조 분위기는 또한 바로 이 자본-군사 동맹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내부 정치의 본질적 동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미 패권정책의 내부 동조자?**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미국 행각에서 보인 태도는 이러한 차원에서, 미국의 패권질서에 순응 내지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려는 의사를 밝힌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미국의 대자본이 요구하는 논리에 선도적으로 화답한 것은 이미 지난 1997년 금융위기의 과정에서 IMF와의 재협상론에 격렬한 반발을 했던 것에서 확인되었던 바이며, 대북 적대적 군사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점은 한반도 평화 분위기 진작에 중대한 계기가 될 수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반대' 등 최근의 여러 발언에서도 여지없이 증명되었다.
미국의 패권정책은 언제나 그 대상국가 내부에 적극적 동조자를 물색하고 그를 권력의 정점에 세우기 위한 정치공작에 몰두한다. 이것은 2차 대전 이후 지난 반세기의 미국 대외정책사가 고스란히 입증하고 있는 역사이다. 미국 부시정권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그러한 각도에서 제국의 대본영과 그 식민지 체제의 하부구조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이회창 총재를 중심으로 하는 한나라당과 그 지지세력의 집권이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될 것인지를 일깨우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회창 총재만이 아니다. 오늘날 대권주자로 운위되고 있는 민주당의 인물들 역시 미국의 이러한 전쟁정책과 제국주의적 패권질서에 분명하게 맞서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는 부당한 외세의 간섭과 개입, 지배에 저항하면서 민족의 생명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결연한 의지가 보이지 않으며 민중의 희생을 요구하는 미국의 정책적 본질에 대한 비판의식을 정치적 선택과 행동으로 연결하려는 치열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은 미국의 전쟁정책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그 무엇보다도 민족전체의 안보를 최선으로 여기는 정치역량이 낮은 수준에 있거나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못한 것을 말해준다. 정당개혁이나 기타 대선을 향한 움직임은 모두 절차와 제도, 그리고 정파간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 절박한 처지에 빠진 민족현실을 구하려는 본질적 과제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가 철저하게 왜소화되어 있고, 강대국의 논리에 눈치를 살피는 식민지 근성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 현 단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실현'이 최선의 해결책이자 기회**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미국은 지금과 같은 전쟁 정책을 고수하는 한 적어도 우리 민족의 문제에 있어서 결코 동맹이 아님을 정치권은, 오해가 불가능한 명백한 표현으로 선언해야 한다. 남북 평화공존과 화해 협력을 막는 미국의 '북한 몰아대기' 또는 '때리기'에 공조할 수 없으며, 그 결과인 전쟁의 참담함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주의 노선에 우리가 동맹이라는 이름아래 종속적 보조세력으로 남아야 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의 이익을 이토록 압박해 들어오면 미국이 우리 민족 전체에게 적(敵)이 되는 상황까지 발전할 수 있음을 인식시키는 간접적 차원의 시사라도 반드시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 전쟁정책의 제1차적 수행기구를 그대로 놓아둔 채, 미국의 전쟁정책을 말로만 반대한다고 해서 어디 그 발언에 실질적인 무게가 실리겠는가? 이것은 미국의 전쟁정책을 교정해내기 위한 압박용 외교전략으로 필요한 공론으로서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항상적 긴장관계를 청산하기 위해서도 필연적인 작업이 된다. 한반도 전체의 군사정책을 지휘하는 본부의 존재는 우리 민족의 생명이 그 본부의 결정 밑에 있음을 뜻한다는 점에서 이를 청산하는 과정 없이 우리 민족의 진정한 안보는 없다. 동북아시아 세력 균형자의 역할을 기대하면서 주한미군의 통일 이후 주둔까지 용인하는 발언들이 심심치않게 들리지만, 그것은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가장 결정적으로 지원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는 소치에 불과하다.
셋째, 대북한 지원전략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이것은 금강산 사업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식량과 전력, 그밖에 북한의 경제회복과 남쪽 경제의 활력을 결합시키기 위한 전면적인 민족경제 수립방안의 실현에 속도를 내고 박차를 가해야 한다. 경제봉쇄의 고난에 처해 있는 북한경제의 돌파구를 여는 작업에 남쪽이 적극적인 역할을 감당하려는 의지가 분명하고 그것이 현실이 될 때, 남북간 민족단결과 한반도 전체의 평화적 기운의 융성은 한반도 문제를 대하는 국제사회의 시선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이로써 미국의 전쟁정책은 더 이상의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현실이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필요한 최선의 계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 실현'이다. 그것은 어느 한 정파의 정치적 전리품이 돼서는 아니 되며 답방 자체가 해결을 보장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따라서 그 내용의 진전을 위해 이 일은 각계 각층의 총체적 공동작업이 되어야 한다. 그의 답방을 통해서 우리는 현재 처해 있는 민족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각종 거족적 조치에 대한 결단을 촉구하고 이를 이루기 위한 분위기 진작과 각종 제도적 법률적 장애물 제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민족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남북간 수장(首長)의 만남도 이루지 못한다면, 외세가 우리 민족의 생명을 가지고 농락하는 일은 점점 더 쉬워지지 않겠는가?
부디, 우리 민족 전체의 깨어남과 민족의 생명에 대한 절절한 결단이 요구되는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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