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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 대북정책 바꾼 父王의 메모

엔론게이트, 칼라일, 그리고 한국

***엔론게이트, '강 건너 불' 아니다**

프레시안의 한 독자께서 “엔론게이트라고 고집하는 근거가 있습니까?”(프레시안 게시판 400번)라고 물어오셨다. ‘야고보’라는 필명의 이 독자는 “미국에서는 엔론게이트라는 표현을 아직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좋은 신문 프레시안도 성질이 좀 급한 것 같아서 여쭙니다”라고 질문했다. 이 글은 그에 대한 답변이다.

우선 ‘엔론게이트’라는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은 프레시안이었다. 프레시안은 지난 8일 엔론게이트<1>에서 엔론 파산이 올해 미국 정치에서 주요한 의제가 될 것임을 예고했으며 이후 계속해서 관련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국내 다른 신문들이 ‘엔론게이트’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프레시안 보도 이후 2,3일이 지난 후부터였다.

프레시안은 지난 해 12월 2일 엔론 파산 직후부터 이 사건이 미국 자본주의의 어두운 속내를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꾸준히 추적해 왔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기업 파산이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기업의 추악한 정경유착, 세계에서 가장 투명하다는 기업회계의 조작 등에서도 그러했다. 결국 1월초 미 상원이 이 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결정하면서 엔론은 파산 한달만에 미 정가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엔론게이트가 결코 미 국내정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취재가 계속되면서 엔론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대기업과 정치권력간의 유착이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났다.

***현 부시 대통령은 14년전에도 아르헨티나에 압력**

한, 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현재 미국 대통령인 조지 W. 부시는 1994년 텍사스 주지사가 되기 전까지는 평범한 석유사업가였다. 그런 그가 1988년 아르헨티나의 정부 각료에게 엔론에 협력할 것을 요구하는 압력성 전화를 걸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전 국토를 가로질러 칠레에까지 이르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계획 중이었다. 그런데 아들 부시가 아르헨티나 건설부 장관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미 부통령의 아들이라며 이 사업을 엔론에 넘기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1988년 당시 아버지 부시는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고 있었다. 아들 부시는 자신의 아버지가 곧 미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은근히 협박성 발언까지 했다고 한다.

당시 라울 알폰신 정부의 건설부 장관이었던 로돌포 테라뇨는 이같은 요구에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9년 부시 전 대통령의 친구인 카를로스 메넴이 정권을 잡으면서 파이프라인 건설건은 엔론측에 넘어갔다. 부시 전 대통령의 또다른 아들 닐 부시는 메넴이 대통령에 취임한 바로 다음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메넴과 공개적으로 테니스 게임을 함으로써 메넴의 위상을 한껏 올려주었다.

(이같은 사실은 미국의 진보적 시사주간지 네이션 1994년 11월 21일자에 보도된 것으로 최근 네이션의 인터넷 홈페이지(www.thenation.com)에 다시 띄워져 있다. 이 글 말미에 기사의 주요 내용이 번역돼 있다.)

메넴 정권 이후 10여년간 미국의 요구를 충실히 따랐던 아르헨티나가 지금 어떤 꼴이 돼 있는지는 독자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엔론, 인도서 부패스캔들, 인권 침해**

또다른 사례는 인도이다. 지난 1993년부터 시작된 인도 다브홀댐 공사는 엔론에게는 최대 규모의 해외투자 사업이었지만 인도에서는 인도 사상 최악의 부패스캔들로 알려져 있다. 자그마치 2천만 달러의 뇌물이 인도 정치인들에게 뿌려졌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은행을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들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엔론은 뇌물과 정치적 압력을 동원해 댐 공사를 밀어부쳤던 것이다.

엔론은 공사현장인 인도 마하라쉬트라주 현지 경찰 및 깡패 등을 동원해 댐건설 반대 운동을 분쇄한 것은 물론 수몰지역의 거주민 40만명을 강제로 몰아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이미 지난 97년부터 엔론의 인권침해를 고발하기 시작했다.

다브홀댐은 지난 99년 1차 완공이 돼 전력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력 가격은 인도 현지 평균 가격의 7배나 됐다. 전력가격을 국제시장의 석유 가격과 연동시켰기 때문이다. 이 댐에서 생산되는 전력의 연간 요금은 14억 달러로 마하라쉬트라주의 연간 교육 예산과 맞먹는다고 한다. 당연히 주정부는 전력요금을 내지 못했고 전력생산은 중단됐다.

이 발전소는 지난 해 6월 가동이 완전 중단됐고 현지 고용인들도 모두 해고됐다. 하지만 엔론은 최근까지 딕 체니 부통령은 물론 부시 대통령까지 동원해 부채를 받아내기 위한 정치압력을 가했다.(프레시안 21일자 엔론게이트<7>)

한국은 과연 엔론과 같은 미 대기업의 사업 기회 확대를 위한 이같은 미 정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북미대화 재개는 아버지 부시의 입김 때문**

이와 관련, 미국의 경제잡지 ‘레드 헤링’(www.herring.com)은 최근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지난 해 취임초 북한과의 대화를 단절했던 부시 대통령이 6월 들어 북미대화를 재개한 것은 투자그룹 칼라일의 고문을 맡고 있는 아버지 부시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댄 브리오디 기자가 1월 8일자로 작성한 기사 ‘칼라일 방식’(Carlyle's Way)의 일부를 인용해 본다.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그는 북한과의 대화를 단절했다. 클린턴 행정부의 지지 하에 수년간 대북협상을 진행시켜 온 한국 관리들에게 이 소식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6월이 되자 부시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했는데 이는 아버지의 권고에 의한 것이었다.

언론 보도들에 따르면 부시 전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할 필요성을 설득하는 메모를 보냈다고 한다. 공직자가 아버지의 사적인 권고에 영향을 받은 것은 미국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칼라일 그룹에 관해 많은 자료를 갖고 있는 워싱턴 소재 시민단체 공직청렴센터(CPI)의 피터 아이스너 사무국장은 ‘우리는 부시 전 대통령이 미국의 한반도정책에 개입했음을 분명히 알고 있으며 부자간의 의사소통이 있은 후 미 정책이 바뀌었음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부시 전 대통령이 칼라일그룹을 위해 일해 준 보수를 받고 있다는 것, 그가 현 대통령에 조언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 투자그룹 고문의 조언 한마디로 미국의 한반도정책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경색됐던 북미관계를 대화의 방향으로 틀어놓았다는 점에서 고마워해야 하는 것일까. 칼라일의 사업적 이해가 현재의 한반도 긴장완화에서 언젠가는 긴장 조성, 나아가 전쟁으로 나아갈지도 모른다는 점, 그 경우 우리가 이를 막을 방도가 거의 없다는 점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미 주류언론은 기득권계층의 대변자**


마지막으로 클린턴의 화이트워터 스캔들보다 규모가 1천배는 된다는 엔론게이트가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주류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비상시국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외부의 위협을 받고 있는 시점인 만큼 대통령의 지도력에 손상이 가는 보도는 가능한 자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진보진영에서는 뉴욕타임스 등 이른바 주류언론들이 미국의 제도권(Establishment), 즉 지배계층의 기득권 수호를 위해 일하고 비판하고 있다. 예컨대 클린턴의 화이트워터 스캔들에 대해서는 취임초 문제제기에서부터 그의 퇴임 때까지 8년간 줄곧 물고 늘어졌던 뉴욕타임스가 이번 부시 대통령의 엔론게이트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관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뉴욕타임스는 지난 4일자 사설에서 엔론 파산과 같은 ‘사소한’ 사건으로 국론분열을 초래할 경거망동을 하지 말라고 준엄하게 경고한 바 있다. 전임 클린턴 대통령이 남부 시골 아칸소주에서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이혼녀 사이에서 태어난 ‘근본없는’ 인물이었던 데 비해 현 부시 대통령은 할아버지가 코네티컷주 출신의 연방 상원의원, 아버지는 대통령을 지낸 그야말로 ‘뼈대있는’ 집안의 자손이다.

미 주류 언론의 클린턴에 대한 적개심과 부시에 대한 관대함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언론이 지금처럼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주류 언론에만 의존해 미국 사정을 파악하다가는 진짜 중요한 측면을 놓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미 부통령 아들인데...”-부시의 전화(미 네이션 기사 발췌)**

1988년 로돌포 테라뇨는 아르헨티나 라울 알폰신 정부의 건설부 장관이었다. 그는 거대 산업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당시 아르헨티나 정부는 국토를 가로질러 칠레에 이르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을 계획하고 있었다.

몇몇 미 기업들이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중에는 엔론도 끼어 있었다. 텍사스에 본부를 둔 엔론은 미국 최대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회사였다. 그러나 테라뇨는 아프헨티나 주재 엔론 대표들의 건방진 태도에 진저리를 내고 있었다.

이들은 아르헨티나 국영 가스회사에 대해 엔론에 천연가스를 터무니없는 가격에 넘기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그들이 새 파이프라인 건설과 관련해 제출한 계획서는 단 반 페이지 짜리였다. 너무도 부실한 계획서라 테라뇨는 과연 엔론이 파이프라인 건설에 관심이 있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테라뇨는 노골적으로 엔론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조지 W. 부시의 예기치 않은 전화를 받은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테라뇨에 따르면 자신을 미국 부통령의 아들이라고 소개한 그는 파이프라인 건설사업이 미국 기업에, 특히 엔론에 입찰됐으면 좋겠다는 의향을 표명했다.

테라뇨는 “그는 파이프라인 사업이 엔론에 입찰되게 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테라뇨는 “그는 자신이 미래 미 대통령의 아들(당시 부통령은 대선에 도전중이었다)이라는 듯이 말했다. 나는 압력을 받고 있다고 느꼈다. 그런 종류의 전화를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테라뇨에 따르면 조지 W.는 파이프라인 건설이나 엔론과의 관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엔론과 부시 일가가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현 대통령의 아버지)는 10여년전부터 엔론 회장인 케네스 레이 친구 사이로 지냈으며 레이는 부시 대통령의 주요 모금책이었다.

지난 해 (1993년) 세이무어 허시가 뉴요커에 기고한 기사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의 또다른 아들인 닐 부시는 엔론과 함께 쿠웨이트에서 사업을 벌이려 했다.(닐은 80년대 신용대부조합 때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연방 감독관에 의해 지목된 바 있다) 엔론과 그 임원들은 아들 조지 부시의 텍사스 주지사 도전에 1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아들 부시와의 전화 통화 후에 테라뇨는 또다른 형태의 미국의 압력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주재 미국 대사 시어도어 길드레드가 그를 방문한 것이다. 캘리포니아주의 부동산 개발업자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아르헨티나 대사에 임명된 그는 언제나 테라뇨에게 미국 기업들과 사업을 하라고 압력을 가해 왔다.

그러나 테라뇨에 따르면 이번의 메시지는 그 전과는 약간 달랐다. 아들 조지 부시가 엔론을 밀고 있으므로 테라뇨도 이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미묘하고도 애매한 메시지였다”고 테라뇨는 말했다. “(아들 부시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 미국과의 관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테라뇨는 끝내 이 사업계획을 승인하지 않았고 알폰신 정부는 1989년 정권에서 물러났다. 엔론은 다음 아르헨티나 정부 하에서는 훨씬 운이 좋았다. 신임 대통령이자 부시 대통령의 친구인 카를로스 메넴이 사업 계획을 승인한 것이다. (메넴이 대통령에 취임한 다음날 닐 부시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메넴과 테니스 게임을 함으로써 그를 한껏 띄워 주었다)

아르헨티나 국회의원들은 메넴이 이 사업의 경제성도 검토하기 이전에 사업허가를 내주었다며 메넴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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