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개인마다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북한을 떠나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 아이들 대부분은 보통 2~3년씩 중국에서 숨어살다 온다. 물론 요즘은 부모가 먼저 남한에 와서 준비한 다음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 한두 달 만에 오기도 한다.
꽃제비가 되어 시장판을 돌아다니면서도 공안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눈치 백단은 기본이다. 아주 운 좋게 겨우겨우 살 자리를 마련한 부모 덕에 몰래 학교를 다니면서도 누군가 신고할까 봐 항상 마음 졸이며 살아야 한다. 실제로 내가 아는 단체에서 지원해서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 7명이 한꺼번에 잡혀간 경우도 있다. 한동안 잘 다녔는데 누군가 신고를 한 때문이다.
아이들만 숨겨놓은 집에 교육 실태조사를 갔을 때 그 집에 2년째 있다는 10살짜리 아이는 한 번도 낮에 밖에 나가 논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밖에 나가 놀 수가 없다. 방이 두 칸인데 그 좁은 방에서 10여 명이 밤낮으로 조용히 숨죽이고 살아야 한다. 한 곳에서는 방 두 칸짜리 작은 아파트에 15세 전후 아이들 20여 명이 숨어 살고 있었다. 언젠가 작은 아파트에 아이들과 어른 60여 명이 두 달을 숨어 살다 중국 공안에 잡혀 나오는 모습을 방영하는 TV를 본 적도 있기는 하다.
"중국에서 공안들에게 체포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약 2년 반을 아파트에서만 생활했다. 여러 명이 모여서 주로 성경공부를 하였는데, 성경공부 이외에는 TV 보는 일이 전부였다. 너무 답답했다. 마음껏 날아다니는 새들이 너무 부러웠다."
"두만강을 건너는 도중에 어머니가 물 속에서 살려달라고 허우적거린다. 나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 정신이 없었다. 물이 깊어서…. 날이 밝을 때까지 강가에 숨어서 기다렸지만… 어머니는 없었다. (…) 농장에서 일하는데 저녁에 차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썩 내려앉는다. 공안이 아닌지…."
새터민과 만나서 이야기 들으면 이와 비슷비슷한 증언을 수없이 들을 수 있다. 새터민 어린이를 취재해서 쓴 『딱친구 강만기』(문선이 글, 푸른숲)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 동화책 주인공 강만기가 겪는 상황은 그와 같은 수많은 탈북 아이들이 겪는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두려움이다.
문제는 새터민 아이들이 겪은 그 아픔과 외로운, 두려움이 대한민국에 왔다고 해서 싹 가셔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아이들 중 많은 아이들이 남한에 와서도 선뜻 "나, 북한에서 왔시요"라고 나설 수 없다는 것이다. 자존심을 상하게 되거나 놀림 받거나 심하면 왕따를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억양이나 속도 다 집에서 연습하고 학교에 와요. 교과서를 읽으면서 정말 열심히 연습하는 거예요. 그리고 수업 시간에 처음 저를 보고 한 번 읽어보라고 시키잖아요? 절대로 안 읽어요. 다른 아이들이 읽고 나서 그 다음에 내가 그대로 따라 읽는 거예요. 속도, 말씨 다 다시 해야 해요."
- 영이(여,17세) : 남북문화통합교육원, 「새터민 청소년 교육의 현황과 과제」, 2005, 90쪽.
가장 큰 문제가 말이다. 억양이 다르기 때문에 쉽게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알리게 되기 때문이고, 말투 때문에 놀림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한에 와서 국방부와 국정원에서 조사를 마치고 정착 지원 교육을 하는 하나원에 들어가면 가정 먼저 남한 말을 배우려고 한다.
하나원에 '하나둘 학교'를 만드는 초기에 방학 때나 주일에 내려가 숙박을 하면서 가르친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나 부모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바로 학교에 갔을 때 남한 아이들한테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먼저 나간 아이들이 실제로 그런 경우를 당했다는 소문이 많이 퍼져 있었기 때문에 더 걱정이 많았다.
당시 내가 가르쳤던 '하나둘 학교'의 남자 아이 한 명은 드물게도 평양에서 온 아이였다. 대부분 아이들이 회령이나 온성을 비롯한 함경도 아이들이 많았고, 평안도에서도 신의주나 정주 정도지 평양에서 직접 온 경우는 드물다. 아버지가 당 일꾼이었고, 어머니도 인민학교 교사였다. 학교 교육도 몇 달 정도밖에 손실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무척 활발하고, 유머도 있고, 공부도 제법 했다. 그런데 배정을 강남 쪽으로 받아서 초등학교 6학년으로 들어갔는데,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안 아이들이 놀리고 따돌렸다. 그래서 그 옆 학교로 전학을 시키면서 북한에서 온 것을 교장 선생님만 알고 숨겼더니 먼저 학교와 같은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2학기에는 학급 임원까지 맡게 되었다고 했다. 이러니 학교에 가면 처음부터 자신을 떳떳하게 밝히라고 선뜻 권유하기도 어렵다.
"억양이 내가 틀리면 아이들이 황당하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거든요. 그러면 그냥 중국에서 왔다고 하고 넘기거든요. 항상 내가 이야기를 할 때는 그 전에 한 번씩 말 할 문장을 속으로 해본다구요. 그리고나서 말을 확인하고 하는데…. 얼마나 복잡하겠어요. 만약에 북한 말이 나온다고 하면 그 즉시 거기서 말을 멈춰버려요. 그래서 어머니를 우리 학교에 절대 못 오게 하잖아요. 체육대회 때도 우리 어머니는 그냥 멀리서 지켜보고 가셨어요. 제 마음이 얼마나 그랬겠어요. 하지만 할 주 없죠. 어머니한테 그랬어요. 할 수 없다고, 어쩔 수 없다고…."
- 영이(여,17세) : 위 책, 94쪽.
"사람들이 거기(북한)에 대해서 좀 안 좋게 이야기하거든요? 그러면 좀 마음이…그렇게 기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좀 그래요. (…) 한 번은 수학에서 '지수' 있죠. 그 '지수'를 북한에서는 '어깨수'로 부른다고 그러면서 선생님과 여기 학생들이 막 비웃듯이 웃었어요. 그것 보면서 좀 마음이 안 좋았죠. 그래도 뭐 중국에 있을 때보다는 낫지. 원래 못사는 나라니까 당연히 비웃을 수 있죠. 그렇죠?"
- 근 : 위 책, 95쪽
"일단 저에 대해서 이야기 하잖아요? 그러면 사이가 멀어져요. 지금도 두려운 것이 지금 친한 아이가 있는데, 아직 나에 대해서 모르니까…. 만약에 알게 되면 또 사이가 멀어질까봐 그게 두려워요."
- 설이(여, 15세) : 위 책, 96쪽.
남한에 와서도 이처럼 자신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아이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사실 교사로서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교사들이 조금만 신경 쓰면 오히려 당당하게, 북한 말투를 그대로 쓰면서 함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들이 조금만 편견없이 대하면 북한 출신 새터민들이 굳이 자신을 숨기면서 살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학교에는 서울시에 하나밖에 없는 여자축구부가 있다. 여자축구부원으로 북한에서 온 새터민 어린이 한 명과 중국에서 온 교포 자녀가 있다. 새터민 어린이는 4학년 때 전학을 와서 지금 5학년을 다니고 있는데,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밝혔어도 아이들하고 아주 잘 어울려서 생활한다. 중국 교포 자녀도 3학년 때 전학을 와서 지금 5학년에 다니고 있는데 잘 생활하고 있다. 이처럼 교사나 이웃이 새터민 아이들을 편견없이 바라보고, 그 차이점을 이해하는 마음만 있으면 아이들끼리는 잘 지낼 수 있다.
새
높은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저 새는 내 마음의 희망이다.
늘 넓고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행복을 누리는 새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또 새 계절이 와도
언제나 변함없이 새는
자신의 모든 꿈을 위해 날아다니듯...(하략)
- 김00(하나둘학교 청소년반 64기) : 위 책, 402쪽.
새터민 아이들이 쓴 글이나 그림에 새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처럼 새를 좋아하는 까닭은 새가 숨어살지 않고 하늘을 마음껏 자유롭게 당당하게 날아다닐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탈북 어린이 교육실태를 조사할 때 몇 가지 설문 조사를 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짧은 시간에 머리에 떠오르는 말 쓰기와 그림 그리기였다. 연상어에서도 새가 많이 나왔고, 그림에서도 새가 들어가 있는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7살짜리 여자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니 회색 크레파스로 낙서한 것 같았는데, 그림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고 하니 그 그림이 새를 그린 것이라고 했다.
새터민 아이들이 이국땅에서 마음 졸이며 숨어산 것만도 안타까운데, 우리나라에 와서까지 더 이상 숨어 살게 해서는 안 된다.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새처럼 우리 새터민 아이들도 우리 땅에서 더 이상 자신을 숨기고 살지 않아도 되기를 빈다. 남북한 아이들이 자기 말투를 생생하고 자유롭게 쓰면서 당당하게 함께 살아가는 내일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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